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2화 (2/99)

〈 2화 〉 1. ○○보스로 전생했다(2)

* * *

본편의 중간보스 아르켈은 장담하건대 개그 캐릭터다. 주인공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그저 도망만 다니며 함정을 설치하는 게 끝.

함정을 돌파하고 다시 나아가다 보면 또 아르켈은 마주하게 되지만, 아르켈은 또 함정을 설치하고 도망친다.

“그 짓을 세 번 반복해야 아르켈과 싸울 수 있지.”

처음 아르켈과의 전투 때는 정말이지, 무지하게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였다. 함정이 원체 껄끄러워서 돌파하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으니까.

이 스트레스를 아르켈에게 풀기 위해서 이를 갈고 있었는데.

“설마 한 대만 맞고 죽을 줄 누가 알았겟냐고.”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단 한 대만 맞아도 죽는다. 심지어 파티에 레벨 1짜리 동료를 데려가서 그 동료로 때려도 죽는다.

신기한 건 아르켈을 죽인다고 해도 시체가 남기는커녕 아무런 아이템도 드랍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그런데 두 번째이자 마지막 확장팩의 최종 보스를 초기 장비로 잡을 정도로 컨텐츠가 없던 시기, 업데이트로 인해 아르켈이 히든보스로 등장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제작사에서 썩은 물들을 위해 잡는 게 굉장히 어려운 개그 캐릭터를 내는 가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없는 세상 따위 이제 어떻게 되든 좋아.)

히든보스의 등장 대사치고는 그다지 멋진 대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제 이마에 달린 뿔을 손으로 치워 버리고, 너저분한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등 뒤에 거대한 아우라를 내비치는 그 모습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으랴.

그와 동시에 하늘 위에서 시시각각 등장하는 군대가 등장함과 함께 히든 보스 ‘아르켈 소토르프’과의 전투가 시작된다.

아르켈 소토르프와 첫 전투 때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긴 해. 그걸 깨라고 만든 건가 싶어.”

이 생각뿐이었다.

최종 보스를 가볍게 잡을 스팩임에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나 싶어서 다른 썩은물들은 어떤가 싶어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 다들 나와 마찬가지인 상황.

물론 결국, 사냥에 성공하기는 했다. 무려 삼 주에 걸쳐서. 그것도 무려 세계 최초로.

내가 아르켈 소토르프 사냥에 성공하자 제작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설정을 풀기 시작했다.

아르켈은 마족이 아니라 ‘아포디미아’에 거주하고 있는 외계 종족의 왕이다.

그는 본디 지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내려왔으나 레베카에게 반해서 그녀의 부하인 아르켈을 연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제작진은 이 설정이 ‘던전 자하드’ 세계의 공식 설정이라고 못을 박았다.

“슬슬 돌아갈까.”

그러고 보니 풍경을 살피면서 날아다니느라, 마을과 던전이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확인도 못 했다.

돌아가면서 확인해봐야겠다.

* * *

“마차로 일주일 정도 걸리는 거리.”

아르켈의 기억 덕에 이 정도 거리가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도로가 있을 때 기준의 직선거리다.

당연하지만 던전과 도시 사이에 도로가 있을 리가 없고, 게다가 이 던전은 울창한 숲 중앙에 있다. 실질적으로 도시에서 마차를 타고 던전에 도착하기까지는 적어도 2주 이상이 걸린다는 뜻이다.

“확실히 멀긴 하구나.”

게임 내에서도 이 던전은 굉장히 외진 곳에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체감해보니 게임에서보다 더더욱 외진 곳이다.

정찰의 결과를 레베카에게 보고한 순간, 그녀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이러면 던전에 인간이 올 리가 없잖아.”

아까도 들었던 의문이지만, 어째서 던전에 사람이 와야 하는 거지?

오히려 발견 당하지 않는 게 이득 아닌가?

사람들에게 던전 위치가 알려진 순간, 우선 모험가가 찾아올 것이다. 마족 입장에서 이 그런 귀찮은 일을 감수할 필요가 없잖아.

“이러면 욕망의 관을 채울 길이 없는데. 하아…….”

욕망의 관?

“아.”

그 단어를 듣자마자 아르켈의 기억이 또다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본래 마족은 마계에서 살아간다.

그러면 어찌하여 마족인 레베카가 인간계에 있는가.

수백 년에 한 번씩 인간계에 수많은 던전이 생성되고 고위 마족들은 마왕에게 생성된 던전 중 하나를 배정받아 관리하고 경쟁하는 일종의 축제가 벌어지는 모양이다.

이 경쟁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던전 끝에 있는 인간의 욕망을 흡수하는 ‘욕망의 관’을 모두 채우면 된다.

심지어 던전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욕망의 관’에 쌓인 사람의 욕망이 필요하다. 그래서 레베카가 사람들이 던전에 찾아오는 것을 갈구하고 있는 거다.

‘이건 몰랐던 설정인데?’

장담하건대 제작사가 명시하지 않은 설정이었다.

애초에 마계라는 곳이 있는 줄도 몰랐기에 마족은 당연히 던전에서 살아가는 줄 알고 있었다.

욕망의 관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음은 당연하다. 애초에 게임에서는 그런 관이 나오지도 않았었으니까.

“일단 수고했어. 가서 쉬어.”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레베카가 손을 휘휘 저었다.

“네.”

우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나가자. 지금 건드렸다가는 처음 봤을 때의 히스테릭한 모습이 또 나올라.

“공개되지 않은 설정이라…….”

레베카의 방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아르켈의 기억을 곱씹는다. 마계, 마족들의 축제, 욕망의 관은 분명 내가 모르는 정보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니 당연히 내가 모르는 정보가 있는 게 당연한 건가? 그렇다고 치더라도 너무 스케일이 큰 정보이긴 하다.

게임 내에서는 신전의 명령으로 던전의 마족들을 토벌하는 게 전부였는데.

바깥에서 이 세계의 풍경을 구경하며 바람을 조금 쐰 덕분에 상쾌해졌던 머리가 다시금 아르켈의 기억 때문에 혼란스러워졌다.

“아르켈님.”

바로 그때 한 여성이 말을 걸었다.

잠깐만, 그러니까.

급히 아르켈의 기억을 떠올려본 결과 그녀가 중간보스 아르켈의 부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름이 분명…… 나디아고 늑대인간이었다. 지금은 사람 모습이지만, 본래 힘을 낼 때는 늑대인간다운 모습이 된다.

당연하지만, 게임에서는 이름도 없고 그냥 스쳐 가는 적이었다.

“왜?”

부하니까 당연히 하대하는 게 맞겠지?

“레베카님은 좀 어떠신지요. 아직도 상심 중이신가요?”

저게 상심 중인 건가? 그냥 짜증 난 상태이지.

“곧 괜찮아지실 거야.”

그래도 함부로 뒷담화를 할 수는 없으니 그냥 말을 아끼도록 하자. 나중에 뒷담화 한 게 걸려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

아니 잠깐만, 지금의 내가 봉변을 당할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없을 거 같은데.

“그럼 다행이지만요. 하필 이런 위치에 있는 던전에 배정받으셔서.”

나디아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뒷담화를 해도 봉변은 안 당하겠지만, 레베카를 향한 충성심이 높은 모양이니, 그녀를 욕하는 건 그만두도록 하자.

“어떻게든 해봐야지. 그럼 나도 쉬러 들어갈게.”

“아, 정찰 때문에 피곤하시겠군요. 쉬십시오.”

그래 쉬어야지. 몸은 피곤하지 않지만, 아르켈의 기억 때문에 혼란한 이 머릿속을 어떻게 해야겠다.

* * *

아르켈로 전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기억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덕분에 복잡하던 머릿속도 어느 정도 개운해졌다.

결론을 말하자면 마계나 던전 쪽 정보 말고는 내가 아는 던전 자하드 정보랑 일치한다. 게임과 다르게 마족 쪽의 사정이 추가된 느낌이라고 할까.

“후속작 같네.”

지금 이곳이 현실임은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던전 자하드’의 후속작인 느낌은 지울 수가 없어. 1편에서는 던전을 공략했으니, 이번에는 던전을 지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상황도 굉장히 흥미롭다.

게임 보정이 없는 레베카는 약하다. 본편의 보스답게 젊은 마족 중에서는 가장 강하지만, 두 개의 확장팩으로 추가된 고위급 마족과 비교하자면 약한 편이라고 보는 게 무방하다.

다시 말해 언제든 ‘주인공’의 표적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사람이 찾아오지 않으니 던전을 발전시키기도 열악한 환경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던전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니. ‘던전 자하드’의 썩은물로써 도전 욕구가 느껴질 수밖에 없잖아.

더군다나, 현재 목표도 던전을 운영하라고 하고 있으니, 이 상황자체가 후속작을 플레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다.

“아르켈.”

이 여자는 왜 항상 갑자기 찾아오는 걸까. 인기척이라도 내주면 참 좋겠는데.

“네.”

일단 그래도 상관이니까 참는다.

“우선 던전에 찾아오는 인간들을 위한 보상부터 구하자.”

하? 잠깐만 던전 보상은 셀프로 구해야 하는 거였어? 에바 아니야? 와, 충격적이네. 그럼 내가 게임 상 던전 내에서 얻었던 보상들은 마족들이 채워 넣었다는 뜻이잖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던전을 지켜야 하는 거 알지? 그러니까 다녀와.”

아니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그 보상이라는 걸 어디서 구해야 하는데. 머리가 아파진다.

레베카가 예뻐서 봐주는 거지 좀만 못생겼어 봐, 바로 하극상이었어.

“하아. 알겠습니다.”

던전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욕망이 필요하다. 던전의 보상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욕망으로 교환하는 거다. 하지만 처음에는 욕망 게이지가 없으니 초기 보상의 경우 직접 구해야 한다.

참고로 마계 내의 재산을 쓰는 건 공평하지 않으니 금지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초기 던전 보상조차 없을 줄은 몰랐다.

“뭐 이래.”

도대체 무슨 룰이람. 레베카가 근처에서 모습을 감추자마자 불평이 나왔다. 보상을 도저히 어떻게 구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땐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다른 누구한테 물어보는 게 낫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디아.”

나디아에게 뾰족한 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백지장도 나눠 들면 낫다고 하니까.

“아, 아르켈님. 몇 주 전에 말씀드렸던 근처에 있는 용의 둥지 말입니다만.”

응? 몇 주 전이면 그땐 내가 내가 아니라, 아르켈이던 시절인데. 물론 아르켈의 기억이 남아있는 덕에 나디아가 분명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은 있다.

그러고 보니 판타지답게 용이 있기는 하구나.

던전 자하드는 내가 아닌 필드에서도 사냥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필드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약한 괴물이었다.

당연히 용같이 강한 놈들은 설정상으로는 존재하지만, 게임 내에서는 출현하지 않아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용이라…….

“저쪽 산에 있다고 했지?”

내 물음에 나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는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혹시나 이쪽과 충돌할 위험이 있으니 이쪽에서 먼저 찾아가 보는 게 어떨까요.”

용과 마족은 적대적인 관계다. 하긴 이종족 중에서는 마족과 적대적이지 않은 종족을 찾아보기가 힘들기는 하다.

그나저나 용이라.

던전 자하드의 용은 판타지 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성이 뛰어나고 강하며 보물을 좋아한다.

물론 마족만큼 강하지는 않다. 당장 용 쪽에서 이쪽을 알아챘음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레베카 때문이겠지.

잠깐만, 용은 보물을 좋아하지?

“아니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아. 레베카님 때문에 이쪽에 딱히 참견하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전 왜 부르셨습니까? 볼 일이 있으신가요?”

“아니야, 해결됐어.”

보물이 가득한 드래곤 레어를 털도록 하자. 겸사겸사 내가 얼마나 강한지도 확인해봐야겠다.

네 덕분이야 나디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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