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자들의 세상-8화 (8/86)

〈 8화 〉 포식자들의 세상 ­8­

* * *

흰 머리와 염소 같은 목소리, 자글자글한 주름, 완벽한 할머니다. 할머니는 실종된 네라의 집에 왜 들어갔냐고 물었다. 나는 오지랖 넓은 근처 사는 할머니라고 생각해서 네라를 만나려고 왔는데 실종이 된 상태였고 그래서 단서라도 있을까 싶어 경찰 동행하에 공적인 절차를 거쳐 집을 살펴보았다고 했다. 공적인 절차를 특히 강조하자 할머니가 말했다.

“네라는 나랑 살고 있어.”

할머니는 네라와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기자양반이 물었다.

“실종이 아니라 할머니랑 살고 있었어요?”

“무단으로 학교를 안 가고 있는게 문제긴 하지.”

“뭐야... 실종도 아니였네요. 친할머니에요 아니면 외할머니?”

기자양반은 나를 보며 얘기하다가 할머니로 시선을 옮기며 묻는다.

“가족관계가 아니야.”

“가족관계가 아니에요?”

기자양반이 놀라서 반문한다.

“나는 네라의 아픔을 알았지. 그래서 복잡한 학교에서 떼어 놓은거야. 네라는 잘 쉬고있어.”

“할머니. 그렇다고 무단으로 학교를 안 보내면 안돼요. 최소한 사정이라도 학교에 먼저 설명했어야죠. 실종신고까지 들어가서 여러사람이 고생했을텐데.”

내가 할머니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자 코웃음 친다.

“헷. 그런거 따지면 그 아이를 구할 수 없었어. 구원은 재빨리 하는게 포인트야.”

대화가 진행될수록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기자양반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표정이 안 좋다. 어쨌든 나는 네라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네라가 경험한 환청에 대해 듣고 금성의 퇴역 개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말했다.

“네라를 이용하려고만 해서는 안돼. 이해하고 보듬어줘야 해.”

“이용은 아니고 그냥 질문하나 하려고 하는겁니다. 우린 이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할머니가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하고 경계할까봐 미리 변명했다.

“이상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야. 나는 네라를 걱정하는 거야.”

기자양반이 말했다.

“우리도 네라를 걱정하고 있어요. 네라를 위해 물어볼 것이 있는 거에요.”

금성의 위협에서 벗어나면 네라도 간접적으로 위험에서 해방이니까 네라를 위한 것이 맞다. 기장양반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도 기자양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할머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그럼 만나게 해 줄까?”

나와 기자양반이 기다렸다는 듯이 ‘네’라고 대답했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네라는 남쪽으로 50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근처가 아닌 것에 나는 당황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더 황당한 점은 500km 떨어진 곳은 숲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쨌든 내일 할머니와 함께 나와 기자양반이 네라가 있는 곳으로 같이 가기로 했다.

숙소에 다시 도착하자 기자양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머니가 말한 곳, 도시나 마을도 아니고 숲이에요.”

“숲이요?”

“네. 사람이 전혀 살고 있지 않은 숲이요.”

“내일 할머니한테 물어보죠 뭐.”

나는 피곤해서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숲 속에 집이 없으라는 법도 없다. 나는 얼른 네라를 만나서 집단 퇴역의 진실에 다가가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갈 곳은 거대한 숲이에요.”

누워서 자려는데 기자양반이 말을 걸며 깨운다.

“네?”

짜증이 났지만 그냥 대답해 본다. 어쩌면 내 대답에 짜증이 묻어나 기자양반이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는 곳은 지구에서 2번째로 큰 아주 거대한 숲이에요. 전파도 통하지 않는 오지라고요. 저는 좀 걱정되는데 소령님은 괜찮으신거에요?”

전파가 통하지 않는다면 백칩을 통한 네트워크 소셜 활동들이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유사시에 경찰에 연락할 수가 없다. 생각이 여기에 도달하자 나도 조금 불안해졌다.

“그래도 할머니와 14살 소녀니까 문제가 되지는 않겠죠?”

기자양반은 걱정된다고 했다가 괜찮다고 말을 바꿨다. 불안한 모양이다.

“할머니랑 소녀가 숲에서 단 둘이서 살리 없잖아요. 당연히 일행이 더 있겠죠.”

“아.. 그런가요?”

기자양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과연 네라에게 물어보는 것이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다른 것 보다 이것이 불안했다. 여기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금성이 어떻게 공격할지 예측할 수가 없다. 묵묵히 금성의 공격에 계속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피로감을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알고 대비하는 것과 모른채 대비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금성의 공격루트를 알게 되면 지휘관의 자신감도 달라진다. 지휘자의 자신감은 병사들에게도 전달된다. 전쟁을 쉽게 이길 수 있다.

무엇보다 확실하게 이길 방법이 없어 금성과 지구가 전쟁을 벌이며 양측의 피해가 커지면 결국 웃는 것은 화성이다. 금성이 만약 확실한 공격전략을 세워 지구로 온다면 지구는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금성의 군사력에 비추어 보면 쉽게 지구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도 금성의 전략이 획기적으로, 천재지변을 일으킬 정도의 혁신적인 전략이라는 가정하에 일이다. 금성과 지구가 비등하게 싸운다면 금성의 전략 전술이 엄청나게 뛰어나야 성립되는 가설이다. 그만큼 금성과 지구의 국력은 차이가 크다.

왠만하면 지구가 이기지만 나는 금성이 선전포고를 한 만큼 금성이 전략, 전술을 얼마나 잘 세웠는지 궁금했다. 만약 그렇다면 양 행성이 피폐해지는 결말이 있을 뿐이다.

화성에 살면서 느낀 것은 화성은 별로 믿을만한 친구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사인 척, 얌전한 척하고 있지만 속은 검다. 뉴스에서는 금성의 선전포고 후 화성은 바로 지구를 지지한다고 발표했지만 화성의 저의를 알 수는 없다.

즉, 지구가 확실하게 금성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 국력이라도 소모하게 되면 화성이 웃게 된다. 금성이 이기면 우리는 모두 금성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이겨도 겨우 이기거나 피해를 안고 이기게 되면 화성의 영향력이 커져 자칫 잘못하면 지구가 화성보다 아래인 2류 행성이 될 것이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교적으로 금성을 달래는 것 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방법은 아마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테니 논외로 치고 차선책이라고 할 수 있는 압도적으로 금성을 박살내는 수 밖에 없다. 그 방법은 지구 대기권으로 지구를 침입하는 금성의 수송선들을 미사일로 격파하는 것이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테니 부대로 복귀하면 늙은 꼰대에게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려 놓을 것을 건의해야겠다. 금성을 압도적으로 박살내면 시민들도 분노가 어느정도 가라 앉았을 것이고 그 타이밍에 외교를 통해 해결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모처럼 아침이 약한 기자양반이 나를 깨웠다. 생각을 너무 하다가 늦게 잤는지 기자양반보다 늦게 일어나게 되었다. 약속시간 전에 우리는 도착했고 할머니도 금방 도착했다. 할머니는 자동차를 끌고 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차에 우리를 태우고 남쪽으로 출발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는 오랫동안 차를 타고 가야했다. 도로는 시원하게 달리며 갔지만 점점 도로가 좁아지고 숲과 산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속도가 줄어들었다.

특히 본격적으로 숲에 진입하자 나무 뿌리들로 인해 차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을 체험했다.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되자 뒷머리부터 싸하게 올라오는 것이 속도 안 좋고 토할 것 같았다. 5살 이후로 안한 멀미를 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자 기자양반이 걱정되는지 계속 괜찮냐고 물어보고 곧 도착한다고 위로했다. 아무 말 없던 할머니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멀미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요..”

내가 힘 없이 대답하자 할머니가 말했다.

“백칩없어? 백칩이 멀미 증상도 완화해 주지 않아?”

“없어요. 태어나서 한번도 백칩을 심은 적이 없어요.”

할머니가 신기한 녀석이라고 말하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숲 길은 울퉁불퉁한 것 빼면 차가 지나다니는 것이 여유로울 정도로 넓었다. 그러다가 다시 좁아지면서 차가 겨우 지나갈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할머니는 차를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해. 멀지는 않아.”

해가 슬슬 저문다. 기자양반은 표정이 아까부터 좋지 않다. 어제부터 물론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눈에 띌 정도로 불안해 보인다. 기자양반은 도박 같은 것은 하면 안될 것 같다. 저렇게 표정 관리를 못해서야.

할머니는 역시 지구인 답게 팔 다리는 이미 기계인 것 같다. 늙은 얼굴에 비해 팔다리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젊기 때문이다. 사실 지구에 사는 노인들은 거의 반 의무적으로 팔다리를 개조하는 편이다. 늙어서 움직임이 둔해져 신세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첫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부모님이 백칩 시술을 기념으로 선물 받고 늙고 몸 상태가 안 좋아지면 대부분 자식이 팔 다리를 개조 수술을 선물해 준다.

다시 한참을 걷자 이번에는 숲이라고 하기 어색한 풍경이 나왔다. 식물 투성이지만 직사각형의 거대한 구조물들이 얽히고 설켜 있었다.

“저 거대한 것들은 뭐죠?”

자연스러운 나무와 식물은 하나도 없었다. 구조물과 합체하여 하나의 직사각형 모양의 자연물로 보였다.

“지금은 숲이지만 아주 아주 먼 옛날에는 도시였다고 하더군.”

‘옛날에는’이라는 말을 듣자 나는 갑자기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네라에게 단서를 얻을 수 없다는 불안감 이외에 적진 한 가운데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 큰 길 중앙에 녹색 식물로 뒤 덮힌 구조물이 나왔다. 거기에는 깃발이 꽂혀 있는데 검은 바탕에 붉은 가운데가 뚤린 원, 그리고 원 위쪽 중앙에 왼쪽 화살표가 그려진 깃발이다. 이 깃발은 내가 잘 알고 있는 깃발이다. 복고주의자들의 깃발이다. 여기는 적진이다. 그들이 내 정체를 알면 나는 당장 죽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복고주의자들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 알게 되었다.

“네라는 저기에 있어.”

큰 구조물의 위쪽을 가리키며 할머니가 말했다. 입구는 네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너비를 가지고 있었다. 입구에는 총들 든 두 사람이 지키고 있다. 경비는 간단한 검문을 하고 들여보내 주었다. 긴장을 풀겸, 나를 얼마나 경계하고 있나 알아볼겸 할머니에게 화장실을 요청해 봤다.

다행히 요청을 들어주었다. 망설이거나 불안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내 정체를 알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갔다 온 뒤 할머니가 말했다.

“젊은이는 상관 없겠지만 아가씨는 백칩이 아마 네트워크가 안 통할거야. 여기는 전파가 통하지 않는 곳이니까.”

“예. 그런 것 같아요.”

기자양반은 미리 알고 있어서 그런지 패닉에 빠지진 않아 보였다. 다른 때는 계속 불안해 하더니 막상 백칩 사용 불가를 들으니 오히려 침착해진 것 같다. 차라리 그 편이 났다. 옆에서 패닉에 빠져 징징댔으면 없던 정나미까지 떨어질 판이니까.

드디어 네라를 만났다. 수수하게 생긴 외모였다.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들었는지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

“할머니 혹시 나가주실 수는 없죠?”

“그걸 바래? 그럼 그러지 뭐.”

네라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손으로 저지하는 수신호를 보내고는 방을 나갔다. 네라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무..무슨 일이세요?”

기자양반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아는 척을 했다.

“나 알지? 뉴레든 기자. 인터뷰도 했었는데 몇 달전에 말이야.”

“기자님은 알아요.”

그렇게 얘기하며 네라는 나를 본다.

“아 소..”

“동료 기자야.”

기자양반이 나를 소령이라고 부르려고 하기 전에 재빨리 선수를 쳤다. 내가 군인이라는 신분을 들키면 안된다. 설령 나를 죽일 생각이 없다고 해도 일부로 신분을 노출할 필요는 없다. 복고주의자들은 백칩을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나에 대해 조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대로 모른척하고 있으면 들킬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때 군인이라고 하지도 않았고.

나는 네라에게 자신을 찾은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일단 내가 군인임을 빼고 우연히 기삿거리를 찾던 중 군대의 집단 퇴역에 대해 흥미를 느껴 알아보다가 금성이 백칩을 이용해 지구의 군대를 약체화 시킬 목적으로 유능한 장교들을 퇴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아이에게 쓸데없이 자세하게 얘기한 것 같지만 어쨌든 네라에게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여 경계심을 풀 필요가 있다. 네라가 말했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 오신거죠. 퇴역한 당사자들을 취재하면 될 것 같은데.”

“벌써 했지. 그런데 이유가 없더라고.”

“이유가 없다뇨?”

“이유가 있어도 시시콜콜했단 말이야. 지극히 개인적인. 그런데 결과가 유능한 장교들의 집단 퇴역이었어. 이 시기에 금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지 않겠니?”

네라는 말이 없다.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환청이 들렸다고 하는데. 혹시 그것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을까?”

내가 묻자 네라는 눈빛이 흔들렸다. 입이 이따금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말해도 아무 일 없을테니 안심하렴.”

나랑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말투가 나왔다.

“...백칩에 이상한 사이트를 보내요.. 접속하지 않으면 다음날 학교에서 맞았어요..”

“응?”

나는 예상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아 의문 부호를 띄었으나 네라는 계속 이야기 했다.

“학교에서 저는 괴롭힘을 당하는데요. 부모님이 모두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마음껏 괴롭히기 시작하더라고요.”

네라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말을 이었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방과 후에도 집에 있을 때도 백칩을 통해 계속 저한테 말을 걸고 괴롭혔어요.”

자세하게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네라의 눈이 죽어 있었다. 분명 네라에게 있어 끔찍한 기억일 것이다.

“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했어요. 아버지도 결국 백칩의 부작용으로 돌아가셨는데. 이제는 백칩이 저를 괴롭히는 수단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요. 저는 수도로 가서 그 동안 쌓였던 것을 토해낸 거에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막 소리를 질러 본 거니까.”

네라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줄기씩 흐른다. 하지만 흐느껴 울거나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눈에서 계속 눈물이 흘렀을 뿐이다. 나는 네라의 불행을 동정하지만 결국 실마리를 잡는데 실패했다는 결론이 나고 있기 때문에 실망했다.

환청이니 악몽이니 하는 소리는 자신이 학교 양아치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었다. 늙은 꼰대의 말처럼 백칩이 정말 공격 수단으로 작용했는지 의심스럽다. 방금 사례는 그냥 집단 괴롭힘일 뿐이다. 나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물었다.

“혹시 무기력감이나 권태감 같은 것이 들거나 하지 않았니? 그래서 학교를 그만 두고 싶다던가.”

“? 아니요.. 무기력하기는 했지만 학교를 그만 두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심하게 당한거면 학교를 그만 둘 수도 있잖아.”

기자양반이 얘기했다.

“그래도 그만 두고 싶지는 않았어요. 친구도 있었고요.”

기자양반이 나를 쳐다 본다.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나는 네라에게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방을 나왔다. 기자양반은 네라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수도 뉴레든 본사로 찾아오라고 했다. 어쨌든 네라도 백칩이 없는 사람이니 기자양반에게 연락할 수단은 없을 것이다.

방에서 나오자 할머니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원하는 대로 됐냐?”

할머니는 경박한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아니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할머니가 말했다.

“이제 데려다 줄까 하는데 참, 내 소개를 안 했구만. 나는 셀로아 하린이라고 해.”

셀로아 하린, 물론 알고 있다. 복고주의자들의 일인자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름 상 여자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런 할머니일줄은 몰랐다. 빌어먹을 할망구는 데려다 주기전에 할게 있다고 말했다.

“쓸데없을 수도 있는데 나도 귀찮고.... 그래도 깃발이나 내 이름이 꽤 유명하니까 니들도 이제 알았을거야. 맞아. 여긴 복고주의자들의 기지 중 하나야. 내가 그들의 리더이고. 그래서 말인데 복고주의가 왜 타당한지 왜 다들 따라야 하는지 말해줘야 하거든. 듣기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우리 규칙이니까.”

그렇게 얘기하며 우리를 큰 강당 같은 곳으로 안내했다.

“딱 봐도 너희들은 관심 없어 보이긴 하는데. 설득 당할 것 같지도 않고. 미리 말해두는데 내가 만든 규칙이지만 이제 그만 없애는 게 맞지 않나 싶은 규칙이란 말이야. 이 설득하는 행위.”

할망구는 궁시렁대며 큰 강당의 끝에 벽을 차지하고 있는 기계를 만지작 거린다.

“내가 뭐하고 있는 것 같냐?”

“글쎄요.... 큰 거울을 만지고 계신 것 같네요?”

벽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는 이 기계는 언뜻 보면 미사일 발사 제어 장치 같다. 하지만 기계의 큰 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유리판은 큰 거울이나 건물의 창문 같기도 하다. 어쨌든 본 적은 없지만 방위기지 찾아 갈 때 슬쩍 봤을 때의 벽에 꽉 찬 느낌이 비슷하다. 할망구는 점점 신나하며 이야기한다.

“복고주의자들은 모두 백칩을 제거한 사람들이야. 그러면 당연히 생활이 불편할 수 밖에 없잖아? 하지만 우리는 전혀 불편하게 생활하지않아.”

할망구가 딸깍하고 버튼을 누르자 대형 유리판에 빛이 들어왔다. 기자양반도 나도 꽤 놀랐다. 그리고 이 유리판을 통해 그림이나 문자들이 나왔다. 나는 놀랐지만 기자양반은 굉장히 놀란 것 같다. 입을 다물지를 못한다.

“인류는 과거에 백칩이니 바이오칩이니 같은거 없어도 충분히 혼자서 작업을 했지. 뉴스도 보고. 이 모니터를 통해서 말이야. 모니터라는 말 처음 듣나?”

“이게 그러니까 백칩이나 바이오칩을 대체하는 기계라는 건가요?”

“성능은 아직이지만 곧 백칩이나 바이오칩에 비교해도 손색없어질거야. 몸에 넣는 것은 솔직히 부작용도 그렇고 무섭잖아?”

나와 할망구가 문답하고 있을 때 기자양반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조작하죠? 뇌에 연결이 안되어있지 않나요?”

“내가 손으로 이것 저것 누르고 있지? 그걸로 조작하는 거야.”

“불편해 보여요.”

“익숙해지면 괜찮아.”

그리고는 할망구가 말을 이었다.

“듣기 싫어도 듣는 척이라도 해. 이야기 끝나면 다시 스케나로 데려다 줄게.”

할망구는 ‘모니터’라는 곳에 여러 정보가 적힌 글과 그림을 띄웠다.

“어디부터 이야기 해야 할까. 일단 인공지능에 지배받던 5000년대에 이야기를 해볼까? 자네들은 어때. 5000년대를 불행한 시기라고 생각해?”

당연히 그렇게 배웠다. 인공지능에 지배받으며 자유가 억압되었던 시기이자 인공지능은 인류의 인구수가 불어나자 3분의 2를 학살했다. 이 사건에 대해 분노, 전설적인 영웅들이 들고 일어나 인공지능을 파괴하고 인류의 자유가 회복되었다고 배웠다. 나는 이렇게 배웠다고 이야기 했다.

“틀렸어. 엉터리야. 자네는 완전히 속은 거야.”

할망구는 힘 있게 말했다.

“이 시기야 말로 인류가 가장 행복하게 지냈던 시절이야. 완전 반대라고 할 수 있지.”

나도 기자양반도 복고주의자들이 옛날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유나 설명을 진득하게 들어본 적은 없었다. 이번에 복고주의자들의 주장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지금 이 시국에 엄청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금성의 백칩 침투는 결국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돼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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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스 케언– 금성 여자. 28세. 외교부 차관 제3비서

에프타인 슈라흐 – 화성 남자. 49세. 외교부 차관(지구담당)

유리치 프리구프– 화성 여자. 36세. 외교부 차관 제1비서

칼렌 카릭– 화성 남자. 41세. 외교부 차관 제2비서

아킬로 브레스터– 화성 남자. 133세. 화성 대기업 마르마스 회장

소년 – ?? 남자. 15세. 쓰레기장에 기절해 있었다. 리디스가 구조.

남자친구 – 지구 남자. 30세. 리디스의 전 남자친구. 이름은 리튼 페일. 소령.

97사단 5연대 작전부장.

케테로스 미카드 – 금성 남자. 29세. 금성의 227대 왕

이리탈크 에실 – 지구 남자. 61세. 지구 외교부 차관(화성 담당). 사망.

에더슨 베일렌 – 화성 남자. 84세. 642대 화성 대통령.

바이카 솔 – 화성 남자. 77세. 군부 총사령관. 육해군 총 책임자.

밀런 키웨이스 – 화성 남자. 96세. 외교부 장관.

드레이즌 피커리우 – 화성 남자. 106세. 내정부 장관.

호터. 페이오스 – 화성 남자. 68세. 치안부 장관.

파루스 데 칼트 – 지구 남자. 151세. 육군 대장.

레실 엘로안 디파르트 – 지구 남자. 77세. 지구 92대 총수.

노아드 에실 ­ 지구 남자. 67세. 기업회의 간부.(돼지새끼)

덴슨 미렌 – 지구 남자. 53세. 기업회의 간부.(멍말이)

키들러 롤킨스 – 지구 남자. 106세. 기업회의 간부.(무표정씨)

아리카 베너리아 – 지구 여자. 42세. 뉴레든의 기자.(기자 양반)

다이타르 기란 – 지구 남자. 55세. 육군 중장.

루디샤 – 인공지능 로봇. 메이드 인 금성. 제조일 7757년 7월 23일.

가이론 에드버트 – 지구 남자. 30세. 생선가게 주인.

마리엔느 오센 – 지구 여자. 30세. 전업주부.

리노이 실리스 – 지구 여자. 30세. 중위. 142사단 34연대 21중대 소대장.

빌 시프 – 지구 남자. 60세. 대령. 97사단 5연대 연대장.(큰 바보)

흐라벤 피르시치 – 지구 남자. 소장. 62세. 97사단 사단장.(작은 바보)

안내원 – 지구 여자. 23세. 보험회사 안내원.

네라 울센 – 지구 여자 14세. 실종소녀.

셀로아 하린 – 지구 여자 119세. 복고주의자 조직의 일인자.(할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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