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포식자들의 세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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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가 약간 안되는 지루한 우주 항해가 끝났다. 화성에 도착하자 왠지 모르게 고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외교 업무 차 금성을 방문했을 때 그 이질감은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어딘가 소름 돋는 부분이 있었다. ‘나의 상사’ 에프타인도 금성의 분위기를 걱정하는 듯 했다. 금성의 외교 태도를 과시라고 하기도 했고.
가족과의 전화 통화도 반갑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어머니와의 통화는 마치 일을 하는 듯 상투적인 표현들을 나열했을 뿐이다. 나는 이것 저것 물어보며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머니는 그에 맞춰 대답을 하는 수준일 뿐이었다.
에프타인은 수고했다고 격려한 뒤 각자의 집으로 갔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꽤 바빴다. 정체불명의 소년을 구하고 갑자기 중대한 외교 업무를 맡고 에프타인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고 지구인들은 여전히 재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집에 오자마자 씻고 침대에 눕는다. 그런데 하필 피곤한데 잠은 안 오는 그런 상태에 걸려버렸다. 아. 이런거 정말 짜증나는데. 게다가 내일도 평일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야 한다. 약간 뒤척이다가 그냥 뉴스라도 보기로 했다. 유리치의 충고가 떠오르기도 했고 뉴스를 보다 보면 잠이 들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다.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알람이 울렸다. 알람이 울리자 평소와 다르게 좀 꾸물거렸다. 게으름이라도 생겼나. 28년 살면서 그래도 부지런하다는 것 하나는 자랑거리였는데. 그래도 찬물로 세수를 하니 정신이 좀 들었다. 외교부에 출근하니 유리치가 웃으면서 인사했다.
“4주 만이네! 잘 있었어?”
“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이리탈크 체험을 축하해. 흐흐”
“아...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칼렌은 옆에서 헛기침을 한다.
“기분나쁘겠지만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은 화성 담당이니 앞으로 계속 마주쳐야 될 거야.”
유리치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며 말한다. 약간 체념 한 것 같기도 하다. 몇 분 뒤 에프타인이 출근했다. 세 비서가 인사하자 고개만 끄덕일 뿐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에프타인과 가장 오래 일한 유리치가 말했다.
“뭐야. 차관님 기분 나쁜 거 오랜만에 보는데.”
“기분이 나쁘다구요?”
평소랑 같아 보였는데. 유리치가 나에게 물었다.
“금성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나는 금성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금성인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이상했으며 오는 길에 에프타인이 금성은 외교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우리에게 실종자들의 수를 태연히 말하며 ‘과시’라는 표현을 썼다고 했다. 유리치는 내 이야기를 듣고 표정이 어두워 진다.
“진짜 수상한데.”
갑자기 에프타인이 다시 나타났다.
“모두 지구 뉴스 속보를 시청하십시오.”
세 비서는 갑자기 나타나 대뜸 뉴스를 보라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의심하지 모두 바이오 칩을 두드리며 각자의 뇌에 뉴스를 시청한다.
“지구는 금성에 대단히 분노했다.”
뭐? 갑자기 무슨 이야기지.
“지구는 지구의 외교차관 이리탈크 에실의 실종을 금성의 태만과 부주의로 인한 실책임을 분명히 할 것이며 금성은 이에 따른 진심 어린 사과와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리탈크가 실종? 한 나라의 외교관까지 실종이라니. 나는 나도 모르게 에프타인을 보게 되었다. 에프타인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에프타인이 인상을 쓴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보통 일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금성이 실종사건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점점 확신하게 됩니다.”
뉴스패널의 말을 듣다가 칼렌이 질문한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리디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차관님. 금성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요?”
“납치해서 몸값을 노리고 있나?”
유리치가 대신 대답했다.
“아니요. 그건 국가의 가치를 떨어트릴 뿐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에프타인이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에프타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한 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먼저 퇴근한다라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분명 퇴근이 퇴근이 아닐 것이다. 차관 쯤 되니까 장관이나 대통령을 보러 간 것이 아닐까.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 말이다. 유리치는 당황하지 말라고 말한 뒤 곧이어서 우리는 일단 제시간에 퇴근이라고 말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 가족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금성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되기 충분했다. 나는 바이오 칩을 두드리며 가족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고 보니 소년을 경찰서에 맡긴 뒤 바이오 칩이 다시 통화 기능을 회복했다. 도대체 그 소년은 뭐였을까. 그 소년 때문에 통화가 안 된 거였나? 만약에 그렇다면 그 경찰서가 통화 기능이 먹통이 된 거 아닐까. 이런 시덥잖은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 바이오 칩에서 걱정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통화가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역시 통화가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심상치 않게 일이 돌아간다. 혹시 금성은 전쟁이라도 하려는 것 아닐까. 이쯤 되면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지구인, 화성인은 연속 실종을 당하고 있고 금성인은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게다가 지구 외교관은 실종되었다. 우리까지 실종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만약 우리도 실종되었다면.... 정말 금성의 계획인 것일까? 만약 금성이 지구인과 화성인을 납치한 것이라면 1억 명 이상을 납치했다는 것이 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도발이다. 전쟁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나는 금성인이다. 화성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화성에 취직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듯이 나는 금성인이다. 만약 금성과의 전쟁이 터진다면 나는 계속 외교부에 근무할 수 있을까. 아니 나를 금성의 스파이로 여기고 감옥에 가두는 것 아닐까.
나는 너무 불안했다. 이제는 금성의 소행이 아니라 어떤 미친 집단의 광기 어린 범죄라고 빌어야 한다. 그래야만 할 것이다. 나는 불안한 나머지 잘 하지도 않던 운동을 2시간이나 했다. 혹시 몸을 써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화성을 탈출하기 위해 격투를 하는 상황이 온다거나.. 이제 막 운동했다고 신체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내 집에서 잠을 잤지만 불안해서 배가 아팠다. 아니 배가 차가워지는 느낌이다. 극도의 긴장감이 소화마저 방해하는 것 같다. 겨우 잤고 겨우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밥도 먹지 않고 외교부에 출근했다. 토요일이지만 금성의 불안한 태도와 지구의 분노는 모든 화성의 정부 기관을 출근하게 만들었다. 아마 군대가 가장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긴장된 탓인지 잠을 옅게 자서 재빨리 일어났고 외교부 사무실에 내가 제일 빨리 도착했다. 곧 이어 칼렌, 유리치, 에프타인이 차례대로 출근한다. 다들 사무적인 일이나 업무는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있다.
오후 1시. 역사적인 뉴스가 나왔다. 지구, 화성을 충격에 빠트려버린 뉴스였다.
금성에서 직접 송신하고 지구도 화성도 그것을 받아 중계하는 화면에는 하얀 식탁보를 두른 거대한 탁자가 보였고 은 촛대 2개가 양옆에 자리 잡고 있다. 촛대 사이로 케테로스 왕이 보였다. 앞에 접시와 포크 나이프는 그가 식사 준비를 마친 상태임을 보여 준다.
“사태에 대한 금성의 사과 방송인가?”
칼렌이 금성의 사과 방송인가 하고 유추해보지만 에프타인이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곧 이리탈크가 등장했다. 이리탈크는 거대한 은접시에 눕혀져 실려 왔다. 이리탈크는 모든 옷을 벗겨진 상태였다. 그는 식탁 테이블 중앙으로 옮겨졌다. 이리탈크는 눈을 굴리며 사태 파악에 여념이 없다. 몸은 은접시 고리에 발목과 손목이 채워져 있어서 뺄 수가 없었다. 입은 재갈을 물려 말할 수 가 없다. 케테로스 왕이 말을 아니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 금성은 약3000년 전 광석 채취를 위한 광부들의 집단으로 시작하여 그 동안 지구, 인류에게 봉사해 왔다. 하지만 너희들은 우리를 그저 냄새나고 교양 없는 부랑자 집단 취급을 했을 뿐이다. 지구는 언제나 우리를 업신여기고 깔봤다. 경제적으로 종속 시켜 우리들이 자립을 하지 못하게 방해한 끝에 남자들을 평생 노역으로 부려 먹고 여자들을 성 접대부로 만들어 버렸다....
알고 있는가! 금성에는 회사 사장이 없다. 사원만이 있을 뿐이다.
알고 있는가! 금성에는 대학교가 없다. 대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값비싼 유학을 떠나야 한다.
알고 있는가! 금성에는 부자라고 부를 수 있는 자가 왕인 나와 일부 왕족들 뿐이다!
더 이상 우리는 너희들의 폭거를 두고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3000년 전 형식적인 독립에서 벗어나 진정한 독립을 맞이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 인류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우리 금성은 진정한 독립을 위해 인간성을 버릴 것이다.우리는 더 이상 인류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이기심과 거짓말로 더 이상 속으며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인류의 본성이라면 우리는 인류를 버리고 새로운 금성의 생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선언한다. 인류는 더 이상의 우리의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타종족일 뿐인 것을. 그저 우리들의 먹이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각인 시켜주겠다.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하며 포식자 행세를 했지만 포식자들은 우리 금성인을 지칭하는 말이 될 것이다. 금성이야 말로 진정한 포식자들의 세상이다!”
케테로스 왕의 연설이 끝나자 주위 금성인들이 환호하며 케테로스 왕을 연호 했다. 그리고는 주방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예리한 칼을 들고 화면에 나왔다........인류와 분리되겠다고, 포식자라고 선언했다고 이리탈크를 즉석에서 먹을 생각인 것은 아니겠지?
화면의 주방장은 무심하게 이리탈크의 옆구리를 칼로 찔렀다. 이리탈크가 재갈을 물린 채로 비명을 질러 댔다. 역겨운 인간인 것은 맞았지만 저런 취급은... 화면으로는 확실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주방장 등 너머에는 피가 튀는지 붉은 색의 액체가 살짝 살짝 보였다. 곧 주먹 만한 이리탈크의 일부분이 칼에 얹어져 있었다. 주방장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이리탈크의 일부분을 달궈진 팬에 놓는다. 치익 소리와 연기가 난다. 마치 요리 방송 같은 느낌이다. 옆에 이리탈크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고 주방장은 소금과 후추 등을 팬에 뿌리며 간을 맞춘다.
다 구워졌다고 생각 됬는지 주방장은 접시에 구워진 이리탈크의 일부분을 얹히고 소스를 뿌려 케테로스에게 두 손으로 바쳤다. 케테로스는 이리탈크의 일부분을 포크로 찌른다. 그리고 칼을 서서히 갖다 댄다. 칼렌이 안돼.. 안돼.. 하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고 유리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화장실로 달려 간다. 에프타인 조차 인상을 쓰고 있다.
20분. 이리탈크의 일부분이 케테로스 왕의 뱃속으로 들어간 시간이다. 그리고 케테로스가 주방장에게 소근 대자 주방장 두 세사람이 더 추가된다. 이리탈크의 비명소리는 재갈로도 막아지지 않는다. 비참한 음성은 점점 크고 강해진다. 가끔 칼이 도막을 치는 탁! 탁! 소리가 나고 이리탈크의 비명 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져갔다.
식탁에는 많은 스테이크...가 만들어 졌다. 주위 보좌관들, 관련자들이 접시 한 개 씩 가져가 먹는다. 중앙의 이리탈크는 앙상해졌다. 뼈에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며 살아 있는지 가슴이 조금씩 움직였다. 이 끔찍한 광경은 나와 에프타인 만이 끝까지 시청하게 되었다. 칼렌도 중간에 도망쳐 버렸다. 유리치는 토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케테로스 왕이 만족했는지 씨익 웃는데 입의 이들이 전부 뾰족뾰족하게 되어 있다. 왕 뿐만 아니라 화면에 잡힌 금성인들 모두 웃으며 이를 보여주는데 마치 육식 짐승의 뾰족한 이빨 같았다. 케테로스 왕이 선언했다.
“현 시간부로 금성의 왕과 금성의 모든 시민들은 금성의 자유와 자주권을 위하여 지구에 전쟁을 선포한다.”
금성이 화면 전송을 종료했다. 종료 화면에서 한동안 바뀌지 않았다. 방송국도 충격을 먹은 듯 하다. 에프타인은 손목의 바이오 칩을 조금씩 두드리다가 나에게 말했다.
“유리치와 칼렌은 오늘 조기퇴근입니다.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 같군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에프타인은 나를 본다. 처음에는 무표정하다고 느껴졌는데 요즘은 조금 알겠다. 저 얼굴은 지금 나를 보면서 아마 내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이다.
“저는 지금 대통령 각하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아마 각 정부 기관의 장관들이 모일 것입니다. 리디스씨도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나도 에프타인과 함께 금성을 갔다 왔으니 호출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에프타인과 함께 화성 중앙부로 향했다. 중앙부는 화성의 수도 BC003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중앙부 거대한 건물 꼭대기 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다. 바로 아래층은 대통령이 주관하는 회의실이 있다.그리고 나와 에프타인은 이 회의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나는 에프타인과 함께 BC003의 화성 중앙부 건물로 향했다. 나는 가면서 내 위치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됐다. 내가 금성인이라는 사실이 나를 압박한다. 불안감을 안고 중앙부의 회의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화성을 이끄는 유명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에더슨 대통령, 바이카 군부 총 사령관, 아킬로 마르마스 대기업 회장, 밀런 외교부 장관, 드레이즌 내정부 장관, 호터 치안부 장관 등.. 가끔 뉴스에서 보던 사람들을 보자긴장되어 심장 뛰는 소리가 그냥 서있는데도 쿵쿵쿵 거리며 들리는 것 같다. 그 때 갑자기 누가 손을 잡는다. 나는 고개를 숙여 오른손을 보았다. 오른손이 크고 흰 손에 잡혀있자 오른쪽 위를 본다. ‘나의 상사’ 에프타인이 나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인지 손을 잡아 주었다.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이었지만 왠지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인 에더슨이 말했다.
“방금 있었던 그 잔인한 사건에 대해 논의하고자 각 부처의 장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화성이 앞으로 취해야 할 일과 방향성에 대해 기탄 없이 논의를 해 봅시다.”
간단하게 회의 시작 연설을 한 에더슨 대통령은 자리에 앉았고 잠깐의 침묵이 흐르다가 화성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내정부의 드레이즌 장관이 입을 열었다.
“이번 금성의 잔인한 선전포고는 오직 지구 만을 언급했습니다. 화성은 중립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드레이즌의 말에 바이카 총사령관도 동의했다. 외교부 장관 밀런과 마르마스의 대기업 회장 아킬로를 포함하여 다른 부처들 이 반대했다. 적극적으로 지구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여 분간 실랑이가 벌어지자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치안부 장관인 호터가 말했다.
“중립이든 뭐든 빨리 입장을 발표하셔야 합니다.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들을 시작하고 있으니까요.”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시민들의 입장은 지구 편에서 인류를 배신한 금성을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건방지다.’ ‘금성 촌놈 들 주제에.’ ‘능력이 없어서 가난한 주제에 다른 행성 핑계를 왜 대냐.’ 다양하게 내 마음을 찔러버리는 구호들을 외친다. 시민들의 무감각한 구호들은 내 마음을 금성으로 향하게 만들고 있다.
화성인들은 언제나 배려심 있고 예의 바르고 관대하고 선량 하다고 주장하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면 그들이 말하는 것이 실행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그것은 화성인만의 특징은 아니다. 그것이 인간의 실체다. 화성이든 지구든 금성이든 인간이란 귀찮고 힘들고 손해 보는 것을 혐오하는 법이다.당장 시민들은 거리낌 없이 금성인에 대한 혐오 구호들을 남발하고 있고 전쟁을 위해 자금 보유 현황 조사라도 나오면 가장 찔리는게 많은 내정부와 군부는 중립에 서자고 필사적이다. 전쟁을 주장하는 외교부와 마르마스 기업은(대부분의 정부 부처들이 이 의견에 속하고 있다) 금성을 점령하고 지구와 공동 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마르마스 기업은 금성의 거대한 광맥을 언급하며 노골적으로 눈독을 들였다.
에프타인은 차관 자격으로 계속 말을 아끼고 있었다. 물론 다른 부처들의 차관들도 마찬가지다. 대 회의장에 사람들이 많이 있던 만큼 회의도 격렬하고 난잡했다. 치안부 장관 호터는 빨리 정하라고 말하면서 곧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고 경고했다.
에프타인은 호터의 말이 끝나자 잠깐 조용히 해달라고 말한다. 장관들 및 차관, 대통령, 총사령관등이 일제히 에프타인을 주목했다. 드레이즌이 비꼬는 것처럼 말했다.
“아 유능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에프타인 차관이로군? 무언가 좋은 방법이라도 생각 나셨나요?”
“회의가 정리되지 않고 있고 호터 장관님의 말씀처럼 시위대를 빨리 정리하기도 해야 하니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에더슨 대통령이 허락했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혼잣말들이 들린다. 대충 ‘지가 뭔데’라는 뉘앙스로.
“우리 화성은 당연히 지구의 편에 서야 합니다. 지구에 의사를 전달하고 연합군을 구성 한다거나 물자를 지원 한다거나 하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지구의 편이라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중립에 서는 것은 드레이즌 장관님께 죄송하지만 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에더슨 대통령이 말했다.
“금성을 해체 시키고 새롭게 지구와 공동 통치를 하자는 의견에 동의하는 거요?”
“죄송하지만 그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회의장이 웅성거린다. 에프타인이 이어 말을 했다.
“여러가지 상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지구와 화성이 금성을 멸망 시키면 우리는 지구에게 병합 될 것입니다. 지구는 우리 화성과 금성을 합한 것보다 2배 이상의 인구와 물자, 고대부터 쌓여온 기술력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행성입니다. 1대 1 대결에서 절대 지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무너진 균형은 어느 한쪽이 병합되면서 끝날 것입니다. 금성이 이겨도 곤란합니다. 금성이 강대해지면 이 또한 우리 화성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에프타인은 말을 끊고 잠시 주위를 둘러 보다가 곧 다시 말을 이었다.
“금성은 지구에게만 선전포고 했지만 실상은 우리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자체를 적이라고 규정하는 발언을 했으니까요. 지구 다음은 당연히 우리 차례입니다. 그러니 중립은 안됩니다. 우리 화성은 일단 금성의 잔혹한 선전포고에 항의하고 그것을 명분으로 지구 편에서 전쟁에 참가 해야 합니다. 하지만 금성이 멸망하면 우리도 지구에게 당장은 아니더라도 먹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함께 싸운 동맹이니 분위기가 좋겠지만 그런 상황은 영원히 진행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분란이 일어날 것이고 분란이 일어나면 우리가 불리합니다. 그러니 금성을 어떻게 해서든 독립 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
에더슨 대통령이 말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지구 편에 서서 전쟁을 같이 수행하여 우리도 공격할 가능성이 많은 금성을 패배 시키고 지구가 금성을 병합하려고 하면 전력으로 막아 어떻게해서든 금성을 독립 시키며 현재 균형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가 에프타인 차관이 말하고 싶은 거군요?”
에프타인이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생각이 정리가 안된 상태로 서둘러 말하다 보니 말이 길어졌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오.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방향성은 그렇게 잡고 지구의 총수에게 전쟁 참가 의사를 밝히면 되겠군요.”
에더슨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개인 비서를 대동하고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내정부 장관 드레이즌이 회의를 파한다고 선언하고 모두를 돌려보냈다. 사람들은 에프타인의 의견에 일방적으로 동조한 대통령이 불만인지 둘이서 회의하지 우리는 왜 불렀냐고 탄식한다. 에프타인은 외교부 장관 밀런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나와 헤어졌다. 나는 에프타인에게 간단히 인사 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오며 보고 들은 것들은 방송에서 금성인에 대한 혐오 발언들과 시민들의 대규모 금성을 욕하는 퍼포먼스들이었다. 화성인들은 ‘우리도 많이 참았다’고 하던데. 도데체 금성인들보다 무슨 참을 일이 많았었는지는 의문이다.
자꾸 잡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화성의 외교부 차관의 비서다. 사적인 감정들은 버려야 한다. 그나저나 왜 금성은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인 것일까. 지구한테만 선전포고 했다고 화성이 가만히 있을거라고 생각한 걸까. 금성의 케테로스 왕이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듣긴 했다. 하지만 옆에 보좌관들은 뭘 한 거지. 인류와 구분하겠다고 이들을 뾰족하게 개조 따위나 하고 앉아 있으니...
리디스 케언– 금성 여자. 28세. 외교부 차관 제3비서
에프타인 슈라흐 – 화성 남자. 49세. 외교부 차관(지구담당)
유리치 프리구프– 화성 여자. 36세. 외교부 차관 제1비서
칼렌 카릭– 화성 남자. 41세. 외교부 차관 제2비서
아킬로 브레스터– 화성 남자. 133세. 화성 대기업 마르마스 회장
소년 – ?? 남자. 15세. 쓰레기장에 기절해 있었다. 리디스가 구조.
남자친구 – 지구 남자. 30세. 리디스의 전 남자친구. 이름은 리튼 페일.
케테로스 미카드 – 금성 남자. 29세. 금성의 227대 왕
이리탈크 에실 – 지구 남자. 61세. 지구 외교부 차관(화성 담당). 사망.
에더슨 베일렌 – 화성 남자. 84세. 642대 화성 대통령.
바이카 솔 – 화성 남자. 77세. 군부 총사령관. 육해군 총 책임자.
밀런 키웨이스 – 화성 남자. 96세. 외교부 장관.
드레이즌 피커리우 – 화성 남자. 106세. 내정부 장관.
호터. 페이오스 – 화성 남자. 68세. 치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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