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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74화 (74/99)

〈 74화 〉 33. 설명의 시간

* * *

던전에 도착한 후 우선 레베카의 방으로 향했다. 당분간은 던전에서 머물 계획이니 던전 주인한테 보고부터 하는 게 맞겠지.

“언니!?”

“오랜만이에요, 레베카양.”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건 아르켈님이 설명해주실 거예요.”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그것도 아르켈님 설명해주실 거랍니다.”

일단 두 사람의 사이가 여전히 괜찮아 보이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까?

오랜만에 만났으니 사이가 전과 다를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전에 같이 있던 상황이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기도 했고.

“레베카님. 아시는 분이세요? 마족은 아니신 거 같은데.”

마침 나디아도 있었구나.

잘됐네. 이 메르넬라와 이레네를 던전에서 머물게 할 생각이니 나디아한테도 설명할 생각이었으니까.

“폐하 아니, 아르켈님. 여긴 어디죠? 그리고 저 마족과 늑대인간은 누군가요.”

메르넬라와 레베카야 서로를 알고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나디아와 이레네는 상황을 이해치 못하고 있다.

그래 이게 정상이기는 하지. 이럴 거로 생각하기는 했는데,

“제가 없는 동안 아르켈님의 크기에 감사함을 느끼게 됐나요?”

“그, 그건…….”

저기요, 메르넬라씨.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는데 음담패설은 좀 아니지 않나요? 레베카가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잖아.

“도대체 어떤 분들이세요?”

“늑대인간…….”

설마 이런 혼돈의 도가니가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건 상황 정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 이 혼돈의 도가니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 다들 앉아봐. 지금 상황을 대충 설명해줄 테니까. 아, 나디아. 가서 자이로니아 좀 불러와 줘.”

“……네.”

나디아는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일단 내 말에 따라 자이로니아를 불러오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내 방에서 할 거면 차 좀 끓여줘 아르켈.”

차? 끓여줄 수야 있지. 귀찮은 것도 아니고.

“감히 폐하께 명령을!”

자, 잠깐만, 이레네!

“이레네.”

내가 이레네를 말리기도 전에 메르넬라가 이레네와 레베카 사이를 가로막았다.

“레베카양도 저와 같이 아르켈님의 여자에요.”

“저, 정말로요?”

“네.”

이레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레베카와 메르넬라 그리고 나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본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아르켈은 영겁 동안 고독히 서 있었는데 갑자기 여자가, 그것도 두 명이나 생겼으니 놀라울 만도 해.

“주제넘게 폐하의 여인께 소리를 지르다니 죄송하옵니다.”

이레네는 레베카에게 깔끔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고 태세 전환이 빠른 것에 어이가 없어야 할지, 아니면 치세가 능하다고 칭찬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고 말았다.

아, 몰라. 됐어. 일단 차나 타자. 그리고 자이로니아가 오면 대충 상황을 설명해주면 되지.

“모셔왔어요!”

“부르셨다고 해서 왔는데, 못 보던 얼굴이 있네요?”

잠시 후 찻물이 끓어오르며 차 향이 진동하기 시작할 때쯤 나디아가 자이로니아와 함께 돌아왔다.

“일단 앉아.”

나디아와 자이로니아가 자리에 앉는다.

“제가 할게요.”

“저도 돕겠습니다.”

“아니야, 내가 할게. 둘 다 앉아 있어.”

차를 따르는 건 이제 익숙하니까, 딱히 도와줄 필요는 없는데. 왜 이레네와 메르넬라는 둘 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아, 내가 이런 노동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구나? 내버려두기로 하자. 지상에 내려왔으니 이런 내 모습을 보는 것도 익숙해져야지.

자리에 앉은 모든 여성에게 차를 따라준 후에야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대충 상황을 설명해주기 위해 입을 연다.

“여기 두 명은 내 동족들이야.”

“동족이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히이익…….”

전혀 이해하지 못한 나디아와 달리, 자이로니아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저 꼬마는 지상의 용이네요.”

잠깐만, 지금 와서 눈치챈 거야? 그나저나 웃긴 일이기는 하네. 자이로니아는 용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그런 용을 꼬마라고 취급하는 것도 웃기고, 내가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웃겨.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런 반응은 자이로니아가 들어왔을 때 보였어야지. 갑자기 이러니까 당황스럽잖아.

아니 잠깐만. 살기 내뿜지 마!

“끄으으으…….”

쏟아지는 살기에 자이로니아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떤다. 자이로니아도 저런데 나디아와 레베카는 어떨까.

레베카는 자신에게 살기가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나마 괜찮은 편이지만, 나디아는 넘실거리는 살기조차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려고 하고 있다.

“어허. 둘 다 살기 멈춰. 애가 무서워하잖아.”

자이로니아는 상관 없지만, 나디아가 무서워하니까 그만해줬으면 좋겠어.

“네, 아르켈님.”

“알겠습니다, 폐하.”

그나마 말은 잘 들어줘서 다행……. 또 폐하라고 부르네.

“아르켈님이라고 부르라 했잖아.”

“아직 익숙지 않다 보니, 죄송합니다.”

그래 뭐, 조금씩 익숙해지면 되지. 메르넬라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다, 다이나토스가 세 명이나 있다니…….”

메르넬라와 이레네가 살기를 거두자, 자이로니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다이나토스?”

이제 나디아를 위해서 설명을 해줘야겠네.

상세하고 정확하게 내가 어떤 종족인지, 그리고 어째서 마족인 척을 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해줬다.

“어…….”

분명 상세하게 설명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디아는 새로운 정보가 너무 많아서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도 당황스러운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일단 머릿속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하자.

“…그러니까.”

잠시 후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는지 나디아가 입을 열었다.

“마족이 아니셨던 거예요?”

“응.”

정확해.

“그리고 사실은 엄청 강하시고요?”

“어? 내가 그거까지 말했던가?”

그냥 다른 종족이라고만 말한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몰라요. 이쪽 두 분보다 훨씬 상급자이신 것 같은데. 당장 이 두 분도 레베카님보다 강하신 것 같은걸요.”

아, 그렇게 생각하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기는 하구나.

“게다가 자이로니아님 같은 고룡께서 왜 아르켈님께 복종했는지 이제 이해가 가요.”

하긴. 나디아도 자이로니아가 어떤 존재인지 대충은 파악하고 있다.

그런 자이로니아가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렇게 보니까 눈치채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구나?

“그럼 지금까지 왜 약한 척하신 거예요?”

“사정이 있어서 코스프레 한 거야.”

“코스프레가 뭔데요?”

아, 코스프레의 개념 자체를 모르는구나.

“변장 정도로 해석하면 돼.”

“그럼 약한 척한 사정은 뭔데요?”

“그건 비밀.”

내가 힘을 보이면 아포디미아의 침공이 시작된다는 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애가 너무 겁먹을 수도 있잖아.

그래도 던전 내에서 유일한 직속 부하인데 겁먹고 나랑 이야기도 안하면 문제가 생기니까.

“그럼 왜 갑자기 정체를 밝히신 거예요? 여기 두 분은 왜 데려오셨고요?”

“이제 그걸 설명해줄게.”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나와 대마왕과의 친분이 있다는 점.

당연히 바르바라도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과 바르바라가 직접 내게 우리의 초대 왕이 남긴 것을 찾으라고 말했다는 것.

그것을 찾으려고 고대 제국의 유적을 공략하러 돌아다닐 생각인데, 유적을 공략하려면 동료가 필요하다는 것까지 말했다.

“그때 그런 이야기를 나눴었구나?”

아, 이건 레베카도 처음 듣는 이야기구나. 그때는 율리히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바르바라와 한 이야기를 해준다는 걸 깜빡했다.

레베카도 정신이 없는 건 마찬가지라 나한테 바르바라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었고.

“그래서 언니가 온 거구나?”

“레베카님은 이 분과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예요?”

“그게…….”

“크흠. 그건 나중에 설명해주세요, 레베카님. 아무튼, 그래서 당분간은 나와 같이 파티를 짤 인간 두 명을 육성할 계획이야.”

“굳이 다섯 명이 필요한가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래.”

모든 유적이 다섯 명이 있어야 공략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몇몇 유적은 분명 다섯 명이 있어야 공략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럼 우선 다섯 명이 있어야 공략할 수 있는 유적만 피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다섯 명이서 공략하는 게 낫지.

“귀찮군요. 힘으로는 저희 세 명으로도 충분할 텐데.”

그건 딱히 동의하기가 힘든 말이야 이레네. 정확히 말해야지. 힘으로는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리고.

“그건 모르지. 선조께서 만드신 곳이니 우리도 방심하면 안 돼.”

지금은 인간 기준으로 강자 수준의 힘만 사용할 수 있고, 고대 유적은 우리의 선조가 만든 시설이다. 분명 위험한 장소가 있을 수도 있다.

“아, 확실히 위험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인간의 손을 빌린다니, 굴욕적입니다.”

“저도 마찬가지 생각이에요.”

아니 메르넬라. 확실히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지 5초도 안 지났잖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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