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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51화 (51/99)

〈 51화 〉 19. 사제 아리아(3)

* * *

“안녕.”

다음날 당연하게도 아리아의 앞에 남자 마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보다 조금 두껍게 옷을 입은 것이 조금 눈에 거슬리게 느껴졌다.

“뭐야, 안 먹었네?”

‘약을 탔을 게 분명한데 제가 왜 손을 대겠어요.’

어제 그냥 간 것도 분명 자신을 방심시키기 위한 거라고 아리아는 확신했다.

그래서 일부러 그가 놔두고 간 것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아깝게.”

남자 마족은 아리아가 건드리지 않은 물과 빵을 먹어치웠다.

마치, 약같은 건 타지 않았다는 듯이.

‘하. 인간에게만 듣는 약을 타 놓은 게 눈에 보이네요.’

아리아는 속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절대 방심하지 않으리라.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주의하고 또 주의하리라, 아리아는 마음먹었다.

“이름은?”

어제와 같이 남자 마족이 물음이 시작되었으나, 아리아는 그저 묵묵부답으로 응대했다.

“말하기 싫은 건 알겠는데, 계속 이러면 서로 피곤해져.”

남자 마족은 한숨을 내쉬고는 아리아의 옆에 앉았다.

“그냥 질문에 대답하는 게 어때? 순순히 협조하면 풀어줄게.”

이 속박에서 풀려나 던전에서 빠져나간다.

현재 아리아의 염원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리아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제 염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해도, 부정한 마족과 타협하는 건 신의 뜻에 반한다.

고려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어제는 그래도 대화가 됐는데, 오늘은 아예 말이 없네.”

당연히 부정한 마족과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기에.

어제는 촉수의 등장과 마족이 예상외의 행동을 보여 당황했을 뿐이다.

오늘은 절대로 입을 열지 않으리라.

“하아.”

싫어, 그만둬! 꺄아아아아악!

남자 마족의 한숨과 함께, 소름 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여성의 비명이 아리아의 고막을 때렸다.

“저건 무슨 소리죠?”

누군가가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 염려되는 마음에 아리아는 입을 열고 말았다.

“오늘 잡힌 여자 모험가가 촉수한테 당하는 소리.”

“더럽고 역겹네요.”

아리아는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것을 참고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한다.

책에 쓰여있던 것처럼 괴물의 알을 낳게 된 여성에게 제발 안식이 있기를 기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기도 중, 남자 마족의 말에 아리아는 눈을 찌푸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지 않으면 될 것을, 왜 그리한단 말인가.

모순된 말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안 그러면 내가 죽는걸. 너도 저렇게 되기 싫으면 빨리 입을 여는 게 좋아.”

남자 마족은 이번에도 아리아의 앞에 빵과 물을 놔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갈 게. 내일 보자고.”

“잠깐만요.”

남자 마족이 고개를 돌려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왜 저 여자분이 먼저죠. 제가 먼저 잡혔는데요.”

“그건……”

그는 볼을 긁적이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비밀로 해둘게.”

그리 말한 후 자리에서 벗어났다.

“비밀은 무슨.”

아리아는 이번에도 빵과 물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 날밤은 여자의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여성을 대신해 자신이 고통받고 싶었지만, 그녀를 구해주고 싶었지만, 그리 할 수가 없었다.

결심이 서지 않았기에.

그리하여 죄책감이 쌓여, 밤새 신께 용서를 빌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여성의 지치지도 않는지 비명을 그치지 않았고, 그 소리 때문에 아리아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자 마족이 항상 빵과 물을 두고 갔지만, 아리아는 그것을 손대지 않았다.

‘이제 며칠째죠.’

벌써 사흘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해 아리아는 지쳐갔다.

던전 안에 있어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사흘이라는 걸 안 것도, 남자 마족이 이제 곧 네 번째 방문을 할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며칠이나 견뎌야 신전에서 수색대를 보내줄까.

견딜 수 있을까? 저 여자분은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이라도 괴물의 알을 낳게 되면,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안녕.”

그 날도 어김없이 남자 마족이 자신을 찾아왔다.

“오늘도 손도 안 댔네. 꼴이 말이 아니야, 좀 먹어.”

걱정스럽다고 말하는 것이 역겹다.

“닥쳐요.”

마족 주제에 인간을 걱정하는 꼴이라니, 너무나 가증스러웠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어지러워. 당장 물을 마시고 싶다.

그러나 눈앞의 물은 마시고 싶지 않아. 저것을 마시면 마족에게 굴복하는 것 같아.

굴복하는 순간, 이 신앙심도 무너질 것 같아서, 그래서.

차라리 아직도 비명을 지르는 여성을 대신하도록 하자.

그쪽이 조금 더 편할 것 같아.

어려움에 부닥친 이를 돕는 것이니, 신의 말씀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저 여성 분은 알을 낳게 하려고 잡아둔 거죠?”

“그것도 알아?”

남자 마족이 신기하다는 듯,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제가 저 여성 분을 대신하겠어요. 그러니까 저 여성 분을 풀어주세요.”

“싫은데.”

“예?”

어째서 싫다고 하는 걸까. 아리아는 당황스럽다는 듯 남자 마족을 쳐다보았다.

“싫다고.”

당황이 분노로 바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가 그러겠다는데.

신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겠다고 했는데 왜 거부하는 걸까.

이대로 있으면 고통스러워.

그러니까 내가 희생하겠다는데.

내 중요한 것조차 내놓겠다는데 어째서 저 가증스러운 마족은 그것조차 거부하는가.

“왜죠?”

“그냥. 너는 저 꼴을 안 당했으면 하거든.”

따스함이 깃든 말이 아리아를 훑고 지나갔다.

마족답지 않은 따스함에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묻는데, 지금에서야?”

조금 전 따스함은 어디로 갔는지, 남자 마족은 아리아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삼 일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결심이 선거야? 처음부터 그랬으면 또 몰라. 이제야 니가 대신해서 희생하겠다고 말하는 건, 너무, 위선적이지 않아?”

남자 마족이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모양새에 아리아는 눈을 감았다.

‘알고 있을 리 없어요.’

마음속으로는 그가 알고 있을 리 없다고 부정해본다.

“신성력을 잃는 게 힘들었어?”

아아, 알고 있었구나. 사제는 부정한 것에게 범해지면 신성력을 잃고 만다.

그것 때문에 여성의 비명이 들린 날, 감히 그녀를 대신하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이제껏 쌓아 올린 신성력이 아까워서, 차마 그리 말할 수가 없었다.

남자 마족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 차라리, 빨리 저도 저렇게 만들던가요!”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치졸한 마음이 들킨 것 같아서 아리아는 역을 화를 내기 시작했다.

“계속 저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언제 저렇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칠 거 같은 거 알아요!?”

온갖 기력을 짜내 소리를 지른다.

그러지 않으면, 제 치졸한 마음을 금세 지적당할 것 같아서.

마족에게 그런 부끄러움을 지적당하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차라리 신성력을 잃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될 정도라고요!”

그래, 차라리 신성력을 잃는 게 나을 것 같아. 신의 말씀을 따르려고 한 게 아니다.

신의 말씀을 핑계 삼아, 이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제 치부를 드러낸, 고백과도 같은 말에 남자 마족은 아리아에게 손을 뻗더니.

“내가 저렇게 안 되게 할 거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만지지 마요!”

마족이 제 머리를 만졌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아, 그 추악한 손을 쳐냈다.

“아.”

아리아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신음을 내뱉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화를 냈으니 현기증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몸이 휘청거려, 본능적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마족의 상의를 잡고 간신히 버텼다.

그 바람에 남자 마족의 몸을 꽁꽁 싸맸던 상의가 조금 벗겨지고 말았고.

그것을 본 순간.

“어, 어라?”

아리아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당신, 이 상처는 뭐예요?”

남자 마족의 몸은 할퀸 상처와 멍 자국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걸 숨기려고 이렇게 옷을 두껍게 입은 거였어?

“쯧.”

남자 마족은 혀를 차더니, 옷을 여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몰라도 돼. 가볼게. 이거 먹어. 슬슬 안 먹으면 위험해.”

“잠깐만요, 대답해요!”

왜 저런 상처가 난 것일까.

그는 끝끝내 대답하지 않고, 빵과 물을 놔둔 채 자리에서 벗어났다.

“오늘은 질문도 안 하고 가버렸네요.”

매일같이 이름을 묻던 것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던 거겠지.

“바보같은 마족.”

사실 아리아는 마족의 몸에 왜 상처가 난지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다.

‘저 마족은 일부러 저를 고문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그의 상관 마족이 그를 폭행한 거다.

그 사실을 아리아에게 감추기 위해서 옷을 두껍게 입은 거였고.

어째서 그의 옷이 매일 두꺼워질까, 진즉에 생각해봤어야 했다.

“꿀꺽.”

그날 처음으로, 아리아는 남자 마족이 남기고 간 빵과 물을 먹었다.

사흘 만에 섭취한 음식물은 너무나도 달아서, 아리아는 다시 한 번 신께 자신이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 날 밤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여성의 비명도 들리지 않게 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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