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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82화 (82/99)

〈 82화 〉 37. 부정한 자의 검(2)

* * *

“전하.외부인에게 그 검을 보이신다니요.저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허허,아켈타 후작.회의에서 이미 다수결로 통과한 사안이다.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니었나.”

“그 검은 저희 왕국의 선조께서 남기신 것이 아닙니까.왕국 사람의 소유가 되어야지,외부인의 손에 쥐여줄 수는 없습니다.”

“설마.”

내 옆에 있던 루이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뭔데.그 검이 뭐길래 그래?”

루이나는 내 물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중얼거릴 뿐이다.크게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일단은 내버려두기로 하자.어차피 조금 있으면 그 검이라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그 검이 무슨 검인지 궁금할 뿐이지,딱히 끌리지는 않았다.아무리 좋은 검이라고 해봐야,아포디미아의 무기보다는 질이 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검의 주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잖은가.이대로 썩혀둘 바에야 그 검으로 실력자를 영입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저자가 마스터라는 건 아직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바르크 백작과 내 누이를 의심하는 건가?”

국왕의 말에 아켈트 후작이 그건 아니라고 말한 후 벨라트릭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오나,전하.설령 저자에게 검을 준다고 해도,그가 검의 주인일리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반론을 주장하기는 하는구나.저 정도면 고집이 어마어마한 꼰대인 건 확실하다.

“혹시 모르잖는가.뭐하느냐.가져오지 않고.”

시종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 구석에 방치돼있던 것을 낑낑거리며 가져온다.천으로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크기를 보아하니 검이 아니라 보관함인가보다.

뭔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는다.보관함에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 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사람의 마법 수준으로는 내 감을 어찌하지 못하니까.

만약 정말 보관함에 걸린 마법 때문에 내가 그 안에 든 검의 기운을 느끼지 못한 거라면,검이 아니라 그 정도 마법 실력을 갖춘 마법사를 소개해달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천을 치워라.”

국왕의 명에 따라 시종들이 천을 벗겨낸다.내 예상대로 천 안에 있던 것은 보관함이었다.

그리고 보관함 안에는 한눈에 봐도 전혀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는 막대기가 있었다.분명 검이라고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왜 막대기가 있어?

“어떤가.이 검으로 말할 것 같으면2대 용사이자 우리의 선조께서 사용하셨던 검이라네.”

저게2대 용사의 검이라고? 2대 용사의 검이면 저런 형태인 게 당연하다면,당연하지.

‘선택받은 자의 검’은‘검’이라고 불릴 뿐이지,주인에게 맞게끔 형태가 변한다.초대 용사는 검을 사용했기에 검의 형태였던 거다.

그리고2대 용사는 아무래도 마법사였던 것 같다.

2대 용사가 아라엘 왕국의 선조였다는 건 안다.그러나 그 정도뿐이다. ‘던전 자하드’내에서는 초대 용사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던전을 토벌해왔던 용사,선택받은 자들의 기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선택받은 자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그가 아라엘 왕국의 선조 중 한 명이라는 정보 뿐이다.

어떻게 던전을 토벌했는지,무엇이 특기였는지에 관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

더군다나2대 용사의 검은 첫 번째 선택받은 자의 검과 함께 게임 내에서는 획득할 수 없는 무기였다.

그걸 아라엘 왕국에서 보관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검을 주겠네.그러니 우리 왕국의 봉신이 되게나.대신.검을 뽑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것은 봉신이 되겠다고 대답했을 때뿐일세.”

솔직히 초대 용사의 검도 눈에 차지 않았는데2대 용사의 검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느껴지는 기운도 내 눈에는 강해보이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저런 검에 내가 포섭될 리가 없다.그래,그럴 것인데.

“되겠습니다.”

나는 저 검에 포섭될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목표3 :부정한 자의 검을 획득하십시오」

내 눈앞에 이런 글귀가 보였으니까.두 번째 선택받은 자의 검을 어째서‘부정한 자의 검’이라 칭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목표가 저것을 획득하라고 한다면,획득해야만 한다.

레베카를 도와 던전 운영을 하라는 식으로 미래에 대한 기약이 없는 목표도 아니다.

초대 왕이 남긴 것이 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찾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명확한 목표가 있고,그것을 획득하라고 한다.다른 목표들에 비해서 굉장히 쉽지 않은가.

게다가 훔쳐야 하는 것도 아니고,귀족이 되기만 하면 그냥 가져가라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르켈님?”

메르넬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그래,그렇겠지.나도 현재 목표만 아니었더라면 거절했을 거다.

“저게 필요해.”

“그렇군요.”

메르넬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왕께서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면,그저 따를 뿐이라는 건가.

“좋군.그럼 가져가…….”

“잠깐.”

또 아켈트 후작이다.저 사람 나한테 억하심정이라도 있나?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전하 저는 납득할 수도,용납할 수도 없습니다.”

아니 국왕이 준다고 하는데 왜 공작도 아닌 후작 나부랭이가 저러는데.

“저것은 우리의 선조의 검입니다.그러니 왕족만이,왕족의 피를 이은 자만이 만질 수 있게 해야 것 아닙니까?”

“허허,후작.”

아라엘의 국왕이 아켈트 후작을 바라보았다.

아,생각났다.아켈트 후작 가문은 본디 아라엘 왕국의 왕족이었지.정확히는 선대 왕자 중 한 명이 뛰어난 무력 덕분에 후작위에 앉았다는 설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 불만이면 이 사람과 결투를 해봄이 어떻소.”

그리고 뛰어난 무력을 지닌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이번 대의 후작은 아라엘 왕국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었다.

“그리하지요.”

그래,그랬었지.가장 강한 무인이라고 해봐야 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서지도 못한NPC의 설정이라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건 그런데.여기서 갑자기 결투를 해보라고 말하다니.남들 모르게 국왕을 살펴봤다.

저거 분명 후작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목적도 있지만,내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것도 있을 거다.

“아르켈님이 나서실 필요도 없습니다.제가.”

“아니,내가 할게.”

내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다는데 메르넬라를 내보낼 수는 없다.게다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두 번째 선택받은 자의 검을 바라보고 있는 루이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루이나에게 보여줄 것도 있기는 하니까.

*

결투 전 잠시 정비를 위해서 대기 시간이 생겼다.나 때문은 아니고,후작에게 대기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 멍청한 새끼.내가 이럴 줄 알았어.게다가 오라버니도 그래요.어떻게 그 검을 그리 쉽게 줄 생각을 하셨는지.”

“여보 일단 진정하고.”

“제가 지금 어떻게 진정을 해요!”

나와 함께 방에 들어온 벨라트릭스는 자신이 몹시 화가 났음을 여가 없이 보여줬다.함께 들어온 호케트 공작은 벨라트릭스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는 중이다.

“화나는 건 알겠는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후우,뭔데요?”

그래도 나한테까지 신경질을 낼 정도로 이성이 나가진 않았나 보다.

“신전 쪽도 아라엘 왕국에서2대 용사의 검을 가지고 있는 거 알고 있습니까?”

“네.”

“그런데 돌려달라고 안 해요?”

용사의 검의 소유권은 모두 신전에 있다.그래서 게임 내에서 획득할 수 없는 초대,그리고 두 번째 용사의 검을 제외한 나머지 검들은 모두 신전에서 보관 중이다.

“두 번째 선택받은 자는 여러모로 특이하니까요.”

“무슨 뜻입니까?”

특별한 게 아니라 특이하다니.선조를 칭하는 단어 선택이 조금 이상하지 한 것 같은데.

“정확한 건 아니지만,천족에게 반항했다는 전설도 있을 정도로 특이하신 분이에요.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신전 쪽에서 돌려달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어요.”

그런 전설이 있었어?두 번째 선택받은 자는 굉장히 오래전 용사고 남은 기록도 없는지라,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전설이 생겼을 수도 있다.

신전에서 돌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부정한 자의 검’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뭔가 있을 수도 있고.

“후우.인사해요.여긴 내 남편 에드.여긴 내가 꽤 말했던 아르켈이에요.”

“호케트 공작님이시지요?부인분께 신세 지고 있습니다.”

“신세 지고 있기는,무슨.자네 덕에 벨라가 드워프 장비를 팔 수 있게 되서 항상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네.에드먼드 호케트일세.에드는 내 애칭이라네.”

공작과 악수를 나누며 잠시 상념에 빠졌다.

서로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부부 관계가 원만한데 벨라트릭스는 왜 몸을 그렇게 팔았을까?그 정도로 상단을 키우는 게 욕심이 난 건가?그게 아니면 혹시 호케트 공작이 그쪽으로는 문제가 있는 건가?

벨라트릭스가 젊기는 하지만,아직도 자녀가 없는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살 상대해줄 수 있겠어요?”

“후작이 걱정되십니까?”

“일단은 사촌 오라버니니 걱정은 되죠.하지만 그 인간이 걱정돼서 한 말은 아니에요.”

사촌 오빠니까 걱정은 되지만,걱정돼서 한 말은 아니라니.이게 무슨 소리야.

“그 인간 진짜로 귀찮은 성격이거든요.앙심을 품지 않을 정도로만 하라는 뜻이에요.”

아.그런 뜻이었구나.

“뭐,일단은 알았어.”

알기는 했지만,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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