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5화 (5/99)

〈 5화 〉 2. 마을을 만들어봅시다(2)

* * *

도시 내부로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하는 도중 방해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설정상 대부분의 도시에는 마법사 길드가 있고, 이 마법사가 길드가 도시 내부로 곧바로 순간이동을 하지 못하게끔 마법진을 깔아둔다.

보안상 그렇게 한다는 설정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하고 싶으면 우리에게 돈을 내라는 암묵적인 협박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이 마법진은 대마법사 수준이 아니라면 파훼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귀찮게 시리.”

그런 건 인간의 기준이고 아르켈은 어렵지 않게 순간이동 마법을 방해하는 마법진을 파훼할 수 있었다. 그것도 마법진에 아무런 손상도 주지 않은 채.

이러면 내가 도시 내로 순간이동을 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다.

“일단 도시에는 들어는 왔는데.”

우선 필요한 건 돈인가? 인간 도시에서 뭔가를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 보물은 있지만, 무언가를 산 후 보물로 값을 치르려고 하면 수상한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럼 상회부터 들려야겠네.”

비명 숲 근처에 있는 도시는 바르크 백작의 영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르크 백작은 아라엘 왕국의 백작이니까, 그렇다면 호케트 상회를 찾으면 되겠네.

“실례하겠습니다. 혹시 호케트 상회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게임 보정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도시의 크기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크다. 그렇다면 대책 없이 걸어 다니는 것보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을 붙잡고 호케트 상회의 위치를 물어보는 게 낫다.

“호케트 상회요? 어 그러니까, 저쪽 골목길로 돌아서 쭉 걸어가시다가 광장이 나오면 오른쪽 길로 가시면 돼요.”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말해준 대로 골목길을 돌아 쭉 걸어가자 광장이 나왔다. 이 광장은 굉장히 익숙하다. 게임에서 많이 봤던 광경 중 하나였으니 당연한가?

확장팩이 나오기 전까지는 비명 숲의 던전이 최종 컨텐츠였기에 이 광장에서 시간을 자주 보냈다.

아, 감회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지. 아, 저기 있네. 겉보기에도 화려한 상호의 입구를 발견하자 걸음을 재촉했다.

“호케트 상회, 바르크 백작 영지 지점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여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호케트 상회, 여덟 왕국 중 아라엘 왕국의 상권을 꽉 쥐고 있는 상점이다. 게임에서 제법 신세를 진 상회이기도 했다. 가장 많이 이용한 상회는 아니지만,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많이 이용했다.

“방문 목적을 말씀해주시면 알맞은 장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뭘 좀 팔고 싶은데.”

“판매가 목적이시군요. 이쪽으로 와주세요.”

여직원은 2층의 접객실로 안내해준 후, 소파를 가리켰다.

“곧 지부장님께서 오실 거예요. 기다리시면서 차를 드셔주세요.”

소파에 앉자마자 여직원은 내 앞에 찻잔을 놔둔 후 밖으로 나갔다. 왜 이렇게 대접이 좋지? 게임에서는 어느 정도 거래를 한 후에야 이렇게 대접해줬던 것 같은데.

“기다리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릴리라고 합니다.”

차를 마시면서 잠시 기다리자 자신을 릴리라고 소개한 여성이 들어왔다.

신기하네.

나도 모르게 릴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홍색 머리카락에 노란색 눈동자. 분명 게임 속에서 봤던 호케트 상점 바르크 백작 영지 지점의 지부장이다.

“손님 혹시 제 얼굴에 뭔가 묻었나요?”

“아니요, 죄송합니다.”

릴리가 미인인 건 맞지만, 그것 때문에 멍하니 바라본 건 아니었다.

항상 상회의 입구에 서 있어서, 상호 작용이 오로지 물건을 사거나 팔 수 있기만 하던 NPC가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신기해서 바라보고 말았다.

“보기 드문 미인이신지라 실례를 했네요. 아르켈입니다.”

일단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던 건 실례니까 적당히 말을 해서 넘어가도록 하자.

“어머, 이런 아줌마에게 칭찬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다행스럽게도 내 칭찬에 릴리는 괘념치 않다는 듯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후우,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진짜인 건가.

“물건을 팔려고 오셨다고 들었는데요.”

“네. 잠시만요.”

릴리가 눈앞에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공간을 열어 용의 둥지에 있던 보물 중 금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을 올려놨다.

이 정도 보물이면 급처인 것을 고려해도 아라엘 금화 100개는 족히 받을 수 있을 거다.

“아, 아공간!”

아. 이거 실수한 것 같은데. 릴리를 바라보자,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가리고 입었다.

“하아.”

아공간은 대마법사 혹은 고대 제국의 유적에서 얻을 수 있는 유물을 통해서만 다룰 수 있다는 설정이다. 그런 설정인 건 알지만, 게임에서는 아공간이 딱히 그렇게 희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시작할 때부터 아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유물을 지급 받기 때문이다.

“실례를 저질렀네요. 죄송합니다.”

릴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 세계 사람들에게 아공간의 의미가 상당하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한 내 실수지.

“혹시 마법인가요?”

“아니요. 고대 유적에서 운 좋게 아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유물을 얻었습니다.”

사실 마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다. 당장에라도 아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유물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

“아. 그렇군요. 실례지만, 혹시 그 유물을 파실 생각은 없으실까요?”

상회 입장에선 엄청나게 탐이 나는 물건이긴 하겠지. 노동력 없이 무거운 물건을 옮길 수 있으니까.

게임 내에서도 상회 관련 NPC들이 주인공이 사용하는 유물을 부러워하듯이 바라보는 대사가 나온다.

“지금 쓰는 건 팔기는 좀 그렇고. 나중에 또 얻을 수 있으면 팔아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굉장히 실망한 표정이네. 표정을 보아하니 내 말을 그다지 믿지 않는 것 같다. 하긴 고대 유적은 발견하기도 힘들고,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탐색하기가 힘드니까.

뭐 구해다 주는 건 어렵지 않다. 고대 유적에 들어갈 필요도 없어.

왜냐면 그 고대 유적은 바로…….

“상태가 굉장히 좋은 금 조각상이네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생각이 끊겼다.

릴리는 어느 사이에 실망한 표정을 지워버리고, 내가 꺼낸 금 조각상을 살펴보고 있었다.

“잠시 검사를 해보겠습니다.”

릴리는 탁자 위에 여러 가지 도구를 꺼내더니 금 조각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물질이 섞이지도 않은 것 같고, 무게를 보아하니 속이 비워진 조각상도 아닌 것 같네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손에 들었던 도구를 내려놓은 릴리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왜 저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거야?

“이 정도면……. 금화 200개는 지급해드리는 게 맞겠네요.”

엥?

“200개나요?”

말이 안 되지 않나? 이 금 조각상이 값어치가 있는 물건인 건 알지만, 그 정도를 받으려면 상회에 급히 처분할 게 아니라 경매장에서 시간을 들여 팔아야 할 텐데?

내 귀가 잘못됐나.

“네.”

잘못들은 게 아니라고 확인사살을 해주시네. 릴리의 대답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상회에 물건을 팔러 올 때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경매장을 이용하지 못한 급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대부분이니까.

그래서 금화 100개만 해도 감지덕지하다 생각했는데, 정가로 물건을 사주겠다고?

“수상하다고 말하면 실례일까요?”

“그렇게 느껴지시는 게 당연합니다.”

내 말에 릴리는 그럴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희 상회는, 적어도 저는 아르켈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요. 금화 100개는 조각상의 값이고, 나머지 100개는 고대 유적을 탐색하실 수 있는 실력 좋은 모험가 분과 연을 맺기 위한 금액이라고 생각하면 싼 편이지요.”

모험가라. 하긴 릴리는 나를 모험가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구나.

막상 내가 모험가가 아니라, 그 모험가들이 목숨을 걸고 탐색하는 던전을 운영하는 입장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말이다.

그래도.

“그렇다면 좋습니다.”

돈을 더 준다는데 싫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 앞으로 저희 둘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 악수할까요?”

거부할 리가 있나. 나는 거부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릴리와 악수를 했다. 이쪽도 상회 쪽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나쁜 점은 하나도 없다.

당장 마을을 만들 때 상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반드시 나올 것 같고.

“혹시 더 필요하신 것 있으신가요?”

“아, 약이 좀 필요합니다.”

기왕 상회에 온 김에 약까지 사서 돌아가도록 하자.

“약이요? 포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 릴리는 날 모험가라고 생각하고 있지? 보통 모험가가 약을 찾으면 포션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아니요.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 두 명이랑, 괴물한테 다리를 다친 성인 남자가 바를 약이 필요해요.”

“아. 실력도 있으시면서 의롭기까지 한 모험가셨군요.”

릴리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버려두도록 하자.

릴리의 오해는 내가 모험가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대충 맞기도 할 테니까.

“그 정도는 제가 서비스로 드리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이러면 시장에서 먹을 것만 대충 사서 돌아가면 되겠네.

잠시 후 금화 200개와 약을 갈무리한 후 상회에서 나왔다.

그 후에는 근처 시장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가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음식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빵과 고기를 몇 가지 산 후 아공간에 집어넣고는 다시 캠프 쪽으로 순간이동 했다.

당연하지만,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할 때는 근처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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