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35. 소녀의 상상
* * *
“하지만 획기적인 방법이기는 해.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 방법으로 홍보라는 걸 하려는 거야?”
알아줬구나, 레베카.
“일단 그런 식으로 은밀하게 해야죠. 괜히 대대적으로 마족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고 홍보하면 신전에서 난리를 피울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죽지 않는 던전. 코스가 나뉘어서 안전하게 괴물을 사냥할 수 있는 던전. 소문만 나면 모험가들이 몰려들 겁니다.”
다른 마족에게는 약간 곤란한 방법이기는 하다. 던전에 사람이 미어터지게 두는 건 힘든 일이니까. 던전의 공간이 부족하니까. 보통 모험가들은 던전 깊숙이까지 들어가는 걸 꺼리기 때문에.
그 점을 고려해서 던전을 코스별로 나눈 거다.
“괜찮은데? 지금도 욕망 벌어가 나쁘지는 않지만, 인간들이 몰려올수록 좋지.”
“그렇습니다. 아, 스켈레톤 워리어도 소환해야겠네요.”
일단 열 마리만 소환할까? 그리고 차츰차츰 늘리면 되지.
“저급하네요.”
소환된 스켈레톤 워리어를 보고 메르넬라는 눈을 찌푸렸다.
“그건 저도 부정할 수 없네요, 언니. 하지만 스켈레톤은 효율이 높아요.”
“맞아.”
시범이라도 보여줄까, 싶어 스켈레톤 워리어 한 마리의 머리를 부쉈다.
“예? 기껏 소환한 건데 그렇게 부셔서도 되나요 아르켈님?”
“보고 있어.”
머리가 부서진 스켈레톤 워리어에게 마력을 주입하자, 놈의 머리는 순식간에 복구되었다.
“오호라.”
메르넬라의 찌푸렸던 눈에는 어느 사이에 흥미가 깃들어 있었다.
“너무 많이 부서지면 뼈를 교체해줘야 하긴 하지만, 그렇지만 않으면 마력을 공급해주는 것만으로 재생해.”
“재활용이군요. 마력은 아르켈님께서 공급해주는 건가요?”
“일단은.”
내가 바쁘면 레베카가 마력을 공급해주기도 한다. 물론 내 마력이 가장 먼저지만. 내가 던전에 남아있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스켈레톤의 복구를 위해서 마력의 일부분은 항상 던전에 놔두고 갔으니까.
“신기하네요. 마계의 마물 중에는 마력 만으로 몸을 복구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군요.”
“애초에 마력으로 시체를 일으킨 거니까.”
던전 설계도 대충 끝났다. 이 정도면 기틀은 잡아놨고, 나머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덧칠하면 되겠지. 던전 설계와 스켈레톤 워리어를 소환하는데 욕망도 거의 다 썼으니까 이제 남은 할 일은 자이로이나를 불러서…….
“잠깐만.”
관리실의 카메라를 통해 무언가를 보고, 번뜩하고 불안함이 스쳐 지나갔다.
“메르넬라.”
“네, 아르켈님.”
“이레네가 왜 저깄어?”
“네?”
메르넬라를 데려왔지. 이레네한테는 분명 쉬라고 말해뒀었다. 이레네가 내 말에 따라 쉬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 저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어.
“이거 봐.”
던전 내부를 보여주는 카메라를 가리킨다. 분명 사람들이 괴물을 사냥하고 있다. 아직 코스가 나뉘었는지 모른 채 열심히 스켈레톤을 사냥하고 있는데.
“이, 이레네?”
그 뒤편에 희미하게 이레네의 모습이 보인다. 희미하게 보여서 표정까지는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저대로 두면 위험해. 사람을 보고도 이레네가 과연 살의를 참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데려와야겠어.”
급히 관리실에서 나갔다. 이럴 때는 관리실 안에서는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게 화가 난다.
* * *
지상의 종족을 향한 증오는 이레네 역시 다른 아포디미아 인들과 다르지 않다. 저열하고, 죽여 마땅한 증오스러운 놈들. 주인을 능멸하고 배반한 반역자들.
이것은 진심이고, 진실이다. 하지만 이레네의 머릿속에는 또 하나의 생각이 깃들어 있다. 저 인간들을 보라, 저 뼈다귀가 무어라고 저리 열심히 사냥하고 있는가. 그저 손 한 번 휘두르면 사라질 괴물을 어찌 저리 힘겹게 사냥하고 있느냔 말이다.
저급하다. 저열하기 짝이 없어. 우리와는, 나와 비교하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수준이 낮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살의가 일어난다. 저런 알량한 힘을 가지고 감히 우리의 선조를 배반한 모습에 치가 떨렸다.
그러나 왜일까.
이레네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읍…. 으읍!”
“꼬마 아가씨가 이런 곳에 혼자 오다니, 너무 위험하지 않아?”
이레네의 상상 속의 성인 인간 남자는 제 몸에 손을 댔다. 감히 추악하고 저열한 지상의 생명체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째서인가. 제 상상 속에서 이레네는 그저 나약한 암컷에 불과했다.
“으, 끄으읍!”
“크악!”
고작 물어뜯는다. 나약한 암컷의 반항이었다. 그것에 인간 남자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커…. 커…헉!”
“이 씨발 년이.”
복부에 다가온 충격에 이레네는 숨을 제대로 내쉬지 못한 채 남자를 노려보았다. 어이없는 상상이다. 인간이 때린다고 과연 이레네가 눈 하나 깜짝하기나 할까. 그러나 상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만히 있어라.”
당장에라도 억제기를 부수고 저놈을 산채로 터트리고자 하는 증오심이 일었지만, 자신들의 왕인 아르켈은 절대로 억제기를 부술 일이 없도록 하자고, 자신을 실망하게 하지 말라고 명했기에 이레네는 결코 억제기를 부수지 않았다.
아르켈이 이레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분명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을 것이다. 억제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평범한 인간이 이레네를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와.”
상상 속의 자신은 손으로 입이 막힌 채, 머리채를 잡히고는 던전의 구석으로 끌려간다. 그렇게 던전의 구석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 도착하자 인간 남성은 제 입을 막고 있던 손을 풀었다.
“케헥, 콜록, 콜록.”
“잠깐 재미 좀 보자고 데려온 거야. 조용히 반항하지 않으면 죽이지는 않을 게.”
“감…히….”
“음?”
이레네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인간 남성을 노려보았다. 어찌나 증오와 어둠에 물든 눈빛인지, 인간 남성은 순간적으로 살짝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다.
“케헥!”
또다시 복부에 충격이 찾아왔다.
“건방진 년이.”
“죽여버리겠…오북!”
또 한 번 더.
이레네의 겉모습은 성년도 되지 못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어린 소녀가 성인 남성에게 건방지게 살의를 보였다면 돌아오는 것은 하나다.
“케헥!”
성년도 채 되지 못한 소녀에게도 일말의 자비가 없는 난폭한 폭력 말이다. 인간은 약자에게는 어디까지나 저열하고 끔찍해질 수 있는 종족이니까.
근육과 힘줄이 돋아난 거대한 팔과 주먹이 이레네의 복부와 몸을 사정없이 폭행한다.
경험 많은 남자는 가녀리고 어려 보인다고 봐주지 않았다. 던전까지 찾아온 꼬마다. 어려 보인다지만, 마법사 중에서도 그런 여자는 많았다.
그런 마법사를 강간하려면 마법을 외우지 못하게끔 만들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폭력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실제로 이레네는 지금 인간 남자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얻어맞고 있었다.
“아, 아갹?!”
“이만하면 됐겠지.”
15분간 쉬지 않고 계속된 인간 남성의 무자비한 폭행에 이레네는 처참한 몰골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마을에서 샀던 옷은 처참하게 찢겨서 가슴이 거의 다 드러났고.
다리를 감싼 스타킹 형태의 하의만 간신히 남아있는 무력하고도 연약해 보이는 암컷 그 자체였다.
“어디 그럼.”
인간 남자가 옷을 벗는다. 저 저열한 종족이 자신을 범하려고 한다. 그것을 본 순간 이레네의 눈에 한순간 열기가 깃들었다.
“이 씨발 년이 젖었네?”
남자의 말대로 이레네는 스타킹을 넘어 그 발아래까지 흥건한 액체로 축축해져 있었다. 그 덕분에 암컷의 냄새가 진하게 나자, 인간 남자의 고간이 점점 단단해져 간다.
“아….”
저열한 종족에게 범해진다. 이 깨끗한 몸이 더럽혀져. 그것을 상상하자 현실의 이레네 역시 몸을 떨었다. 상상 속의 남자가 다가옴에, 따라 현실에서 이레네의 손이 음부 쪽으로 점점 다가간다.
상상 속의 인간 남자가 저를 깔아뭉개려는 순간. 이레네의 손이 음부에 닿으려고 하는 그 순간.
“이레네.”
익숙한 목소리가 자신을 불렀다.
“꺄, 꺄악!”
익숙한 목소리였으나, 상상에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이레네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
“폐, 폐하…….”
아르켈 소토르프. 우리의, 다이나토스의 왕이자 우리 중 가장 강한 자. 첫 번째의 칭호를 가진 분. 왕이 자신을 바라보자 이레네는 고개를 떨궜다. 조금 전 자신의 저열한 상상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잘 참았어.”
이레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기에 아르켈은 이레네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아직 살의를 보이는 것까지는 괜찮아. 안 죽였으면 됐어.”
“…네.”
이레네는 떨떠름하다는 듯이 아르켈을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은 왕을 속였다. 살의를 보인 것은 맞다. 지상의 종족을 죽이고 싶은 건 다이나토스에겐 본능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나 왕은 알까? 자신이 한 저열한 상상을 알고서도 저리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
“돌아가자.”
“네.”
아르켈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이레네는 자신의 음부가 젖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을 배정받는 순간, 이레네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깨달았다. 이 달아온 몸을 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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