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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67화 (67/99)

〈 67화 〉 29. 진실

* * *

천족이 마르벨리아가 마족 때문이 아닌 순수하게 던전을 부수려고 한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

그리고 내가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는 자는 오로지 단 한 명뿐이다.

“무슨 일이야, 아르켈. 며칠 걸릴 수도 있다고 내놓고,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

레베카가 깜짝 놀랐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그야 그렇겠지. 내가 하루도 안 걸려서 던전에 돌아왔으니까.

“마계로 가야겠습니다.”

바르바라와 만나야 한다.

그 여자라면 내가 모르는 것이라도 알고 있겠지.

더군다나 던전을 만든 장본인이다.

어째서 천족이 그리도 던전에 집착하는지 모를 리가 없어.

지금으로썬 그년이 던전에 무언가 장치를 했다는 것 정도다.

지상을 수호하는 천족이 던전에 저리도 집착한다면, 던전 자체가 지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 수도 있다.

“우선 진정해.”

레베카의 목소리에 조금은 이성이 돌아왔다.

“눈 감고 심호흡 해봐.”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그래 진정하자. 급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후우.”

심호흡 중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아직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긴 하구나. 레베카와 연인 관계가 되었음에도 은연 중 마족이 나쁘고, 천족이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그 목소리가 천족을 주의하라고 했는데도 그렇다.

지금 나는 천족이 아닌, 바르바라가 무언가 했다고 생각하는 중이 아닌가.

뭐, 그 미친년을 수상하게 여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만.

“조금 진정 됐어?”

“네.”

“왜 마계로 가려고 그러는 거야?”

“바르바라와 만나야 합니다.”

허억. 하고 레베카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대마왕님의 성함을 함부로 부르면 안 돼.”

“괜찮습니다. 그 여자랑은 아는 사이니까요.”

“알아? 언제부터?”

“레베카님과 처음 만났을 때쯤부터이요.”

정확히는 아르켈이 레베카의 옆에 있기 위해 대마왕과 협상을 한 거지만.

“마계로 갈 거면 같이 가. 지금 혼자 보내면 무슨 일을 낼 거 같아.”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 기다려. 자이메로노한테 던전 좀 지키라고 하고 있을게.”

잠시 기다리니 레베카가 다시 돌아왔다.

“가자.”

관리실로 가, 비밀 방의 문을 열고 포탈을 탄다. 그렇게 마계로 넘어왔다. 이제 바르바라와 만나야 한다.

“바로 대마왕 성으로 갈 거야?”

“예.”

급할 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딱히 다른 곳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았어. 마차부터 대기 시켜야겠네. 아, 알현을 하겠다고 미리 연락도 해야 되는데.”

포탈 방에서 빠져나와 복도를 걸어가면서 레베카는 그렇게 말했다.

“그럼 우선 베르한테 갈까? 베르 정도면 알현 요청은 해줄 수 있을 꺼야.”

“그렇게 해요.”

마왕급 마족인 베르셀리우스라면 대마왕 성에 연락은 할 수 있을 거다.

연락만 되면 된다.

바르바라가 내가 만나고 싶다는데 거절할 여자도 아니니까.

“레베카님!”

“레베카님을 뵙습니다.”

복도를 걷고 있자니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레베카를 따르는 부하 마족들이다.

너희는 할 일도 없냐? 어떻게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있을 수가 있어.

“언제 돌아오셨는지요?”

“방금 왔어.”

“여전히 아름다우세요 레베카님!”

“던전 운영이 제법 궤도에 올랐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푸르.”

그래도 저들 모두 진심으로 레베카를 따른다. 그러니까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레베카에게는 저 마족들도 소중한 자산일 테니까.

“아직도 저놈을 옆에 두고 계시다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었는데, 왜 또 나한테 지랄이지?

“저놈보다 제가 훨씬 낫습니다! 증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제게도!”

“저한테도요!”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바르바라와 만나려고 마계에 왔다. 지금 할 일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전부 내팽개치고 왔다고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저러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비켜.”

짜증이 났다.

내가 저것들을 배려해준 이유는 단지 단 하나,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충성을 보여서도.

하지만 내게 저열한 질투심을 보인다면 배려해줄 이유는 없어.

그렇기에.

“너희를 상대할 시간이 없어.”

살기를 보인다. 건물 내벽이 갈라질 정도로 농밀한 살기를.

짜증 나게 하지 마라, 귀찮게 하지 마.

힘숨찐 코스프레도 기분이 좋을 때나 가능하지. 내가 왜 너희들한테까지 굳이 힘을 숨겨야 하지?

너희 정도는 내 동포들이 지랄할 정도의 힘을 보이지 않아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데.

“으으…….”

“이게, 무슨….”

살기가 저들을 옥죄인다. 그것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잡병들이 감히 내게 도전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그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신음만 흘릴 뿐이면서. 감히 내게….

“아르켈.”

“이게 무슨 소란이지?”

레베카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내 살기에 맞서는 이가 등장했다.

“베르셀리우스.”

베르셀리우스는 마왕급 마족답게 이 농밀한 살기를 걷어치우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흠……. 대충 무슨 일인 줄은 알겠다. 내 언젠가 이럴 줄은 알았지. 헌데 무슨 일로 축제 중에 마계에 오셨습니까, 레베카님.”

“대마왕성에 연락 좀 해줄래? 지금 좀 뵙고 싶다고.”

레베카가 나를 대신하여 용무를 전했다.

“알겠습니다.”

베르셀리우스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베카님이 아니라 네 용무겠지, 아르켈?”

“맞아.”

“대마왕성에 연락할 테니 살기 좀 집어넣어라. 애들이 다 무서워서 말도 못하고 있잖으냐.”

베르셀리우스는 혀를 차면서 쓰러진 마족들을 바라보아싿.

“에잉 요즘 젊은것들은 이 정도 살기도 못 버티니. 나 때는 저 정도 살기는 버텨야 마족이라고 취급해줬는데.”

영감은 내가 살기를 집어넣는 것을 확인하자 연락을 하기 위해 유유자적 다른 곳으로 향했다.

“뭐야 정체 숨겨야 한다면서. 지금 보니까 아예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레베카의 물음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체를 숨기는 건 너 때문이었어. 네가 내 정체를 알면 무서워할 것 같았거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굳이 정체를 숨길 필요가 있나. 애초에 힘을 숨기는 건 어디까지나 아포디미아에 있는 동포들 때문이다.

그쪽에서 뭐라고 하지 않을 정도의 힘을 내는 건 상관없다.

그리고.

“어차피 처음부터 그년은 제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바르바라는 처음부터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마계에서는 이렇게 해도 상관 없어.

“그년…….”

레베카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제 이마를 쓰리내렸다.

“대마왕님과 아는 사이인 거 알았으니까, 제발 부탁이니 대마왕님을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 심장 떨어질 것 같아.”

흐음. 잠시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이게 그렇게 반응할 일인가, 싶어. 잠시 생각해보자. 레베카가 내 동포 중 한 명 앞에서 나를 그 놈이라고 부르면 어떻게 될까.

아, 확실히 큰일 나겠구나.

“예.”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까 지금 레베카의 기분이 조금 이해가 됐다.

“연락했습니다, 레베카님. 지금 당장 와도 괜찮다고 하십니다. 마차를 준비할까요?”

“부탁해 베르. 그리고 애들도 좀 부탁할게.”

“예.”

그리 말한 베르셀리우스는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할 말 있어?

“네가 힘을 숨기고 있는 건 어렴풋이 짐작했다만, 갑자기 이러니까 적응이 안 된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왔냐?”

베르셀리우스의 물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내가 힘이 없었으면 베르셀리우스와 같은 마왕급 마족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는 건 말도 안 되기는 했지.

그 점을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그리고 왜 갑자기 화를 냈냐면.

“저것들이 자기가 나보다 레베카 옆에 있는 게 더 낫다고 하잖아.”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내 여자 옆에 있는 게 어울린다고 말해서 화가 났다. 저열한 질투심을 상대하기 싫다느니, 뭐니 다른 이유는 그리 크지 않다.

그래 겨우 그것 때문에 화가 났을 뿐이다.

“역시 넌 미친놈이다.”

“이미 알고 있었잖아, 영감?”

아르켈이 미친놈인 거 알고 반말하는 걸 허락했던 마족이 지금 와서 미친놈이라고 해봐야 할 말이 없다.

“그것도 그렇군.”

베르셀리우스는 피식 웃더니, 내 어깨를 툭툭치고는 마차를 부르기 위해 떠났다. 영감도 내가 갑자기 찾아와서 고생이구먼.

잠시 후 마차를 타고 대마왕성으로 향한다. 그렇게 대마왕성 앞에 도착하자 우리를 맞이해주는 이가 있었다.

“대마왕님께서 안내하라고 하셨습니다.”

전에 바르바라를 봤을 때도 네가 안내해주지 않았던가?

“아, 아버님.”

칠대 마왕 중 한 명인 율리히 플락이 내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레베카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율리히와 나를 번갈아 봤다.

“아버님하고도 아는 사이였어?”

“바르바라가 다른 마왕들한테 제 정체를 언급했을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레베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율리히를 바라본다.

“아버님이 저렇게 인사하는 걸 보니까 기분이 이상해. 나까지 아르켈한테 존대해야 할 것 같아.”

“그럴 필요 없습니다.”

레베카의 손을 잡는다.

“따라오시지요, 아르켈님.”

“그래.”

그녀와 함께 율리히의 안내를 받아 대마왕이 있는 어전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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