소설리스트

포식자들의 세상-10화 (10/86)

〈 10화 〉 포식자들의 세상 ­10­

* * *

나는 오늘 일을 마치고 ‘나의 상사’ 에프타인에게 퇴근하겠다고 말했다. 에프타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고했다고 말해 주었다. 여전히 무표정하다. 나가려는데 갑자기 에프타인이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에프타인은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나에게 두 손으로 쥐어 준다.

“어머? 이게 뭐에요?”

“호신용 무기입니다.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요.”

손을 펴 보니 마비 스프레이였다. 호신용으로 나왔으나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리는 물건이다. 마비 스프레이로 사람을 마비 시키고 납치하는 사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구하기 힘든 물건인데 에프타인은 어떻게 구했는지 이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긴 외교 차관 쯤 되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에프타인은 지문인식과 혈액인식을 꼭 해두라고 당부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한 뒤 퇴근했다. 택시에 내려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 인기척이 들렸다. 뒤를 슬쩍 보니 가끔 인사를 했던 이웃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한 손에 파이프 같은 긴 물건을 쥐고 있었다.

나는 긴장해서 일단 못 본 척 하고 빠르게 집으로 갔으나 곧 따라 잡혔다. 나는 어깨를 잡혔다.

“아얏!”

억지로 몸을 돌리는 바람에 억지로 그를 보게 되었다. 그는 나를 무표정하게 쳐다 보고 있다.

“로니프씨.. 어쩐 일 이세요..?”

“내 동생도 먹은 거야?”

그는 무표정하게 물어본다.

“먹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무서운 걸 감추기 위해 나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로니프는 자신의 말만 했다.

“2년 전 내 동생은 금성에서 실종 당했어. 먹은 거잖아. 금성에서.”

“저..저는..”

말을 못 잇고 있을 때 다른 무리들이 끼어들었다.

“뻔하지 뭐.”

“짐승 같은 여자.”

“인간도 아니라고 스스로 말했잖아?”

선전포고 이후 처음으로 노골적인 적대감을 받는다. 로니프는 내 이웃으로 당연히 내가 화성에 10년 넘게 살았음을 알고 있을텐데도 마치 내가 자기 동생을 잡아 먹은 것처럼 분노하고 있었다.

남자 무리들은 나를 금성의 창녀, 금성의 짐승이라고 부르며 천천히 다가 왔다. 나는 에프타인이 준 마비 스프레이를 기억하고 2m까지 접근 했을 때 재빨리 뿌렸다. 마비 스프레이는 곧 남자 무리들을 행동 불능으로 만들었다. 나도 마비 스프레이에서 뿜어내는 연기를 마셨지만 혈액인식을 시켜 둔 덕분에 신체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마비는 곧 풀리게 될 테니 집으로 갈 수도 없었다. 나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하이힐을 손으로 벗으며 다른 곳으로 사력을 다해 뛰었다.

정처 없이 뛰다가 몇 번은 내가 금성인임을 의심하는 눈초리를 받은 것처럼 느껴져 뒷골목으로 숨다가 정신이 없어 여기가 어딘가 싶었더니 어떤 다중 저택이었다. 그러자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리디스씨?”

뒤를 돌아보니 에프타인이었다. 평상복의 에프타인은 처음 봤다. 전에 금성에 출장 갈 때는 종류별로 정장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런 편한 차림을 보지 못했다. 그는 평상복도 수려한 외모와 다르게 수수하면서도 어울리게 입었다.

“여기는 어쩐 일로..”

여기는 에프타인의 집 근처인가 보다. 우연이지만 이로써 한 숨 돌릴 수 있겠다. 나는 에프타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에프타인은 어쩔 수 없이 하룻밤 재워주기로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다중 저택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에프타인은 이쪽이라고 안내했다. 다중 주택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에프타인은 일반적인 아파트로 향했다. 반구 모양의 아파트는 화성의 전형적인 시민들의 집 모양이다. 테라포밍 이전 기지의 디자인이다.윗 집일수록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말이 들리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에프타인은 아파트의 중간 정도인 11층 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에서 내리니 넓은 잔디밭이 나온다. 중앙에 위치한 원형의 잔디밭을 가로 질러 가장자리에 둘러 있는 문 중 하나로 들어갔다.에프타인의 집에 들어오자 상큼하고 좋은 냄새부터 났다. 중년을 앞둔 남자의 집이라고 하기에 굉장히 깔끔하고 관리가 잘 되어있다. 한편으로는 너무 깔끔하게 되어 있어서 인간적인 부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청소는 매일 하시는 거에요?”

“아니요. 매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3일에 한 번 정도 합니다.”

“그러시군요.”

탁자에 전시되어있는 미술품들을 만져 봤다. 먼지가 없는 것으로 봐서 에프타인은 청소 할 때도 성실하게 했을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은 유감입니다.”

잡생각 중 ‘나의 상사’ 에프타인은 오늘 내가 쫓긴 일에 대해 위로를 건냈다. 위로를 듣자 눈물이 나올 뻔 했지만 감정을 잘 추스린 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마비 스프레이도 잘 사용했다고 하며 보여 주었다.

“그것은 앞으로도 잘 사용하세요. 충전하시는 것 잊지 마시고요.”

에프타인은 그 뒤에 경찰에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 좋겠다며 진지하게 조언하였다.

다음날 아침 에프타인이 직접 아침을 차려 주었다. 구운 빵인데 무슨 양념을 뿌린 것인지 맛이 좋았다. 에프타인은 화성중앙부 회의실로 호출받았다. 나는 아침을 대접 받고 에프타인을 배웅했다.

“출근은 좀 진정이 되시면 하시고 집은 어차피 나가시면 자동으로 문이 잠길 겁니다. 잊어버리는 물건 없으시기 바랍니다.”

“네. 어제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에프타인은 나가면서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나는 1시간 정도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다가 늘어지는 기분이 들어 정신을 차리기 위해 바로 씻고 나왔다. 잊어버린 물건은 없다.

경찰서에 먼저 들러볼까 생각했지만 경찰도 내가 금성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일을 건성으로 하거나 혹은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 그나마 나를 반겨줄 것이라 생각되는 외교부로 직행했다.

사무실로 출근한 뒤 칼렌과 유리치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좀 있다가 어제 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제 저 큰일 날 뻔 했어요.”

“무슨 일 있었어?”

칼렌이 묻자 내가 대답했다.

“어제.. 집단 폭행 당할 뻔 했는데 나를 폭행 하려던 사람들이금성에서 실종된 사람의 가족이었어요.”

“뭐? 진짜야?? 실종자 가족 무리였던거야?”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한 명은 확실했지만.”

유리치가 끼어든다.

“리디스는 지금 일할 때가 아니라 경찰에 신변 보호라도 요청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렇죠. 그렇지 않아도 차관님께서도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라고 하셨어요.”

“그래? 차관님이랑은 언제 연락 한거야?”

내가 차관님 집에 하룻밤 자게 된 것을 알면 곤란해 질 것 같았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으니 상관은 없지만 요즘 같은 상황에서 금성인은 꼬투리 잡힐 만한 일을 안 만드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 것이다.

“너무 놀라서 그만.. 연락하고 말았어요.”

“그게 뭐야.. 멀쩡한 것 같으니 더 이상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지?”

“그럼요.”

유리치가 내 걱정을 한 적이 있나? 나를 사지로 몇 번 몰았던적은 있는 것 같은데. 그 뒤 유리치는 에프타인이 화성중앙부 회의 때문에 출근을 못 할 것이라고 했다. 칼렌의 배려로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밤에 또 습격 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성에서도 치안이 좋다고 평가 받는 BC003이이런데 다른 곳은 안 봐도 뻔하다. 뉴스에서도 금성인들이 화성인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위협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밖에는 할 수 없다. 괜한 의심인가 생각도 해봤지만 어제 일을 생각하면 이 생각이 지나친 것은 아니다. 어쩌면 화성에 있는 금성인들을 규합하여 화성인의 무분별한 폭력과 증오에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나의 상사’ 에프타인의 충고도 있고 하니 나는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에게 신변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개인 경호 업체를 고용할 수도있겠지만 돈도 들고 아직 화성 정부의 공정함, 지금까지 느꼈던 화성의 좋은 이미지를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화성에서 살면서 차별이나 무시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부분 친절하고 나를 화성의 일원으로 대해주었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길 잃은 소년을 데려다 주었던 그 경찰서에 도착했다.

경찰서에 들어오자 경찰들 몇 명이 나를 쳐다 본다. 쳐다 볼 뿐이다.

“저 혹시 신변 보호를 요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혹시나 말을 더듬거나 소심해 보이면 더 무시 받을까봐 일부러 또박또박 발음하며 당당하게 굴었다. 그러나 경찰들은 나를 본척 만척 한다. 약간의 적막이 흐르자 한 경찰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딘가 낯이 익은 경찰이었다.

“혹시..”

내가 말을 하자 경찰이 반응한다.

“네. 신원불명소년을 데려오신 적 있으시죠? 그 때 접수 했던 경찰입니다. 유러스라고 합니다.”

자신을 유러스라고 소개한 경찰은 신변 보호에 대해 안내를 해주었고 나는 잘 부탁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러스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개인 경호 업체에 의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네?”

내가 반응을 보이자 유러스가 말했다.

“경찰들도 금성에 대해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거든요. 제대로 보호해 줄지 의문이에요. 차라리 경호 업체는 돈이라도 받으니까 돈 값은 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유러스씨가 보호해 준다거나..”

“전 담당도 아니고 체력이 누군가를 보호해 줄 정도로 좋은 것은 아니라서...”

서로 말을 줄이며 어색함을 최소로 해본다.

결국 개인 경호 업체에 의뢰하기로 하고 경찰서를 나서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어봤다.

“참. 그러고보니 그 소년은 집 찾아주었나요? 기억상실 같은 것은 아니죠?”

그러자 유러스는 또 다시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 소년은 실종됐습니다.”

“실종이라뇨?”

눈치가 보였는지 유러스는 나를 밖으로 잠시 불렀다. 나는 유러스의 말에 따라 밖으로 나왔다.

“좀 이상하긴 한데 어쨌든 우리도 소년의 신원 파악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좀 이상하다고요?”

“리디스씨가 우리한테 소년을 맡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교차관님이랑 마르마스 기업 회장이 갑자기 방문하지 뭡니까.”

“마르마스 회장이요?”

“그러니까 직접 왔다니까요!”

유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런데 그 둘이 다녀가고 1시간인가 2시간 쯤에 그 소년이 사라졌어요.”

그렇게 말하고 유러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서장님이 별 수 없다고 말하고는 그냥 잊으라고 하더군요.”

“그건 직무 태만 아닌가요. 아무리 신원 불명이라고 해도 아직 나이도 어린데.”

“제 생각에는 일부로 안 찾은 것 같아요. 뭐 소년에 대해 물어보시니까 대답해드린 겁니다만 왠지 더 이상 관여 안 하시는게 좋지 않나 싶네요.”

“음..아니 제가 친인척도 아니고 그렇게 오지랖을 부리지는 않아요.”

그렇게 말을 했지만 신경이 쓰이기는 한다. 내가 처음 발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유명인들이 갑자기 방문하고, 그 뒤 소년이 사라지고 서장이 모른척이라니. 그리고 외교차관은 금성담당일까 아니면 ‘나의 상사’일까.

“외교차관님과 마르마스 회장은 같이 왔나요?”

“네? 거의요?”

“거의??”

“같이 온 것은 아닌데 10분 간격으로 찾아 온 것 같아요. 목적은 둘 다 소년을 만나는 거였고.”

만약에 저 말이 사실이라면 한 명이 경찰서를 방문한 뒤 연락해서 불러냈다고 생각하면 될까.

“소년은 서장실에 있다가 곧 시민지원센터에 보낼 생각이었거든요. 한동안 지낼 수 있도록.”

“두 분은 각자 소년을 본 거죠?”

“예. 그리고두 분은 서로 인사도 했습니다. 한 분은 경찰서를 나가면서 다른 한 분은 들어오면서 말이죠.”

“차관님은 누구셨는데요?”

이렇게 묻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에프타인 이었다.

“리디스씨. 신변 보호를 요청 중 이십니까?”

공손한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특별히 나와 유러스의 대화를 방해한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타이밍은 꼭 훼방을 놓은 듯한 느낌이다.

“아 개인 경호 업체에 맡기려고요.”

“개인 경호 업체도 상관은 없습니다. 리디스씨의 안전이 중요하니까요.”

“아. 그..그렇죠.”

내가 말한대로 안 했다고 투덜거릴수도, 정부 부처를 믿지 못하냐고 타박 할 수 있는 위치다. 외교차관이고 ‘나의 상사’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의 상사’ 에프타인은 쿨하게 인정했다.

“개인 경호 업체라면 믿을 만한 곳을 알고 있습니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요. 소개해드릴까요?”

나는 가끔 에프타인이 정말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 하는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차관 정도면 성공한 인생 일텐데 그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가 근무하는 3년 동안은.

에프타인은 유러스에게 리디스를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한 뒤 나를 데리고 갔다. 유러스는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우물거렸지만 결국 하지 않고 경찰서로 들어갔다.에프타인은 내 집으로 바래다 주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어제는 경황이 없었지만 오늘로 정식으로 초대해드리고 싶습니다.”

“예? 아 넷! 아니.. 네! 정식이라던가 그런 것은 상관 없는데..”

솔직히 당황스럽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에프타인을 꽤 존경하고 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이어지면... 나이차도 좀 나는데.

나는 이틀 연속으로 에프타인의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여전히 좋은 음식 솜씨를 발휘하며 나를 대접해 주었다. 유리치가 알면 난리 날 것 같다. 유리치도 에프타인을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리치도..? 그럼 나도 에프타인을 좋아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나의 상사로써 겸허한 태도와 능력을 존경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 샤프하고 지적인 외모와 큰 키가 곁들여지니 솔직히 못 참겠다. 이건 반칙이다. 정장 너머 몸도 분명 좋아 보인다.

나는 에프타인과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학창 시절 이야기나 화성과 금성의 다른 교육 체계로 인한 혼란, 어느새 그 동안 나름 차별이 있었다는 하소연까지, 나도 모르게 내 속마음을 다 털어놔버렸다. 좋아한다는 감정 빼고.

에프타인은 이 마음을 알고 있을까? 아니 100% 알아채고 있을 것이다. 아마 유리치의 마음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유의 무표정함이 고백이라던가 하는 행동을 완벽하게 막아버린다. 다정한 행동과 별개로 표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나이도 꽤 있으니 여자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혹시 동성을..?

그런 티도 전혀 낸 적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놀라울 일은 아니다. 에프타인이라면, 마음 먹으면 그런 비밀 따위는 죽을 때까지 가져갈 것이다.

나와 에프타인의 대화는 내가 말하고 에프타인이 대답하거나 조언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대답들 역시 무리 없는 정론들 이었지만 때로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해주며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에프타인과 문답하고 있으니 전 남자친구가 생각난다. 무뚝뚝하고 개념도 없고 가끔 비꼬기나 하고. 대학원생이라 스트레스를 받아 그럴 것이라고 애써 이해하려고 했지만 에프타인과 있으면 내가 왜 그랬나 하는 생각만 든다.

헤어지는 날도 그 자식 다웠다. 내 얼굴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식도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가끔 기대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기대에 부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화성 출신이면서 바이오칩도 안 쓰는 별종 이었다.

에프타인과의 저녁이 마무리 될 쯤 나는 에프타인이 나의 반려자로 손색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니 에프타인을 거절할 여자가 과연 있을까 싶다. 그는 완벽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남자다. 나는 시간을 주면 유리치도 에프타인을 꼬시기 위해 움직이고 자칫 빼앗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물론 에프타인이 넘어갈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지금이 고백할 타이밍이라고 여겼다. 나는 에프타인에게 여자친구를 물어보았다. 에프타인은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에프타인에게 여자에게 관심이 없냐고 대담하게 물어보았다. 에프타인은 이성애자라고 대답했다. 나는 에프타인에게 당장 여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은 있냐고 물어보았다. 에프타인은 인연이 있으면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나는 에프타인에게

“리디스씨. 사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네??”

“저는 리디스씨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직 젊고 근무 경력도 짧지만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네...”

“어쩌면 저는 리디스씨를 제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후계자?? 어쩌면이라고요?”

“지금 외교차관 금성담당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예? 누구였더라..”

나는 당황해서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에프타인이 말했다.

“금성담당은 현재 공석입니다. 선전포고 후 사임했습니다. 책임을 져야 할 정도로 잘못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요.”

“아 공석이었구나.. 아하하..”

나는 힘 없이 웃었다.

“리디스씨. 저는 내일 외교차관 금성담당에 리디스씨를 추천 할 생각입니다.”

“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큰 소리를 쳤다. 곧 상황을 파악하고 죄송하다며 다시 앉았다.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인사긴 하니까요.”

“그럼 왜...”

“부끄럽습니다만 현재 금성담당을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혹시 금성에 파견이라도 갈까 다들 두려워하고 있죠.”

“그렇군요. 이해는 가네요.”

“더 부끄러운 일은 리디스씨가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 했다는 겁니다. 지금 화성인들은 화성에 있는 금성인들을 불필요하게 적대 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선전포고를 했으나 여기 금성인들이 뭔가 잘못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 말씀은..”

“금성담당에 임명되면 조정 역할로 금성에 파견 가시게 될 것입니다.”

에프타인은 나를 금성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같은 금성인이니 금성인들도 명목상 이나마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화성이 지구에게 지지 선언을 했지만 금성 쪽에서는 화성을 불필요하게 자극해서 이중 전선을 만들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결국 일 얘기하려고 부른거구나.

“내일은 화성중앙부에서 2차 회의가 있습니다. 지지를 했으니 지구에 공식적인 외교 행사도 해야 하고 군대를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도 정해야 하고 금성은 전혀 움직임이 없으니 어떻게 해석 해야 할지도 논의해야 하고요. 저는 내일 2차 회의에서 리디스씨를 외교차관 금성담당으로 임명할 것을 건의 할 생각입니다.”

나는 에프타인의 생각에 따르겠다고 했다. 왠지 힘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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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스 케언– 금성 여자. 28세. 외교부 차관 제3비서

에프타인 슈라흐 – 화성 남자. 49세. 외교부 차관(지구담당)

유리치 프리구프– 화성 여자. 36세. 외교부 차관 제1비서

칼렌 카릭– 화성 남자. 41세. 외교부 차관 제2비서

아킬로 브레스터– 화성 남자. 133세. 화성 대기업 마르마스 회장

소년 – ?? 남자. 15세. 쓰레기장에 기절해 있었다. 리디스가 구조.

남자친구 – 지구 남자. 30세. 리디스의 전 남자친구. 이름은 리튼 페일. 소령.

97사단 5연대 작전부장.

케테로스 미카드 – 금성 남자. 29세. 금성의 227대 왕

이리탈크 에실 – 지구 남자. 61세. 지구 외교부 차관(화성 담당). 사망.

에더슨 베일렌 – 화성 남자. 84세. 642대 화성 대통령.

바이카 솔 – 화성 남자. 77세. 군부 총사령관. 육해군 총 책임자.

밀런 키웨이스 – 화성 남자. 96세. 외교부 장관.

드레이즌 피커리우 – 화성 남자. 106세. 내정부 장관.

호터. 페이오스 – 화성 남자. 68세. 치안부 장관.

파루스 데 칼트 – 지구 남자. 151세. 육군 대장.

레실 엘로안 디파르트 – 지구 남자. 77세. 지구 92대 총수.

노아드 에실 ­ 지구 남자. 67세. 기업회의 간부.(돼지새끼)

덴슨 미렌 – 지구 남자. 53세. 기업회의 간부.(멍말이)

키들러 롤킨스 – 지구 남자. 106세. 기업회의 간부.(무표정씨)

아리카 베너리아 – 지구 여자. 42세. 뉴레든의 기자.(기자 양반)

다이타르 기란 – 지구 남자. 55세. 육군 중장.

루디샤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금성. 제조일 7757년 7월 23일.

가이론 에드버트 – 지구 남자. 30세. 생선가게 주인.

마리엔느 오센 – 지구 여자. 30세. 전업주부.

리노이 실리스 – 지구 여자. 30세. 중위. 142사단 34연대 21중대 소대장.

빌 시프 – 지구 남자. 60세. 대령. 97사단 5연대 연대장.(큰 바보)

흐라벤 피르시치 – 지구 남자. 소장. 62세. 97사단 사단장.(작은 바보)

안내원 – 지구 여자. 23세. 보험회사 안내원.

네라 울센 – 지구 여자 14세. 실종소녀.

셀로아 하린 – 지구 여자 119세. 복고주의자 조직의 일인자.(할망구)

유러스 디클레아 – 화성 남자 32세.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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