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핑크빛 캠퍼스 라이프 (4)
* * *
기본적으로 현설이의 세계는 내가 살고있는 이 세계에 만약이라는 게 섞인 평행세계에 가깝다. 기본적인 문화, 정치, 등이 비슷비슷하단 말이었다.
하지만 하인젤과 레이즈는 아니다. 그녀들의 세상은 판타지가 있는, 말 그대로 다른 차원이었다. 지형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이게 무슨소리냐 하면…
“…? 왜 갑자기 물구나무서기를 하시는 거죠?”
그녀들이 그랜절이라는 걸 모른다는 뜻이었다. 황시연이 그랜절을 한건 박수를 쳐줄만하다. 그랜절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걸 진짜로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것도 아는 사람 앞에서 해야 소용이 있지, 그랜절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하면 그냥 물구나무서기일 뿐이다.
“으…응? 아니, 그… 그럼 제발 저희 펜싱부에 들어와 주세요…!”
하인젤이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말하자 황시연이 조심히 다시 땅에 착지해 레이즈와 하인젤의 반응을 살폈다. 호구를 쓰고 있었기에 표정을 볼수는 없을테지만, 우리 메이드양들은 만화에서 넘어온 사람들이다.
갸웃?
자신의 생각을 몸으로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라는 거였다.
“…? 그게 무슨소리하는거죠?”
그리고 그녀들의 세상엔 ‘부’나 ‘동아리’라는 개념은 없다. 우리가 며칠 안남은 방학간 그녀들에게 가르친 건 간단한 사회적 규칙과 이 ‘대학’이라는 곳이 ‘아카데미’와 비슷한 교육기관이라는 것.
그것은 곧 그녀들이 현재 눈앞의 저 황시연이라는 사람이 왜 그녀들 앞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지, 또 그녀들에게 무엇을 부탁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황시연은 이 반응을 다르게 알아들었는지, 자신의 체면따윈 생각하지 않고, 그녀들의 바짓가랑이까지 잡아가며 부탁하기 시작한다.
“제발…! 제발 부탁해… 아니, 부탁드려요! 제가 족보는 물론이고 조별과제 버스도 태워드릴테니까…!”
음… 쟤들 저것도 못 알아들을텐데… 보이진 않지만, 저 호구뒤에 둘의 표정이 어리둥절할것이 다 보였다.
‘이쯤에서 도와줘야겠지?’
뭐야? 갑자기 쟤 왜 저렇게 메달리는거지?
이 공간안에 우리밖에 없는 것도 아니었고, 이제 슬슬 사람들이 메달리는 황시연을 보고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음, 하인젤? 쟤네가 얘기하는 건 그… 기사단? 그런거라고 보면 될걸…?”
다른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기사단이라는 설명이 그나마 그녀들에게 알기 쉬운 말이었다.
“그럼 싫어. 수현이도아니고 다른사람의 기사단이라니?”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 아니라 수현선배가 아닌 다른사람에게 소속되는건 원치 않습니다.”
물론 그 설명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지만.
“에…? 주인님…? 뭐야, 둘이 무슨…”
그리고 당연히도 하인젤의 다리에 매달려있다 시피한 황시연이 이 대화를 못 들었을거란 기대또한 쓸데없는것이었다.
“아하하… 아니야 아니, 그… 벌칙게임? 어제 그런거했는데 아직 그게 입에 붙었나봐.”
다급히 현설이가 보충설명을 해보지만, 황시연은 예의 그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그리곤 아무말도 없이, 간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만 보고 있는다. 마치 내가 여기의 결정권자인 걸 안다는 듯이.
그러고 보면 얘가 참 눈치가 빠르긴 했어? 어디서 밉보이지도 않고, 적절히 빠질때도 잘 알아서 호구취급 당하지도 않고.
만일 내가 얘들한테 동아리를 권유해봤자 현설이라면 몰라도, 하인젤과 레이즈는 동아리보다 나를 따라올게 뻔히 보였다. 현설이라 하더라도 일단 우선으로 나랑 같이 다니는 걸 고르겠지.그렇다는 건 결국 하인젤과 레이즈를 동아리 활동을 하게 하려면 나도 같이 활동해야 된다는 건데…
“…”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황시연은 건너뛰고, 하인젤과 레이즈를 바라보니 그녀들의 숨이 미약하지만, 숨을 가쁘게 쉬고 있다는게 보였다. 그리고 보통 그녀들이 숨을 가쁘게 쉴땐 그녀들이무척 즐기고 있을때 외엔 없었다. 침대위에서든, 자기들끼리 실컷 놀았던.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는 하인젤과 레이즈가 이 동아리 활동으로 재미를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치만 나도 뭔가 얻는게 있어야지.’
스포츠의 즐거움? 그런것도 좋지만, 그동안 그녀들이랑 뒹구는게 더 재밌다. 뭐, 그래도 평소 자신리 원하는 걸 잘 말하지 않는 메이드 2인방이라 되도록이면 동아리 활동을 하게 해줄 생각이다.
‘다만 황시연이 제시한 무임승차권은 나도 솔깃하단 말이지’
내가 황시연과 눈싸움을 하다가 고개를 한번 까닥해며 뭔가 제시해 보라고 했다. 눈치가 빠른 만큼 내가 뭔소리를 하는진 알겠지.
“…무임승차권+ 아는 언니 소개.”
…어? 아니, 나는 승차권만 있으면 되는데? 아니, 우리 관계 대충 눈치챈거 아니었어? 근데 왜 갑자기 여자소개…
당연히도 현설이의 눈빛이 짜게 식는다.
‘데려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늘릴려고?’
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 했다. 하인젤과 레이즈는 뭐, 말할것도 없었다.
호구를 쓴채 나를 가만히 주시하는데, 원래도 이럴땐 무표정인 그녀들이 호구때문에 아예 얼굴이 안보이니 더 무서웠다.
“아니, 그… 여자 소개는 필요없고, 버스 탑승권. 그거에 내가 들어간다.”
뭐, 그렇게 쳐다볼것도 없이 이제와선 내 여자들말고는 눈에 차지 않는다. 남들이 예쁘다고 한들, 현설이와 두 메이드앞에선 행인1 과동기1 일 뿐이다.
“…아니, 선배도 좋은데, 이 후배님들도…”
“그럼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다만 수현선배의 직속부대로 넣어주십시오.”
“나도요.”
뭐, 당당히 내가 들어간다고 하자 내가아닌 다른사람이 목표이던 황시연이 어이없어 하지만, 하인젤과 레이즈가 연이어 참가의사를 밝히니 말이 쏘옥 들어갔다.
“…그, 그럼 나도…?”
+현설이까지. 현설이의 전력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이 없어서 폐부위기가 될뻔 했으니, 한명한명이 소중할 것이다.
“어…? 어? 진짜? 진짜지?? 잠깐, 잠깐만 기다려! 내가 언ㄴ… 아니, 감독님한테 연락하고 올게!”
우리 넷이 전부 참가 의사를 밝히니 눈에 띄게 혈색이 돈 황시연이 내…아니, 하인젤과 레이즈의 손을 여기 있으라는 듯이 한번 꽉 잡았다 놓으며 도도도 체육관을 뛰쳐나갔다.
“…저기, 혹시 다른 슾…”
“아니요, 안합니다.”
남겨진 우리, 아니 정확히는 하인젤과 레이즈에게 다른 동아리들의 악수 요청이 이어졌지만 그녀들은 깔끔하게 무시하고는 다시 내 뒤로와 숨었다.
“…”
“…뭐요.”
뭐, 왜요. 팍씨.
그러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내게 꽂혔지만 남의 여자들에게 함부로 말을 거는게 기분 좋을리가 없었기에 퉁명스레 대답해주니 개념은 있는지 다시 들러붙지는 않고, 하던 연습을 계속하기 시작한다.
“…주인님, 그 들고 계신 검좀 빌려주실수 있을까요?”
우리의 두 메이드가 확실히 신나긴 했나보다. 자기 검이 부러지니, 내가 들고있던 검을 가져가서 다시 자기들끼리 대련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소리에 다시한번 슬금슬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
.
.
채앵! 채채챙!! 채앵… 쨍그랑!
“…황사원! 점심먹고 결제내역서 부탁해!”
“네… 네엣!”
몰래 위튜브에서 갑자기 뜨는 동영상을 보고 있던 여성이 상석에 앉은 부장의 외침에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을 껐다.
‘하… 우리 동아리에도 저런애들이 들어왔으면… 일할 의욕도 날텐데…’
부장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며 생각했다.
그녀의 이름은 황소연.
기현대 펜싱부 소속이었으며, 프로 펜싱선수를 꿈꾸었으나, 매번 선발대회에서 항상 아쉽게 떨어지기에 그 꿈을 접고, 취업준비에 전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펜싱에 대한 미련을 버릴수가 없어서, 자신의 사비를 들여가며 동아리에 후원과 코칭을 봐주고 있었다. 만약 동아리만 하고있지 않았다면, 이런회사는 진작에 때려쳤을 것이다.
“하하하, 황사원~ 오늘 시간되나?”
애시당초, 사람들이 좆소~ 좆소~ 하는데는 이유가 있는법이었다. 대학생때는 그다지 꾸미는데에 관심도 없고, 펜싱에만 집중해 티가 나지 않았지만, 회사에 나온다고 기본적인 예의라며 간단한 화장만 했을 뿐인데도, 그녀의 미모는 한창 빛을내고 있었다.
게다가 현재도 운동을 이어가기에 저절로 잘 관리되는 몸매까지. 그녀는 너무나도 눈에띄는 꽃이었다.
“아니요~ 오늘도 끝나고 연습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동아리부원이 없어서 폐부될 위기라고 동생인 황시연이 하소연 하는 것을 늘 보는 그녀다. 그렇기에 거짓말을 하는 지금도 아까 그 영상에서 보았던, 13분간 서로 단 일격도 허용하지 않은 두 사람이 우리 동아리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그냥 일 때려치고 다시 커리어나 쌓을까…?’
만약, 올해 동아리가 폐지된다면, 그녀는 이제 꿈을 놓아줄 생각까지 하고있었다.
그녀에게 동생, 황시연의 전화가 올때까지는.
월급의 절반을 동아리에 쏟아붓기에, 도시락을 먹는 그녀에게 걸려온 한통.
언니!!! 대박이야 대박! 우리 드디어 비행기 탈수도 있어!!
요즘 비행기는 만원이면 탄다. 그런데 왜 저리 호들갑을 떨까.
“하아… 시연아… 사람이 알아듣게 말을…”
영상!! 영상봤어? 그 애들!! 우리 펜싱부 들어온대!!
영상? 영상은 무슨… 황소연이 뭔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표정이 찡그러지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눈썹이 크게 떠진다.
그래!! 13분간 싸우는 애들!! 우리 1등 먹을수 있다고 언니이!!
탁 타다닥…
그 소리에 황소연은 아직 할부가 9개월이나 남은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