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7. 주인공의 동료와 만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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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화면 너머에서 여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온몸은 피투성이고, 복부는 거대한 무언가가 꿰뚫은 듯 공허히 비어있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여자의 옆에 아직 소년의 티를 완전히 벗어내지 못해 앳돼 보이는 청년이 그녀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중이었다.
“죽으면 안 돼! 제발! 나는 아직 당신한테 배울 게 많단 말이야! 제발, 제발 날 두고 가지 마!”
“페리……드.”
시끄러운 목소리에 정신이라도 든 것일까. 분명 죽어가고 있는 몸임에도 여성은 선명한 눈빛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저, 정신이 들어?”
“저는…….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어……요.”
그러나 그 눈빛과는 다르게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말을 할 때마다 피를 울컥 토해내는 그 모습은 너무나도 가련했고, 애달팠다.
“말하지 마! 금방, 금방 고쳐줄 테니까!”
그 말에 여성이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이미 너무 늦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목숨 하나를 바쳐서 그를 구할 수 있었으니까.
여성은 이 자리가 자신이 죽을 자리라는 것을 이미 인정하고 받아드리고 있었다.
“페리드.”
빛나는 재능을 가진 남자. 어떤 분야로 나아가든 자신보다 훨씬 위대해질 사람. 그런 원석을 구해낸 것에 단 하나의 후회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거짓말이다. 사실은 살고 싶어, 조금 더 강해지고 싶어, 목표했던 경지에 도달하고 싶어.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당신……이라면……. 내가……도달하…지 못 한…….”
여성은 청년에게 뒤를 맡겼다.
“단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세, 쿨럭, 세계를. 부……디. 제가 한 번도, 닿지 못한, 곳까지.”
죽어가는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확실하게 말한다.
여자는 부디 청년이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경지까지 도달하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신의 염원과 의지를 각인시킨 후.
청년의 얼굴에 살며시 자리 잡은 트라우마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여자는 미소와 함께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루이나!!”
* * *
루이나의 옆을 걷고 있어서인지 정말 오랜만에 루이나가 죽는 장면이 떠올랐다.
루이나의 죽음을 직접 목도한 주인공은 무언가 느낀 바가 있는 듯, 건방지고 오만한 성격을 버리게 됐다.
그렇게 ‘던전 자하드’의 프롤로그는 끝을 맺는다.
“자, 안으로 들어가게. 우리는 여기서 보고 있겠네.”
설마 시험을 치르는 곳에서 루이나와 대련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생각해보니 나는 루이나에 대해서 잘 모른다. 제작사 쪽에서 루이나와 관련된 설정은 철저하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거라곤 이름과 검을 사용한다는 것과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 정도다.
루이나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는 건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주인공이 드디어 루이나가 남긴 유언을 이뤘다고 혼잣말을 하는 이벤트 씬이 있었으니까.
그럼 어째서 루이나는 마스터에 도달하지 못했으면서 마스터와 싸우려고 드는 걸까?
“검을 들어주세요.”
던전 자하드 내에서 마스터의 경지라는 것은 양판형 판타지 소설의 소드 마스터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애초에 게임에서 오러같은 애매모호한 개념을 사용하기가 힘드니까.
게임 내에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면 레벨 표기 옆에 마스터 레벨이 새롭게 생기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과 동료들은 한계 레벨 때문에 성장이 막혀 있다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후부터 다시금 성장하기 시작한다.
“아르켈 님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검을 들어주세요.”
뭐야. 언제 연무장에 도착한 거야?
“죄송합니다.”
잡생각을 하느라 연무장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었네.
“아니요, 사과하실 않으셔도 돼요. 제 상대를 해주시는 것이 탐탁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네가 프라울 왕국으로 가지 않으면 주인공의 행적이 어떻게 될지 도저히 가늠이 잡히지 않아서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뿐이지.
“진정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셨다면, 저 같은 하수를 상대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저는 확인해볼 것이 있어요.”
그 말을 끝으로 루이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얇고 아름다운 검이다. 게임에서 루이나는 저 검을 들고 춤을 추듯이 적들을 짓밟았었다.
“그러니 전력으로 응해주세요.”
전력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어느 정도로 힘을 써야 마스터 수준이지? 도저히 가늠되지 않는다.
아, 칼집에서 검을 뽑지 말고 그냥 휘두르는 게 좋을 것 같다. 혹시 내가 힘 조절을 못 해서 루이나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검을 뽑을 가치조차 없다는 건가요.”
이게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어?!
“다치면 안 되니까요.”
“그건 제가 걱정할 문제 같은데요.”
아무래도 제대로 화가 난 듯싶다. 게임에서는 루이나가 화를 낸 적이 있던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화를 내는 루이나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뽑지 않으시겠다면, 뽑게끔 해드리죠!”
빠르다. 하지만 느려.
일반인이었더라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겠지. 하지만 내 눈에는 루이나의 덧없이 느리게 보일 뿐이다.
(단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세, 쿨럭, 세계를)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문뜩 게임에서 루이나가 죽어가면서 남긴 유언이 떠올랐다.
아, 이런 뜻이었구나.
마스터에 오른 자와 오르지 못한 자는 바라보는 세계부터가 다르다.
루이나가 제아무리 단련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리도 느려 보일 뿐이다.
“어?”
가볍게 검을 올려 루이나의 일격을 막자, 칼날과 칼집이 부딪쳐 요란한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그리고 루이나의 당황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전력으로 달려들어 내지른 검이 쉽사리 막힌 광경에 그녀의 눈동자가 부르르 떨리는 모습 역시 보였다.
“크윽!”
느려, 너무 느리다. 루이나의 어떤 검격도 내게 닿을 수가 없다. 반대로 나는 언제든 루이나의 급소를 노릴 수 있어.
“제대로! 하세요!”
실제로 급소를 노리지는 않았지만, 루이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몇 번이고 급소를 노릴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다.
본인은 제대로 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될까? 왠지 지금 루이나를 건드리면 전부 포기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다. 이대로 막고만 있고 싶어.
하지만 내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 대련은 절대로 끝나지 않겠지.
“중심이 너무 오른쪽에 쏠려 있습니다.”
“윽!”
오른 다리를 살짝 건드리자, 루이나는 곧바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바닥에 쓰러진 채 나를 올려다보는 그 얼굴에 절망이 깃든다.
노력의 결정체가 고작 헛다리 짚이는 것으로 꼴사납게 넘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스터와 자신의 경지가 이리도 차이 난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무엇이든 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겨우 이 정도로 포기할 생각이야?”
“당신이 뭘 알고 그런 말을 해요!”
“당연히 모르지.”
그래 나는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모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이리도 쉽게 포기할 생각이냐고 물어볼 수 있는 거다.
“그래서 포기할 생각?”
내 말을 끝으로 모든 것이 멈췄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공기가 얼어붙는다. 실제로는 시계추가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교차하는 우리의 시간은 확실히 얼어있었다.
무엇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절망하고 있는 네 형색이 정말로 싫다. 굳어 있는 네 안색을 보는 것에 신물이 난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조차 못하겠어?”
포기하겠다는 말은 죽어도 하지 못하는 루이나의 꼴이 정말로 우스워서 짜증이 났다.
“그럼 잡생각 하지 말고 검을 들어.”
“……그럴 생각이었어요.”
루이나가 피가 흐를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며 일어나며, 영원히 얼어붙어 있을 것 같았던 시간이 다시금 흘러간다.
그때부터는 대련을 빙자한 가르침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허억, 허억. 이제 한계에요.”
루이나가 더는 한계라는 듯이 맨바닥에 주저앉았다. 상당히 오랫동안 움직였으니 지쳐 쓰러질 만도 하다.
“저는 후우, 죽을, 하아아……. 죽을 것 같은데 땀 한 방울 안 흘리시다니.”
당연하지만 나는 전혀 지치지 않았다.
“대련 아니.”
루이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용케 일어선 후 내게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는 후련하다는 듯 바닥에 드러누워 버린다.
“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 이제 좀 마음에 드는 꼬락서니라서 안심이 된다.
“재능은 있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
“저, 정말인가요?”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내가 하나를 가르쳐줄 때마다 열을 아는 건 아니지만, 다섯 정도까지는 알아차린다.
이 정도만 돼도 충분히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하지 않을까 싶다.
“어.”
“아……. 감사, 감사합니다.”
칭찬해줬더니 갑자기 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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