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22. 마법사 길드
* * *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와 함께 변화도 찾아왔다.
우선 아리아가 아르케 마을에 정착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와서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물어봤는데 아리아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딱히 말하고 싶지 않아 보여서 그냥 내버려뒀다.
다음 변화는 던전의 크기가 좀 더 커졌다는 것과 마을에 여관 건물이 하나 더 늘어났다는 것 정도다.
확실히 모험가가 많이 찾아오고 있기는 한가 보다.
일도 잘 풀리고 있으니 아리아에게 대신전에 들어갈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할 때쯤이었다.
“보고서예요.”
호케트 공작부인, 벨라트릭스가 불쑥 마을에 찾아오더니 내게 보고서를 내밀었다.
“무슨 보고서?”
“요 한 달 동안 드워프가 만든 장비를 구매하고, 판 명세서요.”
“흠…….”
그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걸까.
애초에 드워프 쪽에서 장비를 구매한 것으로 끝 아니야?
나머지는 호케트 상단이 드워프 장비를 비싸게 팔면 되는 거잖아.
이미 장비를 구매할 때 드워프 쪽에 대금은 치렀으니 딱히 돈을 분배해줄 필요는 없고.
그래도 일단 보여줬으니까 보도록 하자.
“오.”
짧은 시간치고 드워프 장비는 상당히 잘 팔리고 있다.
정확히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팔고 있을 정도다.
하긴 실력 있는 모험가라면 모를까, 보통 모험가는 있어도 사지 못하는 게 드워프 장비니까.
그걸 무조건 팔아준다고 하는데 사지 않을 모험가가 없을 리가 없다.
모험가뿐만이 아니라 각국의 귀족을 상대로도 장사하고 있나 보다.
“벨라트릭스.”
“네.”
공작부인은 저번에 겁을 한 번 준 것만으로 상당히 고분고분해졌다.
이게 진짜로 고분고분해진 건지, 아니면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건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나라의 병사나 기사에게 드워프 장비를 지급하고 싶다고 하는 건 거절해.”
“그런 대규모 거래를 막는다고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나라와의 거래는 어마어마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거래다.
그런 거래를 하지 말라고 하니, 반발심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좋은 장비는 전쟁을 부르기 마련이야.”
하지만 내게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인간이 세운 여덟 왕국은 사이가 좋지 않아.
그런데 한쪽 국가의 병사들 혹은 기사단이 드워프 장비로 무장하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치 않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 그 힘을 시험해보고 싶고, 그 힘으로 이득을 취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니까.
“지금은 던전 때문에 전쟁이 나지 않는다지만, 언제 어떻게 될 줄 누가 알아.”
“……확실히 그렇네요.”
벨라트릭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몸을 팔고 협박을 즐겨 썼다고 하지만, 호케트 상회를 이 정도로 키운 장본인이다.
이 정도 정세를 읽지 못할 리가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 또한 상회 입장에서는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하겠지만, 반대로 나라가 망하면 상회도 없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수기도 하다.
“그럼 귀족에게 장비를 파는 것도 막을까요?”
“개인 소장용 정도는 괜찮아.”
귀족은 화려함과 타인의 시선을 중요시한다.
그런 귀족에게 드워프 장비는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딱 좋은 물건 중 하나였다.
그런 허영심까지 막으려고 들면 귀족층에서 반발이 일어날 게 분명하다. 그러니 개인 소장용 정도는 팔아도 상관 없어.
아니, 오히려 막으면 안 된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 나한테 지급될 돈은 뭐야?”
액수가 꽤 상당한데?
보고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드워프 장비 판매 순이익의 1% 정도를 내게 지급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약은 당신이 주체해줬으니까, 당연히 당신 몫도 있어야죠.”
“1%는 너무 많지 않아?”
로열티라고 생각하면 적기는 하지만.
“뭐 그렇기는 하죠. 우리 계약이 오래오래 계속되기 위한 성의라고 생각해주세요.”
드워프 장비로 꽤 재미를 보고 있는지라, 독점 계약이 끝나기를 바라지 않아서 받치는 뇌물이라는 건가.
뭐, 나쁘지는 않지만 나한테 돈은 크게 필요가 없는데.
“이 돈은 나한테 주지 말고, 포탈 건설 비용에 보태.”
포탈, 마법사들이 관리하는 이동 마법진이다.
마을에 포탈이 있으면 좋기는 하지.
이용료가 꽤 비싸기는 하지만, 도착지점에 포탈이 지어져 있으면 어디든 이동할 수 있으니까.
물론 거리 제한이 있어서 너무 거리가 멀면 포탈을 몇 번 갈아타야 하기는 하지만.
“하아, 포탈. 진짜 필요한데 말이죠.”
벨라트릭스가 눈을 찌푸렸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녀가 전부터 노래를 부르는 포탈 건설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애초에 포탈은 국가의 수도 혹은 대도시에만 존재한다.
예외적으로 국경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바르크 백작 영지와 같은, 특수 목적 영지에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포탈을 마을에 세우려고 한다? 사실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포탈이 있으면 여러모로 편하기도 하지.
“마법사들이 너무 비싸게 불러요.”
사실 포탈 자체를 건설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생각보다는 그리 많지 않다.
복잡한 마법 장치가 필요해서 그렇지.
때문에, 포탈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마법적 지식을 독점하고 있는 마법사 길드에 의뢰해야 한다.
마법사들이 독점을 이용한 횡포를 부리기에 포탈 건설에 필요한 건설료가 천문학적으로 비싸지는 거다.
“자존심만 높아서.”
그게 네가 할 말이야? 마법사가 자존심이 높은 건 일부 동의하기는 하지만, 벨라트릭스가 그걸 말하니 어이가 없다.
솔직히 마법사가 자존심이 높아도, 귀족보다 더할까 싶어.
귀족이면서 마법사면 어떻게 되느냐고?
홀리 쉣, 그건 답이 없다.
“흠….”
뭣하면 아포디미아 쪽에 부탁해볼까?
이동 거리와 도착 위치 제한이 없는 워프조차 만들 기술력이 있는데 포탈을 만들지 못할까.
잠시 고민해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마법사 길드에 허가도 받지 않고 포탈을 만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게다가 포탈은 너무 옛날 기술이라서 이제는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애초에 아르케 마을에 사람이 너무 안 와서 문제에요. 사람이 많이 오면 마법사들도 포탈 이용료를 뜯을 생각에 가격을 좀 깎아줄 텐데.”
“사람이 안 와?”
이 정도면 마을 규모까지 고려하면 충분히 많이 오고 있는 편이 아닌가?
“모험가는 많이 오고 있죠.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잖아요.”
다른 사람들?
그건 무슨 뜻이지.
“드워프 장비는 지금 없어서 못 팔 정도예요. 그리고 저희 상회는 아르케 마을에서 드워프 장비를 구매할 수 있고, 심지어 제작 의뢰까지 할 수 있다고 소문을 냈어요.”
제작 의뢰? 이건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아마 벨라트릭스와 드워프 쪽에서 독자적으로 이야기가 오갔겠지.
“그런데도 귀족은커녕 귀족들이 보낸 심부름꾼도 오지 않아요. 게다가 아르케 마을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는데도 다른 상회도 오지 않고요.”
흐음, 확실히 그렇기는 하다.
“하아. 이게 다 저기 있는 드래곤 때문이에요.”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드래곤은 신전에 우호적이라 사람에게 딱히 간섭하지 않는데, 뭘 그리 겁먹어서는 마을에 오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비명 숲에 있는 드래곤이 유명해?”
“유명하죠. 그것도 성질 포악하기로 엄청 유명해요. 그래서 던전이면 눈이 뒤집히는 모험가들 말고는 여기 오지 않는 거예요. 바보 같은 사람들이죠.”
이건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아니, 생각해보면 드래곤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한 적이 없기는 하지.
설마 내가 아르켈의 몸에 막 빙의했을 때 죽인 고룡을 말하는 건가?
“드워프들이 그 드래곤 때문에 비명 숲에 있는 드워프 왕국이 망하기 직전이라고 말하고 다니거든요.”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그러면 어쩐다.
용을 토벌한 사실을 숨길까?
아니면 그냥 용을 토벌했다고 말할까?
어느 쪽이 이득인지 생각해보자.
숨기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인간 행세 중인 아르켈의 실력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거다.
하지만 이미 바르크 백작은 물론이오, 벨라트릭스조차 나를 반로환동한 고수로 알고 있다.
만약 벨라트릭스가 그 사실을 몰랐더라면 초면에 내게 반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 행세 중인 아르켈의 실력은 이미 뛰어나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에 드러나지 않는 것에 이점은 없다.
반대로 용을 토벌했다고 말했을 때의 이점은.
벨라트릭스의 말대로 마을에 모험가 말고, 다른 목적을 지닌 사람들도 방문하게 될 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하는 게 이득이네.
“그 드래곤 내가 처치한 거 같은데.”
“네?”
벨라트릭스가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처치했다고.”
“농담이죠?”
내가 농담하는 거로 보여?
“즈, 증거 있어요?”
내가 아무 말 없이 그냥 바라보기만 하자 하는 소리가 저거다.
증거라, 눈으로 증거를 직접 봐놓고 저런 말을 하니 어이가 없네.
“애초에 저 드워프들이 그 드워프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해, 해보기는 했지만 좀 터무니없잖아요.”
해보기는 해봤었구나.
“사람이 그런 고룡을 어떻게 토벌하겠어요. 그냥 그 왕국 쪽에서 도망친 드워프들이 온 줄 알았죠.”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확실히 그쪽이 조금 더 현실성이 있기도 하고.
그럼 어쩔 수 없지.
빼도박도 할 수 없는 증거를 보여줄 수밖에.
“따라와.”
마을 안에서는 보여주기 뭐했기에 벨라트릭스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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