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36. 훈련(2)
* * *
“가서 회복시켜줘, 메르넬라.”
“네.”
“살의는 참고.”
만약 메르넬라가 루이나를 치료해주다가 살의를 보이고 죽이려고 들면, 막을 자신이 없다.
“알고 있어요.”
메르넬라는 여유롭게 다가가 루이나를 회복시켜줬다.
메르넬라의 회복 덕분에 어느 정도 진정한 루이나는 숨을 몰아쉬면서도,눈앞의 여자아이에게 겁을 먹었음에도 주저 없이 다시금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이레네는 조금 놀랐다는 듯 루이나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루이나에게 호응하듯 제 검을 들어 올린다.
“인간은 추악하다고 생각하지만.”
메르넬라가 루이나를 바라보면서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저런 모습은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렇겠지.우리,다이나토스는 힘을 추구한다.그렇기에 우리에게 단련은 너무나도 친숙한,예법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공포를 마주했음에도 단련의 끈을 놓지 않는 루이나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아름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그래,이런 걸 원했다.메르넬라와 이레네가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사람에게 호감을 느꼈으면 싶었다.
“크윽!”
지금까지는 이레네의 검 한 번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있기는 하다만.흐음,어쩔 수 없나.시범을 잠깐 보여줄까.
“루이나,잠깐 나와봐.”
“저,저는 아직 할 수 있어요!”
그런 아픈 꼴을 당했는데도 이대로 그만둘 수 없다는 듯 호승심을 불태우고 있다.그런 루이나의 모습에 메르넬라와 이레네가 잠시 미소를 짓는다.
“그만하라는 게 아니라 시범을 보여줄 테니까 보고 뭔가를 느껴보라고.”
“아,네.”
루이나가 얌전히 나왔다.어디 그럼 루이나의 힘과 속도를 상정하고 해볼까.동체 시력도 루이나의 수준으로 낮춰주도록 하자.
“이레네와 검을 나눈 게 얼마 만이지?”
“수백 샤만인 건 확실합니다.”
수백 년만인가.
“그동안 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저 여자보다,제가 검술 실력이 훨씬 낫다는 걸 증명할 겁니다.”
“아직 그걸 신경 쓰고 있었어?”
요리보고 조리 보고 아무리 봐도 검술 실력은 이레네가 루이나보다 못한 것 같은데.검을 뽑자,이레네가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달려들었다.
와,빠르다.
직접 해보니까 진짜 부조리하긴 하구나.순간이동 마법을 쓰지 않아도,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어느 사이에 내 앞에 다가와 있어.
이레네가 검을 들어 올린다.그리고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검격이 나를 향해 날아들어 오는 순간.
“읏차.”
몸을 틀어 검을 피했다.눈으로 보고서는 늦어.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반응해서 몸을 피해야 한다.이 정도야 쉽지.보스의 패턴을 보고 공격을 피하던 내 피지컬을 얕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이익!”
그렇게 여러차례 검을 회피하자,이레네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모습 때문에 이레네는 검의 경지가 얕았다.원거리 무기를 들 때와 다르게,이레네는 검을 잡으면 항상 조급해진다.이레네의 좋지 않은 버릇이다.
“그 버릇은 아직도 못 고쳤어?당장 차분해져,이레네.”
저런 이레네를 제압해봐야 시범도 뭣도 안 되잖아.
“아.예.”
이성은 찾았네.아무튼,그 버릇 좀 고치라니까.제 분야에서는 항상 냉정침착한 애가 왜 근거리 무기만 들면 저럴까 몰라.
“추태를 보였습니다.다시 가겠습니다.”
“오냐.”
어디 그럼 이번에 해볼까.이레네가 다시 검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본 순간,내가 먼저 검을 뻗는다.지금은 근력도 민첩함도 일부러 이레네보다 못하게 했으니,먼저 검을 뻗어야 속도를 맞출 수 있다.
그렇게 이레네와 내 검이 만나는 순간.
나는 몸을 틀면서 내 검을 이레네가 검을 향하는 방향 쪽으로 밀어버렸다.
“읏!”
내가 밀어버리자 이레네가 힘을 주체하지 못한 채 휘청인다.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발을 걷어차,완전히 균형을 잃게 한 후.
넘어지는 이레네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대충 이렇게 하는 거야,루이나.”
지금은 봐도 모르겠지만,언젠가는 깨닫게 되겠지.
“굳이 나랑 똑같이 하지 않아도 돼.그냥 참고만 해둬.”
이건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다.지금 내 방법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가령 예를 들어 안드로였다면 이레네가 검을 내리 베려는 순간 이레네 쪽으로 파고들어서 검의 타점을 놓치게 하고 제압했을 거다.
답은 많다.그러니 루이나는 루이나대로 자신에게 알맞은 답을 내놓으면 된다.
“이레네.역시 넌 검술은 영,아니야.”
검을 거두고 넘어진 이레네를 향해 손을 뻗었다.
“크윽.더더욱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레네가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간단하게 참고만 해두라고 하시다니,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그런가?그렇게 불평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해.
“자,다시 시작해.”
루이나와 이레네를 붙여둔 채 다시 메르넬라의 옆으로 다가갔다.
“훌륭하셨어요,아르켈님.”
“훌륭하긴 무슨.검에 익숙하지 않은 이레네에게나 통할 방법이잖아.”
메르넬라가 상대였다면 이런 방식으로 제압하는 건 어림도 없다.아니 애초에 메르넬라를 상대로 이 정도 패널티를 안고 싸우는 거 자체가 자살 행위지.그래서 메르넬라랑 루이나를 붙이지 않은 거고.
“그렇기는 하지만,훌륭하셨는 걸요.”
너무 콩깍지가 씌워진 게 아닌가,싶어.
“아르켈님.”
“응?왜?”
루이나와 이레네의 대련을 바라보던 중,메르넬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했던 질문을 계속해서 드려도 될까요?”
“아까 했던 질문?”
무슨 질문을 했었지?시범을 보이느라 잊어버렸다.
“인간이 아니라 지상의 종족은 어떤가요.우리와 격이 비슷한 이가 있나요?”
아,그 질문을 이어서 하겠다는 거였구나.음,지상의 종족이라.
“이레네 정도면 자이로나이랑 좋은 승부가 되지 않을까?그래도 이레네가 무조건 이기겠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전력을 보일 자는 없다.그러나 비교 대상이 지상의 종족으로 넘어가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덜덜 떠는 용 꼬마 아가씨가요?”
“겁먹은 모습만 봐서 그렇지,가장 오래 산 용이야.마왕급 마족도 부딪치는 걸 꺼릴 정도라고.”
나 때문인지 자이로니아는 며칠 동안 다이나토스만 봐도 겁을 먹었다.그래서 메르넬라가 보기에 자이로니아가 약해 보이겠지만,실상 자이로니아는 굉장히 강하다.
그 용왕조차 고개를 조아릴 정도의 강자.마왕급 마족도 꺼릴 정도이니,현재 용 중에서는 가장 강한 용이라고 봐야겠지.이레네가 전력을 보이지 않으면 무조건 진다.
이레네가 전력을 보인다고 해도 자이로니아는 어느 정도 버틸 거다.물론 거기까지가 끝이기는 하지만.
그런 자이로니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엘프의 수호자라던가,수인족의 대전사 같은 녀석들도 마왕급 마족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마왕급 마족이라…….그 말은 즉,진짜 마왕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네요.”
“어?”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마왕급 마족이라고는 하지만,마왕보다 약하니까 마왕급 마족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요?마왕보다 강하면 그들이 마왕이겠죠.”
오호라.이건 제법 흥미로운 말이기는 하다.
“정답이긴 해.”
저번 파티에서 게임 내에서 마왕급 마족이라고 불린 마족들을 봤었고 칠대 마왕 역시 내 눈으로 직접 봤었다.덕분에 깨달았다.마왕급 마족은 진짜 마왕들보다는 한끝 아래라는 것을.
그걸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유추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가장 오래 산 용이 마왕급 마족 수준이라니.지상의 종족은 모두 나약하네요.”
메르넬라는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우리의 원수가 그리도 약하다는 것에 실망한 건가?
이렇게 보면 메르넬라도 어쩔 수 없는 다이나토스인 것 같다.우리는 강한 힘을 원한다.그와 동시에 우리는 투쟁 역시도 원한다.강한 힘을 추구하기에 우리의 힘을 시험할 수 있는 상대를 원해.
“그럼 저와 일곱 마왕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까요?”
이건 또 재미있는 질문이네.
“……열 번 싸우면 일곱 번은 이기지 않을까?”
겉보기에는 유약한 여성이지만,메르넬라는 우리 중 세 번째로 강하다.그러니 지금 내 판단은 아마도 옳을 것이다.
“에이글부턴 오 대 오가 아닐까 싶어.”
이레네는 삼 할 정도가 아닐까?물론 상대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이레네는 근접전보다는 원거리전에서 빛을 발하니까.
“마족은 생각보다 강하군요.”
메르넬라는 놀랍다는 듯,그리고 즐겁다는 듯 눈을 깜빡이더니.
“그럼 대마왕과 아르켈님은요?”
가장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대마왕 바르바라와 나의 차이인가.글쎄,그건 잘 모르겠다.마왕들은 한눈에 어느 정도 수준인지 눈에 들어왔는데 바르바라는 그 격의 차이가 조금도 보이지 않아.
오히려 그녀의 앞에 설 때마다 내가 꿰뚫려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 점만 생각한다면.
“내가 불리해.”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바르바라와 내가 싸운다면 분명 나는 진다.
“실제로 싸우면 모르겠지만,내가 보기에는 승률이 삼 할이나 될까 싶어.”
사실 삼 할도 많이 쳐준 셈이다.내가 전력을 다하고,바르바라가 숨겨놓은 힘이 없다는 기준에서 말한 거니까.
“천족의 왕도 대마왕과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겠죠.”
“그렇겠지.”
“두려우신가요?”
두려우냐고?뭐,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힘이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대와 싸운다는 건 미지와 싸운다는 뜻이니까.그러니까 두려우냐고 물어보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래,이해는 되는데.
“설마.”
내가 두려울 리가 있나.지금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길래 메르넬라가 저런 질문을 던진 걸까 궁금하네.
“내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여?”
설마 지금 내 표정이 겁을 먹은 그런 표정이야?
“전혀요.오히려 저희의 왕 다운 표정을 짓고 계셔요.”
왕 다운 표정이라고 하길래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나 싶었더니,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뭐야,나 왜 이렇게 웃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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