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2. 마을을 만들어봅시다(4)
* * *
던전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드워프 왕국의 입구까지 이동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때 소락에게 안내받았던 드워프 왕국의 입구는 광산처럼 생겼다.
그 입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자, 거대한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진짜 입구구나? 나는 곧바로 문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인간이잖아!”
“그 이상 다가오지 마라!”
땅딸막하고 우락부락한 드워프들이 내 앞을 막아선 것이다. 경비병인 건 알겠다. 그리고 이런 곳에 인간이 찾아왔으니 당연히 수상하게 여길 만도 하다. 다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소락님을 찾아왔다고?”
“거짓말이군! 소락님께서 인간과 아는 사이일 리가 없잖느냐!”
어찌 이리도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는 걸까. 아, 머리 아파. 드워프의 고집이 황소보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니 가서 아르켈이 찾아왔다고 한번 물어는 봐 달라고.”
“그렇게 우리 중 한 명만 남게 하고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하는 속셈을 모를 줄 아느냐!”
돌아버리겠네. 진짜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했으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상관없이 진작에 저질렀어.
“인간인 내가 드워프한테 무슨 짓을 저지른다고.”
사실 마족이지만, 아니 진짜로 사실은 마족도 아니지만. 아무튼, 지금 내 모습은 인간이고 드워프와 인간은 호의적인 사이잖아.
“우리 동포 중에는 인간에게 호의적인 놈들도 있다지만, 우리는 아니다!”
“그래 인간은 수상쩍다고!”
왜 이렇게 적대적인지 모르겠네. 아, 하긴 용 때문에 왕국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같으니 다른 종족에게 적대적일 수도 있기는 하겠다.
아, 그나저나 머리 아프네. 그냥 순간이동으로 드워프 왕국에 들어갈까? 그러기도 조금 뭐하지 않나. 왕국 내 드워프들이 앞에 있는 이 녀석들처럼 타 종족에게 적대적이면, 괜히 순간이동으로 이동했다가 적대심만 키울 수도 있다.
“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거대한 철문이 열렸다. 소락이 우연히 나오는 게 아닐까? 잠깐 일말의 기대가 들었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워.”
소락은 개뿔이. 문에서 나온 것은 여자 드워프였다. 그래 무려 드워프 왕국의 왕님이 갑자기 나올 리가 있나. 조그마한 실망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 실망감은 잠깐뿐이었고, 남자가 아닌 여자 드워프는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차분히 그 모습을 살펴보았다.
“음? 인간?”
와, 여자 드워프도 완전 게임이랑 같은 모습이구나.
‘던전 자하드’에는 그로테스크하고 끔찍하게 생긴 괴물들도 많지만, 남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외모를 가진 이종족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여자 드워프다.
일반적인 정통 판타지 드워프라면 남자든 여자든 우락부락한 근육이겠지만, 던전 자하드의 여자 드워프는 유저들의 니즈를 노리고 작정하고 만든 종족이라고 할까.
남자 드워프 보통 드워프의 이미지와 똑같다. 그에 반면, 여자 드워프는 그저 키가 작을 뿐, 우락부락한 근육이 없는 일반적인 여성의 모습과 같다.
키가 작다고 해서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자세히 보면 성인 여성의 신체를 줄여놓은 느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락부락한 근육은 없지만, 종족적인 특성으로 신체 크기에 비해서 가슴이 대단히 컸다.
게임에서는 별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그 위용이 사뭇 대단하다. 하긴 커뮤니티에서도 여자 드워프 그림이 엄청나게 돌아다니기는 했었지.
“비명 숲 근처엔 인간이 없으니 소란이 일어날 만도 하군.”
“아 공주, 아니 대장님!”
방금 공주님이라고 하려고 하지 않았어? 남자 드워프는 여자 드워프가 자신을 노려본 순간 곧바로 호칭을 바꾸기는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무슨 소설 주인공도 아니고 저렇게 대놓고 말했는데 알아듣지 못할까.
잠깐만, 그럼 쟤가 소락의 딸이라는 거야? 소락은 붉은빛이 도는 갈색 머리카락인데 저 여자 드워프의 머리카락은 금색이다.
게다가 소락은 특유의 진중하고, 무거운 느낌이 있는 데 비해 저쪽은 도도하고 앙칼져 보이는 느낌이다. 전혀 안 닮았네. 아, 그나마 눈 색깔은 소락과 같은 검은색이구나.
“그런데 인간이 여기에 무슨 볼 일이지?”
“인간이 소락님을 불러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이 근처를 돌아다니는 간이 큰 인간은 없습니다. 때문에 소락님과 친분이 있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저희가 인간을 내쫓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너희 생각이 어떤 줄은 알겠는데 그걸 단언하지 말라고. 그냥 가서 한번 물어봐도 되는 거잖아. 그러다가 나중에 상관한테 호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나.
“네가 대왕님과 아는 사이라고?”
저 녀석들과 다르게 공주님은 말이 통할지도 모른다.
“예. 아르켈이라고 합니다.”
일단 말이 통하려면 첫인상도 중요하기도 하고, 공주라고 하니 최대한 예의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잠시 기다리도록. 혹시 모르니 대왕님께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대신 대왕님께서 너를 모른다고 하면 그때는 각오하도록.”
각오하도록 이라고 말할 때 공주님에게서 제법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지만, 딱히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혼자서 용도 처리했는데 저렇게 귀엽게 생긴 여자애가 살기를 내뿜어봐야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그래,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아이고, 대장님께서 그런 수고를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지금 당장 쫓아내는 게……!”
그러자 경비 드워프들이 공주님의 행동을 막으려고 들었다. 아니, 이 새끼들이?
“조용. 이의는 받지 않겠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일단 보고는 해봐야지.”
“쯧, 알겠습니다.”
이의를 받지 않겠다는 말에 할 수 없다는 듯 경비 드워프들은 입을 다물었지만,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내가 왜 저런 시선을 받아야 하지? 갑자기 열 받네? 너희는 조금 있다가 두고 보자.
잠시 기다리니 공주님이 돌아왔다.
“대왕님께서 들어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소락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처음 말을 나눴을 때와는 다르게 굉장히 공손한 말투였다.
“예?”
“서, 설마요. 대왕님께서 진짜로 이 인간과 아는 사이였다고요?”
“그렇다고 하는군.”
공주님의 말에 경비 드워프들이 꿀 먹은 병아리처럼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나는 샐쭉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손님이시니 극진히 모셔오라고 하셨다.”
“예!?”
“허억.”
“죄송합니다, 아르켈님. 소락님께서 직접 나오시려고 하셨지만, 대왕님의 체면이 있어 제가 말렸습니다.”
아, 그건 나도 사양이다. 드워프 왕국의 왕이 나 하나 마중하겠다고 입구까지 뛰어온다고? 모든 드워프의 관심이 쏟아질 것이다.
“괜찮습니다.”
“사과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를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공주님을 따라 두 드워프들을 지나칠 때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오로지 입 모양만 움직여 내 뜻을 전했다.
너희는 뒤졌어.
내 뜻을 알아들었는지 두 드워프가 몸을 떨었다. 그러길래 그냥 처음부터 소락한테 물어보러 갔으면 얼마나 좋아.
“와.”
문을 통과하자 드워프 왕국의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광산을 파내고 또 파내서 넓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건물을 지어 생활할 수 있게끔 한 이 광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태양이 없으나 넓은 천장에 거대한 등불을 달아놓아 빛이 내리쬐고 있으며, 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하고 있는 저 모습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게임에서는 게임의 한계 때문인지, 인간의 왕국만 구현되었을 뿐 드워프 왕국이나 엘프 왕국은 설정상 있다고만 언급되지 공개되지는 않았기에 더더욱 홀리고 말았다.
“저희 왕국의 모습이 마음에 드십니까?”
“네…….”
마음에 들다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입으로 옮길 수 없는 내 빈약한 어휘력이 아쉬울 뿐이다.
“저건 어떻게 작동하는 거죠?”
천장에 매달려고 빛나고 있는 거대한 불빛을 가리켰다.
“광명석입니다.”
“광명석……? 그게 저렇게 밝을 수가 있어요?”
광명석은 ‘던전 자하드’에서 수요가 상당한 아이템이다. 등불과 다르게 수명이 다하지 않는 이상 항상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기에 어두운 던전을 탐색할 때 필수로 챙겨갔다.
하지만 광명석의 빛은 결국 은은할 뿐이다. 저렇게 찬란한 빛을 내뿜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아, 인간분들은 잘 모르시겠군요. 특수한 제련법을 통해 광명석은 굉장히 밝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 제련법은 아무래도 사람들은 모르는 드워프만의 특수한 제련법인 모양이다.
“저 수로는 어디서 물을 끌어오고 있는 거죠?”
“지하수가 고여있는 곳입니다.”
지하수가 있구나. 지하수의 위치는 드워프 왕국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일 테니 딱히 물어보지 않았다.
어?
“저건 뭐죠?”
무슨 공장처럼 생겼는데?
“아, 저긴 맥주 공장입니다. 저희 왕국의 맥주 맛은 상당히 좋으니,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톡 쏘는 맥주인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탄산! 그 말에 내 눈이 조금 돌아갔다.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서도 맥주를 구할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쪽은 탄산이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맥주였다.
그에 비해 드워프 왕국의 맥주는 탄산이 느껴지는 맥주인 모양이다. 이곳 생활에서 가장 그리웠던 것 중 하나가 탄산의 느낌이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맛볼 수 있게 될 줄이야.
“혹시 마음에 드시지 않으십니까?”
“아니요, 아니요. 부디 꼭 마셔보고 싶습니다.”
혹시나 공주가 오해할까 봐, 나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급하게 말했다.
“후후, 알겠습니다.”
그런 내 꼴이 제법 우스웠는지 공주님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나를 안내했다. 가는 길에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거대한 화로라던가, 곳곳에 널린 광석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공주님의 안내를 받아 걸어가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든 드워프들 역시 눈에 띄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공주님은 드워프 왕국에서 가장 거대한 저택 앞에 나를 잠시 기다리게 하고는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이곳이 소락이 사는 곳인가보다.
“아르켈님!”
잠시 후, 소락이 버선발로 저택에서 뛰어나왔다. 덕분에 주변에 있던 드워프들의 시선이 이쪽에 쏠리고 말았다.
“하아.”
“후우.”
그 모습에 공주님과 내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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