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25. 그 목소리
* * *
“그런데 왜 아리엘 왕국에 마법사 길드가 버젓이 있는데, 굳이 멀리 있는 프찬타 왕국 마법사 길드에 포탈 설치를 의뢰한 거야?”
뭐, 약점이 잡혔다고 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왠지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왕국 쪽 마법사 길드는 포탈 설치 쪽 일을 안 하고 있어서요.”
“일을 안 해?”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마법사 길드가 일을 안 할 리가 있……구나?
“이쪽 마법사 길드 수장이 모바레크 자작인데, 연구실에 종일 들어가서 나오질 않아요.”
“알아. 기억났어.”
비비안 모바레크.
아라엘 왕국의 자작이자, 최상위 마법을 다룰 수 있어 대마법사로 인정받은 마법사 중 한 명이다.
비비안을 대마법사로 인정해야 하는가?
이 주제는 던전 자하드 커뮤니티에서도 상당히 불타올랐던 주제였다.
대마법사이면서 하위 마법조차 바로 발동하지 못해.
다른 대마법사에 비해 최상위 마법의 발동 시간 역시 느리다.
심지어 가진 바 마력도 적은 편이라 최상위 마법을 두 번 정도 쓰면 마력을 전부 소모하기까지 한다.
보통 마법사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보유하고 있는 건 맞지만, 여타 다른 대마법사들과 비교하자면 너무 약했다.
그래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들 중 몇몇은 비비안을 반푼이 대마법사.
그래 그렇게 불렀었다.
“아직 연구실에 처박혀 있는 시기겠구나…….”
비비안 본인 역시 자신이 대마법사치고는 모자라는 것을 알기에, 대중적인 마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력이 부족하니 업적으로 모자란 명성을 충족하려고 한 거다.
그러나 연구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
수장이 연구실에 처박혀 있으니 아라엘 왕국의 마법사 길드는 자연스럽게 포탈 설치를 하지 못했다.
포탈 설치비용이 비싼 이유는 대마법사가 직접 행차해야 하는 이유도 일정 부분 있으니까.
“쩝. 그럼 내가 괜히 거절한 건가?”
비비안이 연구실에 처박혀 있으면 다른 나라의 마법사 길드에 손을 빌리는 게 맞지.
“저도 통쾌했으니까 됐어요.”
“그래?”
“네.”
“그럼 됐어.”
공작부인이 통쾌했다고 하니 상관없겠지.
솔직히 이번 일로 니콜라스의 호감도는 쭉 내려갔다.
다른 마법사 길드에게 도움을 구하고 말지 니콜라스에게는 절대로 도움을 구하지 않으리라.
“그나저나 비비안이라.”
방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아 비비안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우선 비비안은 동료로 받을 수 있는 NPC다.
그리고 유일하게 처음 파티에 들어올 때부터 최상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동료이기도 했다.
“동료로 받을 수 있기에 비비안의 캐릭터 설정이 저런 식으로 짜인 거겠지, 싶어.”
책상을 두드리며, 벨라트릭스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커뮤니티를 불타오르게 할만한 주제를 불러일으켰다는 건 그만큼 인기가 많은 캐릭터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던전 자하드에는 수많은 NPC가 있다.
그만큼 동료로 받을 수 있는 NPC도 많다.
그렇기에 인기가 없으면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비비안은 애정 캐릭터 중 하나지.”
성능은 보지 않고 그저 애정으로 쓰는 동료 중 하나였다.
나이 51세.
마법으로 외모를 젊게 보이게끔 하고 있지만, 그 몸은 나이에 맞게 어마어마하게 풍만하다.
추할 정도로 풍만하지는 않고 꼴리게 풍만하다.
분명 유저 몇몇은 비비안을 반푼이 대마법사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놈들은 그냥 성능충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게임 내에서 연예가 가능한 동료 중에서는 유일하게 그런 취향을 노린 캐릭터다.
당연히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어.
그래서 보통 유저들은 밀프, 마마, 거대 빨통 노처녀, 기타 등등.
노골적으로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음란한 별명을 붙여 불렀다.
나도 비비안을 몇 번 동료로 채용하기도 했다.
비비안을 동료로 쓰면 그만큼 게임이 어려워져서 재밌었으니까.
“뭘 그렇게 중얼거리세요?”
“생각 중이야.”
뭐, 그렇다고 비비안의 캐릭터 성능이 완전히 좋지 않냐면 그것도 아니다.
최상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대마법사다.
도움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직업이다.
그리고 후반부에도 어떻게든 키울 수만 있으면 써먹을 수 있는 편이다.
키우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벨라트릭스를 바라보았다.
어렵지 않게 그녀의 시선에서 불안함을 읽을 수 있었다.
“공작부인.”
“네.”
“돌아갈 방법은 있어?”
내 물음에 벨라트릭스가 고개를 떨궜다.
“……바르크 백작 영지까지만 데려다주실래요?”
“그건 당연한 거고.”
아직까지도 벨라트릭스가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한통속이니 당연히 데려다줄 생각이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언제까지고 마을에 있어야할지 모르니까.
“데려다주고 난 후를 물어보는 거야.”
“거기 지부에서 돈을 가져다가 포탈을 타고 돌아가면 되죠.”
아니, 그 이후를 물어보는 건데.
포탈을 타고 호케트 공작 영지까지 돌아간다고 치자.
그다음은?
“호위는 어쩌고.”
호위 기사도 없고 마차도 없는데 걸어서 공작저까지 돌아갈 수 있다고?
“그것도 지부에서 빌리면 돼요.”
아하. 그렇군.
뭐하면 공작저까지 데려다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는 않아도 되겠구나.
“그래 그럼. 바로 데려다줄게.”
“감사합니다.”
“아르켈님.”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문밖에서 에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어지간하면 나와 벨라트릭스가 이야기 중일 때는 아무도 오지 말라고 말해뒀던 것 같은데.
“모바레크 자작님이 만나기를 청하십니다.”
“모바레크 자작님이?”
나와 벨라트릭스의 시선이 겹친다.
“연구실에서 안 나온다며.”
“그쪽도 안다는 듯이 말했잖아요.”
그래, 그렇지.
나도 안다는 듯이 말했었어.
“심장 때문에 찾아왔나 보네요.”
“빠르네.”
“오히려 느린 거죠. 진작 찾아왔어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하긴, 대마법사 정도면 순간이동 마법으로 올 수 있으니 느린 편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비비안의 마력을 생각하면 여기까지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하기도 벅차지 않을까?
분명 그럴 거다.
포탈을 이용해서 바르크 백작 영지까지 이동한 후에 순간이동 마법을 썼겠지.
“어떻게 할까요.”
조금 전 마법사에게 당한 게 있어서 왠지 비비안을 만나는 게 꺼려지기는 한다.
게다가 그걸 신뢰하던 캐릭터 중 하나인 니콜라스에게 당했으니 더더욱 꺼려져.
하지만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만나보기는 해야지.
“들어오시라고 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비비안 모바레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혼자 왔네?
“아리아 모바레크라고 합니……. 공작부인?”
“오랜만이에요, 모바레크 자작.”
“네.”
비비안은 공손히 벨라트릭스에게 인사를 했다.
그나저나 실제로 보니까 진짜 육감적인 몸매이기는 하네.
살이 저렇게 보기 좋을 정도만 찔 수 있다니.
지구에서는 보기 힘든 몸매다.
“아르켈입니다. 앉으시지요.”
가볍게 내 소개를 한 후 자리를 권했다.
벨라트릭스도 비비안도 내 손짓에 자리에 앉는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왜 왔는지 알고는 있지만, 일단 물어는 봐야지.
“고룡을 토벌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혹시 벌써 다른 마법사와 거래를 하신 건 아니죠?”
그리 말한 비비안은 걱정스럽다는 듯 벨라트릭스를 바라보았다.
공작부인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고룡의 심장을 사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닌가 싶은 건가, 싶어.
그나저나 굉장히 공손한 태도다.
비비안도 태생이 귀족인지라, 나를 깔볼 만도 한데.
“아직입니다. 공작부인께서는 저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신 거고요.”
“휴우.”
내 말에 비비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르크 백작님과 먼저 이야기를 하느라 조금 늦었는데 다행이네요.”
“백작님과요?”
나에게 오기 전에 바르크 백작과 먼저 만났구나.
“네. 바르크 백작님께서 대단하신 무인이라고 굉장히 칭찬하시더라고요.”
그제야 비비안이 묘하게 내게 공손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왕국 내에서 바르크 백작에게 맞먹을 수 있는 귀족은 몇 없다.
비비안이 대마법사라고 하지만, 바르크 백작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한다.
그런 백작인 신뢰를 하는 무인이니, 저리 공손하게 굴 수밖에 없는 거지.
나와 거래하기 전에 바르크 백작과 이야기를 먼저하고 온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아라엘 왕국의 귀족이니 당연한 건가?
“거래 전에 먼저 심장을 볼 수 있을까요?”
당연히 보여줘야지.
아공간을 열어 고룡의 심장을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용의 심장.
언뜻 보기에는 세공되지 않은 거대한 보석 덩어리로 보인다.
왜 보석처럼 보이느냐고?
심장 자체가 마력으로 형성됐기에 그렇다.
오랜 세월 살아와 심장의 마력이 굳어서 이렇게 보석처럼 빛나는 거다.
나도 원래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설명해줘서 고마워 자이로니아.
“아름다워…….”
비비안은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고룡의 심장을 바라보았다.
이것만 있으면 비비안은 어느 정도 정상적인 대마법사의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거다.
그러니 저리 황홀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해는 간다.
“흠.”
어떻게 할까.
그냥 비비안한테 팔아줄까.
주인공의 동료가 될 수도 있으니 강해지면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지금까지는 충분히 예의를 지키고 있으니, 니콜라스보다는 훨씬 나아.
『비비안 모바레크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세요.』
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