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자들의 세상-2화 (2/86)

〈 2화 〉 포식자들의 세상 ­2­

* * *

긴 우주 항해가 끝나자 안내 음성이 들린다. 나는 지구에 도착했다. ‘나의 상사’ 에프타인은 안내 로봇이 가져다 준 블랙커피를 마시고 무심하게 바이오 칩을 누르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아마 지구 외교관과 어떻게 할지 플랜을 짜는게 아닐까 싶다. 요 일주일 간은 정말 인내심과의 싸움이었다. 에프타인은 과묵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일주일 간 열 마디 정도 한 것 같다. 대부분 바이오 칩을 이용한 무언가를 한 것 같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뇌 속에서 작업하고 있는 에프타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사이트를 돌아다니고 영화나 독서 등을 했지만 취미도 아니고 해서 가끔 에프타인을 처다 볼 뿐이다. 가끔 처다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은 과묵하고 지적이고 행동에 기품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반한 것은 아니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할까. 키도 190cm가 넘는 장신이다. 차가운 이미지와 무표정이 위압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항상 경어를 쓰는 것이 더욱 가볍게 볼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시크한 미남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의바르고 중간 정도의 저음으로 항상 신중한 발언들을 한다. 3년 간 근무하면서 남의 험담을 들은 적도 없다. 지시도 내가 할 만한 것들을 적재적소에 내렸다. 마치 나를 다 파악한 듯한 느낌으로. 4주 전, 남자친구와 이별 통보를 받으러 나갈 때도, 나의 이른 퇴근을 군말 없이 받아들인 것도 혹시 이미 알고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일주일 간 자유 시간이긴 하지만 그 동안 에프타인이 뭐라도 시켜주길 바랬다. 하지만 정말 필요할 때 아니면 자기 스스로 하는 에프타인은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나에게 시키지 않았다.

결국 내가 말을 걸었다.

“차관님. 드디어 도착했네요.”

그러자 에프타인이 대답한다.

“그렇군요. 이제 곧 지구 외교관들과 미팅이 있을 겁니다.”

“바로요?”

“네. 여독을 푸네 어쩌네 시간 낭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바로 지구에 요청했습니다.”

“아...네..”

“그나저나 리디스씨는.”

“네.”

“엄청 과묵하시군요. 놀랐습니다.”

“예?”

“일어납시다.”

“네....”

일주일 간 과묵한 것은 ‘나의 상사’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에프타인과 함께 우주선에 내렸다. 보통 우주선에 내리면 수속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 타워를 통해 행성으로 내려가게 된다. 6666년은 여러 가지가 발명 된 해인데 6666년 6월 6일 테라포밍의 성공, 행성 간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엘리베이터 타워의 발명이 대표적이다.

엘리베이터 타워는 성층권을 뚫은 긴 타워로 타워 자체가 거대한 엘리베이터로 되있다. 우주선이 행성에 이착륙하는 동안 소비되는 자원,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덕분에 우주선은 더 이상 행성 안으로 들어가는 수고를 줄이고 항상 우주 공간에 머물게 되었다. 엘리베이터 타워도 처음에 몇 군데 없었지만 바로 바로 목적지로 가기 위해 도시 마다 가지게 되었다.지구의 주요 도시에는 엘리베이터 타워가 있다고 보면 되며 100000개가 넘는다.

지구에 도착하자 에프타인이 말이 많아졌다.

“지구에는 내려가지 않습니다.”

“네?”

“지구 외교관에게 엘리베이터 타워 위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이거 아무리 효율을 중시한다고 해도 외교적 결례가 되지는 않나 싶다.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는 거 아닌가요.”

내가 물어보자 에프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실종 사건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발생했습니다. 범죄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금성은 이 사태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조속히 처리 하겠다고는 했죠?”

“네. 상투적인 발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 말은 처음 이의를 제기한 5년 전부터 했던 말 입니다.”

3년 전이면.. 내가 막 외교부에 취직했을 때다. 교수가 대학원에 들어오라는 것을 뿌리치고 외교부에 지원서를 낸 적이 있다. 다들 합격 가능성이 낮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합격했다. 내 선배인 칼렌의 말에 따르면 ‘나의 상사’ 에프타인이 직접 합격시키자고 했다고 하는데. 왜 인지는 모르겠다.

에프타인이 다시 유난히 차분하고 조용히 말한다.

“저는 금성 자체가 조직적으로 벌이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금성 자체요??”

“당신이 금성 출신이라고 해도 저와 같은 외교부의 구성원으로써 드리는 말씀입니다. 수상한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수상한 점이라면..”

“납치범이라면 뭔가 요구 사항이라도 있어야 하지만 그것도 아니고 말 그래도 아무 이유 없이 사라졌습니다. 또한 금성의 제2도시에서 주로 발생했다고 하는데 실종 사건이 제2도시에서만 일어나지도 않았어요.”

“그건 실종 사건이 제2도시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발생했다는 거죠?”

“화성인들만 조사한 것이긴 합니다만 금성의 주요 120개의 도시 전체에서 실종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작년에만 화성인 330만 명이 사라졌습니다. 범죄자들의 스케일이 아닙니다.”

“아니 그게 무슨..!”

“저는 금성 정부가 주도적으로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왜요? 금성이 어째서 그런 짓을 한거라고 생각하시는거죠.”

“글쎄요? 생체 실험?”

“그럴 리가...”

믿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가 금성 출신이기도 하니까. 이런 사실이 사실로 밝혀지면 가뜩이나 금성 출신들을 이상하게 보고 있는데. 생체 실험 사실이 증명된다면 화성이나 지구에 사는 금성인들에게 보복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 금성의 가족들에게 연락할 때도 별 특이 사항은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들도 사촌들도 실종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분명 금성 몇몇의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생체 실험이 사실이라고 밝혀진 것도 아니고 너무 가슴 졸일 필요는 없겠지.

“아 참. 리디스씨 지구 외교관이랑 곧 대면 하실텐데”

“네.”

“무조건 참으시고 대충 맞장구만 쳐주세요.”

“네? 아 네. 누군지 잘 알고 있습니다. 유리치 선배님께 들었어요.”

“그래요.”

지구의 외교부 차관 이리탈크 멜리언. 이름의 발음도 이상한데 사람도 이상하다. 지구는 6개의 대기업이 모든 것을 통치 하는 구조다. 정확히는 5개의 대기업과 1개의 네트워크 사이트지만 그 사이트도 기업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어찌되었든 이 6개의 대기업은 1년마다 정기적으로 기업 회의를 하며 정책을 결정하고 10년 간 통치할 지구 총수를 결정한다. 보통 6개의 대기업이 돌아가면서 역임하는데 이리탈크는 기업회의 출신으로 돈 많고 사고치는 전형적인 졸부다. 외교부 차관이라고 화성에 잠깐 왔을 때 장관이 아니라 차관이라 불만족스럽다는 말로 화성인들을 당황시켰고 금성과 달리 화성인 여자들은 못생기고 가슴과 엉덩이도 작다는 폭탄 발언을 한 바 있다. 그 건으로 인해 화성에 있는 지구대사관이 사죄 연설을 1시간 동안 한 적이 있다.

기업 회의는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 기업 회의에 참석했다는 것은 장관급을 넘어서는 권력을 얻은 것이다. 일단 지구에서 벌이는 기업 단위 사업에서 대단한 활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으니까 아마 장사 든 로비 든 수완은 좋을 것이다.

그리고 좀 예쁘다 하는 여자들에게는 항상 껄떡댄다고 한다. 유리치도 여러 번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에프타인과 출장을 가는데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것이겠지. 유리치 은근히 나를 견제하곤 했으니까. 요번 기회에 이리탈크에게 당해보라는 심산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코를 찌르는 불쾌함에 가까운 향수 냄새가 났다.

“왔군요.”

에프타인이 말했다. 그러자 정면의 거대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러자 거구의 뚱뚱한 남자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뚱뚱한 남자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이 화성 촌놈 자식이!!”

그는 대뜸 큰소리를 내 지른다.

“니놈이 감히 대지구의 외교관을 엘리베이터로 부른 거냐!!”

그는 에프타인의 멱살을 잡았다. 양 옆의 보좌관이 일단 진정 좀 하라며 말리려고 애쓰지만 덩치에 걸맞게 힘이 쎈 것인지 말리지를 못한다. 에프타인은 상황에 맞지 않게 침착하게 말한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엘리베이터로 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멱살을 잡은 채로 씩씩거리고 있다. 그러나 에프타인의 침착함 때문인지 곧 내려놨다.

“변함없이 기분 나쁜 자식이군. 재미도 없고.”

이리탈크 멜리언. 턱은 세겹은 되는 것 같다. 어두운 갈색의 눈썹은 짙고 풍성하여 검은색처럼 보인다. 수염도 대충 깎은 것인지 듬성듬성 정리가 안 되어있다. 그리고 머리도 풍성하다. 기본적으로 털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200kg는 되는 것 같다. 타이트한 옷을 입은 것도 아닌데 배 부분은 이미 빵빵하다. 특수 소재인 것인지 양복이 버티는게 용하다. 눈은 가늘고 게슴츠레하게 뜬 것 같고 입은 두꺼비처럼 두꺼우면서 크다. 피부는 건물 안에서만 있는지 하얗다. 한 마디로 첫 인상은 너무 나도 불쾌했다. 어지러운 향수 냄새까지 포함하면 시각적, 후각적으로 공격 당한 느낌이다.

이리탈크는 씩씩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갑자기 씨익 웃는다. 그러더니 악수를 건냈다.

“아하. 이런 아가씨도 있었네~. 악수 한 번 할까?”

나는 에프타인을 잠시 봤지만 그냥 무표정이다. 참으라고 했으니 악수를 해야 겠지.

“반갑습니다. 처음 뵙습니다. 리디스라고 합니다. 에프타인 차관님의 제3비서입니다.”

그는 필요이상으로 꼬옥하고 내 손을 잡는다. 방금 나는 촉각적 공격을 당했다.

“아하 비서~. 좋은 직책이지~. 흐흐흐.”

그러더니 에프타인을 보면서 말한다.

“화성에도 좋은 인재가 있었군?”

“금성출신입니다.”

에프타인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아 금성이야? 하하하하! 내가 금성여자.. 아니 아니 금성인들은 또 엄청 좋아 하거든. 내가 금성 담당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야. 흐흐흐.”

이 빌어먹을 씨ㅍ...

앗차.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올 뻔 했다. 외교관은 다른 행성에 가면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국제적인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속으로 생각했기에망정이지 입으로 튀어나왔으면 큰일날 뻔 했다.

에프타인은 인사가 끝났으면 바로 우주선으로 향하자고 했다. 이리탈크는 인상을 구기며 왜 이렇게 서두르냐고 불평했다. 에프타인은 이 실종 사건이 굉장히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흠. 너 같은 자식이 이렇게 재촉하는 거 보니 확실히 문제가 있긴 한가봐?”

“그렇습니다. 저도 이리탈크 차관님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원치는 않습니다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흥. 뭐 좋아.”

이리탈크가 갑자기 나를 본다.

“대신. 저 비서 나 하루 밤만 빌려줘.”

뭐????

“예? 아니 차관님 저는.”

내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에프타인이 재빨리 대답을 했다.

“리디스의 직책은 그런 직책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업무를 보조해주는 직책입니다.”

“아니지. 이것도 업무 보조라고 볼 수 있지. 게다가 금성 출신 이라매. 익숙할 것 아닌가.”

나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저는 제2도시 출신도 아닐 뿐더러 그런 일에 종사한 적도 할 생각도 없습니다. 저는..”

내 말이 빨라지며 격앙 되는 것이 느껴졌는지 에프타인이 손으로 제지한다.

“제 비서는 그런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금성에 도착하면 이리탈크 차관님을 위한 서비스를 금전적으로 제공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오 그래? 하지만 금성의 서비스는 알 만큼 다 아는데. 갈 때마다 즐겼거든.”

“제2도시라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17도시, 수도라면 어떨까요?”

“뭐어어 제17도시면.. 금성 수도? 이봐. 거긴 볼 것도 경험할 것도 없다고 하던데. 말 그대로 수도라고. 유흥 쪽도 별거 없고 시시하다고 들었어.”

“하지만 직접 겪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아는 곳이 있습니다. 제2도시와는 다른 색다르고 짜릿한 곳이죠.”

“...푸핫. 아니 이 자식도 알고 보니 변태구만? 결혼도 안 하고 애인도 없다고 하길래 무슨 불구자인 줄 알았지! 크하하하.”

“일주일 정도 만 참으시죠. 아주 즐거우실 거라 확신합니다.”

“음. 좋아.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나와 에프타인, 이리탈크 일행은 지구에서 준비한 전용 우주선에 탔다. 한 순간을 넘긴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리고 에프타인에게 귓속말을 했다.

“근데 차관님. 그런데를 알고 계셨어요?”

에프타인이 말했다.

“아뇨. 잘 모릅니다. 혹시 수도에 좋은 곳 아시는데 있습니까?”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나는 작은 목소리를 되도록 크게 소근 댔다.

“음. 어쩔 수 없군요. 금성 외교부에 문의해야겠어요.”

나는 에프타인을 모르겠다. 이리탈크가 더 알기 쉽다. 어떤 놈인지 대충 여자 밝히고 무례하고 쓰레기고.. 그런거 알겠는데 에프타인은... 속을 알 수가 없다. 3년 간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거짓말을 했다. 물론 나를 구해주기 위해서였지만. 어쩌면 3년 간 근무하면서 에프타인에게 거짓말로 몇 번 속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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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났다. 그 동안 이리탈크는 참지 못하고 나랑 자자고 여섯 번을 얘기했다. 하루에 한 번 꼴이다. 엉덩이도 몇 번 만졌다. 그 때마다 에프타인이 잘 타일렀지만 심신이 지쳐 가는게 느껴졌다. 계속 긴장했기 때문이다. 화장실 갈 때 슬금 슬금 따라오지를 않나 진짜 이대로 가다가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리탈크의 보좌관들은 정상이라는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아무짝에도 쓸모는 없는 놈들이었지만.

“오 금성이다 금성. 리디스. 나랑 안잔거 후회하지마라~. 제17도시에 좋은 곳이 있다는거지? 흐흐.”

누가 후회해?

“예. 하지만 먼저 외교 업무부터 처리하신 뒤에 가시죠.”

“쳇. 알았어~.”

에프타인이 공손하게 말하자 이리탈크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엘리베이터 타워의 큰 문에 들어가니 거대한 고속 엘리베이터가 내려간다. 금성의 엘리베이터 타워는 미관적으로 전혀 고려가 되 있지 않다. 화성이나 지구는 유리로 바깥을 볼 수 있어서 대기권에서부터 풍경을 감상할 수 가 있다. 하지만 금성은 두꺼운 철판으로 모두 막혀 있다. 내려가는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2층에 도착했다. 도착 직전에 충격에 대비해 손잡이를 모두 잡는다. 강력한 브레이크 마찰음과 함께 약간의 충격 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문을 나섰다. 문 앞에는 바로 금성의 외교부에서 마중 나온 사람들이 보였다. 그때 에프타인이 귓속말을 했다.

“리디스. 잘 봐두세요. 당신이 알고 있던 평소의 금성인들과 분위기가 어떤지. 그리고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알려주셔야 합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들을 관찰했다. 사실 금성인이라고 해서 다른 것은 없다. 촌스럽고 순박하다고 해야 하나. 화려한 사람들도 그에 걸맞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금성인들은 패션 센스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짜 이상했다. 사람들의 얼굴이, 표정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불안해 보인다. 나는 에프타인에게 귓속말을 했다.

“이상해요. 뭔가 불안해 보여요.”

“그렇군요. 저도 그렇게 보입니다.”

단순히 자신보다 국력이 강한 지구와 화성이 따지러 온 것이니까 긴장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류의 불안감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들킬까 싶은 초조함이다. 게다가 우리를 마중 나온 것은 외교부 사람들만이 아니다. 거리를 나오자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그랬다. 불안해 보였다. 그리고 금성인들은 다들 입을 어색하게 다물고 있다. 뭐지? 유달리 얼굴들이 길어 보이기도 하고.

안내원을 따라 10분 정도 걷자 바로 거대한 회의장이 나왔다. 고급스러운 원목으로 이루어진 검은 직사각형의 테이블, 중앙을 가로지르는 화려한 장식의 하얀 천이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리탈크와 에프타인은 각각 양옆 앞쪽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곧 금성의 84대왕 케테로스가 등장했다. 당연히 금성의 외교관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예상 밖이었다. 나도 에프타인도 황급히 일어나 예를 표했다. 이리탈크도 꽤 놀랐다. 그러나 곧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남들보다 느즈막하게 일어난다.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로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저는 금성의 84대왕 케테로스 미카드입니다.”

??? 입 안에 보이는 왕의 이들이 좀 뾰족 했던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앉으시죠.”

케테로스의 제안에 다들 앉는다. 에프타인이 말했다.

“저는 화성의 외교부 지구담당 차관 에프타인 슈라흐입니다.”

케테로스가 화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하. 유능하시다고 들었습니다.”

“흥. 글쎄 유능한지 어떤지.”

이리탈크가 빈정거리지만 금성인도 화성인도 별 반응은 안 했다.

“이리탈크요. 지구의 외교 차관이오. 화성담당이고. 반갑네요.”

이리탈크는 한쪽 손을 괴고 삐딱하게 앉아서 무례하게 말했다. 그런데.. 에프타인이야 원래 침착하고 냉정한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금성 쪽도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다. 방금 이리탈크의 태도는 왕이 화를 내지 않아도 보좌쪽에서라도 무례하다고 화 낼만한 거 아닌가? 너무 반응이 없는데. 아니면 지구가 그렇게 막강하단 말일까?

금성 쪽의 무반응은 이리탈크를 당황하게 했는지 천천히지만 곧 자세는 고쳐 앉았다.

“지구의 이리탈크씨도 반갑습니다.”

금성의 왕은 이리탈크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에프타인이 말을 했다.

“저 역시 불미스러운 일로 금성을 방문하여 유감입니다. 모든 화성인들은 금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종 사건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금성인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약 8000만 명의 실종 사건은...”

“1억 4천만명이오.”

“네?”

케테로스의 말에 에프타인이 말을 하다가 반문했다.

“지구와 화성의 실종신고는 8000만건 정도인가 보군요. 실제로 조사해보니 1억 4천만명 정도입니다.”

실종사건이 1억 건이 넘었다고? 뭐가 어떻게 된거야?? 다들 놀라고 있는 가운데 이리탈크가 호통을 쳤다.

“아니 케테로스 왕! 치안을 어떻게 관리 하는거요! 실종 인구가 그럼 1억 명을 넘겼다는 얘기요?”

“...유감스럽게도 그렇습니다.”

케테로스가 유감을 표하자 에프타인이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감히 의문을 제기 합니다만. 실종 건수와 실제 실종 인구가 터무니 없게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죠. 왜냐하면 금성에 관광 온 사람들의 실종 신고만 포함한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뭐야. 관광객 뿐 아니라 금성에 거주하는 사람 중 지구인과 화성인까지 골라 사라졌단 거 아냐?”

“그렇습니다.”

“케테로스 왕! 지금 장난 하는거요?? 지구와 화성에 대한 혐오 범죄야 뭐야?!”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사 중입니다.”

“5년 동안 하는 얘기가 조사 중이야라고? 해결 할 의지는 있는 겁니까?”

이리탈크가 계속 다그친다. 그러자 에프타인이 말했다.

“이런 말씀 드리기가 죄송합니다만. 혹시 조사가 금성인들에게 중과 부적이라면 화성은 조사에 지원을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지구쪽은 어떻습니까?”

에프타인이 이리탈크에게 물었다.

“....흥. 금성은 잘 하는게 뭐요. 매춘? 뭐 우리도 실종자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으니 정 힘들면 지구에서도 지원하도록 하지 뭐.”

이리탈크가 퉁명스럽게 얘기한다. 에프타인은 곧 바로 말한다.

“금성의 왕 케테로스님. 우리들의 말들이 혹여나 케테로스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 않기 만을 바랍니다. 지구와 화성의 사람들은 그저 실종자들을 찾고 싶은 마음에 지원 의사를 밝혀드린 것입니다.”

“아니요.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케테로스는 에프타인의 말에 대답하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에프타인씨는 정말 유능하신 분이군요. 아무도 기분 나쁘게 하지 않게.. 아주 신중하게 잘 발언하시는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케테로스와 에프타인의 문답에 이리탈크가 혼자 중얼거렸다.

“염병들 하고 앉았네. 빌어먹을 가식 떨기는.”

회의는 결국 지구와 화성의 지원 하에 금성과 실종 사건 공동 조사회를 결성하기로 했다. 회의가 끝난 뒤 에프타인과 이리탈크는 각자의 통신으로 보고를 했다. 보고가 끝난 뒤 이리탈크가 말했다.

“이봐 에프타인! 오늘은 쉬기로 하고 내일 보자구. 흠흠 좋은 곳이어야 할거야~.”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진짜로 가는 건가? 에프타인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 이리탈크도 일이 끝나서 기분 좋은지 손을 흔들어 대며 작별인사를 건냈다.

“진짜로 가시게요?”

“약속이니까요. 일단 금성 쪽에 연락은 해 두었습니다.”

“...차관님도 가시는 것은 아니겠죠..?”

“금성 안내원이 직접 안내하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인사만 할 생각입니다. 리디스는 푹 쉬고 떠날 준비를 하시면 됩니다. 인사는 내일 저 혼자 가서 하겠습니다.”

진짜 안 가는거 맞겠지?

“예. 알겠어요.”

나는 ‘나의 상사’ 에프타인과 헤어지고 들어가서 쉬었다. 가족에게 연락도 했다. 평범하게 끝났다. 그런데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건가? 보고 싶다는 얘기도 없네. 물론 나는 제1도시 출신이고 가족과 친척 모두 제1도시에 산다. 수도와 멀기 때문에 만날 시간은 없지만. 형식적으로나마 보고 싶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금성 공용 방송들을 뇌 속으로 시청하며 빈둥거리다가 잠 들었다.

다음 날 에프타인이 아침에 찾아왔다.

“차관님. 이리탈크와 인사는 끝나셨나요? 되게 일찍 오셨네요.”

“벌써 안내를 받아 갔다는군요. 인사할 틈도 없었어요. 차라리 잘 됬습니다. 시간 낭비 없이 바로 화성으로 출발하도록 하죠.”

“흡..네에.”

역시 에프타인도 이리탈크 같은 놈이랑 인사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 했나 보다. 그걸 무표정하게 말하니 재미있다. 우리는 화성 행 우주선을 타고 출발했다. 그나저나 에프타인은 정말 낭비라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별로 쉬지도 않고 업무만 딱 보고 바로 화성으로 돌아간다니. 지구 담당이라 금성은 잘 모를텐데. 내가 금성 출신이니까 금성에 대해 안내를 부탁하며 관광할 수도 있었을테고. 에프타인은 즐긴다는 감정이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에프타인의 표정을 보니 뭔가 어두워 보였다. 그리고 생각에 깊게 잠겨 보였다. 내가 보기에 외교관으로써 이번 일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동 조사회라던가. 물론 실종자들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에프타인이 말했다.

“금성의 태도가 너무 이상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이상하긴 했죠. 그래도 결과는 괜찮지 않나요?”

“리디스. 금성의 태도는 외교적인 움직임이 전혀 아니었어요. 외교적으로 자신의 치부를 저렇게 쉽게 드러내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입니다.”

“예?”

내가 놀라서 반문하자 에프타인이 말했다.

“그건과시입니다.”

“과시라구요?”

나는 에프타인의 말을 며칠 후에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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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스 케언– 여자. 28세. 외교부 차관 제3비서

에프타인 슈라흐 – 남자. 49세. 외교부 차관(지구담당)

유리치 프리구프– 여자. 36세. 외교부 차관 제1비서

칼렌 카릭– 남자. 41세. 외교부 차관 제2비서

아킬로 브레스터– 남자. 133세. 화성 대기업 마르마스 회장

소년 – 남자. 15세. 쓰레기장에 기절해 있었다. 리디스가 구조.

남자친구 – 30세. 리디스의 전 남자친구. 이름은 리튼 페일.

케테로스 미카드 – 남자. 29세. 금성의 84대 왕

이리탈크 에실 – 남자. 61세. 지구 외교부 차관(화성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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