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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92화 (92/99)

〈 92화 〉 39. 푸른 카트르(2)

* * *

“대략적인 위치는 이쯤인 걸로 알아요.”

“여기라고?”

벨라트릭스가 짚어준 지도의 위치를 본 나는 그녀의 말을 의심하고 말았다.

“진짜로?”

“맞을 거예요. 그 모험가 파티가 가장 최근 거래했던 장소가……여기였으니까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아라엘 왕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있는 장소.

다시 말해 호케트 공작령이었다.

“애초에 본점에서 거래한 게 아니면 제가 만났을 리가 없잖아요.”

호케트 상회는 그 이름대로 호케트 공작령에 본점이 있다. 벨라트릭스는 대부분 그곳에서 상주하고. 그러니까 그 모험가 쪽이랑 거래할 때 만났다고 한 거겠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벨라트릭스는 보며 나는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바람 없는 언덕에 유적이 있을 리가 있나…….”

바람 없는 언덕. 있어 보이는 이름을 가진 장소지만, 실상은 숲 끝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조그마한 언덕이다.

게임상에서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벨라트릭스의 말을 의심한 거였다.

“하지만 저희 공작령 근처에 유적이 있을 만한 장소는 거기뿐인 걸요.”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 저기 말고는 호케트 공작령 근처에 유적이 있을 만한 장소는 없다.

생각해보면 그래.

푸른 카트르, ‘던전 자하드’에 정통한 나조차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유적이다. 그럼 분명 숨겨진 유적임은 틀림없다.

설마 지하에 숨겨진 던전인가? 그렇다면 조금 납득은 된다.

“벨라트릭스. 제재당했다는 모험가들 지금 어디 있는 줄 알아?”

우선 그 모험가들을 만나 봐야겠다. 만나서 유적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뭔지 알아봐야지.

“관둬요.”

“응?”

“만나서 유적의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려고 하는 거잖아요.”

“응.”

잘 알고 있네. 그런데 왜 관두라는 거지.

“그거 관두라고요. 신전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요. 지금쯤이면 기억이 제거됐던가, 그것도 아니면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걸요.”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렇게까지 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제가 그 모험가들을 만나거나, 찾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자세히 보니 벨라트릭스는 몸을 떨고 있었다.

하긴 신전이 무서운 건 어쩔 수가 없지.

신전의 힘은 막강하다.

이곳의 세계관은 중세니까 당연히 종교의 힘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천족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여러 번 확인 됐으니, 종교의 힘이 지구의 중세 때보다도 훨씬 막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세계에서 혹여나 파문을 당한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은 물론이오, 모든 권력과 재산까지도 빼앗길 수 있다.

“흠.”

확실히 이번 일에는 벨라트릭스는 빼는 게 좋겠다.

호케트 상회 득을 크게 보는 상황인데 손해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좋아. 내가 알아서 알아볼게.”

“어떻게 하시려고요?”

“모험가 쪽은 깔끔하게 포기할 생각이니까 걱정하지 마. 너한테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데요.”

“직접 언덕으로 가보려고.”

이럴 때는 시간은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직접 현장에 가보는 게 가장 낫다.

내 귀찮음은 감수해야지 어쩌겠어.

***

“여전히 맛있네.”

“칭찬 감사합니다.”

레이첼이 내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서 미소를 짓는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바람 없는 언덕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말이지.

호케트 공작령으로 가기 전, 레이첼님께 며칠 자리를 비우겠다고 말했더니 차나 한 잔 타주고 가라고 해서 지금 이 상황이다.

뭐 저 미소를 볼 수 있다면 조금 늦게 출발하는 것쯤은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며칠이나 비우려고?”

“잘 모르겠습니다.”

정해진 기간은 없다.

유적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 하니까.

“그래? 그럼 조금 곤란한데.”

어? 며칠 내에 내가 필요한 상황이라도 생기는 건가? 아니 딱히 그럴 일은 없을 텐데. 연회도 이제 막 끝났잖아.

혹시 내가 모르는 일이라도 있나.

“왜 그러시는지요.”

이럴 때는 물어보는 게 최고지.

“……아르켈이 보고 싶어졌을 때 못 보잖아.”

아, 그런 이유였어.

“어?”

순간 레베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레베카는 양손으로 찻잔을 꼭 쥔 채, 찻잔을 방패 삼아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얼굴이 원체 작아서 그런지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있음은 알 수 있었다. 레베카의 얼굴만 그럴까. 내 얼굴도 마찬가지로 붉게 물들어있을 게 틀림없다.

“안 돼.”

순간 레베카의 사랑스러움을 못 이겨서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더니, 제지당하고 말았다.

“차라리 키스를 해. 머리는 안 돼.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단장한 머리란 말이야.”

키스를 하라고 하니 키스를 해야지.

“그러시다면.”

레베카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겨우 이거?”

“설마요.”

한 번 더, 다시 한 번 더 입을 맞추며 보드라운 입술의 감각을 충분히 맛본다.

이 정도면 될까 싶어 고개를 들어 올리려고 하니, 레베카가 갑자기 내 멱살을 잡았다.

“조금 더.”

그리고는 정열적인 키스가 이어졌다.

“부드럽게 부탁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레베카를 덮치자 레베카는 소녀처럼 몸을 떨면서도 슬며시 웃었다.

아, 미치겠네.

잠시 후.

레베카의 방에서 나오자 나디아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나요?”

젠장.

너무 급해서 방음 마법을 까먹었다.

***

포탈을 통해 호케트 공작령으로 이동한 후 곧바로 바람 없는 언덕으로 향했다.

그렇게 바람 없는 언덕으로 가기 위한 숲의 입구에 도착한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잡것들 투성이네.”

숲 안쪽에서는 단순히 동물의 기척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기척도 느껴졌다.

평범한 인간의 기척은 아니다.

그렇다기엔 기척이 너무 희미해.

분명 훈련받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제 기척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여기서부터 감시를 하고 있단 말이지.”

이 기척은 분명 신전 쪽 인간일 것이다.

물론 아닐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현재로써는 그쪽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한다.”

들키지 않고 지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숲에서부터 이렇게 감시를 하고 있는데 바람 없는 언덕에선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감시가 있을지 모른다는 거다.

“투명 마법도 안 먹힐 수 있어.”

오히려 투명 마법을 쓰고 가면 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냥 바람 없는 언덕에 가면 수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투명 마법을 썼다가 발각되면 빼도 박도 못한다.

감시가 이렇게 심한 줄이야.

이거 총체적 난국이네.

“모르겠다. 일단 가보기나 하자.”

그래도 바람 없는 언덕까지 가는 거야 어떻게든 될 것 같기는 하다.

마침 약초꾼 몇 명이 지나가는 걸 봤으니, 나도 약초꾼인 척 변장하고 들어가면 되지.

가서 바람 없는 언덕을 살펴보고 그 뒤에 고민해봐도 늦지 않다.

대충 나무꾼처럼 옷을 입고, 마법으로 겉모습을 바꾼 후 손에 헤진 바구니를 쥔 채 숲으로 들어섰다.

음, 숲에 들어가자마자 시선이 느껴진다.

시선은 내 모습을 살펴보더니 이내 갑자기 사라졌다.

아마 내가 평범한 약초꾼인 것으로 생각해준 모양이다.

그렇게 숲을 지나고 지나, 바람 없는 언덕의 근처에 도착하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땀을 닦으며 힘들어서 쉬는 척하며 바람 없는 언덕 쪽을 주시한다.

“열. 아니 더 많나.”

바람 없는 언덕 쪽에서 느껴지는 기척만 하더라도 열다섯이 족히 넘어간다.

숲에 있는 기척은 최소 스물.

이런 언덕에 무려 서른 명이 넘는 인력이 투입됐다는 건 다시 말해, 분명 바람 없는 언덕에 유적이 있는 게 틀림이 없다.

“다 죽이기도 그렇고.”

저것들이 어떤 보고 체계를 지녔는지도 모르는데 죽일 수는 없잖아.

심지어 저들이 유적의 입구를 알고 있다면 더더욱이 문제다.

문제가 생겼을 시 유적을 폭파시킬 수도 있다.

그런 모험은 하고 싶지 않으니, 일단 죽이는 건 보류다.

애초에 나는 사람을 막 죽이고 싶지 않다.

내가 무슨 싸이코패스 살인마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 평범한 지구인이었는데 사람을 죽이는 게 달갑겠냐고.

그 대사제는 죽어 마땅한 쓰레기였으니 넘어가자.

결론적으로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확실히 내가 생각하는 게 너무 과한 걱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하면 안 되니까 신중할 수밖에 없어.

“한 명만 잡아야겠다.”

가진 정보가 부족하면 뭐다? 정보를 캐내면 된다.

숲에 있는 스무 명은 서로 떨어져 있다.

저러는 것을 보니 느껴지는 기척으로 보아 한 명, 한 명이 실력자라서 저렇게 배치해놓은 것 같은데.

그러면 나야 땡큐지.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분명 수상하게 여길 터다.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고 다시 약초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척을 하며 기척이 정확히 어디에서 느껴지는지 찾는다.

너무 조무래기면 캐낼 정보도 없을 터다.

그러니까 이 숲에 있는 녀석 중 가장 강한 녀석을 사로잡아야 해. 잠시 후, 가장 강한 이의 기척을 찾아내고는 그쪽으로 몸을 이동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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