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14. 히든보스님 던전 운영하신다(3)
* * *
“예. 드워프 분들의 장인 정신은 대단하니까요. 저희에게 건물을 빠르고 튼튼하게 짓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건 좀 신박한 발언이다.
원래 드워프는 제 지식을 다른 종족은커녕 같은 드워프끼리도 나누지 않는 것으로 알다.
그런 드워프가 제 지식을 공유하는 걸 서슴지 않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게 다 소락의 명령 덕분이겠지, 싶어. 다시 한 번 소락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덕분에 일이 더더욱 수월하게 풀렸기에 더더욱 그래.
이러면 오늘 당장에라도 생각한 걸 시작할 수 있겠는걸?
“이불이나 가구 같은 거 필요하지 않아?”
“이불은 일단 원래 사용하던 것들이 있고, 가구는 차차 만들기로 했습니다.”
“불편할 거 같은데.”
직접 눈으로 보았기에 이곳 사람들의 텐트 생활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 더럽고 해진 이불을 계속 쓰겠다니 말리고 싶다.
“사다 줄게.”
“아니요, 아니요.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말에 소락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다들 편히 누울 수 있는 집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런가.
나는 침대랑 이불이 없으면 잘 수 없는 지구 사람이라서 공감이 안 간다.
그냥 내가 사다 주면 좋을 텐데도 한사코 거절하니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네.
“너희는 짐은 가지고 왔어?”
“일단 필요한 것만 가져왔습니다.”
“나머지는 어쩌고.”
“백작님께서 나중에 마차로 저희 짐을 보내주기로 하셨습니다.”
“하아…….”
백작 이 인간은 미쳐버린 것인가? 내가 분명 마을을 만들고 있다고 했지, 마을이 완공됐다고 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그냥 사람만 훌쩍 보내버리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뇌에 우동사리가 든 게 분명하다.
“점심 전까지는 이불하고 침대 사다 줄게. 옷이랑 생필품도 사와야겠구나. 기다리기 힘들면 우선 쪽잠이라도 자도 괜찮아.”
“저희는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내가. 내 군대 생활이 떠올라서 안 괜찮다고!
거기다가 너. 니가 대장 같은데 제발 부탁이니 뒤를 봐라. 니 말에 니 부하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어두워지고 있는 걸 보라고.
넌 진심으로 괜찮을지 몰라도 니 부하들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잖아.
“사양하지 말고 내 말 들어.”
“알겠습니다!”
그제야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를 제외한 경비병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게 감사하다는 시선은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
솔직히 내가 미안해.
너희가 오늘 이 개고생을 하게 된 원인이 바로 나야.
“그럼 점심 때까지 쉬고 있어.”
생각해보니까 내가 점심까지 도시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어도 그 누구도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
에디야 나를 대마법사라고 알고 있으니 그러려니 하는 것 같지만, 경비병들은 왜지?
“백작이 내가 어느 정도 경지인지 말했나보네?”
“그렇습니다!”
과연. 뭐 딱히 숨길 일도 아니었으니 그러려니 한다.
하긴 나를 반로환동까지 한 마스터로 알고 있을 테니, 그런 내가 점심까지 도시에 다녀오겠다는데 믿을 수밖에 없겠지.
“아 맞다.”
정신이 없어서 가장 중요한 말을 안 했었네.
“서로 소개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쪽이 마을 촌장인 에디야. 나는 이 마을을 지원하는 거지, 직접적인 간섭은 거의 하지 않으니까 너희가 할 일은 에디랑 이야기 나누도록 해.”
나는 그저 큰 그림을 그릴 뿐이고, 마을의 세세한 운영은 에디의 손에서 이뤄질 게 할 생각이었다.
왜 직접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귀찮아서 그렇다. 던전 운영만으로도 바쁠 것 같단 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보고할 게 있습니다, 아르켈님.”
“뭔데?”
“바르크 백작님께서 마을 이름을 ‘아르케’라고 명명하셨습니다.”
“에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아르케면……. 내 이름에서 따온 거지?”
“맞습니다!”
이건 무슨 헛짓거리야. 아르케 마을이라니. 낯부끄럽기 짝이 없다.
생각해봐라. 다른 사람들 혹은 엘프 같은 다른 종족에게 내 소개를 할 때 아르케 마을의 아르켈이라고 소개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잖아.
와, 나 지금 그 생각만으로 소름 돋았어.
촌장은 에디인데 왜 내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지어.
“아니, 그건 좀…….”
“저를 포함해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찬성했습니다.”
내가 난색을 보이자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에디가 갑자기 백작의 뜻을 지지했다. 에디 설마 나한테 억하심정이 있어?
내가 자식들도 구해주지 않았는가,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아르켈님이 세우신 마을입니다. 이름 정도는 따오게끔 해주십시오.”
그 표정이 제법 강경하기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하아…….”
에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확고한 것 같아서, 그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게 좋으면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아르케 마을의 아르켈이라니…….
좋아, 나중에 백작을 찾아가서 존나게 갈구자. 그걸로 이 스트레스를 푸는 거야.
“그럼 가서 쉬어.”
“알겠습니다!”
경비병들을 보내고 에디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경비병들이 착각하고 있는 내 힘과 에디가 착각하고 있는 내 힘이 전혀 다르다.
이 부분에 오해가 생기면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미리 주의를 시켜야겠다.
“에디, 백작 쪽 사람들은 내가 마스터 경지에 도달한 무인인 줄 알아. 그러니까 말 맞춰줘.”
“알겠습니다.”
나를 대마법사라고 착각하는 건 에디의 식구들뿐이다. 그러니 에디한테 말해놓으면 알아서 잘하리라 믿었다.
“그러면.”
주의도 시켰으니, 지금부터는 일과 관련된 질문을 할 시간이다.
“에디 다른 건 몰라도 여관 쪽 가구는 사다 놔야겠어.”
내 계획대로라면 언제라도 모험가가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언제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가구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애초에 마을 사람들이 만드는 가구로는 모험가들이 만족하지 않을 거다.
던전을 탐색하는 모험가들이 당연히 편안한 잠자리를 원하는 건 당연하니까.
“그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부분은 에디도 깨끗하게 인정하고 내게 부탁했다.
“여관을 관리하고 운영할 사람들은 정해졌어?”
“예. 회계는 가장 똑똑한 벨씨가 도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관리는 마을 사람들끼리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오 벌써 제법 세세하게 정했네. 그런데 마을 사람들끼리 돌아가면서 여관을 관리하면 수입은 어떻게 하려는 걸까?
“여관 수입은?”
“당장은 마을 공동 재산으로 사용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여관을 세우는 것까지는 막지 않기로 했으니 당장은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좋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아르케 마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개쪽팔린다.
아르케 마을이 아니라, 그냥 마을이라고 생각하자.
아무튼, 이 마을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룩할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생각이다.
마을이 발전할수록 던전 규모도 커지기 마련이니까.
“당장은 필요 없겠지만, 시장도 준비해야 돼. 그리고 좀 미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홍등가도 필요하고.”
모험가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래서 보통 성욕으로 죽음의 공포를 풀려고 하는 녀석들이 많았다.
남자 모험가는 특히 그렇고, 여자 모험가도 그런 부류가 꽤 있었다.
그러니 홍등가, 쉽게 말해 집창촌도 수요가 폭발할 거다.
“네. 창남 창녀가 되는 것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물색 중입니다.”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시키지는 말라고 한 말 꼭 명심해.”
이건 진심이었다. 싫은데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원래 홍등가 쪽은 노예로 채우려고 했었으니까.”
지금 한 말대로 처음에는 집창촌 쪽에서 일할 사람은 노예로 채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에디가 혹시 모르니 물어보겠다고 나서서 일단 허락한 상황이다.
진짜 창기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계속 욕봐. 나는 드워프 쪽하고 이야기하러 갈게.”
에디의 등을 두드려 준 후 등을 돌린다. 에디와 처음 만났을 때는 그냥 조그마한 마을을 만들려고 했을 뿐인데 말이지.
소락과 이야기를 하면서 조그마한 마을이 아닌, 최종적으로는 거대한 상업 도시를 만들 구상을 해버리고 말았다.
에디에게 내 생각을 말하자, 그 역시 내 말에 찬동했고 지금 이것이 그 결과다.
시장, 집창촌, 여관, 그리고 마을 거주지가 구역별로 나뉘어 있는 마을.
그렇기에 언제든 나무벽을 허물고 쉽사리 구역을 확장해나갈 수 있는 마을.
그것이 지금 내가 구상하고, 만들고 있는 마을이다.
“거기! 나무 똑바로 세워! 제대로 세워야 오래 간다고! 당장 힘들다고 요령 부리지 말고, 천 년을 보란 말이야!”
거 참 성질머리하고는. 건설 현장을 지휘하며 땍땍거리는 드워프들을 보자 쓴웃음이 나왔다.
맥주를 사다 달라고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장인의 모습이다.
“오, 아르켈님.”
“자, 여기 부탁했던 맥주.”
부탁받은 대로 사 왔던 맥주를 아공간에서 꺼내자 꼬장꼬장하던 드워프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오오오오!!”
“감사합니다!”
“지금은 마시면 안 돼.”
“저희도 일할 때와 쉴 때는 구분을 합니다.”
“원래 노동이 끝난 후에 한 잔이 꿀맛인 법입니다.”
그러면 됐고. 내게 맥주를 받아든 드워프는 급히 어딘가로 향했다.
다른 드워프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맥주를 보관할 장소로 가는 것 같다.
“이게 여관 건물이야?”
“주문한 대로 지금 사정으로는 최대한 크게 만들었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굉장히.”
아주 마음에 든다.
당장은 집창촌 구역도, 시장 거리도 완성되지 않았으니 최대한 여관을 크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마을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이 여관이 시장과 집창촌을 겸할 거다.
“확장 공사는 할 수 있게끔 해놨지?”
“당연하지요. 이쪽에 공간을 쓰면 됩니다.”
심지어 혹시나 여관이 미어터질 때를 대비해서 언제든 확장 공사를 할 수 있게끔 여유를 두라고 했는데, 드워프답게 일 처리를 깔끔하게 해줬어.
“그래도 아르켈님의 계획대로 된다면 아예 새로운 여관 건물을 올리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건 당연히 그래야지.”
지금 여관 건물은 결국 임시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외부 사람이 여관을 세운다고 해서 딱히 막을 생각도 없었다.
사실 외부 사람이 여관을 만들어주면 일자리 창출을 해주는 셈이니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지.
“너희가 쓸 대장간은?”
“아직 미완성이긴 하지만, 저쪽에 대장간 거리의 토대를 만들어봤습니다.”
“아주 좋아.”
내가 구상한 마을의 구역 중에는 당연히 드워프들을 위한 대장간 거리도 존재한다. 그 구역이라는 것들이 아직 토대 밖에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완성되면 꽤 볼만한 마을이 될 거야.
“미안한 소리지만, 여기서 대장간을 운영할 드워프는 자기가 만든 물건에 애착이 크게 없어야 돼. 당장은 자존심 세우면서 물건 안 팔면 안 되니까. 알지?”
드워프는 격이 맞지 않는 손님에게는 제 물건을 팔지 않기로 유명한 종족이다.
종족적인 자부심이 있음은 이해한다.
그래도 적어도 여기서는 그 자부심을 버려야 한다.
물론 나중에는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런 고집이 브랜드를 만드는 법이니까.
하지만 당장은 그러면 안 돼.
먼 미래에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어중이떠중이 모험가들만 찾아올 테니까.
“예. 그렇지 않아도 전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저희 왕국의 사정이 어려운 것을 알기에 기꺼이 인간들과 거래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됐어.”
소락이 진짜 큰 도움을 주는구나. 물론 서로 상부상조하는 사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고마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자를 가져다줄 때 선물로 술이라도 사서 가야겠어.
“그런데 아르켈님.”
“응? 왜?”
“모험가들은 장비도 필요하지만, 포션이나 해독제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쪽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호오.”
장인 정신 말고는 무식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을 지적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좋은 지적이야.”
진심으로 좋은 지적이다.
“안 그래도 그걸 지금부터 해결하러 갈 생각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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