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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87화 (87/99)

〈 87화 〉 38. 그들은 선(Goodness)이다(3)

* * *

신전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감옥으로 향했다. 언제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그럴싸한 감옥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놀랐다. 나는 감옥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옳은 판단이다. 모험가 중에서는 난폭한 이들도 있으니까 감옥은 필요하겠지.

“오셨어요?”

내가 오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루이나와 경비대가 고개를 숙였다.

“그놈들이 아리아 사제님을 납치하려고 했다는 게 정말입니까?”

“어.”

“아리아 사제님이 납치당할 뻔하셨다고요?”

“그거 정말입니까!?”

“용서받지 못할 놈들!”

“어떻게 사제님을.”

내 긍정에 경비대는 물론이고 우연히 이 근처에 있던 모험가들도 분개했다.

처음에는 왜 저러지 싶다가도, 나름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기에 아리아는 마을에서 인기가 꽤 좋은 편이라는 것을 상기해내고는 저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즉시 처분할까요?”

“일단 백작저에 소식을 전해. 영지 내에서 일어난 일이니, 백작님이 판단하셔야지.”

“알겠어요.”

“그럼 난 잠깐 심문 좀하고 올게.”

저들의 처벌은 아리아의 약속대로 인간의 법에 맡기도록 하자. 다만 심문은 다른 이야기지.

“감옥은 신경 쓰지 말고 순찰이라도 하고 있어.”

그리 말한 후 감옥으로 들어섰다. 감옥의 보초를 서고 있던 경비병은 당연하다는 듯 내게 인사를 올리고는 괴한들이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안녕.”

마법 때문에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쓰러져있는 괴한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뭘 그렇게 무섭게 바라봐.”

진짜로 무서운 건 지금부터인데.

“우선 말이라도 할 수 있게 해줄까.”

“이런 조그마한 마을에 당신 같은 괴물이 왜 있지?”

마법을 풀어주자마자 괴한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허하지 않았는데.”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걸까?

“말을 할 수 있게 해준 건 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야.”

“하. 그럼 괜한 짓을 했군. 우리 같은 프로는 전부 입이 무거운 법이다.”

입이 무겁다고?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까부터 계속 나불거리고 있잖아.

“누가 너희에게 아리아를 납치하라고 의뢰했지?”

내가 질문을 시작하자마자, 괴한들은 일제히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어디 보자.”

검지 하나를 치켜세웠다. 그 손끝에 만들어지는 것은 조그마한 번개다. 크기는 보잘것없지만, 이 번개에 담긴 위력은 평범한 뇌속성 마법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문을 당하면 입을 열겠지?”

손가락을 휘두르자 번개가 바닥을 꿰뚫었다. 이것으로 저놈들 역시 내가 부린 마법의 위력을 알아차렸을 터.

그런데도 그 누구도 안색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그저 나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별 볼 일 없는 괴한이라고 생각했는데, 얼굴색 하나 안 바뀌는 거 보니 진짜 프로인가 보네.

그게 아니면 단순히 겁을 주는 거로는 입을 열지 않는 걸 수도 있다. 직접 당해보면 또 다른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지.

“크으으윽…….”

“끄아아아아악!!”

“아리아를 납치하라고 시킨 의뢰인이 누구야.”

번개로 몸이 지져지고 있으니 괴한들의 입에서 자연스레 비명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뿐이다. 저 중 그 누구도 말하겠다고 하는 이가 없다.

고문은 대략 한 시간 정도 계속되었다. 한 시간 동안 계속해서 번개로 몸을 지졌음에도 그 어떤 이도 의지가 꺾인 것 같은 표정을 짓지 않는다.

자신을 프로라고 지칭할만하다. 계속 고문한다면 언젠가 입을 열 수도 있겠지만, 너무 지루한 시간이다.

화풀이는 여기까지 해둘까.

“뭐……냐. 겨우 이걸…로 끝이……냐?”

내가 마법을 거두자마자, 우두머리가 입가를 비틀며 내게 시선을 보냈다. 누굴 가소롭다는 듯이 보고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사실 말이야.”

감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살이 탄 메케하고도 역겨운 냄새가 진동한다.

“굳이 너희 입으로 듣지 않아도 상관없어.”

나를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던 놈의 머리에 손을 댄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입가를 비틀어 웃으며, 놈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읽으면 그만이거든.”

세뇌 마법과는 다르게 기억을 읽는 마법은 인간 기준으로는 복잡한 마법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간단한 편이다.

“무, 뭐라고?”

물론 조건이 한 가지 있기는 해. 기억을 읽을 상대의 머리에 손을 대고 있어야 하거든.

“기억을 읽을 수 있다면, 왜 굳이 우리를 고문했지?”

“단순한 화풀이야.”

아리아에게 무섭게 한 너희를 향한 화풀이. 그리고 아리아가 위험에 처했음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도착한 나를 향한 화풀이이기도 하다.

“괴물 새끼. 해볼 테면 해봐라.”

뭘 그리 자신만만하게 말하는지. 놈이 뭐라고 말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기억을 읽었다.

“으아아아아악!!!”

번개로 고문을 당할 때도 유일하게 비명을 지르지 않았던 놈이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본디 살아있는 것의 기억을 읽는 마법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동반한다. 우리는 이것을 뇌를 헤집는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뇌를 헤집는 고통을 맛보고 있는데 어떤 이가 비명을 지르지 않고 배길까.

“니 이름이 알 지프였어?”

알 지프라면 ‘던전 자하드’에서도 등장하는 NPC다. 프로답기는 했지만, 이런 거물일 줄은 몰랐다. 잘됐네. 알 지프는 현상금도 걸려 있는 거물 범죄자다. 백작한테 알려주면 바로 처형당하겠지.

“그리고 너한테 의뢰를 한 사람은.”

어디 보자. 어라?

“하…….”

기억을 읽기 전에 자신만만하더니, 그 이유가 있었구나. 놈은 의뢰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하긴 이런 의뢰자의 정체를 굳이 알 필요가 없기는 하지.

그래도 뭐 아예 수확이 없는 건 아니니까.

“으…어어……억.”

뇌를 헤집는 고통에 쓰러진 놈을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왔다. 의뢰에 성공했을 경우 언제 어디서 만날지, 접선 장소와 시간은 알게 됐다.

일주일 후, 바르크 백작 영지 외각 지역이라.

대충 여기서부터 역추적하면 의뢰인이 누군지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전에 유력한 용의자를 만나러 가보실까.

* * *

저녁노을이 질 무렵의 하늘의 바르크 영지는 상당히 활기차다. 신전도 다를 바는 없어서 저녁 예배를 드리러 온 신자들로 가득하다.

“어서 오십시오, 신도님.”

그리고 그런 신자들을 인자한 미소로 반겨주는 이가 한 명 있었다. 나이는 50대 중반 정도나 될까. 아니 어쩌면 더 먹었을 수도 있지.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순간 그가 과연 범인인가 의심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 대사제는 분명 존경해 마땅한 훌륭한 신관의 모습이었다. 저 모습만 보고 있으면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당장에라도 놈의 머리를 헤집어 기억을 읽어보고 싶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 괜히 신전의 눈에 띌 필요가 없다.

정확하게는 천족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릴까.”

밤까지 기다렸다가 신전에 몰래 들어가도록 하자. 그리고 대사제를 추궁해보면 되겠지.

아니 굳이 추궁하지 않더라도 진짜 문제가 있는 놈이라면 사제들만 모여 있는 신전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잠시 후,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거대한 위성이 떠오른 야심한 밤이 되자, 곧바로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대사제를 찾기 위해 복도로 걷는 순간이었다.

“제, 제발 그만…….”

앳된 소녀의 고통 어린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은 한눈에 봐도 다른 방의 문보다 훨씬 화려한 장식이 달린 문이었다.

이 문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사제님 제발, 제발 그만해주세요……”

“안 됩니다, 신도님. 좀 더 참으셔야 합니다.”

투시 마법으로 안을 살피니, 오늘 낮 내가 한 고문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끔찍한 모양새가 펼쳐져 있었다.

아직 어린 티를 제대로 벗지도 못한 소녀가 사슬에 묶여 있다. 그리고 대사제라는 놈이 그 소녀의 등에 단검으로 무언가를 새기고 있다. 온 방에 피가 낭자해 있어.

소녀는 제발 그만해달라고 울먹이나, 대사제는 요지부동 계속해서 소녀의 등을 헤집는다.

저건 고문이 아니다. 저건 분명.

‘각인…….’

사제 중에서도 재능이 있어 보이는 이의 등이나 배에 천사들이 하사한 각인을 새겨넣는 작업이다.

저 각인이 새겨진 사제는 평범한 사제보다 훨씬 더 많은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적을 행할 힘을 갖추게 된다.

성녀인 에밀리 역시 어릴 적부터 저런 각인을 새겨왔다.

그래 알고 있다. 지금 대사제가 하는 작업은 분명 성직자가 해야 할 작업이다. 그는 아무런 부정도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뭐.

어차피 추궁할 생각이었잖아.

“실례.”

딱히 저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때문에 방에 들어온 건 아니다.

“누, 누구냐!”

갑작스럽게 방문이 열리자 대사제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 꼴이 마치, 뭔가를 훔쳐 먹다가 걸린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래 찔리는 구석이 있겠지. 각인을 새기는 거야 그러려니 하겠어. 하지만, 애가 아파할 때마다 황홀하다는 듯이 웃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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