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39. 푸른 카트르(1)
* * *
대사제가 암살당했다!
현재 바르크 백작 영지를 불태우고 있는 화젯거리였다.
신전 지하에 있던 정체불명의 공간에 대사제의 시체가 있었기에 이 사건은 불가사의했다.
더군다나 대사제의 방의 바닥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격렬한 전투가 있었음에도, 그 시간에 있던 신전 경비병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기에 더더욱 사건은 미스테리에 빠졌다.
천족의 시체를 치워놓지 않았더라면, 바르크 백작 영지뿐만이 아니라 나라를 뒤흔들 이슈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아르켈, 딴생각하고 있죠!?”
아리아의 목소리에 나는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았다.
“다시 한 번 물을게요. 진짜로 당신이 한 짓이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현재 아리아는 대사제를 죽인 사람이 나라고 확신하고 추궁 중이다.
나는 계속 발뺌하는 중이고.
“이상하다. 분명 당신 같은데.”
“나는 그렇게 강한 마족이 아니야. 인간 기준에선 강해 보일지 몰라도, 상대가 대사제면 이야기가 달라져. 신성력 앞에선 꼼짝도 못 한다고.”
어느 정도 사실을 섞어 이야기한다.
다이나토스인 아르켈 소토르프와 달리 마족인 아르켈은 하위 마족에 불과하니까.
원래 거짓말은 사실을 섞어서 이야기하는 편이 더 잘 먹히는 법이다.
“그렇다기엔, 당신은 제 치료를 받고 회복한 적이 있잖아요.”
“회복은 몰라도, 공격은 나도 감당 못 해.”
사실 신성력이 담긴 공격은 마족뿐만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유해하지만, 이건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하아.”
아리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믿을게요.”
“고마워.”
시선이 불손한 것을 보니, 내가 죽였다고 아직도 확신하고 있지만, 일단은 믿어주겠다는 뜻인가보다.
“그럼 나 이제 일어나도 돼?”
“그래요, 일어나세요.”
후우, 이제야 편히 앉을 수 있겠네.
무릎을 꿇고 있느라 혼났어.
조금만 더 있었으면 발에 쥐가 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신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그런 걸까요.”
“글쎄. 나도 궁금해서 알아보니까 원한 살 곳이 많아 보이던데. 해먹은 것도 많고.”
대사제가 죽자, 그동안 대사제에게 핍박받던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백작에게 대사제의 비리에 대해서 고발했다.
심지어는 신전 안에서 내부 고발자가 나왔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더더욱 살인범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졌다.
“그런 분이실 줄은 몰랐어요. 조금 삐뚤어지긴 하셨지만, 신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도 말했지만,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신을 섬김으로써 얻는 권력에 취하는 이들도 있는 법이야.”
가장 무서운 건, 자신이 그 권력을 섬긴다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놈들이지만.
자신의 신앙이, 광신인 줄도 모르고, 잘못된 섬김인 줄도 모르고 신실하다고 믿는 놈들이 가장 무섭다.
대사제도 그런 부류였다.
“어제라. 그러고 보니 어제 그 사람들은 어떻게 했나요.”
“얌전히 감옥에 가둬놨지. 심문해보니까, 제법 유명한 범죄자더라고. 백작님한테 인가할 생각이야. 죄가 너무 깊어서 아마, 사형당하지 않을까 싶어.”
“잘하셨어요.”
약속대로 죽이지는 않았다. 심문을 가장한 화풀이를 좀 했을 뿐이다.
반병신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싼 놈들이긴 하니까 상관없나.
어차피 곧 죽을 놈들이기도 하고.
“자, 그러면. 다음에 또 올게.”
“네.”
아리아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마을의 신전에서 나온 후 마을 밖에 있는 공터로 갔다.
그곳에서는 메르넬라가 루이나의 훈련을 봐주고 있었다.
항상 루이나와 대련을 해주던 이레네는 지금 없다.
내 명령으로 사로잡은 천족들을 아포디미아로 이송 중이니까.
놈들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천족 정도면 손쉽게 기억을 읽을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세뇌 전문가인 아밀리아에게 심문을 맡길 생각이었다.
이레네는 아마 오늘 밤에는 돌아오지 않을까.
“아르켈님.”
나를 발견한 메르넬라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신전에서 볼 일은 다 보셨어요?”
“응. 조금 있으면 벨라트릭스가 올 거야. 그때까지 조금 쉬어야겠어.”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루이나를 바라보았다.
“어때.”
“똑같죠. 재능은 있어요. 노력도 하고 있어요. 하지만 벽을 넘지는 못해요.”
그런가.
“조금 이상해요.”
“응? 뭐가 이상해.”
“저 아이는 가진 마나가 적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재능은 있어요. 진즉에 더 강해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에요.”
“우리 기준에서 말하는 거 아니야?”
인간과 다이나토스를 같은 기준에서 평가하면 안 되지.
“아니요.”
내 물음에 메르넬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인간 기준을 잡고 생각해도 이상해요. 마치, 뭔가가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걸 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음?”
메르넬라가 허튼소리를 할 리는 없다.
“몸은 검사해봤어?”
혹시 저주라던가, 아니면 집안의 내력 때문에 경지가 오를 수 없는 몸일 수도 있다.
“해봤지요. 아무런 이상도 없었고요.”
메르넬라가 검사를 해봤는데 아무 이상도 없었다고? 그럼 딱히 문제가 없다는 소린데.
그게 아니라면 메르넬라가 알아차리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사실 그럴 가능성은 현저하게 적어.
그렇다면 다른 가능성은.
“몸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무언가가 방해하고 있다면?”
“그 가능성은 생각을 못 해봤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몸이 아니라 정신 쪽을 방해하고 있는 거라면 어때.”
그 말에 메르넬라는 눈을 감았다. 아마도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겠지.
“없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몸은 몰라도, 정신이라면 제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하긴 인간은 심리에 큰 영향을 받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잖아.”
“그렇기는 하지요.”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요, 아르켈님.”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메르넬라를 바라보았다.
“언제 루이나의 몸을 검사해봤어? 그것도 나랑 상의 없이.”
“조금 전에요.”
“그래?”
인간을 증오하면서 인간의 몸을 검사해주다니.
“하하.”
“왜 웃으세요?”
“신기해서.”
“네?”
뭘 그렇게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날 바라보는 거야. 당연히 신기한 일이잖아.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을 증오하던 네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루이나의 몸을 검사해준 게 신기하다고.”
“아…….”
내 말에 메르넬라는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닫고 탄식을 내뱉었다.
“저 아가씨는 착하고 성실한 아가씨니까요.”
그러더니 변명이라도 하듯, 그렇게 읊조렸다.
딱히 변명할 필요는 없는데.
애당초 이레네와 메르넬라를 루이나와 붙여놓은 건, 인간이라고 모두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 계획대로 되는 중이니 나야 좋은 일이지.
“복수를 잊은 건 아니옵니다, 폐하.”
“응?”
“지상의 모든 종족에게 벌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메르넬라가 횡설수설 말하는 것을 보며 나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저리 말하면서, 아이들이 준 꽃에 보존 마법을 걸어서 가슴팍에 달아놓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착한 이들까지 벌을 내릴 필요는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불온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전혀.”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해주는 걸 바랐다.
다른 녀석들도 이런 생각을 좀 해줬으면 해.
“저들의 조상들은 분명 우리의 제국을 멸망시켰어.”
그 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때 느꼈던 아르켈의 감정도 마찬가지로 선명해.
영겁을 살아왔으면서도, 그 날 느꼈던 치욕과 분노는 지금도 가슴을 불태울 것만 같이 깊다.
“하지만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 것도 웃기지 않아?”
우리의 제국을 멸망시켰던 이들은 모두 죽었다.
지상의 종족 중 가장 오랫동안 산 용도 마찬가지다.
현재 가장 오래 산 용인 자이메로노조차도 우리의 존재를 이제는 죽은 조상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 그날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저들은 아니잖아.”
“……그렇지요.”
지금도 검을 놓지 않은 채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는 루이나를 바라본다.
올곧음의 표상과도 같다.
저런 인간에게 죄를 묻는다고 한들, 과연 죄가 있기나 할지 의문이 들어.
“우리의 분노는 이미, 갈 곳이 사라진 셈이지.”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생긴 문제였다.
예전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메르넬라에게 했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
르켈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아닌 아르켈이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겠지.
아르켈은 레베카에게 미쳐있었을 뿐이지, 지상에 원한은 잊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는 아르켈이나, 아르켈이 아니고 메르넬라도 인간의 모습을 보고는 깨달은 게 많을 테니까.
“씁쓸하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영겁을 이 분노를 원동력 삼아 살아왔는데, 정작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없다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메르넬라님! 잠깐 여쭤볼, 아르켈님!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
“두 분이 이야기 중이신지도 몰랐어요. 잠깐 자리를 비켜드릴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할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
“곧 벨라트릭스가 올 거라서 가봐야 해. 물어볼 거 물어봐. 그럼 있다가 보자, 메르넬라.”
“네.”
루이나와 메르넬라에게 손을 흔들어준 후 벨라트릭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깜짝이야!”
공간이동으로 갑작스럽게 나타났더니 벨라트릭스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진짜로 놀란 모양이다.
“예고는 하고 나타나세요!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미안, 미안.”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다.
“얼마나 기다렸어?”
“별로 안 기다렸어요. 그런데 오늘은 왜 부른 거예요?”
“알아봐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지상의 정보는 나보다 벨라트릭스가 알아보는 게 빠르다.
공작의 부인이기도 하고, 왕국의 공주이기도 하니 정보통이 많겠지.
“뭔데요?”
“신전에서 관리 중인 유적.”
내 말에 벨라트릭스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신전 쪽이랑 관련되기 싫은 건 알겠는데, 부탁 좀 할게.”
“아니 그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어서 그래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얼마 전에 저희 상회의 고객님께서 유적에 간다고 했다가, 신전 쪽에서 제재를 당하셨거든요.”
아, 설마.
그 편지에 쓰여 있던 모험가가 호케트 상회의 고객이었어?
하기사, 유적에 들어가려고 했을 정도면 어지간히 이름이 알려진 모험가였을 테니까, 주로 거래하는 상회가 있을 수도 있지.
“푸른 카트르. 분명 거기였어요.”
이걸 이렇게 쉽게 알아버리네.
생각지도 못하게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