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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18화 (18/99)

〈 18화 〉 6. 주변 여자들이 이상하다

* * *

“어.”

“정말인가?”

“그렇다니까.”

그렇게 물어봐도 내 입에서 다른 대답이 나올 수가 없다. 내 대답에는 한 치의 거짓도 섞이지 않았으니까.

“그럴 리가 없느니라. 분명 자이로니아가 가지고 있었을 텐데…….”

뭘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지 모르겠네. 애당초 그다지 강해 보이지도 않은 무기였는데 말이야.

과거 첫 번째 선택받은 자가 사용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 저 성검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빛을 잃었다.

다시금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힘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더군다나 힘을 되찾는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강할지 의문이 든다.

“그래, 그냥 임시로 맡아두고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이제는 그냥 자기 알아서 납득하고 있다. 자문자답하고 있을 거면 난 이만 가봐도 되지 않을까?

“그대여. 조금 몸을 사려야 할 수도 있겠구나.”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왜?”

아르켈이 몸을 사려야 할 일이 과연 있기나 한가.

“가정이기는 하지만, 귀찮은 도마뱀 하나가 그대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마뱀? 아, 용을 말하는 거겠구나. 실로 대마왕다운 오만한 발언이다. 마족조차도 용과 부딪치는 것을 꺼리는데 그런 용을 도마뱀이라 당당히 부를 줄이야.“

“그 도마뱀은 마왕급 마족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도마뱀 중에서는 가장 강하니까.”

마왕급? 그건 확실히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위험하겠는걸.”

“그래,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바르바라의 루비와도 같은 눈이 번뜩인다. 그 눈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감정이 내 몸을 지배했다.

“절대로 그 년한테 죽으면 안 돼, 아르켈.”

바르바라의 얼굴에 근엄한 대마왕의 모습이 아닌, 소악마와 같은 미소가 그려진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슬며시 내게 다가온다.

“약속이야?”

아까까지 썼던 고풍스러운 말투는 도대체 어디에다가 집어 던졌는지 모르겠네.

“만약 혹시라도 죽으면.”

그 눈에 깃든 광기는 도대체 얼마나 짙은 건가. 감히 눈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을 정도라 나도 모르게 눈을 돌리고 말았다.

무섭다.

이 세계에서 와서, 아르켈의 몸을 차지하고 나서, 처음으로 그런 감정이 들었다.

저것은 분명 집착이었다. 그것도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디, 강한 집착.

“저승까지 쫓아가서라도 날 죽여달라고 할 거니까. 알겠지?”

소름 돋는 말과 함께 샐쭉 웃은 바르바라는 이내 아무런 대답도 듣지 않고 내게서 떨어졌다.

“간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지금이 아니면 저 광기에, 저 집착에 잡아 먹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하여라.”

어? 다시금 돌아온 고풍스러운 말투에 눈을 돌리니 바르바라는 다시금 제 자리에 앉아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조금 전 그 광기는 마치 없던 일마냥.

다시 한 번 바르바라가 얼마나 미쳐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금 소름이 돋아서 나는 급히 방에서 빠져나왔다.

“저건 찐이야.”

방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저 광기는 진짜다. 다시금 경험할 수 없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광기와 집착이다.

그렇게까지 죽고 싶은 건가? 바르바라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지금까지 홀로 살아왔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아니, 가늠하고 싶지도 않아.

과연 내가 저것을 죽일 수 있을까?

게임에서 등장한 적 중에서는 적수가 없다. 그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게임에서 등장하지 않은 존재 중에서는 적수가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나는 아직 아르켈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못 하고 있다.

잠깐만. 말려들지 마라. 눈앞의 광기를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서 저걸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고 있다니.

이런 생각조차 하면 안 된다. 가능하면 엮이고 싶지도 않다.

“토할 것 같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바르바라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비워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아르켈의 감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저러니까 당연히 보자마자 기분이 나빴지.

최대한 바르바라와의 만남을 머릿속에서 떠올리지 않게 애쓰며 천천히 홀 쪽으로 걸어간다.

걸어 다니면서 머릿속을 정리한 덕분인지, 어느 정도 기분 전환이 됐을 때쯤 홀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음악 소리…….”

생각을 정리하느라 이제야 홀 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홀을 살펴보니 마족들이 짝을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좀 평범한 파티 같다는 느낌이 드네.

“어디 갔었어?”

깜짝이야.

갑작스럽게 내 앞에 나타난 레베카의 모습에 잠시 놀라고 말았다.

“잠시 산책 좀 다녀왔습니다.”

대마왕과 독대를 했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가 없다.

레베카 정확히는 레베카를 비롯한 모든 마족은 대마왕을 동경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과연 대마왕이 얼마나 미친년인지 알아도 그럴 수 있을까.

아니, 바르바라와 관련된 생각은 아예 떠올리지도 마라. 애써 정리됐던 머릿속이 또 복잡해질 것 같아.

“산책? 별일이네. 앞으로는 말 좀하고 가. 찾아다녔잖아.”

레베카가 나를 찾아다녔다고?

아, 하기야 찾아다닐 만도 하다. 그 정도 큰 거래를 그냥 맡기고 도망치듯이 빠져나온 셈이니까.

“죄송합니다.”

여기선 솔직히 사과하기로 하자.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어.”

내 사과에 레베카가 괜찮다는 듯이 웃는다.

나는 현재 의도적으로 레베카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바르바라와는 다른 의미로 내 머리가 복잡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거래는 어떻게 하시기로 하셨습니까?”

“하기로 했어. 현재 우리 상황을 따져보면 성검보다 욕망 쪽이 훨씬 자원인 것 같았거든.”

훌륭한 선택이다. 이로써 조금 더 던전 운영을 즐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앞으로 조르딕님이 앞으로 얻으실 욕망 전부는 아니고, 반만 가져가기로 했어. 조르딕님의 던전도 발전해야 우리가 계속 욕망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것 역시 훌륭한 선택이다. 우리가 조르딕이 얻을 욕망을 모조리 앗아간다면 조르딕의 던전은 발전하지 못할 거다.

그렇게 되면 점차 조르딕이 줄 욕망의 줄어들게 될 것이 뻔해.

“훌륭하신 선택이십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살을 찌워야지 배를 가르면 안 된다.

“그런데 그런 성검은 어디서 얻었어?”

그래 이제 그런 질문을 할 때가 되기는 했지. 자, 얼굴에 아주 두꺼운 철면피를 쓰도록 하자.

“드워프 왕국 쪽에서 얻었습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을 고한다. 사실 이 거짓말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레베카가 조금만 알아보려고 해도, 곧바로 거짓이라는 것이 들통날 거다.

“진짜로?”

“예.”

“흐응.”

역시 수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구나.

하지만 드워프 왕국에서 얻지 못했더라면 과연 내가 어디서 저런 성검을 얻을 수 있었을까.

레베카는 내 힘을 모른다. 그렇기에 이 거짓말은 허술하나, 그것 말고는 대안이 없는 거짓말이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눈을 마주 보았다. 여기서 눈을 돌리는 쪽이 심리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거다.

그렇기에 나도, 레베카도 절대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뭐, 좋아. 그냥 넘어가 줄게.”

눈싸움은 내 승리로 끝났다. 후우, 이걸로 또 한 건 넘어간 셈인가.

“그런데 넌 괜찮아?”

“뭐가요?”

영문을 모를 물음이네. 그냥 넘어가 준다는데 내가 왜 안 괜찮을까.

“네가 직접 그 검을 조르딕님께 팔았으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재산을 얻었을 수도 있었어. 그 기회를 차버리고 나한테 성검을 준 거 괜찮냐고.”

아, 그런 쪽의 괜찮음인가.

“괜찮습니다.”

딱히 아무런 상관도 없다. 오히려 겨우 그 정도 성검으로 그만한 가치를 얻은 게 훨씬 이득이지. 던전 발전은 꿈에도 못 꾸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기반을 얻은 셈이니까.

더군다나 딱히 재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내 아공간에 잠들어 있는 보물은 조금밖에 줄어들지 않았고, 사실 이 보물도 내게는 의미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래, 괜찮구나. 그렇단 말이지.”

뭐야, 왜 그렇게 실실 웃어. 도대체 내 말을 어떻게 해석한 거지? 내가 괜찮다고 말한 게 그렇게 기쁜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

“한 곡 같이 출래, 아르켈?”

레베카가 아주 기분이 좋다는 듯 내게 손을 내민다.

잠깐만. 같이 춤을 추자고? 저기 마족들이 춤을 추는 것처럼?

안 된다, 절대로 안 돼.

“정중히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레베카님.”

눈을 내려 레베카의 복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해봤다. 적색의 드레스는 정말이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레베카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울리는 것은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울리는 것하고 별개의 문제가 있다. 도대체 저 가슴은 어떻게 할 건데. 반쯤 내보이고 있는 저 커다랗고 거대한 가슴이 문제잖아!

던전에서 입는 옷을 입고 있어도 같이 춤을 추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곤란했을 텐데, 저런 옷을 입고 저렇게 들러붙는 춤을 춰야 한다고?

내 인내심으로는 절대로 못 버틴다. 분명 중간에 내 아들놈이 일어날 게 분명하다.

춤을 추다가 발기하는 미친놈이 있다? 그런 쪽팔린 일은 절대로 피하고 싶다.

“왜? 평소에는 나랑 같이 춤추고 싶다고 달라붙었잖아.”

그래, 원래 아르켈이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난 아니야!

단둘이 있었더라면 고민도 안 하고 춤추고 싶다고 말하고 그 가슴 감촉을 즐겼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사람 아니, 마족이 많은 곳에선 절대로 아니다.

“죄송합니다. 속이 좋지 않아서요.”

“후훗, 답지 않게 너무 많이 먹었나 보네. 알았어, 그럼. 리첼이랑 한 곡 더 춰야겠다.”

레베카가 뒤돌아서 홀로 가는 모습에 안도감과 함께 안타까움이 찾아왔다.

그래 사실은 아까웠다. 아까워 미칠 것 같다. 합법적으로 저 가슴의 감촉을 즐길 기회였는데.

“아니야, 아깝지 않아.”

그래 전혀 아깝지 않다. 그렇게 자기 세뇌를 하면서 나 역시 홀로 들어섰다.

홀 안은 마족들이 노래에 맞춰 느긋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감상하던 중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 그쪽으로 향했다.

“나디아.”

나디아가 홀의 구석에서 외롭게 서 있는 모습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마족이 아닌 늑대인간이니 다른 누가 파트너를 자처해줄 리가 없다.

그런데 이런 파티에 이런 드레스를 입고 왔으니. 이런 건 레베카가 신경을 좀 더 써야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깜짝이야! 아르켈님이셨구나.”

아, 너무 기척 없이 다가왔나.

“어디 갔다 오셨어요. 레베카님이 한참을 찾아다니셨다고요.”

“안 그래도 방금 이야기하고 왔어.”

“그렇군요. 아. 어디서 그런 검을 손에 얻으셨어요? 왜 말씀은 안 해주셨고요.”

내가 너한테까지 설명해줘야 하는 거냐?

“그냥 구했어. 딱히 비밀로 할 생각도 없었고. 게다가 그냥저냥 괜찮은 성검일 줄 알았지, 그런 성검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귀찮으니 대충 설명해줬다. 사실 반쯤은 맞는 말이었다. 설마 그 성검이 첫 번째 선택받은 자가 사용했던 성검인 줄은 나도 꿈에도 몰랐다.

“그렇군요.”

나디아는 어느 정도 내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는 조금 멍한 시선으로 춤을 추는 마족들을 바라본다.

부러워 보이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한 곡 출래?”

“예?!”

뭘 그렇게 깜짝 놀라.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내가 틀렸어?”

레베카라면 모를까 나디아라면 허튼 생각 없이 춤을 출 수 있을 거 같다. 부러워하는 부하를 위해서 한 번 정도는 못 출 것도 없지.

과연 내가 춤을 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는 한데……. 이건 아르켈의 기억으로 어떻게든 해보도록 하자.

“아니 맞는 말씀이시기는 한데요…….”

역시 부러워하는 거 맞았지?

“역시 무서워서 거절할래요.”

“춤추는 게 무서워? 어차피 나도 못 춰. 그리고 부끄러우면 남들이 못 보는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추면 되지.”

잠깐만. 왜 무섭다는 표현을 썼지? 부끄러우면 그냥 부끄럽다는 표현을 쓰면 되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왜 그렇게 세상 끝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

“아르켈.”

뒤쪽에서부터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이질적인 기운이 내 몸을 감싼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내 뒤에는 레베카가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속이 안 좋다고 하지 않았어?”

분명히 그랬었지.

“나한테 거짓말했구나?”

“자, 잠깐만요 레베카님!”

“조용히 해, 나디아.”

레베카가 조용한 목소리와 함께 나디아를 노려보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깨닫고 말았다.

“도대체 왜, 어째서, 거짓말까지 하면서, 나랑 춤을 추는 걸 거부한 걸까? 그러면서 왜 나디아랑은 춤을 추려고 하는 걸까?”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것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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