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12. 두 여자(2)
* * *
“폐하의 첫 번째 부인인 메르넬라…….”
“아니잖아!”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야, 메르넬라!
“부인? 부인이 있었던 거야? 그런데 나한테 그랬었어? 진짜면 죽여버릴 거야.”
“아니라고!”
레베카는 내 말이 안 들리는 건가?! 젠장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야. 잠깐만 레베카 너는 왜 나한테 다가오는 건데?
“큭.”
레베카가 나를 정면에서 껴안는다. 앞뒤로 느껴지는 거유의 감촉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이건 천국인가?
아니, 진심으로 이건 지옥이다.
몸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만, 서로 노려보는 두 여자의 기색은 무섭기 짝이 없다. 당장 살인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놀랍지 않을 정도다.
“아르켈은 내 거야.”
“어머, 감히 폐하를 자기 것이라고 말씀하시다니. 불경하기 짝이 없네요.”
“나한테 청혼했었어! 그러니까 내 거야!”
아, 잠시만요.
“예? 폐하?”
메르넬라의 팔에 힘이 강해진다. 레베카의 말이 사실이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은 왠지 버림받은 강아지와 같이 느껴졌다.
“일단 떨어져.”
앞뒤로 나를 껴안고 있는 두 여성을 떨어트린다. 약간의 저항이 있었지만,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두 여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곁에서 떨어졌다.
“이쪽은 메르넬라 트리토. 이 성의 시종장이자, 우리 중 세 번째.”
“아.”
세 번째라는 건 당연히 세 번째로 강하다는 뜻이다. 안드로를 소개해줄 때 설명해줬기에 레베카는 내 말의 뜻을 당연히 이해했다.
“메르넬라, 이쪽은 레베카 플락. 내가 지상에 잠입하는 걸 도와주시는 분이다. 생각 잘해.”
이 분이 없으면 지상에 잠입 못 한다는 뜻을 은근히 내보낸다.
물론 레베카가 없다고 해도 지상에 잠입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던전 운영을 못 하게 되잖아.
그건 사양이다.
“그것보다 청혼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요?”
이대로 그냥 넘어가는 흐름 아니었어?
“그게…….”
“심심하면 나한테 청혼했었잖아. 왜 말을 못해?”
레베카의 말에 메르넬라의 시선이 한층 격렬해졌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메르넬라가 폭주할 게 눈에 빤히 보인다.
그렇다고 레베카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메르넬라가 먼저 먼저 자신을 부인이라고 소개하려고 들어서 레베카의 신경을 건드렸으니까.
“폐하께서 청혼하셨다고요?”
“응.”
메르넬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 좀 봐주면 안 될까? 아포디미아에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리도 산 넘어 산일 수가 있을까.
“진실이군요.”
레베카의 말에 단 한 톨의 거짓도 없다는 것을 느낀 메르넬라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떨궜다.
“……제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요, 폐하.”
불길함이 깃든 목소리가 내 귓가를 찌른다.
“제가 먼저 사모했는데.”
알고 있다.
“제가 먼저 구혼했었는데.”
그래 잘 알고 있어.
“제가 먼저!”
떨궜던 고개가 다시금 들어 올려진다. 명백한 살기와 적대감을 가진 채.
“이 여자를 죽이면.”
다가오는 폭풍을 바라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숨길 생각 없이 살기를 드러내는 메르넬라의 모습은 실로 그러했다.
레베카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젊은 마족들 기준에서다. 마왕급 마족 수준의 전력을 가진 메르넬라의 상대는 되지 않는다.
메르넬라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자리에서 레베카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하아.”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됐지. 처음 레베카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일어나리라고 예상치 않았다.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을 알았으면 레베카를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다.
“죽이면 저를 바라봐주실 건가요?”
구슬프게 슬픔을 읊는 그 형상을 보고 있자니, 입이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메르넬라가 폭주하게끔 내버려둘 수도 없기에.
“명령이다, 메르넬라. 멈춰.”
왕으로서 그녀에게 멈출 것을 명했다.
“……네, 폐하.”
폭풍과도 같았던 살기를 명령 한 마디에 거둬들인 메르넬라는 여전히 구슬프게도 나를 바라보았다.
반대로 레베카는 메르넬라의 살기를 제대로 받아서 몸을 떨고 있었다. 어찌나 주먹을 꽉 쥐었는지, 피가 흐르고 있을 정도다.
“손 줘봐.”
“후후.”
피가 흐르는 손을 잡아 마법으로 치료해줬다. 그러자 레베카는 의기양양하다는 듯이 웃었고.
“폐하께서 다른 여자의 손을…….”
메르넬라가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이쪽을 노려본다.
이거 지금 그거구나.
내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든 레베카와 메르넬라를 자극하는 상황이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앞으로 메르넬라는 사사건건 통화를 걸어서 나를 귀찮게 할 거다.
그건 레베카도 마찬가지.
메르넬라와 무슨 관계냐고 계속 물어보겠지.
일단 한 가지 다행인 건 둘 다 나를 좋아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내 말을 들어주기는 하겠지.
“둘 다 일단 앉자.”
식탁에 자리 잡자, 레베카와 메르넬라는 너나 할 것 없이 내 곁에 앉았다. 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꼭 이렇게 붙어 앉아야 하는 건가.
아니 곁에 앉는 건 괜찮으니까 내 팔 좀 가만히 내버려둬! 왜 내 팔을 껴안는 건데.
양팔에서 풍만한 감촉이 느껴지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잖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데.”
식사를 나르는 아래 아이들이 이쪽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저들의 신으로서 꼴이 말이 아니다. 부끄러움이 느껴질 정도야.
“이러면 내가 아무것도 못 먹잖아.”
“아.”
“입 열어, 아르켈.”
아니 먹여달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팔을 놔주면 되잖아.
“아, 하세요. 폐하.”
“빨리.”
내가 지금 너희 심리를 모를 줄 알고?
내가 한쪽 걸 먼저 먹는 순간, 다른 한쪽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뻔하다, 뻔해.
이렇게 된 이상.
“어?”
“폐, 폐하…….”
레베카와 메르넬라가 놀랐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럴 만도 하지.
두 여자의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포크에 있던 음식을 거의 동시에 먹어치웠으니까.
“다시!”
“자, 제가 먹여드릴게요, 폐하.”
설마 이 짓을 계속하겠다고? 제발 좀 봐주라……
한동안 두 여자의 포크에 딸린 음식을 계속해서 먹어치웠다.
그러자 이쪽을 바라보던 아래 아이 중 한 명이 100점 푯말을 들어 올렸다. 아니 너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구경하고 있을 생각이야?
제발 부끄러우니까 다른 곳으로 가주면 안 될까.
“손 좀 놔봐.”
도저히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서, 조금 거칠게 손을 빼냈다.
덕분에 레베카와 메르넬라의 풍만한 가슴 감촉이 내 팔에 강조된다.
“둘 다 진정 좀 해.”
두 사람 모두 진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심장이 너무나 두근거려서 참을 수가 없어.
“저 가슴만 무식하게 큰 여자가 먼저 했어!”
“어려서 그런지 예의조차 없군요.”
“그래, 나 어려. 그리고 남자는 어린 여자 좋아해.”
“어머나, 시건방진 여자는 남자를 피곤하게 하는 법이에요.”
아니, 진정 좀 하라니까. 내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건가. 아래 아이들이 이 상황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손에 뭔가를 들고 있어.
저건 설마, 팝콘이냐. 팝콘을 먹을 정도로 지금 이 상황이 흥미로워? 어? 아주 그냥 영화 보는 것 같지!
“하아.”
아, 머리 아파.
무슨 어느 정도 내 말을 들어주겠지, 야. 과거의 내 생각을 저주하고 싶다. 메르넬라고 레베카고 서로를 견제하느라 내 말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잖아.
“레베카, 메르넬라.”
“응.”
“예, 폐하.”
“계속 그렇게 하면 같이 있기 힘들어.”
이럴 때는 충격 요법이 답인가? 그렇겠지? 사실 당장 내가 이 두 여자 옆에 있는 게 너무 힘들다.
“전부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 폐하를 피곤하게 만드니까.”
“그쪽 때문이겠지.”
서로 싸우라고 한 말이 아니잖아!
“싸우면 진짜 두 번 다시 안 봐.”
내 경고가 통했는지, 메르넬라와 레베카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겨우 그뿐이다.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건 여전해.
아,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
“두 사람은 식사해.”
그 마음에 따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제법 많이 먹었으나, 레베카와 메르넬라 나한테 음식을 준다고 아무것도 먹지 않기도 했고.
“나는 목욕 좀 해야겠어.”
이 혼란한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그럼 제가 시중을…….”
“됐어. 식사나 해. 레베카 너도.”
제발 부탁이니 혼자 있게 해주세요.
“다시 말하지만 싸우거나 하면 다시는 안 볼 거야.”
경고성 발언을 남겼다. 이렇게까지 말해놓으면 싸우지는 않겠지.
“안내하겠습니다, 첫 번째 신님.”
목욕하겠다는 말에 이쪽을 구경하고 있던 아래 아이들이 다가와 말했다.
이야 이제 구경할 게 없으니까 안내해주겠다는 거 봐라. 이것들이 병 주고 약 주네.
“……그래.”
그렇게 레베카와 메르넬라를 남겨둔 채 아래 아이들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서 떠나 목욕탕으로 향했다.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메르넬라와 레베카는 서로를 노려볼 뿐, 싸울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친해지는 건 바라지 않으니까, 제발 그 묘한 신경전은 그만뒀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그 신경전의 이유가 나라서, 보고만 있어도 내가 지친다고.
거기에 나를 두고 경쟁하는 것도 제발 그만해줬으면 하고.
여러모로 머리가 너무 아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