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27. 신의 피
* * *
“아르켈님은 신님이 저를 위해서 보내주신 분 같아요.”
“하아?”
그렇게 걷던 중 루이나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이상한 소리인 건 알지만, 아무 조건 없이 저를 도와주시고 있으시잖아요. 제겐 그렇게 보여요.”
아니 무슨 말인지는 뜻인지는 알겠어.
그리 말할 만하다는 것도 이해하고.
내가 의문을 보인 건 루이나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입에서 신의 존재가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신전이 있는 이곳, 교황 자치구에서.
“루이나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어?”
“네.”
루이나는 고민의 여지도 없이 내 질문에 긍정했다.
하긴, 이 세계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아르켈 아니, 아르님은 믿지 않으세요?”
“믿고 있어. 나만큼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도 드물걸?”
믿는 정도가 아니다.
지구에서라면 모를까, 이 세계에는 분명 신이 존재한다.
과학적으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아포디미아가 그 증거다.
제작진도 아포디미아는 창조주가 만든 것이라고 공인했었다.
“그렇군요.”
“응.”
신은 존재한다.
당장 증거가 아포디미아 뿐만이 아니다.
대신전에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나를 아르켈의 몸에 빙의시킨 그 목소리도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기에 신은 존재해.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럼 한 가지 더. 신이 아직도 있을 거라고 믿어?”
“예?”
신이 존재함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존재할까?
존재하여 이곳을 바라보고 있을까?
‘던전 자하드’는 게임이 발매되고 확장팩이 두 개나 나왔을 정도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게임이다.
그렇기에 설정집도 몇 차례 나왔었다.
제작진이 직접 설정을 공개하기도 했었고.
그리고 그 설정 중에서는 항상 신이라는 단어와 함께 명시되는 문장 체계가 있다.
그것이 바로 과거형이다.
그 어떤 설정에서도 신은 존재한다는 현재진행형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그 점이 신기했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고 다른 세계로 떠났을 수도 있다는 뜻이야.”
던전 자하드의 종교 개념은 애매모호하다.
인간, 드워프, 엘프, 그리고 수인까지도 모두 같은 신을 믿는다.
그러나 신의 이름은 없다.
모두가 신을 그저 신이라고 부를 뿐이다.
종교의 명칭조차도 붙여지지 않았다.
이런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신의 존재를 지웠다.
그리하여 신도들이 섬기는 존재는 신이나, 신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천사님들이 있으시잖아요. 신님이 떠나셨다면 그분들도 같이 떠났어야 하지 않나요?”
“천족을 마족, 혹은 인간과 같이 신이 만든 족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신이 떠났으나, 그들은 떠나지 못한 거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생각해봐, 조금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오늘날 신전은 겉으로는 신을 숭배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천사를 숭배해.”
지금의 신전에서 신도들이 숭배하는 것은 신이 아닌, 신의 대행자인 천족이다.
물론 겉으로는 신을 숭배한다. 실제로 신을 숭배하는 신실한 사제들도 있다. 아리아가 대표적이지.
그러나 교리를 잘 살펴보면 신도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이 아닌 천족을 숭배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다섯의 대천사와 천계의 왕을 숭배하지.
생각해볼수록 이질적인 종교 체계다.
천족이 신의 대행자임을 강조해서 그들을 숭배하게끔 하였다.
“신의 대행자를 숭배할 필요가 있어? 천족이 신의 대행자면 신실이 신을 믿으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루이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천족은 굉장히 강력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힘은 인간에게는 신의 기적이나 다름없이 보이겠지.
그런 기적을 시시때때로 보여주니 당연히 숭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감추고 있는 것 같은 꼴이다.
“분명 그년 짓이겠지.”
“네?”
“혼잣말이었어.”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 사이 대신전의 코앞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수도승 몇 명이 나를 가로막았다.
“순례하러 왔습니다.”
순례 허가증을 보여주자 수도승들이 내게 고개를 숙인다.
무려 교황이 있는 곳이니 이리 삼엄한 경계는 당연한 거다.
“형제님이시군요. 뒤에 계신 분은 자매님이신가요?”
“제 호위를 해주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호위 분은 입구에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오호라, 이건 생각도 못 했네.
당연히 같이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주인공이 동료를 대신전으로 데려와도 같이 들여보내 줬었으니까.
그건 주인공이니까 그랬던 거구나.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아르님.”
“네, 루이나님. 기다리기 지치시면 여관에서 먼저 쉬셔도 됩니다.”
그렇게 루이나와 헤어져 대신전 안으로 들어왔다.
“게임이랑 똑같네.”
계절과 날씨의 변화 때문에 풍경이 조금 달라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구조는 게임에서 봤던 대신전과 완전히 똑같았다.
제작진이 대신전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분명 게임 속 장면을 현실로 보는 것인데.
어째서인지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곳이 대신전이구나, 싶어 주변을 간단하게 둘러봤을 뿐이다.
“우선.”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순례 절차부터 밟아야겠지.
마침 바로 내 뒤에 순례하러 들어온 목회자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뒤를 따랐다.
“흐음…….”
대신전에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신도들이 교황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무려 유일 종교의 총책임자다.
당연히 그만큼 바쁘신 몸이다.
항상 대신전에 있지도 않고, 본인이 대신전에 있고 싶다고 해서 있을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신도들이 이 대신전에 순례하러 오는가.
바로 저것 때문이다.
“이것이…….”
“아아.”
“신이시여. 저를 인도하소서.”
내 앞에 있던 이들이 하나같이 탄식하며 바라보는 것.
저것이 바로, 아포디미아와 같이 신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증거 중 하나다.
“신의 피를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대신전의 풍경과 달리, 게임에서 봤던 것을 직접 보니 뭔가 감회가 새롭다.
신의 피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 꽃 한 송이다.
그저 대신전의 입구 앞에 있는 꽃 한 송이일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
하지만 저것이 내뿜고 있는 힘은 그야말로 무한하다.
교황 자치구 안으로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전부 저 꽃 때문이다. 가진바 힘이 너무 강해서, 순간이동 마법이 꼬이고 만다.
그러나 어찌 저것이 신의 증명이 될 수 있는가.
대마왕 바르바라도 내가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끔 강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천족의 왕도 그리할 수 있겠지.
그런데 내가 왜 저것을 신의 증명이라고 인정하는가 하면.
“직접 보니까, 더 이해가 되네.”
저 꽃에서는 마나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족이든, 천족이든, 인간이든.
던전 자하드의 세계에 속한 모든 종족의 힘은 마나에서부터 나온다.
마법사는 마나를 마력으로 바꾼다.
무인은 마나로 육체와 무기를 강화한다.
마족은 마나를 마기로 바꿔.
천족과 신도들이 사용하는 신성력도 결국, 근본을 따지면 마나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것은 다이나토스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시 이질적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마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꽃에서는 조금도 마나가 느껴지지 않아. 그런데도 이런 힘을 내뿜고 있다.
게임에서는 조금도 마나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설명만 나왔다.
그래서 그냥 이것이 신이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하기에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솔직히 마나고 뭐고 게임 속 이야기지 플레이어인 내가 뭘 느낄 수 있겠어.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마나를 느낄 수 있기에 알 수 있었다.
저것의 존재는 터무니없어.
마나가 아닌 형용할 수 없는 힘을 내뿜는 저것은 분명 신이 존재했음을 알리는 증거 중 하나였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세나.”
“그래, 그래야지.”
내 앞에 있던 신도들이 충분히 신의 피에 경배한 후, 대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이 주변엔 오로지 나뿐이다.
한 번 만져볼까?
“만져봐도 되겠지?”
신의 피 주변에는 감시자가 있을 만도 하지만, 그 누구도 이곳을 감시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 어떤 이도 이것을 훼손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과거 수많은 이들이 신전의 힘을 약화하고자, 신의 피를 꺾으려고 들었다.
그리고 전부 실패했다.
하긴 이런 힘을 내뿜고 있는 꽃을 어떻게 훼손할 수 있겠어.
“어디.”
신의 피에 손을 대봤다.
역시나 꽃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조금 더 힘을 줘봤음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신기하네.”
조금 더 꽃을 만져보다가, 손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기에 메세지를 전달받으실 수 없습니다.」
「금기의 사슬 획득 완료」
「아포디미아에 접촉 완료」
「현재 ??의 조건 만족도 : ??%」
“이건 또 뭐야?”
게임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알림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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