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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39화 (39/99)

〈 39화 〉 13. 지상으로

* * *

양쪽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감촉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나 언제 잠들었지? 잠든 시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기 전에는 뭘 하고 있었더라?“

어렴풋이 잠들기 직전 상황이 떠오른 순간,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

동정을 땠다.

그래 뭐, 지구에서 내 나이를 생각하면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지. 오히려 20대 중반까지 동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게 웃긴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동정을 땐 상대가 한 명이 아닌 두 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하하하…….”

그것도 두 여성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지구에서는 감히 쳐다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들이다.

그중 한 명도 아니고 둘을 상대로 동정을 때다니. 그 사실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잘 자고 있네.”

한쪽엔 메르넬라가, 다른 한쪽엔 레베카가 자는 중이다. 얼굴색이 지쳐 보이는 건 분명 나 때문이다.

너무 많이 괴롭혔어.

심지어 막간에는 레베카와 메르넬라를 동시에 번갈아가며 즐겼던 기억이 남아있다.

“너무 많이 참았었나.”

참았던 만큼 한껏 욕망을 내뿜었더니 이 꼴이다.

처녀를 상대로 발정 난 짐승마냥 굴었으니, 내게 질렸을 만도 한데 메르넬라도 레베카도 내 팔을 꼭 안고 있다.

“귀엽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져 한동안 그저 멍하니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신이시여. 기침하셨나이까?”

내가 정신을 차린 건 아래 아이 중 하나가 문을 두드릴 때였다.

“알아서 나갈 거니까 신경 쓰지 마. 그냥 이 방에 아무도 오지 말라고 전해.”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딱히 당황하지 않고 명령을 내린다.

나야 일어났지만, 아직 메르넬라와 레베카는 피곤해 보이니까 조금 더 쉬게 내버려두고 싶어.

“알겠습니다.”

이로써 이 방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나야 그다지 피곤하지는 않지만, 양팔이 꼼짝없이 붙잡혀 있는지라 일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둘이 일어나기까지 그냥 기다리기는 심심해.

“잘까.”

그래, 자자.

풍만한 여체를 이불 삼아, 다시금 눈을 감았다. 달콤한 냄새 덕분에 순식간에 수마가 찾아왔다.

“폐하, 슬슬 일어나세요.”

어, 뭐야.

메르넬라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눈앞에는 어느 사이에 옷을 차려입은 메르넬라와 레베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들이 일어나는 것도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제대로 잠들었나 보다.

“하암.”

한껏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나자, 레베카와 메르넬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 나는 아직 옷을 입기 직전이었지.

“옷시중을 들어드릴게요.”

“나도.”

아니, 괜찮은데. 그보다 뭘 입히려고 하는 거야. 그거 황복이잖아.

“곧 내려갈 거니까 그런 화려한 옷은 됐어.”

“아, 그렇네요.”

메르넬라의 목소리에 슬픔이 찾아온다. 지상으로 내려가면 당분간 만나지 못하겠지. 이건 나도 배려를 하지 못했네.

“최대한 자주 들를게.”

“네……!”

그럼 옷을 갈아입을……. 생각해보니까 갈아입을 옷이 있을 리가 없다.

애초부터 자고 갈 생각도 없었으니까. 레베카도 메르넬라의 옷을 빌려 입고 있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가슴 쪽이 조금 헐렁해 보이긴 한다.

“아르켈, 지금 실례되는 생각 하지 않았어?”

날카롭기는.

“전혀요.”

시치미를 뚝 뗀 체 옷방 쪽을 바라보았다. 여기 있는 옷들은 전부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지.

던전에서는 중간관리직이라고 하지만, 아포디미아에서는 왕이다. 왕의 신분에 맞는 화려한 옷만 있는 게 당연하다.

“대충 입지 뭐.”

마법을 사용해 어제 입었던 옷과 유사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창조가 아니라 마력을 옷처럼 보이게끔 한 거다. 이 정도는 잔재주 축에도 들지 못하지.

“돌아가죠, 레베카님.”

“응.”

“배웅하겠습니다, 폐하.”

“됐어. 메르넬라 너만 개인적으로 배웅해주면 충분해.”

또 그 많은 아래 아이들이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고 있는 그 꼴을 보는 건 사양하고 싶다.

“그리고 폐하가 아니라 아르켈이라고 부르랬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요?”

“응.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면 아르켈님. 언제쯤 식을 준비할까요? 아이는 몇 명이면 좋으세요? 저는 6명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리고.”

“저는요?”

“당연히 레베카양도 같이 올려야죠. 레베카양은 몇 명이나 낳을 생각이세요?”

“거, 거기까진 아직…….”

너희 사이 엄청 좋아 보인다. 어제 식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짜로 궁금해. 뭐 메르넬라가 저렇게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래서 적당한 변명거리도 생각해놨지.

“식은 지상에서 올리고 싶은데 기다려 줄 수 있어 메르넬라?”

행복한 장밋빛 미래를 읊던 메르넬라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기꺼이. 기꺼이 기다릴게요, 폐하.”

기다려줄 수 있으면 그걸로 됐어. 나도 할 수 있으면 결혼식을 올리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현재 목표 : 레베카를 도와 던전을 운영해 나가십시오.」

「TIP : 현재 목표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게임클리어에서 멀어집니다.」

「TIP : 게임클리어 실패 시, 플레이어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목표를 잊지 말라는 듯, 눈앞에 현재 목표를 지시하는 창이 나타났다.

이 세계 온 직후 처음 내 눈에 들어왔던 창과 똑같은 내용이다. 그때부터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던전 운영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대신 기반을 다져놓기는 했지만.

그러니까 이만 나의 무대로 돌아가도록 하자.

“아르켈님. 무사 귀환을 빌어요.”

날 배웅해주는 메르넬라에게 작별의 키스를 하고는 지상으로 향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식당에서 메르넬라와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그렇게 친해지셨습니까?”

지상으로 가는 도중,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냥.”

“그냥 뭐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끔 말을 해줘.

“너 왕이잖아. 첩을 많이 둬도 아무도 뭐라 안 할 거 아니야.”

“엥?”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래.

“뭐야, 그 반응은. 최근 여자들이랑 친하게 지낸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 아니었어?”

“전혀 그런 생각 없었는데요.”

“거짓말.”

“진짭니다만.”

진심으로 1도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는뎁쇼.

“뭐,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아니 뭘 혼자 납득하고 있는 거야, 레베카.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데요.”

“언니 때문에.”

메르넬라 때문에?

“처음 언니가 네 부인이라고 소개했을 때 내 심장이 얼마나 철렁했는 줄 모르지?”

아, 그거 때문이었나. 하긴 레베카는 어제까지만 해도 내 진짜 정체도 몰랐지. 내가 부인이 있었다고 해도,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었을 거다.

“그러다가 언니랑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대로 있으면 둘 다 첩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일치했어.”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데 왜 서로 지레짐작을 한 걸까.

“그래서 널 덮치기로 했지.”

“잘도 사이좋게 됐네요.”

고작 그것만으로 둘의 사이가 그렇게까지 좋아졌다면, 진심으로 잘도 사이가 좋아졌구나 싶다.

“당연히 고작 불안감이 일치했다고 사이가 좋아지지는 않지. 나머지는 여자들끼리 이야기니까 비밀이야.”

예, 예, 그러시겠죠.

“그것보다 순서를 양보하실 생각도 하시고, 기특하십니다.”

조금 놀려줄 생각으로 말한 것인데, 레베카는 조금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메르넬라가 있을 아포디미아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 반응은.

“언니 이야기 듣다 보니까 안타깝더라고. 나였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널 기다릴 수 있었을까 싶었어. 그래서 양보하기로 했어.”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메르넬라가 안타깝게 여겨진다.

심지어 게임에서는 결국 그 오랜 기다림을 보답 받지도 못하고 주인공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기에 더더욱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순서를 양보했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다.

“너 같은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오랫동안 쭉 기다릴 수 있었을까.”

뭐야 그 불온한 말은.

“저 안 좋아하십니까?”

히죽 웃으면서 레베카를 바라보자, 그녀는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은 얄미워 죽겠어.”

그리고는 내 뺨을 힘껏 꼬집었다. 그런다고 하더라도 딱히 아프지는 않지만.

“아픕니다.”

일단 예의상 아프다고 말이라도 해주자.

“전혀 아프지 않다는 표정으로 아프다고 말해봐야 감흥이 없거든?”

아픈 척까지 해주기에는 조금 귀찮은…….

순간 레베카의 입술이 내 입술을 훑고 지나갔다. 얄미워 죽겠다면서 이게 뭐람?

“뭐예요?”

“……아까 언니한테만 키스해줬잖아.”

레베카는 볼을 붉게 물들이고 내 시선을 회피했다.

“귀엽기는.”

“읏!”

아, 나도 모르게 생각이 뇌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나와버렸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 둘 다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궁금한 거 있어.”

침묵이 깨진 것은 다시금 은하수를 통과해 물의 길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말씀하세요.”

“언니한테 들었는데 네 목적이 지상을 멸망시키는 거라면서.”

내 목적이 그렇다고? 어이가 없네.

“제 목적이 아니라 저희 종족의 목적이 그렇죠. 참고로 저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저 티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왜?”

“뭐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지상이 불타면 내가 목표를 수행할 수 없어서 죽을 수도 있고, 지상의 풍경이 마음에 들고 어쩌고저쩌고 여러 이유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당장 내가 대야 할 이유는 역시.

“제일 중요한 건 레베카님을 축제에서 우승시켜드려야 하니까요.”

그녀의 마음에 들게끔 말하는 게 좋겠지.

“마음에 드는 답변이네.”

물의 길이 끝나고 마침내, 지상으로 돌아온 순간 레베카는 아리따운 미소와 함께 그렇게 회답했다.

것 봐, 좋아하잖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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