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7. 주인공의 동료와 만나다(2)
* * *
“그럼 이번엔 그쪽 분 차례군요. 들어가시죠.”
아, 그래야지. 루이나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서 여기 온 목적을 까먹을 뻔했네.
“시험 내용은 알고 계시죠? 골렘 세 채에 달린 표적을 정확히 격파해주시면 됩니다. 표적이 아닌 다른 곳을 세 번 이상 타격하시면 실패입니다.”
“알겠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고맙다.
자, 그럼 들어가 보실까.
시험 목적으로 만들어진 연무장이기에 공간이 제법 넓었다. 게임에서도 넓게 느껴졌는데 실제로 보니까 더 넓은 느낌이다.
연무장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자니, 골렘 무리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정확히 세 채다. 표적은 각각 머리, 가슴 그리고 다리에 있구나.
“게임이랑 똑같네.”
골렘의 생김새도 표적의 위치도 전부 게임이랑 똑같았다. 그렇다면 역시 루이나가 죽게 되는 것마저도 게임이랑 똑같을까?
이것은 쓸데없는 생각이다. 혹여 나중에 내가 루이나를 구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이지 지금은 아니다.
“후우.”
당장은 직면한 문제에 집중하자.
“표적의 위치는 확인했고.”
다음은 검을 뽑는 건가. 어?
허리춤에 매달아 놓았던 검을 뽑는 순간, 이질적인 감각이 내 몸을 덮치자 눈을 감았다.
이 이질적인 감각은 아르켈의 경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때 느끼는 감각이다.
과거 용에게 마법을 사용하려고 할 때도 이러한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이 감각을 느낀 직후 나는 어떻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시험을 시작해도 될까요?]
“후우, 예.”
이질적인 감각은 짧게 지나갔다.
“어?”
그리고 눈을 뜨자,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골렘 무리의 움직임이 너무나 느리게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라 골렘의 약점이 보였다.
중심에 있는 골렘은 오른쪽 팔이 왼쪽 팔보다 무거워서 전체적인 균형이 오른쪽에 쏠려 있으니 오른쪽 다리를 건드리면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오른쪽 골렘은 몸과 다리를 잇는 이음새 부분이 헐겁다.
뭐야, 이거.
조금 전까지는 보고 있어도 전혀 몰랐던 정보가, 지금은 내 눈을 통해 발견되어 머리에 전달된다.
익숙지 않은 상황에 나도 모르게 눈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골렘 무리가 가까이 접근하자, 본능적으로 익숙하다는 듯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둘렀다.
[음?]
아르켈 정도로 강하면 시야가 이런 식으로 보이는구나…….
[죄송합니다. 골렘이 움직이질 않네요. 아마 마력석의 마력이 다 떨어진 것 같습니다. 마력석을 교체하고…….]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마력석이 다 떨어진 게 아니다. 이 골렘은 표적이 베이면 작동이 정지되게끔 설계되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움직이지 않지.
“표적을 전부 베었으니까요.”
[예? 농담이시지요?]
“농담이 아닙니다. 와서 확인해보세요.”
아무래도 마법사는 내가 표적을 벤 것조차 보지 못했나 보다.
잠깐만. 이거 너무 힘을 발휘한 건가?
아니 그래도 고룡 때에는 상대도 상대라서 힘을 좀 냈다가 메르넬라에게 통신이 온 것을 반성해서 이번에는 훨씬 약하게 힘을 발휘했는데…….
“지, 진짜다. 세상에, 어떻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마법사의 모습을 보고 내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까 고룡과 인간은 하늘과 땅의 격차가 있구나. 적당히 해야 했는데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너무 신이 나서 검을 휘둘러버렸어.
“마스터급 실력자를 알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와, 마스터!
일정 경지에 다다른 무인을 부르는 명칭으로 주인공도 게임 중반부터나 들을 수 있는 칭호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진짜 굉장히 아주 약간의 힘을 냈을 뿐임에도 마스터급 실력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 역시 실수했구나.
“고대 유적 탐색에 성공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실력을 미리 알아차려야 했는데 알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연무장 밖으로 나오니 릴리도 내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경비병! 어서 이분을 백작님께 안내해드려야 한다! 아니, 내가 직접 가지. 따라오십시오!”
마법사가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자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미래가 아니었는데!
“주군!”
마법사의 안내 덕분인지 일사천리로 성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문제는 그에 멈추지 않고 응접실까지 하이 패스로 나아갔다는 거다. 아직 루이나가 응접실 안에 있을 텐데 이래도 되는 거 맞아?
“왜 그렇게 호들갑인가. 루이나 경과 이야기 중인 것을 알고 있잖은가.”
이거 봐, 역시 아직 루이나가 있잖아. 백작도 실례라는 듯이 이쪽을 보고 있고. 그냥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여기 계신 아르켈님은 마, 마스터급 실력자십니다!”
그 순간, 응접실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호오.”
아, 망했다.
마법사의 외침에 백작이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눈치챘다.
백작의 관심이 루이나에서 내게로 옮겨왔다는 것을.
“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표적을 정확히 베어내셨습니다.”
“저분의 기록이 어떻게 되지?”
“11초입니다.”
와 직접 들으니까 진짜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구나. 11초라니, 게임에서는 한 번도 달성해보지 못한 기록이다.
“마스터급 실력자치고는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나?”
어? 맞아? 게임에서는 아무리 빨리 클리어해도 20초 내외였었는데? 커뮤니티에서 게이머들끼리 서로 내가 더 빠르다며 타임 어택을 했을 때 그 기록이었는데?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분께서는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에 가만히 계시다가.”
마법사의 말이 이어질수록 백작이 나를 바라보는 눈이 심상치 않아졌다. 저건 그거구나. 어떻게든 자기 휘하로 넣고 싶어 하는 그거구나.
게임에서 당했던 꼴을 이제 실제로 당해야 하는 그런 상황인 건가?
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앞으로 백작에게 어떻게 시달릴지를 생각하면 벌써 머리가 아파.
하지만 그것보다도.
“두 분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루이나가 방치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선객이 계시니까, 제 이야기는 나중에 하심이 어떨까요.”
“아, 그렇군. 내 실례했네, 루이나 경.”
“저는 괜찮습니다, 백작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프라울 왕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지? 그렇게 해줌세.”
뭔가, 아무리 봐도 그냥 루이랑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아니 절대로 착각이 아니다.
프라울 왕국으로 가겠다는 건 국경을 넘어가겠다는 뜻이다.
여덟 왕국은 사이가 대단히 나빠서 국경을 넘어가는 건 굉장히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다.
“백작님.”
그나저나 루이나는 지금 프라울 왕국으로 가는 거구나. 그렇다면 곧 주인공이 등장하겠네.
주인공은 프라울 왕국 출신이고, 프라울 왕국의 수도에서 루이나와 만나게 되니까.
“다른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무엇이지?”
“저분과 겨뤄보고 싶어요.”
어? 누구랑 겨뤄보고 싶다는 거지? 잠깐만 왜 손가락으로 날 가리켜. 왜 갑자기 나랑 겨뤄보고 싶다고 하는 건데!
“프라울 왕국으로 가고 싶던 것도, 프라울 왕국의 기사단장이 마스터급 실력자라고 들어서 겨뤄보려고 가려 한 것이었어요.”
루이나가 프라울 왕국에 있었던 이유가 저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아니, 이런 시시한 감상을 할 때가 아니잖아.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 마스터급 실력자가 계시면 굳이 먼 길을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저분께서 허락해주신다면 나는 상관없네.”
백작의 대답에 루아나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루아나가 프라울 왕국으로 가지 않으면 스토리는?
루아나 없이 과연 주인공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주인공은 루이나의 죽음과 함께 각성하게 되는데?
“부디 바라옵건대, 저와 한 수 겨뤄주시겠어요?”
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무조건 거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어디선가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해.
“나도 부탁함세. 자네의 실력을 직접 보고 싶다네.”
와, 이걸 백작까지 지원 사격을 해주네. 이러면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나는 백작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그런 내가 백작의 부탁을 거절한다? 마을을 허가받는 것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내가 자충수를 뒀구나.
“알겠, 습니다.”
여기선 루이나와 겨룰 수밖에 없어. 목소리가 떨리는 이유는 진심으로 난처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 대련 후에 루이나가 프라울 왕국으로 가게끔 넌지시 말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할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하하, 잘 됐군. 그럼 연무장으로 가도록 하지.”
웃지 마, 이 무력에 사족을 못 쓰는 백작 놈아.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아니, 아니지. 전부 내 탓이다. 그냥 평범하게 표적을 베었어야 했는데 너무 신나서 자제를 못 한 내 잘못이야.
연무장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진다.
“하아.”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의 심정이 이럴까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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