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93화 (93/99)

〈 93화 〉 39. 푸른 카트르(3)

* * *

가장 강한 기척이 느껴지는 장소에 도달했다. 그리고 상대를 확인하고는 나도 모르게 조금 놀라고 말았다.

루페리우스.

던전 자하드의 전방 탱커를 담당해줄 수 있는 동료 중 성능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녀석이다.

더군다나 루페리우스는 초반에 신전에서 추천해주는 동료이기에 성기사이기에 육성하기도 편했다.

저 녀석이 이 임무에 파견됐을 줄이야.

뭐, 지금 나한테는 딱히 필요 없는 동료이기는 하지.

그냥 반가운 얼굴이라서 조금 놀랐을 뿐이다.

순식간에 루시우스의 뒤를 잡는다.

그리고 놈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누….”

제대로 된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루시우스는 선 채로 기절했다.

역시 마법이야, 성능이 확실하다니까.

“보자.”

어디 그러면 기억을 읽어보실까.

“하아.”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루시우스의 기억을 전부 읽고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취득한 정보를 정리하기 전에 루시우스를 깨우고, 기억을 조작해 아무 일도 없었다고 여기게끔 만든 후 자리를 빠져나왔다.

“재밌네.”

자리를 빠져나온 뒤 숲에서 완전히 벗어나고는 변장을 풀고 생각에 잠긴다.

루시우스의 기억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써먹을 만한 정보가 거의 없다.

루시우스는 어째서 이 숲을 지키고 있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신전에서 선택받은 자의 동료로 추천되는 루시우스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렇다는 건 숲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무것도 모른 채 신전이 시키는 대로 숲을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주 재밌어.”

심문을 통해 정보가 빠져나갈 것을 대비한 것인가.

그게 아니면 고위층 말고는 아무도 모르게끔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 것인가.

확실한 건 기억을 읽어서는 건질 게 없다는 것인데.

“그럼 직접 살펴봐야지.”

잘 됐네. 마침 적합한 인물이 내려와 있잖아.

***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나는 현재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중이다.

그것도 어지간한 상공 수준이 아니라, 인간의 시야로는 절대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이다.

이 정도면 감지 마법으로 감지할 수 없는 거리다.

당연히 이 아래에는 바람이 없는 언덕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 시야로는 저곳을 확인할 수 없다.

마법으로 강화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

“어때 이레네.”

이레네는 현재 전용 무장 제노사이드의 조준경으로 지상을 살피는 중이다.

제노사이드가 대량 학살 병기이라고 말은 했지만, 어찌 됐든 그 뼈대는 저격에 있다.

때문에 제노사이드에 달린 조준경은 우리 다이나토스의 정수가 담겨있다.

어느 정도냐고?

반 정도 농담을 섞으면 아포디미아에서 지상이 보일 정도라고 하면 이해하려나?

“폐 아니, 아르켈님이 말씀하신 대로 열다섯 정도가 언덕에 상주 중입니다.”

“그 외에 수상해 보이는 건?”

내 물음에 이레네는 고개를 저었다.

“저들이 그럭저럭 훈련을 받은 인간이라는 것만 빼면 수상해보이는 건 없습니다.”

아니 그게 수상한 건데.

훈련받은 사람이 저 좁은 언덕에 상주하고 있는 것부터가 수상한 거잖아.

그리고 내가 그걸 묻는 게 아니고.

“처리할까요?”

“하지 마.”

처리한다는 건 제노사이드를 발포하겠다는 뜻이잖아.

관둬라, 제발.

저 언덕에 제노사이드를 발포했다가 유적이 무너질 수도 있다.

“언덕에는 딱히 수상해 보이는 건 없지?”

“예.”

그렇기야 하겠지.

게임에서 바람 없는 언덕에 가보지 않았던 건 아니니까.

그때에도 분명 바람 없는 언덕은 그저 평범한 언덕이었다.

“환각 마법이 걸려 있을 가능성은?”

“제노사이드의 조준경으로 간파하지 못할 환각은 없습니다.”

“그렇기야 하지.”

그렇다는 건 유적이 있다면 지하에 있을 가능성이 큰가.

“마법 탐지 술식이 있는 건 확인했습니다.”

역시.

투명 마법을 쓰고 바람 없는 언덕으로 가지 않기를 잘했다.

“지하 쪽을 스캔해줘.”

마법 탐지 술식이 있다면 내가 직접 스캔 마법을 쓸 수는 없었지만, 이레네의 제노사이드를 사용하면 발각되지 않을 거다.

“명령대로.”

이레네는 제노사이드를 몇 번 만지더니 잠시 아무 말 없이 조준경을 통해 지상을 살폈다.

“아르켈님.”

그러기를 수 분이 지난 후에야 이레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지하에 순간이동 마법진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지하에 유적이 있는 게 아니라, 순간이동 마법진을 통해서 유적으로 이동하는 시스템이구나.

그런 유적도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이레네는 왜 저리도 입을 떨고 있는가.

“……마법진의 형태가 저희의 제국에서 사용했던 마법진과 동일합니다.”

아, 과연.

지상에 남은 과거 우리 제국의 흔적을 보고 요상한 기분이 들었나 보다.

충분히 그럴 수 있…….

순간 위험하다는 직감이 들어 이레네에게서 제노사이드를 빼앗아 들었다.

“폐, 폐하! 어째서!”

위, 위험했다.

0.001초만 늦었어도 이레네는 제노사이더의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저런 걸 봤으니 다이나토스 특유의 인간 혐오가 끝까지 치솟아 오르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할 줄이야.

“내가 지금은 안 된다고 했지.”

눈을 찌푸리고 이레네를 바라본다.

메르넬라는 루이나 덕에 인간 혐오가 조금 줄어들어서, 이레네도 그런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나 보다.

아니, 그건 또 아닌가. 메르넬라도 이 상황에서는 침착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죄송합니다.”

이레네도 조금 진정했는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한 줄 알면 됐어.”

감정이 격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걸 충분히 이해했으니,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지하에 마법진이 있다는 거지.

마법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위치는 모르지만, 그건 솔직히 내 알 바 아니다.

마법진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만 알면 그만이니까.

“땅을 파고 들어가 보실까. 이레네. 마법진의 위치 정확하게 기억해둬.”

“알겠습니다.”

지상에 내려온 후 적당한 위치를 찾은 후 우선 마법으로 땅을 팠다.

그리고 적당히 나아가서, 여기서 마법을 더 쓰면 마법 탐지에 걸리겠구나 싶은 위치에 도달했을 때쯤.

“너도 거들어.”

이레네에게 삽을 내밀었다.

당연히 내 손에 삽이 들린 건 말할 것도 없다.

“저 혼자 하겠습니다.”

“됐어. 둘이서 하면 더 빨라.”

마법 탐지가 무서우면 직접 땅을 파면 되지.

애초에 이런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마법으로만 땅을 팔 필요가 없잖아.

인간 기준으로는 무식한 짓이지만, 우리에게는 마법이나 직접 땅을 파는 거나 속도는 거기서 거기다.

“아니, 방금 했던 생각은 취소.”

“예?”

“그냥 혼잣말이었어.”

제법 땅을 팠음에도 마법진이 있는 곳까지 도달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와, 이렇게 빨리 파내고 있는데도 이러네.

“얼마나 남았어?”

“대략 백 핀 정도입니다.”

아직도 백 미터나 남았다고?

환장하겠네.

딱히 힘들지는 않지만, 지하에서 막노동하고 있으니 뭔가 뭔가 그렇다.

정신적인 피로감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마법을 썼으면 진즉에 도착했을 것을 아니까, 더더욱이 그렇다.

“마법진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고 나서 한 번 돌아갈 거야. 메르넬라랑 루이나랑 비비안을 데려와야 하니까.”

“헌데, 아르켈님. 선조께서 남기신 유적을 공략하려면 정말로 다섯 명이 필요합니까?”

그 이야기는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래.”

“일말의 거짓도 없으십니까?”

애가 왜 이래?

“이레네 엔데카토스.”

삽질을 멈추고 이레네를 바라본다.

그녀의 이름을 말하는 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담기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폐하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노골적으로 기분이 나쁨을 피력하자, 이레네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하아. 그래 알았어.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선조께서 남기신 흔적에 인간이 들어오는 게 싫습니다.”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잠시 이레네를 바라보았다.

이레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차라리 다른 동포들을 불러서…….”

“그건 안 되는 거 너도 알잖아.”

아포디미아는 기본적으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다.

그곳을 우리가, 그리고 아이들이 살기 위한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선 아포디미아에 설치된 기계 장치에 다이나토스의 마력을 주기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원래는 아르켈이 공급했고, 지금은 나를 대신해 안드로 외의 다른 다이나토스가 돌아가면서 마력을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 두 명이 추가로 더 빠진다고?

메르넬라랑 이레네더러 내려오라고 한 것도 사실은 무리한 일이었는데?

“멍청한 고집을 부려 죄송합니다.”

이레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저리 말하는 것은 처음으로 이 지상에 조상의 흔적이 있음을 눈으로 확인했으니 저러는 것일 터다.

“그래. 마저 땅이나 파자.”

“예.”

그렇게 또 한참을 땅을 판 후에야, 우리는 마법진이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