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4. 던전 마스터들의 사교 파티(6)
* * *
“넌 무슨 미끼를 준비했지.”
젊은 마족 중 대부분은 방금 파스칼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미끼에 관심이 있을 뿐인가.
표정들을 살펴보니 이해한 건 레베카나 발락을 포함한 몇몇 정도인 것 같다.
“흥.”
파스칼은 시시하다는 듯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마치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우민들을 바라보는 왕과 같다.
재수 없고 느끼한 녀석이지만, 유능하다는 점은 인정해줘야 하나?
“과거 대마법사라 불리던 인간이 만든 아티펙트 중 하나다. 이 정도면 충분한 미끼이지 않은가.”
파스칼이 꺼낸 든 것은 목걸이였다. 와, 실제로 보니까 그립네. 게임에서는 제법 신세를 진 장비였다.
저 목걸이의 정확한 명칭은 ‘천공’이다. 게임상 효과는 하루에 세 번 마나를 100% 회복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도, 아무런 딜레이 없이.
마법사 동료를 키우거나 주인공을 마법사로 육성할 때는 반드시 필요한 필수 장비 중 하나였다.
그리고 저 아티펙트 역시, 인간 대마법사의 것이기에 마계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는 게 증명된다.
“레베카, 너는 어떤가?”
저 새끼가?
파스칼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레베카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혈통으로만 따지자면 레베카는 발락과 파스칼에게 밀리지 않는다. 칠대 마왕 중 한 명인 ‘율리히 플락’의 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혈통만 따졌을 경우다.
발락과 파스칼은 칠대 마왕의 후계자다. 그에 비해 레베카는 마왕 율리히의 30명 중 자식 중 막내에 불과했다.
혈통은 밀리지 않지만, 정통성에서는 밀린다. 두 사람보다 급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레베카가 이 축제에서 필사적으로 우승하려고 하는 이유도, 자신이 플락 가문에서 가장 못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두 마족이 준비한 미끼는 제법 굉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레베카는 어떤가? 고작 내가 준비한 드워프 장비 몇 개가 끝이다.
으득.
입을 꽉 다물고 있네. 저렇게 세게 물고 있으면 이빨이 부서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왜 대답이 없지, 레베카? 자네가 준비한 미끼를 물었다만.”
“그래 레베카. 이 몸의 대답을 무시할 생각인가?”
발락이 레베카를 압박한다. 그가 저러는 이유는 실로 단순하다. 레베카는 ‘던전 자하드’ 본편의 최종 보스다. 그 말은 즉, 젊은 마족 중에서는 가장 강하다는 뜻이다.
정통성이 부족해서 차기 마왕 자리에 오르지도 못할 여자가 자신들보다 강하다는 것에 열등감을 느껴서다.
정말이지, 사람이고 마족이고 남자의 열등감은 정말 꼴사납네.
그 열등감 때문에 내 상사 기를 죽이지 말라고.
“레베카님의 부관 아르켈이라고 합니다.”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 정도 인파의 시선을 받는 건 처음이지 않을까? 마을 건설 때도 나는 주로 에디랑 이야기했을 뿐, 앞에 나서는 짓은 잘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딱히 긴장감은 들지 않고, 그저 무덤덤하게 느껴졌다.
“레베카님을 대신해서 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다. 일단 나는 표면상 하급 마족이기에 당연히 예를 갖추는 게 맞다.
“벌레가 어딜 주제넘게 끼어들…….”
“말해보도록.”
내가 나선 것에 화를 내려는 파스칼과 다르게 발락은 내가 말을 하는 것을 허락했다. 파스칼과 다르게 발락은 레베카를 선의의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레베카가 무슨 미끼를 준비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뿐이다.
“그래. 말해봐라.”
발락 덕에 파스칼도 딱히 내게 입을 다물라고는 하지 못하고는 내 발언을 허락했다.
“발언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럼.
“아시는 분은 익히 아시고들 계시겠지만, 레베카님께서는 현재 아라엘 왕국의 국경 밖에 있는 비명 숲 쪽의 던전을 맡고 계십니다.”
우선 현재 우리 사정을 솔직하게 고하기로 하자.
“위치가 상당히 동떨어졌기 때문에 아쉽게도 아직 한 명의 사람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을을 만들고, 심지어 백작에게 마을을 인정받으려고 하기까지 하고 있다만.
이 점은 딱히 말할 필요가 없다. 이쪽이 유리한 정보는 알려주는 게 아니라, 숨기는 것이니까.
현재 레베카의 상황이 굉장히 난해하다는 것은 대부분 마족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보상을 구해놨습니다.”
아공간을 열어 용의 둥지에서 얻은 무기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검을 꺼낸다. 그 검을 꺼낸 순간, 무언가가 나를 바라보는 기운이 느껴졌지만 일단 깔끔하게 무시했다.
사실 가장 좋은 무기를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저 적당한 무기만 보여줘도 된다.
이 파티가 던전 운영과 직결되는 것은 전혀 없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굳이 가장 좋은 무기를 꺼냈다.
저놈이 레베카를 깔보려고 한 것을 후회하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아르켈의 기억에, 그 감정에 동화됐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파스칼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에 비해서 레베카에게는 호감이 있기 때문이다.
“저 검 뭐야? 쳐다만 봐도 기분 나빠져.”
내가 검을 꺼내자마자, 주변의 젊은 마족들이 술렁였다. 검에 깃든 빛의 힘에 토악질을 하는 마족까지 있을 정도다.
“성검…….”
중견급 마족 중 한 명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내가 꺼낸 무기는 성검이다.
솔직히 이게 성검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무슨 성검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생김새의 검은 ‘던전 자하드’에서 본적이 없으니까.
게임 내에서 등장하지 않은 성검이기에 성능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성검은 그 존재만으로 어마어마한 이점이 있다는 거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이 성검을 한 번 쥐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한다.
그 성검이 던전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던전으로 달려들겠지.
더군다나 성검이 마계에 있었을 리도 없으니, 레베카가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도 증명되는 셈이다.
“허어, 젊은 마족이 괜찮은 물건을 손에 넣었군.”
“지루하던 참에 흥미로워졌군, 그려.”
이제까지 이쪽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중견급은 물론이오, 심지어 최상급 마족까지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저건 그냥 성검이 아니다, 이 바보들아.”
엥? 순간 고개를 돌려 저 말을 한 마족을 바라볼 뻔했다. 이 성검을 알고 있어? 그 정도로 이름 있는 성검이었던 건가?
“어디서 그런 물건을 얻었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발락의 물음 때문에 고개조차 돌리지 못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용의 둥지를 털었다는 건 굳이 입에 내지 않았다.
하급 마족인 내가 고룡을 잡았다는 사실을 레베카가 알아버리면 분명 문제가 생길 테니까.
“끌끌, 저 셋 중에선 레베카가 준비한 보상이 제일 났구먼.”
방금 이 성검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던 목소리다.
이번에야말로 고개를 돌리자, 원숭이마냥 귀가 큰 늙은 마족이 지팡이를 짚으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 귀를 보아하니 조디악이구나?
“조디악님, 그건.”
조디악은 최상급 마족이 있는 던전이 추가된 두 번째 확장팩에서 나온 보스로 최상급 마족 중에서도 더럽게 오래 산 마족이다.
제아무리 파스칼이 마왕의 혈통이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마족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파스칼은 조디악의 말에 무어라 반박하려고 했다.
하기야, 대마법사의 아티펙트 역시 성검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얻으려는 장비이기는 하지.
그러니까 지금 파스칼의 행동은 결코 무례한 것이 아니었다.
“이 늙은이가 다시 말하지만, 저 성검은 그냥 성검이 아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조디악의 말에 파스칼은 입을 다물었다.
평소라면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반박했겠지만, 그의 눈에 애잔함이 묻은 것을 파스칼도 알아차린 걸까?
“설마 그 검을 내 눈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도대체 이 성검이 뭐길래 조디악이 저런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는 걸까.
“저 검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조디악님께서 그러시는 것입니까.”
“첫 번째 축제 때 우리를 토벌하려고 든 건방진 신전 쪽 인간 놈이 사용하던 검이 바로 저 검이다.”
첫 번째 축제? 그렇다는 건, 성검이 첫 번째 ‘선택받은 자’의 검이었다고?
“이 늙은이도 젊었을 적에 저 검에 상처를 입었었다. 저 검에 우리의 피가 얼마나 많이 묻었을지는 늙은이조차도 모른다.”
맙소사. 도대체 그 고룡은 이런 검을 어떻게 가지고 있었던 거야.
“아르켈이라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최상급 마족이 하급 마족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례적인 일이 일어나자, 주변 마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검을 내게 팔아주지 않겠는가?”
팔아, 달라고? 이걸?
“내 친우들의 넋을 달래주고 싶네. 미끼로 쓰지 않겠다고 맹세하마.”
어떻게 한다. 무려 최상급 마족의 제안이다. 명령이 아닌 부탁이다. 여기서 거절하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무슨 짓을 당해도 눈도 깜짝 안 할 수 있기는 하다만.
“죄송합니다, 조디악님.”
내 거절에 마족들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마계는 보통 강한 자가 정의인 사회다. 그런데 하급 마족이 무려 최상급 마족의 부탁을 거부했으니 저런 시선을 보낼 만도 하다.
그래 그렇기는 하다만. 좀 기다려봐라. 그냥 거부할 생각이 아니었다고. 여기선 당연히.
“제 주인은 레베카님이시기에.”
레베카의 자존심을 살려줘야지 않겠어? 자리에서 일어나 레베카를 향해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성검을 바쳤다.
“아…….”
그 행동에 레베카가 넋이 나가 나를 바라보았다. 빨리 받지 않고 뭐해?
“레베카님.”
“아. 응.”
“아하, 그렇군. 그래, 그게 맞지.”
조디악은 자연스레 내 뜻을 알아차렸다. 나와 거래하지 말고 내 주인과 거래하는 것이 지당하지 않겠어?
“내가 실례를 했군, 레베카 플락. 자네의 부관과 거래를 하려고 들다니.”
“아, 아닙니다, 조디악님.”
“그리 말해주니 늙은이의 마음이 놓이는구먼.”
조디악은 흐뭇하게 웃더니 다시금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레베카 플락이여. 저 검을 이 늙은이에게 팔아주었으면 한다.”
이제부터는 레베카가 선택할 일이다. 나는 시선이 레베카와 조디악에게 쏠린 틈을 타서 조용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굳이 자리에서 벗어날 이유가 있었다.
“그 대가로 내 던전에 쌓인 모든 욕망을 네게 주마.”
제법 괜찮은 제안이다.
우리 던전은 아직도 욕망을 구하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디악에게서 욕망을 받아서 던전 발전을 위해 사용하면 앞으로 찾아올 사람들의 욕망을 쉽사리 빼앗을 수 있을 거다.
“아니지, 그걸로는 부족해.”
나는 제법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했지만, 조디악은 스스로의 제안이 무언가 모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이 늙은이의 던전에 앞으로도 쌓일 욕망까지도 모두 네게 주마.”
이건 엄청나게 파격적인 제안인데?
사실 상 이 축제에서 우승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포기해버린 셈이잖아.
“조디악님!”
“그건 너무 과합니다!”
“조용히 해라 젊은 놈들.”
조디악의 제안에 젊은 마족 중 몇 명이 반발하려고 했으나, 다른 최상급 마족이 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조디악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저 검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 정도 가치가 있는 검인 줄은 잘 모르겠는데. 저 검이 첫 번째 ‘선택받은 자’ 에디션이라고는 해도 너무 과하다.
용의 둥지에서 얻은 무기 중에서는 가장 좋은 무기이기는 하지만, 저것보다 좋은 무기는 널리고 널렸다.
그런데 앞으로 얻을 모든 욕망까지 포함해서 거래하려고 들 줄이야.
“어차피 조디악님께서 욕망을 모두 넘긴다고 해도, 레베카의 던전에 있는 욕망의 관은 차오르지 않는다. 그저 던전 발전을 위한 자원으로 쓸 수 있을 뿐이지.”
아하, 그렇구나. 하긴 다른 마족에게 받은 욕망으로 욕망의 관을 채울 수 있으면 그건 너무 사기지. 서로 연합해서 한 명에게 욕망을 몰아줄 수도 있는 거니까.
뭐, 개인적으로는 욕망을 받는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괜히 저런 거로 사람들의 어그로를 끌었다간, 던전이 발전하기는커녕 사람들로 미어터져서 버티질 못할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레베카가 선택할 문제지만.
“실례하겠습니다, 아르켈님. 대마왕님께서 부르십니다.”
이제 왔네.
이 마족이 바로 내가 저 자리에서 벗어난 이유다. 기척을 죽였기에 다른 마족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는 마족이 내게로 다가옴을 알고 있었다.
“……그래.”
그나저나 칠대 마왕을 심부름꾼으로 쓰는 건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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