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하인젤 (7)
* * *
아버지가, 아니 백작이 그냥 툭 하고 던진 조그만 조약돌 같은 말은 내게 있어선 대포 한알을 쏘는 것과는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왜냐면 저 여자들이 나를 언어 그대로 딱 죽지않을만큼 몰아붙여 댔으니까.
“...조금 더 집중하십시오, 자꾸 검이 툭 하고 아래를 향하지 않습니까.”
아까와는 달랐다. 아까는 혹 메이드복이 구겨질까 싶어서 저 여자들이 움직임을 크게 갖지 않았다면, 지금은 달랐다, 그녀들의 옷이 구겨지던, 먼지가 묻던, 그녀들은 개의치 않고 나를 압박해 왔다.
탁! 타악!
그것도 둘이 동시에. 심지어 이제는 봐주지도 않았다. 반격만을 지르던 전과는 달리 착실하게 유효타를 먹이며 내 맷집을 길러주고 있었다.
도대체 왜지? 그냥 나를 줘패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왜 나한테 화풀이를 하려는거야.
말했다시피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내가 그 알겠다고 하긴 했지만… 근데 그건 내가 아니었단 말이다.
‘아들, 그러고 보니 요즘 연애는 어떻게 되어가니?’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연애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
‘?? 그럼 그 두 여성은… 아아, 아니다 그럼 약혼은 생각 있느냐?’
‘예, 뭐… 아버지가 바라신다면야.’
‘흐음~ 그래 뭐… 고생 좀 해봐라.’
진짜 시부럴 이 멍청한 나 같으니라고. 아니, 그 스킵하는 동안의 나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거지? 머리가 없나?
아무튼 나는 결국 내가 싸지른 똥을 치우기 위해 내 몸으로 그걸 갚고 있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나는 시발 여기서 딱히 하인젤… 아니, 하인젤과 레이즈 말고는 만날 생각이 없는데.’
원래는 하인젤 하나만을 바라보고 들어온 세상이었지만, 그렇다고 레이즈를 버릴수는 없었다. 둘이 죽도 서로 잘 맞고 또... 삼파전이 아니라 1:1 구도가 되어버리면 현설이가 버틸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내가 돌아가서는 당분간 이것저것 케어해주면서 조정할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심해야지.
[그… 미안해? 아니, 내가 그 그러려던 건 아닌데… 하하하…]
품속의 핸드폰이 지잉지잉거리지만 그걸 확인할 새가 있을리가 없었다.
빠악!
“컥...! 커허어억…”
아, 한눈 팔아버렸다. 그 때문에 나는 내 겨드랑이 밑을 노리고 들어오는 충분히 막아낼수 있는 타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댓가는 내 육체가 절실히 치르고 있었다. 어우씨… 이게 그 리버 샷인가 뭔가 하는 건가…? 진짜 조지게 아프네……
그래도 자비심인건지, 용서한건지는 몰라도, 막상 나를 이렇게 만든 하인젤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쓰러지는 나를 받아주었다.
“주인님…! 그, 죄송해요…! 당연히 막으실 줄 알고 한 공격이었는데, 그…”
“으휴… 너는 진짜 왜 화풀이를 주인님한테 해? 약혼은 주인님도 어쩔수 없는 거겠지. 너도 알고 있었잖아? 우리랑 주인님이 어떤 관계인지.”
하인젤의 사과에 레이즈가 비아냥대며 하인젤을 질책한다. 근데, 때린건 니가 더 많거든…? 은근슬쩍 막을수 없는 공격을 한 것도 너고.
그래도 레이즈의 일갈에 하인젤이 다소 누그러진 모습을 보여줬다.
“…언니, 꼭 이런 때에 그런 말을 해야 됐나요. 물론 저도 저희 처지는 알지만…”
“알렉님~ 나는 첩이나 애인이라도 상관없어요~ 그냥 알렉님이 나한테 관심만 주면 난 그걸로도 버틸수 있어.”
[거짓말… 저거 거짓말이다 이놈아! 빨리 정신차려어어! 너 그러다 쟤들한테 잡아먹혀!]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이 울려대는게 느껴지지만, 지금은 그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저도 그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또 기왕이면 주인님의 온전한 관심을 받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순간 직감이 들었다. 지금이 기회라고.
“너희… 너희가 어때서, 이렇게 귀엽고 예쁜애들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한테 과분한 사람들인걸.”
멋지게 말하고 싶었지만, 고통에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또박또박 말하는 건 성공했으니 괜찮겠지?
“하으으… 알렉님 또 말을 그렇게 해버리면...”
“주인님…”
역시나 그녀들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거짓말로 너희만을 바라보겠다는 약속은 못할지도 몰라… 그래도, 편애하진 않을거야.”
그러고 나서야 그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기 시작한다. 엥 뭐지? 왜 놀라고 그러는 거지?
“…진짜 사람 마음을 마음대로 흔드는 데는 뭐 있으시군요…”
“하으으으… 알렉님 이거 고백… 고백 맞지?”
내 말에 언제나 냉담해보였던 하인젤의 표정이 아주 살짝이지만 놀라움이 깃들었다, 이내 반달로 휜 눈에 이게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눈빛이 반짝거리며 눈에서 애정이 뚝뚝 흐르기 시작했다. 레이즈는… 뭐랄까,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이었다.
설마 내가 그렇게 애정표현을 자주 안해줬던건가? 나는 애정표현을 꽤 자주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 기억속의 나는 그녀들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듯 하면서도 항상 무언가 벽을 두고 거리를 두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뭐지? 약간 고자 같이 구는 저 나는? 저거 진짜 그냥 만화속의 알렉 골드르크인데…’
아, 설마 스킵하는 동안 자동 ai같이 원래 이 세상의 골드르크를 불러오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처럼 그녀들이 극단적으로 된 것도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어릴때는 그렇게 귀여워해주고, 애정표현도 해주던 내가 갑자기 어느순간 냉담해지게 되면 당황스럽겠지, 근데 또 그렇다고 왜 그러냐고 물으면 원래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그리 유별나게구냐고 버려질까봐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오히려 견제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관계를 회복해 봐야지. 결국 내 최종목표는 이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그런게 아니라 하인젤을 살리고 맺어져 행복해 지는거니까.
“응, 미안. 내가 그동안 너무 헷갈리게 했지?”
그래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레이즈의 말에 긍정하며 그녀들의 머리를 한번 스윽 쓰다듬어주니 그녀들의 얼굴이 터질 듯 붉게 물들어지기 시작했다.
“읏… 으으… 그, 갑자기 그렇게 말하시면…”
“알레에엑♡!!”
하인젤은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면, 레이즈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자… 잠깐 레이즈 이거 그 숨막히는…
위잉, 위이잉!
다시한번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을 느끼며 나는 눈이 서서히 감기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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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젤과 레이즈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흔한 빈민가 출신의 소녀들이었다. 비록 두 사람의 부모가 같지는 않았지만... 다만 특이하고 비극적인 공통점이라면 갓난아이때부터 그것을 알아볼수 있을만큼 용모가 뛰어났다는 점?
그걸 알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돈에 눈이 먼건지 그녀들의 부모는 그녀들이 두살이 채 되기전에 그녀들을 팔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나아지긴 커녕 며칠 안 가 한쪽은 돈에 눈이 먼 이웃에 의해 살해당하고 한쪽은 술과 도박으로 전부 탕진하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 이야기의 주체는 그녀들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아, 또 다른 비극이라면 그녀들을 사간 사람이 되도 않는 미신에 열광한 미치광이였다는 점을 까먹었군. 아무튼 그녀들은 그 '미치광이나 믿을만한 미신'에 의해 산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무려 3년간 준비의식을 받아야만 했다. 뭐, 준비의식이란건 사실 별게 없었다. 소량의 마석을 가루내어 섞인 식사를 먹고, 물이 아닌 마나포션에다가 목욕을 하고.
그야말로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의식이었지만, 불행히도 그 미치광이는 돈이 꽤 많았다. 뭐, 정말 별거 없는 의식이었다. 다만 그녀들이 매번 목이 타는듯한 갈증에 울어댈 때 미치광이가 때리고 온몸이 불타는듯한 고통에 몸을 긁어대는 소리가 듣기 싫어 손목과 발목을 구속한것만 제한다면 정말 별거 없었다. 누구나 다 견딜수 있는거 아닌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들은 그걸 견뎠다. 다만 과도한 마나의 탓인지 그녀들의 윤이나던 머리가 푸석푸석한 잿빛이 되긴했지만... 적어도 몸의 일부가 마나석으로 결정화 되진 않지 않았는가? 뭐, 마침 골드르크라는 성을 가진 귀족이 새로 영지에 취임한 기념으로 빈민가에 만연한 범죄들을 색출하지 않았다면 이미 당신의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나게 해주는 마나석의 일부가 되어있을지도?
아무튼 그녀들은 다행히 그전에 해방될 수 있었다. 뭐, 또 다른 불행이라면 귀족이 뒷처리마저 완벽하진 않았기에 너무 과한 그녀들의 미모에 때문에 흘러흘러 노예상인에게 넘어간 것? 그래도 다행이란 건 그녀들의 미모덕에 고급상품 취급을 받으며 자랐다는 점이 있겠다. 뭐, 그래도 언어폭력까지 막아주진 않았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녀들의 정신은 이미 닳을대로 닳아있었고, 유아기의 고문의 영향인지 그녀들은 식사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몸이었다. 그렇기에 점점 그 빛을 잃어가는 그녀들을 향한 노예상인의 분노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이미 육체의 고통엔 익숙했다. 뭐, 이미 마나로 단련된 육체이기에 맷집도 좋기도 했고. 이거 참 다행아닌가? 하하하. 아, 재미없다고?
흠흠, 어찌되었든 그래서 노예들 사이에선 잘난척한다고 따돌림당하고 관리자들에게선 희롱과 폭력이 오갔다. 그렇기에 결국 그녀들은 의지할 곳 이라곤 같은 잿빛과 마나로 단련된 육체를 가진 서로밖엔 없었다. 피가 섞이지 않으면 어떤가? 어차피 기억도 안나는데. 그래서 그나마 정신력이 강한쪽은 언니가. 위로 받는 쪽은 동생이 되었다. 뭐, 실상은 좀 다르지만. 강한척하는 거랑 실제로 강한거랑은 다르지 않은가? 헹, 정신력 강한거로 치면 동생쪽이 '언니'인데 말이야 동생이 좀 똑똑하구만. 언니가 삶의 버팀목을 자신으로 삼게 만들다니.
또 다시 별다를 것 없는 고통스럽고 배고픈 나날이 지나고 별다를 것 없는 새로운 날이 찾아왔다. 아! 한가지 다른점이라면 그녀들을 구해주고 다시 구렁텅이로 던져지게 두었던 골드르크가문의 도련님이 방문했다는 것? 그거말고는... 음, 늘 똑같았다. 아, 도련님에게 판매되고 나선 어떤 고통이 생길까 살짝 두려움에 떨었다는 게 아주 약간 다르긴 했지만.
아니지, 좀 많이 달랐다. 도련님이란 사람은 그녀들을 때리지도, 희롱하지도, 따돌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친구가 되고싶다며 다가왔다. 친구가 뭐지? 아, 전에 비슷한 연배의 노예가 친구라면서 뭔가 이것저것 시키긴 했는데 그게 친구인가? 그거 생각보다 힘들던데... 라는 생각을 하는 뭐, 이런 지루한 일상이 오갔다면 좀 다르긴 하지.
그 후론 지루한 이야기의 연속이지. 항상 따듯하게 대하는 도련님, 그에 조금씩 마음을 여는 노예들. 흔한 클리셰 아닌가? 근데 이게 또 잘 먹히긴 해. 감동적이고.
아무튼 그러다가 어느 날 동생이 언니에게 상담을 해왔지. 잘 들어, 이게 좀 재미있는 부분이니까. 저택의 메이드들에게 귀여움 받으며 서서히 글을 익혀가던 동생이 어느날 책을 가져왔는데, 그게 꽤나 심금을 울리는 사랑이야기더군. 그, 신분차이를 이기고 서로 노력하는... 저녁 드라마인가? 그래, 비슷한 내용이지만... 조금 다른 게 이 소설은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그냥 포기해.
그리고 남주인공이 다른 귀족의 딸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아련하게 바라보지만 남주가 행복하다면 되었다고 생각하지. 뭐, 여주가 ntr취향인가? 아무튼 그걸 가져와선 언니에게 말하는거야.
'언니. 나 혹시 지금 사랑을하는 게 아닐까? 보면 같이 있으면 항상 즐겁고 계속 보고 싶다는데 내가 딱 그래. 근데 이 책보다 우린 신분차이가 더 많이 나는데... 어떡하지? 혹시 이렇게 이루어지지 못하는게 사랑인거야?'
웃긴게 뭔지 알아? 이걸 대답해준게 언니가 아니라 지나가는 메이드였다는거지.
'어머, 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냥 그 남자가 나만 바라보게 꽉 붙잡으면 되지. 다른여자들은 볼 생각도 안 들게 해!'
물론 비유적이고 또 여러 다른 뜻이 함축된 말이지만... 얘네가 뭘 알겠니? 그래서 골 때리게도 그 말대로 해버려. 집안에 다른 또래 여자아이가 찾아오면 몰래 말썽을 일으켜서 남주가 그 여자아이와 마주하게 하지 못한다던지. 아니면 뭐... 아주 살짝 자신의 경험들을 응용해 겁을 준다던지?
아, 감히 노예가 귀족이나 평민에게 겁을 주는데 어떻게 처벌받지 않았냐고? 간단해!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터질때쯔음 소드마스터가 되면 되는거야! 세상 참 쉽지? 그렇게 조금씩 암이 퍼져나가는 거지.
어때? 여기까지가 대충 내가 사자심왕 이야기의 인기 캐릭터 하인젤의 배경을 생각한건데. 물론 나중에 연재하면서 이것저것 바뀌긴 했지만... 아무튼 기본 배경은 이렇다고 꽤 잘 짜여지지 않았어?
...어? 이제 간다고? 어어... 그래 잘가 그... 누구지? 어라? 당신 누구시죠...?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했지...? 저기요! 방금 저기 나간 저 양복입고 좀 잘생긴 아저씨 어디로 갔죠? 네? 그런 사람 없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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