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18. 어서오세요 모험가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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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그래.
왜 신전은 그렇게 이를 악물고 던전을 토벌하려고 하는 걸까.
던전을 토벌하기 위해 선택받은 자를 찾고, 그를 훈련한다.
모험가들에게 던전을 토벌했을 시 명예와 부를 안겨준다고 공표한다.
물론 던전에서 인명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무리를 하고는 하니까.
그러나 그건 고대 제국의 유적도 마찬가지잖아.
다이나토스들이 만들었던 제국의 유적은 던전보다 훨씬 위험하다.
그런 곳을 탐험하다가 죽는 모험가들도 수두룩한데, 왜 굳이 던전만 그리 노리는 걸까.
더욱이 인명 피해가 생기는 건 신전의 몫도 있다.
사람 중에는 던전을 토벌했을 시에 얻을 수 있는 명예를 위해 마족을 상대하려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천족과 마족은 서로 사이가 나쁘기에 던전을 토벌하려고 들기엔 조금 이상하지 않나, 싶어.
“그것도 아닌가.”
생각해보면 내가 현대에 살았던 인간이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중세를 생각해보자. 종교 때문에 십자군 전쟁이 수차례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런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마족을 처리하기 위해 던전을 토벌하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크게 이상하지도 않구나.
“무슨 소리야?”
레베카의 물음에 나는 얌전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자문자답이 끝났는데 구태여 그녀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시시하기는. 와, 벌써 욕망이 천이 넘어갔어.”
내게 고개를 돌린 레베카가 욕망의 관을 보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조디악이 몇 달 동안 모았던 욕망이 만이천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고무적이다.
보상을 빵빵하게 챙겨주니 욕망이 쌓이는 속도가 확실히 다르네.
“주인님 오빠. 들어가도 될까요?”
이 목소리는 자이로니아인가? 볼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관리실에 들어오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어떻게 할까요. 제가 나갈까요?”
관리실에 들어올 수 있는 건 던전 마스터와 부관 뿐이다.
그 외에 다른 이가 들어오려면 레베카의 허락이 필요하다.
허락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내가 나가는 게 맞고.
“들어오라고 해. 어차피 너한테 복종하고 있으니까 여기서 뭘 하는 걸 봐도 딱히 상관없잖아.”
생각보다 쉽게 허락해주네?
그러다가 자이로니아가 정신 놓은 척 욕망의 관을 부수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 건지.
뭐 내가 그렇게 하게 놔둘 리가 없기는 하다만.
“그리고.”
뭐야, 다른 이유가 또 있어?
“네가 다른 여자랑 단둘이 이야기하게 내버려두기 싫어.”
아, 거참 대단한 이유네.
잠깐만, 사실 나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 아닌가?
벨라트릭스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루이나랑은 단둘이 이야기한 적이 꽤 있었는데.
이거 들키는 순간 죽는 거 아냐야?
일단 진정하고 소수를 세자.
평온하게 모르는 척 하면 레베카도 모를 거다.
“그러시다면야.”
자이로니아에게 들어오라고 말하면서 평정을 가장한다.
딱히 찔리는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레베카의 집착은 심상치 않으니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을 명심해두자.
괜히 싸우고 싶지는 않아.
“무슨 일이야.”
자이로니아가 들어오자마자 용건을 묻는다.
“며칠 전에 저한테 부탁하신 게 있잖아요.”
그러자 관리실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던 자이로니아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아.”
마법사와 다르게 무인은 마나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무인이 사용할 검과 갑옷에 마나를 늘려주는 효과를 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나를 늘려주는 갑옷과 검은 상당히 희귀하다.
어느 정도로 희귀하냐고?
고룡의 둥지에 있던 장비가 통째로 들어있는 내 아공간에도 그런 장비가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
그래서 며칠 전, 자이로니아에게 루이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후 사용할 장비가 있는지 물었다.
그랬는데.
슬쩍 고개를 돌려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욕망의 관과 모험가를 바라보며 마냥 좋아하고 있다.
저 표정이 자이로니아의 입에서 루이나가 언급되는 순간, 악귀처럼 일그러질 수 있음을 안다.
말 잘해야 한다, 자이로니아.
니 입에 내 목숨이 달렸어!
“아공간을 뒤져봤는데, 딱히 말씀하신 물건은 없는 것 같아서요. 제 둥지에 한 번 다녀오면 안 될까요?”
세이프.
자이로니아는 내 간절함을 알아차렸는지 훌륭하게도 루이나에 관한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장하다, 자이로니아.
널 받아준 게 후회가 되지 않을 정도야.
“다녀와.”
루이나를 육성할 장비를 얻을 수 있다면야 얼마든지 다녀와도 좋다.
물론 내가 직접 구하러 가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하드코어 게이머인 내가 어디에 무슨 아이템이 있는지 모를까.
하지만 내가 위치를 아는 아이템들은 모두 주인공이 획득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금방 다녀올게요.”
그래 다녀와.
“무슨 부탁을 했는데?”
갑작스럽게 레베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쪽에 관심이 없었던 거 아니었어?
“아, 사모님.”
뭔데, 그 호칭은.
레베카 넌 왜 사모님이라고 불리니까 좋아하는 거야.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제발 자이로이나.
아까처럼 똑똑하게 루이나는 언급하지 말고 말해…….
“주인님 오빠가 루이나라는 분께 드릴…….”
줄 리가 있나.
결국, 자이로니아의 입에서 루이나의 이름이 언급되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 괜찮지 않을까?
루이나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레베카는 모르니까.
“루이나? 혹시 여자야?”
아. 어쩜 그렇게 내가 안 해줬으면 하는 말을 내뱉는지 모르겠다.
“네 그렇게 들었어요.”
레베카의 시선이 싸늘해짐을 보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세이프가 아니라 아웃이라는 것을.
“상세하게 들어보고 싶은 이야기네?”
입꼬리는 올라갔으나, 눈은 싸늘하게 식은 것이 실로 이질적이다.
그 언밸런스함에서 공포까지 느껴질 정도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메르넬라고 레베카고 나를 향한 집착은 도를 넘었다.
일단 침착하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랑 루이나가 무슨 수상한 짓을 한 것도 아니잖아.
이 몸은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인간 중에 육성해보고 싶은 무인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장비가 필요해서 자이로니아에게 부탁했습니다.”
순수하게 무인으로서 관심이 있다는 쪽으로 들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일부러 루이나를 인간 여자가 아닌, 무인이라고 표현했다.
“왜 하필 여잔데?”
어림도 없지, 암 어림도 없고말고.
아무래도 레베카에겐 루이나가 여자인 게 중요한 모양이다.
“딴생각 있는 거 아니야?”
“전혀요.”
내가 무슨 딴생각이 있겠어.
그냥…….
처음에는 주인공에게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루이나가 가겠다고 해도 내가 못가게 할 거다.
게임 속에서 그녀가 몇 번이고 죽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허망하게 죽는 것을 봐야 한다고?
싫다.
그렇게 또, 허망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 먹고 루이나를 육성하려고 하는 중이다.
“그럼 내가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두겠네?”
“어….”
루이나를 안 죽을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주는 게 내 목적인데요?
“왜 바로 말을 못해?”
아니, 그러니까요.
“그 여자가 나보다 더 중요한 건 아니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루이나와 레베카 중 누가 더 중요하다고 묻는다면 당연히 레베카다.
“그런데 왜 바로 대답을 안 해?”
하지만 그래도 그, 뭣이냐.
루이나가 죽는 모습을 현실에서도 보고 싶지도 않고.
또 게이머로서 육성할 수 없었던 루이나를 육성해볼 기회이기도 하고.
어……. 그러니까.
“아르켈? 왜 대답을 못 할까? 응?”
“그건 조금…….”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레베카님?
“사실 그 여자한테 딴마음이 있는 거지? 응? 그래서 곤란한 거지?”
“맹세코 딴 마음은 없습니다.”
레베카와 메르넬라 두 여자만으로 충분한데, 내가 무슨 딴마음을 먹겠는가.
이건 진심이었다.
“믿어주세요.”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서 믿어달라고 말하면 믿어줄 수밖에 없잖아.”
다행히 진심이 통했나 보다.
후우, 한 건 해결인가?
“그러면 나중에 그 인간 여자 얼굴 한 번 보여줘.”
응 아니야.
레베카의 집착을 너무 쉽게 봤다.
“그게 좀 곤란한데요.”
레베카가 루이나와 마주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니 둘은 아예 안 만나는 편이 맞아.
솔직히 레베카가 무슨 짓을 할지 장담을 못 하겠어.
“뭐가 곤란한데.”
그러니까 어…….
“일단 그 여자는 도시에 있는데…….”
마족인 레베카가 도시에 들어가려고 하면 분명 난리가 날 거다.
“변장하면 되잖아. 나도 변장 마법은 사용할 수 있어. 못해도 뭐 어때. 아르켈이 걸어주면 되잖아.”
“외부인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백작 저택에 있는데……”
“아르켈은 들어갈 수 있겠지? 그럼 날 ‘애인’이라고 소개하고 같이 들어가면 되잖아.”
그건 뭐 어렵지 않지.
내 애인이라고 소개하면 분명 바르크 백작은 저택에 들어오는 걸 허락해줄 거다.
젠장.
“거기 인간들이 레베카님께 무례하게 굴 수도 있는데요….”
루이나를 상대로 음담패설을 했던 놈들이다. 레베카를 상대로는 얼마나 짙은 음담패설을 할 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세 명의 혀를 잘라놔야 하나?
아니다. 그 머리로 레베카의 몸을 상상하는 것도 역겨워.
그럼 역시 죽이는 게 맞나?
“그 정도는 감수할게.”
레베카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와, 나 진짜 내로남불이었네.
나는 다른 남자가 레베카의 몸을 상상하는 것만 생각해도 죽이려고 하는 주제에.
레베카한테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고 있다니.
게다가 생각해보면 레베카가 사람의 영토에서 대놓고 루이나를 죽이려고 들 리가 없지.
“그러시다면. 나중에 같이 가죠.”
“약속한 거야?”
“예. 그런데 저희 둘 다 던전을 비워도 될까요?”
이건 변명이 아니라 진심으로 염려가 돼서 하는 소리였다.
“자이로니아랑 나디아한테 맡기면 되지.”
음, 그건 나디아가 아주 싫어할 텐데.
나디아는 자이로니아와 단둘이 남겨지는 걸 굉장히 꺼렸다.
하긴 나디아의 실력으로는 그냥 드래곤이 옆에 있어도 졸도를 할 정도인데.
그냥 용도 아니고 가장 오래 산 용이랑 둘만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싶어.
“그러죠, 뭐.”
하지만 레베카가 그러자고 하면 내가 뭐 어쩌겠어.
나디아가 싫다고 하는 건 싫은 것뿐이다.
상사가 하라면 까야지.
“죄송해요, 주인님 오빠……. 제가 괜한 말을 해서.”
“괜찮아.”
어차피 언젠간 들킬 일이기도 했고, 생각보다 레베카가 온순하게 넘어가 준 편이라서 마음도 가볍다.
차라리 이렇게 빨리 들켜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만약 이보다 나중에 들켰으면 레베카가 진심으로 루이나를 죽이려고 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넌 빨리 가서 내가 부탁한 것들이나 가져와.”
“네.”
자이로니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어라?”
관리실 안에서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관리실 밖에서 안으로도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고.
“여기서 나가서 순간이동 마법을 써.”
나도 관리실 안에선 순간이동 마법을 못 쓰는데, 니가 가능하겠냐.
분명 바르바라가 뭔 짓을 한 거겠지.
내가 바르바라보다 약한 게 아니라, 마법으로는 결코 뚫을 수 없는 마법보다 상위의 힘이 제약을 두고 있는 거라 그렇다.
아무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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