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36.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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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이 완공된 것을 확인하고는 비비안에게 고룡의 심장과 함께 마법서를 넘겨줬다. 비비안은 마법서의 가치를 알아봤는지 연신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고개 숙일 필요는 없었는데. 곧 개고생을 하게 될 예정이니까.
그리고 바르크 백작과 이야기를 나눠 루이나를 바르크 백작의 기사에서 마을을 지키는 경비대의 대장으로 보직을 옮기도록 했다.
말이 좋아 대장이지, 근처에 두고 가르치기 위해서다.
“인사해, 이쪽은 루이나야.”
“……처음 뵙겠어요. 메르넬라라고 해요.”
“…이레네야.”
“루이나에요…….”
루이나에게는 메르넬라와 이레네가 나와 비슷한 실력자라고 소개해줬다. 뭐 실제로 우리 셋이 사람인 척 할 때의 전력은 비슷할 거다.
그런 실력자들이 자신의 훈련을 봐준다고 하기에 루이나는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아, 메르넬라가 묘하게 루이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도 분명 한몫하긴 하겠지.
“또 여성인가요?”
“루이나랑은 그런 사이 아니니까 진정해, 메르넬라.”
“레베카양도 처음에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실제로 그랬잖아. 게다가 둘이 먼저 덮쳐서…….”
“아르켈님, 저질.”
메르넬라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아니 너,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잖아. 갑자기 왜 그래?
“이레네.”
“네, 아르켈님.”
“네 훈련도 겸해서야. 상대해줘.”
이 훈련의 루이나를 단련시키는 것도 있지만, 메르넬라와 이레네가 사람에게 살의를 갖지 않게끔 훈련시키는 것도 목적이다. 그래서 굳이 이레네에게 목검을 던졌다.
“저도 목검을 들까요?”
“넌 진검이면 돼.”
분명 나와 비슷한 실력자라고 소개했는데 왜 방심하는 걸까. 아, 하긴. 이레네의 겉모습을 보면 그럴 수도 있기는 하다.
나이는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죄송한 수준이지만, 겉모습 만큼은 어린 아이니까.
“아르켈님. 시선이 굉장히 불쾌합니다.”
“시끄러워.”
이것들이 쌍으로 왕님을 무시하네. 괜히 폐하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나 싶을 정도다. 뭐, 그래도 내가 분명 실례되는 생각을 했으니 뭐라 할 말이 없기도 하다.
“아르켈님. 이레네한테 검을 쥐여주는 거 맞아요?”
“괜찮을 거야.”
메르넬라의 걱정은 타당하다. 이레네는 우리 다이나토스 중 가장 검을 다루지 못한다.
어느 정도냐면 우리 중 마법을 가장 잘 다루는 에이글보다도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그래도 이레네가 검술에 아예 소양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불공평한 힘도 한 번 맛봐야지.”
“불공평한 힘이요?”
“응.”
내 검술 수준은 굉장히 뛰어난 편이다. 순수한 검술 능력으로는 안드로보다 못하기는 하지만, 사람 중에서는 나보다 검을 잘 다루는 이는 없으리라 생각해. 그러니까 루이나는 내게 순수한 검술의 경지로 패배를 맛봤었다.
“확실히 이레네의 검술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봐줄 수준이 아니기는 해.”
“그렇죠. 그래서 검을 쥐여주는 게 맞느냐고 여쭤본 거예요.”
“하지만 스팩은 사람보다 좋잖아.”
검술 실력이 아닌 스팩에 의한 패배. 그걸 맛볼 필요가 있다.
“오늘 훈련은 실전 훈련이야. 준비해.”
루이나가 검을 든다. 그에 맞춰 이레네 역시 자세를 취했다. 엉거주춤하고 볼품없는 자세다. 그 모습에 루이나는 순간 방심하고 말았다.
그것으로 끝.
“어?”
“내가 이겼어.”
이레네는 순식간에 루이나의 뒤를 잡고 그녀의 가녀린 목에 목검을 들이댔다. 루이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레네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언제 자신의 뒤로 이동했는지 알 수가 없겠지.
“이레네.”
“죄송합니다, 아르켈님.”
이레네의 눈빛에 살의를 읽고 주의를 시켰다. 이러니까 살의를 보이지 않는 훈련을 시키려고 하는 거야. 아무리 주의를 시켜도 다이나토스의 본능은 어디 가지를 않는다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마법이야.”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루이나에게 진실을 말해줬다. 시작하자마자 이레네가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해서 루이나의 뒤를 잡았다. 그것뿐이다.
메르넬라와 이레네가 마법적 소양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단거리 순간이동 마법을 못 쓸 정도는 아니니까. 애초에 다이나토스는 특기 분야가 있을 뿐, 거의 모든 것을 할 줄 안다.
당장 메르넬라만해도 특기 분야가 회복은 아니지만, 파티에서는 힐을 담당해줄 예정이니까.
“마법은 비겁한…….”
“실전에서도 그런 말 할 거야?”
“읏.”
순수하게 검으로만 치르는 결투라면 비겁한 것이 맞다. 하지만 실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서로가 가진바 힘을 전부 보여서 서로 죽이려고 드는 것이 실전이다.
“순간이동을 능력을 가진 괴물하고 싸울 때도 비겁하다고 말할래?”
“아니요.”
“뭐해, 그럼. 검 다시 들어. 이레네도 자리로 돌아가고.”
“네.”
이레네가 자리로 돌아간다. 둘은 동시에 검을 들어 올렸다. 루이나에게는 이제 방심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순식간에 두 개의 검이 부딪쳤고.
“큭!?”
루이나는 검을 놓치고 말았다. 이번에는 순수한 힘에 의한 패배다. 정면으로 검을 부딪쳤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레네는 겉모습과 다르게 완력 하나는 우리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가 강하니까.
그만한 포격을 연속으로 쏴대니, 자연스럽게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완력이 길러졌기 때문이다.
“무, 무슨 힘이.”
“너무 약합니다.”
진짜 이 여자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게 맞나요? 이레네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조용히 해, 이레네.”
지금 당장은 루이나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거, 나도 알고 있으니까.
“메르넬라 치료 좀 해줘.”
“네.”
메르넬라가 루이나에게 다가간다.
“무슨 치료요?”
뭐야,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 건가. 하긴 의식하지 않으면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도 있지. 특히 이레네의 완력에 깜짝 놀란 덕분에 손이 아픈 것도 모를 수 있다.
“니 손.”
“손이요? 아.”
루이나는 제법 실력 있는 무인이다. 조금 전 이레네의 검에 담긴 힘은 그런 루이나가 검을 놓칠 정도였다. 그 반동으로 루이나의 손바닥은 찢어져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손 줘보세요.”
메르넬라는 익숙하다는 듯 루이나의 손바닥을 치유해줬다. 혹시나 루이나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나 싶었지만,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조금 놀랐다.
“후우. 진정, 또 진정하세요, 나.”
어떻게 간신히 참아내고 있는 모양이다.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것 같은데요.”
손이 치유되자 루이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레네를 바라보았다. 마치 괴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처음 맛보는 형태의 패배이니 당연히 그렇게 느끼겠지.
검술로 패배한 게 아니다. 마법에 의해 패배했다. 사람을, 평범한 괴물과는 궤를 달리한 힘에 패배했다.
실력이 아닌 스펙이 의한 패배. 확실히 불공평한 패배라고 봐야겠지.
“잘 들어, 루이나.”
“……네.”
“봐서 알겠지만, 이레네의 검술은 엉성해. 너보다 아래야.”
“그건 아닙니다, 아르켈님!”
“아니 맞아.”
이레네 네 검술은 진짜 못 봐줄 수준이야. 지상의 종족보다 못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건 이해하는데, 사실인 걸 어떻게 해.
“그건 저도 동의해요.”
이거 봐, 메르넬라도 동의하잖아.
“으으…….”
이레네는 무어라 항변하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명확한 사실을 짚어줬을 뿐이니까.
“이레네는 너보다 검술을 못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선 모두 월등해. 근력, 민첩함, 동체 시력, 신체적인 면에서 전부 우월하지. 심지어 마법까지 쓸 줄 알아.”
검술 말고 모든 것이 압도적인 상대다. 실전에서 이런 상대와 만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그럼 너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가 나쁘다고 도망쳐야 하나? 도망칠 수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어야 할까?
“왜 대답을 못 해.”
루이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이레네의 무식한 ㅎ미에 머리가 굳어버렸나 보다.
“검을 든 거구의 남자랑 상대해본 적 있어?”
“……네.”
“어떻게 상대했는데.”
“그거야 당연히 검을 흘리면서……. 아.”
루이나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깜빡인다.
“그래. 근력이 모자란 건 그런 식으로 보완할 수 있지.”
“하지만 너무 격이 달라요. 흘릴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어요.”
하긴 이레네의 근력은 인간 수준을 넘어서기는 했다. 장담하건데 이레네가 억제기를 단 상태라고 하더라도 오우거와 팔씨름을 해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건 지금부터 단련해서 극복해야지. 설마 니 검술이 여기서 발전을 못 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만약 그렇다면 실망이 크다. 사람은 계속해서 발전해야 한다. 향상심이 없는 인간은 결국 도태되고 말아.
“검술을 발전시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어떻게든 대항해. 계속 깨지면서 생각해봐.”
“……후우. 알겠어요.”
그래 열심히 해봐라.
“이레네. 지금부터 봐주지 말고 루이나랑 계속 대련해. 큰 상처가 생겨도 상관없어. 메르넬라가 치료해줄 거니까.”
“네.”
메르넬라와 함께 루이나와 이레네의 대련을 지켜본다. 음, 역시 수준 차이가 많이 나기는 하네. 어쩌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도 못한 루이나에게 저런 훈련법은 너무 빨랐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기 전에 저런 훈련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해서 강해지는 게 아니다. 마스터의 경지는 결국, 사람에게 새롭게 발전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뿐이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 오만해져서 단련을 그만둔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는 것뿐이다.
조금 있으면 루이나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테니까. 오르지 못한다면 반드시 오르게 할 생각이다.
“아르켈님. 인간은 모두 저렇게 약한가요?”
그렇게 대련의 현장을 바라보던 중 메르넬라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루이나 정도면 사람 중에서는 제법 강자야.”
“진짜로요?”
“어.”
마스터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봤을 때, 루이나는 상당한 강자가 맞다.
“물론 최정상급은 아니야. 최정상급이라고 해도 지금 상태의 우리랑 싸워서 이길 수도 없을 거고.”
오스빈 국왕이나, 검황이라고 해도 사람인척하는 우리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게임상 등장은 하지 않고, 설정으로만 적혀 있는 강자도 있기는 하다.
그런 녀석들이 과연 나타날지 의문이기는 하다만……. 아, 저건 좀 아프겠네.
“케헥, 켁, 케엑!”
루이나가 목검에 목이 찔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어찌나 괴로워하는지 눈이 빨갛게 물들었을 정도다.
살살 좀 해라, 이레네. 보는 내가 다 아파보인다. 아니지, 살살하면 지금 훈련에 의미가 없잖아. 그냥 적당해 해, 이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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