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붉은빛 캠퍼스 라이프 (2)
* * *
바로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걸 본적이 있는가? 아니, 그보다는 살해당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불행히도, 나는 오늘 그것을 보았다. 기절한줄 알았던 레이즈가 눈을 번뜩이며 순식간에 황시연의 목을 그어버리는 것을.
아니, '황시연이라고 추정되는 것'의 목을 그어버리는 것을.
'그것'은 황시연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 생명체인지도 모르겠는 상황.
그것의 단면에는 핏방울은 커녕, 내부조직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마치 햄 통조림을 자른것 마냥 피부 겉면과 똑같은 색의 무언가가 있을 뿐이었다.
"...? 읍! 으브읍!!"
그리고 그걸 깨달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소리지르려다 하인젤에게 입을 막힌 현설이도 눈을 부릅뜨며 무언가 웅얼거렸다.
다만 하인젤도, 레이즈도 아주 잠시 놀란 눈치를 보였을뿐, 금새 다시 경계하며 주변을 살핀다.
"푸핫...! 너... 너 알고있었어?! 황시연... 아니 이게 이런 상태라는거?"
하인젤이 가로막은 입을 풀어주니 기다렸다는 듯 현설이가 입을 연다.
"네, 당연하죠. 심박은 있는데 숨은 안쉬었는걸요?"
"아니? 그냥 꼴받게 하길래."
?? ...? ...???
전자는 하인젤이었고, 후자는 레이드였다.
아니, 그럼 레이즈 얘는 진짜 사람을 죽일뻔 한거야???
"아니,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라구. 쟤가 그냥 사람이었으면 하인젤이 막았겠지."
그렇다기엔 뒷생각 안하고 광검 뽑지 않았나...? 하지만 그렇다고 뭐라 하기엔 레이즈가 너무 당당하게 나를 보고있기도 했고 또...
[드디어 잡았다 이새끼]
너무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가 눈앞에 띄워져 있었다.
메시지창 뒤로 보이는 현설이의 충격받은 표정이 안 쓰러웠지만 지금 내겐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잡았다니? 그게 뭔소리에요!
[야, 야 닥쳐봐. 어? 이 새끼 지금 도망...]
쾅!!!
"어딜가 이새끼야."
신이 뭐라 뭐라 메시지를 보내는가 싶더니 갑자기 눈앞에 한 남성시 손으로 무언가를 짓누르는듯 나타났다.
"...와우."
"어... 음..."
그리고 나타난 남성의 모습에 나와 현설이의 말문이 막혔다.
회색정장에 흰머리. 게다가 들어도 들어도 처음듣는 듯한 목소리. 분명 신의 모습이었지만...
"후우우... 씹새야. 불만이 있으면 청원서를 넣든가. 감히 내 유희에 꼽사리를 껴?"
그의 정장은 여기저기 구겨져 있었고 군데군데 갈색의 얼룩, 커피자국같은게 있었고 그의 새하얀 머리는 푸석푸석하다 못해 여기저기 삐져나올 정도였다.
"아, 걱정하지마. 너희 눈엔 안보이겠지만, 지금 내가 잡고 있는건 젤로지아, 중등위 천사다. 지금은 영체라서 이모양이지만..."
신이 현설이를 바라보며 무언가 설명하더니 이윽고 아까 레이즈가 베어버렸던 황시연... 이라기보다는 인형이 꾸물꾸물거리더니 다른 형체를 취하기 시작한다.
빛이나는 금발(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은은하게 빛이났다.)에 현설이와 하인젤을 섞은 듯한 무표정(내가 아는 가장 예쁘고 분위기가 비슷한게 둘이었다.)
그리고는 흔히 우리가 아는 흰천으로 만든 튜닉이라는 옷에... 등에 조그맣게 삐죽튀어나온 새하얀 날개.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천사의 모습이었다.
"휴우... 자, 이제 이야기를... 읏!"
신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문을 열려했지만 그런 신의 말문을 두 광검이 가로막는다.
"하, 하인젤! 레이즈! 잠깐! 저번에 내가 설명했잖아, 나를 너희 세상으로 데려다 준 신이라고!"
내가 다급히 그녀들을 뜯어말리려 했으나 하인젤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건 감사합니다만, 본디 신이라는 놈들은 믿을게 못됩니다. 갑자기 무리한 요구를 당하거나 시험 당하는 것보단 지금 여기서 베어버리는게..."
"그래! 당장 베어버려! 아니, 지금 나를 베서 이 육체어서 꺼내줘! 그럼 내가 너에게 힘을 줄게!"
허이구? 천사라는 놈이 말하는 걸 보면 꼭 악마같다.
"2천년! 2천년이야! 무보수로 부려먹은게!! 신이 바뀌면 유희라도 시켜주거나 아니면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시켜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개뿔, 세번 바뀔동안 단 한번도 그런건 없었어!"
어이쿠... 이건 좀...
"사탄, 루시퍼가 일탈을 했을때는 이해가 안갔지. 나중에 노고를 치하해주고 영세신으로라도 승진시켜주겠지. 그때 차라리 루시퍼를 도왔어야 해! 그를 도와서 신으로 만들었다면...!"
"그럼 이스라펠이 나팔을 불고 세상이 초기화되었겠지."
흠... 솔직히 이쯤되면 누가 나쁜 놈인지 이해가 안간다.
슬쩍 고개를 돌려 다른사람의 반응을 보니 하인젤은 이거보라는 듯 한쪽 입가가 미묘하게 올라가 있고 레이즈는... 하품하는구나.
현설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다 나와 눈이 마주치니 슬쩍 눈웃음을 지어준다.
...이건 무조건 장인어른 무죄다!!! 천사련 감히 신성을 모독해?
"하인젤,레이즈! 듣지마. 저 천사가 씹련이야. 아까 너네도 봤지? 황시연의 모습으로 나한테 꼬리치는거."
내가 신의 편을 들자 천사의 표정이 한층 더 험악해진다.
"...헹! 어차피 소용없어. 나하나 소멸시키겠다고? 나도 바라는바야? 이제 일 그만두고 좋네! 근데 그거 알아? 나같은 불만 가진게 한둘 같아?! 인원은 수억인데, 휴가는 한번에 한두명 유희시켜주는게 끝이고. 하다 못해서 인간놈들에게 시련 한두개 큰거 터트리던가! 맨날 얘는 천국 얘는 지옥. 얘는 다음생에 이거로 환생. 지겹다고!!"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보니 신계도 어지간히 블랙컴퍼니인것 같았다.
과연 신은 어떤 반응일지 보니,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하! 씹련아 니들 수억명이 결정한거 최종결제하는게 나 한명이다. 신 된지 이제 고작 백여년인데 씨발 전임자는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하고 소멸했지. 내가 몸 나누면서 같은시간동안 몇배는 고생했어 임마. 유희? 꼬우면 휴가 내던가. 누구는 시발 이거 개선못해서 안하는 줄 알아? 씨발 내가 뭘 할수있는지 알려줄 새끼가 그냥사라져서 혼자서 습득하는데 업무환경 개선은 니미. 니가 소멸후 세계로 가서 먼저간 신한테 해달라고 하던가!"
워우... 이거 둘다 고통받는데...
보통 회사는 한쪽이 고통받으면 다른쪽은 히히덕거려야 될텐데 이 신계란 곳은 왜 둘다 고통받는 것인가...
"야 임마! 어? 악마새끼들은 시발 휴가내고 잘만 인간유혹해대면서 놀더만 니는 왜 안하는데? 내가 논다고 지랄하냐? 선은지켜야지 임마! 선은!! 어딜 신님 노는판에 끼어들어!"
어느새 나만 이 광경을 꿀잼이라 생각한게 아닌지 내 여성진이 슬슬 내곁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역시 믿을만한 놈들이 아닙니다."
하인젤이 은근슬쩍 자기가 맞다면서 한마디 건내는데 슬프게도 반박할수가 없었다.
콕 콕
그 와중에 현설이는 내 등을 콕 콕 찌르고는 모르는 척하는 유치한 장난을 치고있다.
"아니, 그럼 천사는 착하다는 프레임이나 씌우지 말던가!! 인간새끼들 우리보고 '헠 헠 저 순수해 보이는 모습봐... 더럽히고 싶다'면서 꼬추를 껄덕거리는데 그것들 시발 심판시키고 싶은데 꼴에 용기는 없어서 그런지 죄 지은것도 없어서 심판도 못하고. 그나마 착한애 도와주면 시발 세금이니, 대상자 제외 되었다느니 바로 나락보내고!! 이래서 천사 해먹겠냐고!"
"그걸 내가 씌웠냐? 내가 씌웠어?!! 불만 있으면 느그 가브리엘 이사나 메타트론 전무, 미카엘 이사한테 따지던가!! 니들이 이미지 만들어놓고 지랄이야! 꼬우면 타천해서 악마하던가!"
"거긴 너무 덥거나 너무 춥거나 둘중 하나잖아!! 그리고 시발 중2병 걸리거나 발정나서 간지 난답시고 이상한 껍데기랑 송곳니 단 새끼들이나 안입느니만 못한 옷 입고다니는 새끼들 투성이고!!"
"그럼 니가 선택한거네!! 시발 그럼 그냥 그렇게 살아! 니가 괜히 용기가 안나서 그러는 거면서!!"
"그래서 용기냈더니 니가 나 잡으러 왔자나!!! 이새끼 죽이거나 타락시킨것도 아니고 고작 그쪽으로 가서 등장인물 한명 회귀시킨건데!"
어이쿠... 갑자기 절 끌어들이지 마셨으면...
천사가 나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내게 삿대질하는게 맘에 안들었는지 하인젤이 인상을 찌푸리지만 내가 다급히 손을 잡아주며 말리자 금새 인상이 펴진다.
이 개꿀잼 말싸움을 포기할 수는 없지.
그 뒤로도 신과 천사의 말싸움은 계속 되었다. 근데 말이 말싸움이지, 저건 그냥 지들 ㅈ같았던거 말하는 것에 불과했다.
"히끄윽...! 내가...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야이씨... 또 갑자기 왜 울어! 내가 임마, 말은 이래도 니네 고생하는거 다 알고... 어? 복무환경 개선해 줄려고 그러는데..."
그러더니 또 갑자기 눈물을 짜내면서 신파극을 찍으려 한다.
또르르륵... 티잉!
또르르륵... 찰팍!
...그리고 신과 천사의 눈물을 현설이가 컵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히히... 아니 뭐... 신이나 천사같은 신성한 존재의 눈물은 막 각성재료거나 레어템 만드는데 쓰잖아..."
"..."
그런 현설이의 말에 하인젤도 나도, 레이즈ㄷ...
저벅저벅
레이즈...? 너는 또 왜...
"언니가 신쪽 맡아. 내가 천사쪽 맡을게."
...그 둘의 행동에 나도, 하인젤ㄷ...
"책에서 봤는데 신의 눈물이 정력에 좋대."
"...크, 크흠... 이런데는 쓸모가 있군요."
아니, 애들아? 너네 항상 침대에서 뿅가 죽잖아 근데 뭔 정력이야...
슬쩍 현설이를 보니, 주동자는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셋의 행동에 나 혼자만 어이가 가출해 있었다.
아니 아무리 저 두 신성이 지들끼리 신파극 찍는다고 정신 팔려있다해도 그러고 있으면...
"흐어어어엉...! 제가, 제가 미아내요 흐그윽... 흐윽..."
"아냐! 내가, 내가 미안해... 하루 빨리 쟤를 찾아서 힘을 회복해야 됬는데... 크응!"
눈치채기는 무슨, 초딩식 사과하기를 시전하고 있었다.
아니... 사람 다섯이 모이면 그중 한명이 병x이라는 한 닌자의 명언이 생각난다.
근데 여기는 왜 정상인이 나한명...
집단에서 한명만이 다른행동을 한다면 그새끼가 비정상이다.
근데 왜 갑자기 이런 말이 생각이 날까. 분명 나는 정상인데. 아니, 나는 정상이라니까??
...오늘따라 나를 놀리듯 미소짓는 현설이가 더욱 얄미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