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46화 (46/99)

〈 46화 〉 17. 소문

* * *

* * *

모험가.

작게는 주민들의 의뢰를 들어주는 이들.

크게는 미개척지를 탐험하거나, 고대 제국의 흔적을 살피거나, 유적을 발굴하거나, 나아가 괴물을 토벌하는 존재.

좋게 말하면 이렇고, 나쁘게 말하면 방랑자에 불과하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며 그 실력은 F~S급까지 다양하게 나뉜다.

그런 모험가들에게 있어 최근 가장 뜨거운 화젯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각지에 출몰한 던전이었다.

던전의 괴물을 잡으면 돈이 떨어진다.

던전에 있는 상자에는 눈이 뒤집힐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던전은 일확천금의 기회를 제공한다.

더군다나 던전을 완전히 정복하면 신전에서 굉장한 보수를 준다고까지 한다.

이런 상황이기에 모험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던전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비명 숲 근처에 던전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브래드는 술잔을 홀짝이면서도 제 귓가에 들려온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냥 소문 아니야?”

“아, 그거 나도 들었어. 심지어 호케트 상회에서 들었다고. 확실한 정보인 것 같던데?”

적어도 아라엘 왕국 내에서 호케트 상회가 제공한 정보라면 확실히 믿을 수 있다.

“그래도 비명 숲은 너무 멀지 않아?”

“근처에 마을이 생겼다고 하더라고.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 있는 던전도 공략 못 했는데 다른 던전으로 갈 필요는 없지 않나?”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브래드는 술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비명 숲이라 이거지?”

그는 이제 막 시골에서 올라와 돈을 벌기 위해서 모험가가 됐다.

랭크는 당연히 F.

“이건 기회야.”

이 근처 던전에 들어가려고 해도 랭크가 낮아서 파티에 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던전이 무슨 일확천금의 기회를 주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개척조차 되지 않은 던전이라면?

그곳에 먼저 자리를 잡을 수만 있다면, 일확천금도 꿈은 아니니라.

그곳에서 번 돈으로 수많은 여자를 끼고 살 생각에 브래드의 입이 벌어졌다.

“기다려라 비명숲!”

아라엘 왕국에 비명 숲의 이름 없는 던전의 존재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 * *

벨라트릭스와 만난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소문이 점점 퍼지고 있고 모험가들이 하나 둘, 바르크 백작 영지에 모이고 있는 것이 감개무량하다.

왜 마을에 바로 오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교통 편이 문제라서 그렇다.

골렘을 사용해서 도로 공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언제쯤 끝날까.

그리고 지금 나는.

바르크 백작과의 약속대로, 그의 부하들을 지도해주고 있었다.

“허리가 비었어.”

“큭!”

덩치도 크면서 엄살은.

목검으로 살짝 때렸을 뿐이잖아.

“이걸로 세 번째 속았어, 더글라스. 내 검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페이크에 속는 거야.”

단순 페이크에 너무 크게 반응하잖아.

놀리는 맛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 하지.

더글라스는 여기 있는 기사 중 단장을 제외하면 가장 실력은 괜찮다.

아, 한 명 더 있긴 하구나.

아무튼 더글라스는 기본기도 충실하고 힘도 있어.

그리고 성실하고 묵묵히 수련해나갈 수 있는 인내력까지 갖췄다.

발전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라면.

“계속 말하지만, 넌 너무 굳어 있어.”

너무 성실한 나머지 페이크에 쉽게 속는다는 거다.

그 때문에 더글라스는 다른 기사들과의 대련에서도 종종 수모를 당하는 것 같다. 실력도 중간급으로 평가받는 것 같고.

내가 보기엔 단장을 제외하면 더글라스가 그나마 제일 나은데 말이야.

“긴장은 좋지만, 적당히 풀 필요도 있는 법이야.“

물론 너무 긴장을 풀어도 안 되겠지만.

결국, 평상심이 중요하다는 거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가르침이랄 게 있나.”

실력 차이가 너무 심하니까, 이걸 가르침이라고 봐야할 지 모르겠네.

나로서는 놀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어느 정도냐면, 상대는 진검을 들고 있지만, 나는 목검이다.

처음 내가 목검을 들자, 단장이 자존심이 상해서 내게 달려들었다.

결과는 참패.

다들 내가 목검을 들어도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놀랄 게 있나?

“자, 다음.”

“잘 부탁드릴게요.”

다음이 루이나 차례였구나.

루이나는 여기 모인 사람 중 단장과 함께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

뭐, 내가 진검을 쓸 정도는 아니지만.

“와봐.”

내가 목검을 까닥이며 도발했으나 루이나는 발끈하지 않았다.

저번과는 다르게 나와의 실력 차이를 알고 겸손하게 가르침을 받겠다는 태도다.

저것이 더글라스에게는 부족한 평정심이라는 거다.

무릇, 무인에게는 저런 평정심이 필요하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가겠습니다.”

루이나와 검을 마주한다.

목검인데도 진검과 부딪칠 수 있는 건 내가 검의 옆면을 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옆면을 때려서 검의 궤도를 튼다.

동 실력이라면 이런 짓거리가 불가능하겠지만, 이 정도 실력 차이가 나면 이런 짓도 가능하다.

“루이나 공도 대단한데 말이야.”

루이나와 검을 나누고 있자, 주변 기사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단장님하고도 막상막하잖아.”

루이나와 단장이 막상막하라.

음, 내가 보기엔 루이나가 조금 더 강한 것 같은데.

게임 썩은 물인 내가 보기에 현재 루이나의 레벨은 대략 72 정도가 아닐까 싶다.

오차가 1~2 정도 있을 수는 있지만, 아마 정확할 거다.

여기 단장 레벨은 대략 68 정도. 절대로 막상막하일 수가 없다.

60레벨대와 70레벨대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으니까.

그런데도 막상막하였다는 건.

기사단장의 체면을 위해서 봐주고 있는 건가?

“빈틈!”

오 조금 위험했다. 하마터면 루이나의 검이 내 옷깃을 스칠 뻔했잖아.

조금 집중할 필요가 있…….

“저 몸매 봐라. 크오, 어떻게 꼬셔볼 수 없을까?”

아니 이 미친 놈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다냐.

루이나의 귀에는 들리지 않겠지만, 내 귀에는 똑똑히 음심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몸매가 좋은 건 맞지만, 가슴이 작지 않아?”

루이나의 가슴 정도면 충분히 평균에 속한다.

이걸 작다고 말하려면 레베카나 메르넬라 정도는 데려와야 할 정도다.

“멍청아. 가슴 말고 골반을 보라고. 펑퍼짐한 게 얼마나 애를 잘 낳을지.”

“저렇게 쫙 달라붙는 옷이나 입고. 사실 꼬셔주길 바라고 있는 거 아닐까?”

아니 기사라는 것들이 저런 음담패설을 해도 되는 거 맞아?

내가 너무 쉽게, 쉽게 해주니까 루이나를 보고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

너흰 조금 이따가 보자.

내 조교 2년 생활의 경험을 총동원해주마.

“억!?”

나보다 더 빨리, 음담패설 중인 기사들을 응징하는 이가 있었다.

잠시 고개를 돌려보니 기사단장이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나이스 샷.

몸이 아예 날아갈 정도로 걷어차 버렸으면 좋았겠지만, 그 정도도 충분히 나이스샷이야, 단장.

“그딴 소리 할 시간에 움직임이나 잘 봐둬라.”

옳은 말이다.

루이나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인간은 드물다.

물론 마스터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제외했을 때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 정도로 강한 그녀가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기사라면 이런 걸 잘 봐두란 말이야.

더글라스를 봐라, 이쪽을 유심히 잘 바라보고 있잖아.

“후우.”

루이나가 거리를 벌리고는 눈을 감았다.

순수한 검술 대결은 거기서 끝인가?

아쉽네.

루이나의 유려한 검술을 보는 재미가 있는데.

저것들 때문에 루이나의 검술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서 아쉽다.

좋아, 루이나의 교육이 끝나면 기합을 주도록 하자.

“후우우.”

루이나의 마나가 요동친다.

지금 루이나는 마나로 육체를 강화하는 중이다.

저 강화가 바로 60레벨과 70레벨의 차이지.

70레벨 이상인 무인 캐릭터들은 모두 마나로 육체를 강화할 수 있다.

그 효과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육체 관련한 스텟이 전부 두 배로 뛴다고 보면 된다.

“갑니다.”

루이나가 눈을 뜬 순간,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사이 내 뒤에 이동한 루이나의 검을 가볍게 피한다.

강화를 하면 이 정도구나.

나쁘지는 않다.

“어?”

“무, 뭐야!”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에 이쪽을 바라보던 기사들이 모두 놀라 입을 벌렸다.

“대련 때마다 봐주고 있었나 보군…….”

진실을 깨달은 기사단장이 조금 화가 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조금 전까지는 나도 기사단장과 같은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마나가 너무 적어.”

한순간이었으나 루이나의 검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보았다.

그러나 올곧게도 나를 노리며 베어 들어오는 검을 쳐내면서 루이나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래.

게임에서도 루이나가 강화를 사용한 모습을 보는 건, 파스칼과 싸울 때뿐이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다.

“곧 방전되지?”

“……후우.”

루이나는 선천적으로 체내에 보유한 마나가 너무 적다.

그래서 강화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어.

저 기이한 호흡도, 필사적으로 마나를 끌어모으기 위한 호흡일 것이다.

말도 제대로 할 여유가 없다. 조금 전 내가 말했던 평정심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화 완료까지 시간이 너무 걸려.”

루이나의 검격이 행해지는 그 찰나의 순간 동안 강화를 끝내고 그녀의 옆으로 이동해 목검으로 손목을 살짝 때렸다.

그러자 목검이 강한 충격 때문에 루이나는 검이 자연스럽게 놓치고 말았다.

“강화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거야.”

이렇게 순식간에 강화를 끝낼 수 있는 녀석은 별로 없기는 하다.

그래도 루이나의 강화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마 마나가 별로 없어서 강화를 별로 사용하지 않기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대련은 여기서 끝이야. 왜인지는 알고 있지?”

루이나는 현재 마나가 바닥나기 직전이다.

이대로 마나를 전부 사용하면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일부러 검을 놓치게 만들어서 대련을 끝낸 거다.

“수고하셨습니다…….”

루이나도 그 사실을 알기에 깔끔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웠다.

이건 좀 총체적 난국이네.

일정 레벨 이상에 도달한 무인에게 있어 강화는 당연한 권리였다.

하지만 루이나는 강화를 사용하면 오히려 약해진다.

1분 정도는 강해질지는 몰라도, 겨우 그것뿐이다.

1분이 지나면 급격히 떨어지는 마나 때문에 평정심도 잃고, 마나를 전부 사용하면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분명 강화는 무인에게 있어 축복과도 같은 힘이지만, 루이나에게 강화는 고작 해봐야 단기 결전용 스킬에 불과하다.

기사단장을 상대로 강화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니라 사용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다.

1분 안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지는 건 자신이니까.

“흐음.”

지금부터 루이나를 육성하려면 우선 마나를 늘릴 수 있는 장비를 구해주는 게 맞다.

그리고 천천히 강화에 익숙해지게 하는 거지.

물론 장비에만 의존하게 만들면 안 된다.

무인이 낄 장비 세팅은 따로 있으니까, 나중에 마나를 늘려줄 수 있는 영약 같은 걸 구해줘야겠지.

일단 파스칼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키워줄 생각이라 진지하게 루이나의 육성에 대해서 고민하던 중.

“수고하셨습니다, 아르켈님.”

아, 오늘은 더 내 교육을 받을 기사는 없는 모양이다.

“단장.”

“예.”

중년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구석으로 가서 숨을 몰아쉬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루이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왠지 분함이 느껴졌다.

아직도 루이나가 봐주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루이나는 단장을 상대할 때 전력을 다했어.”

혹여나 단장과 루이나 사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미리 말해주는 게 낫지.

“하지만.”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아.”

그렇다면 어째서 강화를 사용할 수 있으면서 왜 사용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은 거지?

다 안다.

“루이나의 강화는 불안정해. 완료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속 시간도 1분 남짓. 불안정한 강화는 안 쓰니만 못해.”

“……그렇습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측은하다는 듯이 루이나를 바라본다.

내 말에 루이나가 선천적으로 마나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다.

“아, 그리고 저기 저놈들 따로 불러줘. 기합 줄 생각이니까.”

“다 들으셨군요?”

이놈의 몸이 귀가 하도 좋아서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이야.

“아르켈님의 귀한 시간을 뺏을 수는 없죠. 대신 제가 훈련장 백 바퀴를 돌 때까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백 바퀴나?

여기 훈련장은 축구장만 한데 여길 백 바퀴를 돌게 하겠다고?

그건 내가 주려고 한 기합보다 훨씬 심한데…….

에이, 말로만 백 바퀴 돌게 하고 실제로는 중간에 그만 시키겠지.

“부족하십니까? 그럼 이백 바퀴……”

“그 정도면 충분해.”

진심이었구나.

진심으로 백 바퀴를 돌게 하려고 했어, 이 인간.

심지어 방금 말한 이백 바퀴도 진심이었다.

왠지 음담패설 삼인방이 조금 측은하게 느껴졌다.

아니지.

루이나를 가지고 음담패설을 한 놈이니 측은함을 느낄 필요는 없지. 암암.

“아참. 아르켈님.”

음담패설 삼인방에게 가던 단장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나를 불렀다.

“응? 왜?”

“신전에서 선택받은 이를 찾았다고 합니다.”

드디어 주인공이 등장했나.

“무인이라면 관심이 있을 만한 소문인지라 말해봤습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단장이 무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잠깐 생각 좀 하느라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던 거야. 알려줘서 고마워.”

그래, 드디어 등장했다 이거지.

나중에 한 번 얼굴이나 보러 가봐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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