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하인젤 (5)
* * *
싸늘하다... 현설이의 문자가 날아와 꽂힌다...
이현설:수현아?? 왜 계속 답이없어...?
현설이의 지속된 메시지에 내 정신이 멍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이거 분명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라 말해야 되지...?
나:아니야, 현설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야. 난 그런 변태가 아니라고.
어라? 뭔가 보내고 나니까 더 이상한 거 같은 느낌인데...?
이현설: ...그런 변태? 그럼 걔들이 성인이 될때까지 거기 있겠다는 거야? 나보고 외로워서 죽어버리라고?
그녀는 토끼라도 되는걸까? 그녀가 외로워서 죽어버리겠다며 되도 않는 협박을 하지만 중요한 건 그 협박이 내게 꽤나 잘 먹힌다는거였다.
이현설: 그거 알아? 나 오늘 잠깐 밖으로 나갔는데 남자들이 전부 다 나 쳐다보는거 있지?
...게다가 질투심 유발 작전까지. 그녀의 의도가 뻔히 보였지만 그게 또 무척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주인님 뭘 그리 재밌게 보시는 건가요...!”
그리고 당연히도 그런 나를 보고 레이즈와 하인젤이 추궁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었다.
“응? 아니, 그냥 너희가 예쁘게 나온 사진을 보니까 절로 웃음이 나오네.”
이것도 거짓은 아니니 뭐... 괜찮겠지? 다행히도 그녀들은 내말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 할 뿐 더는 추궁해 오지 않았다. 역시 아직은 어린애라니까.
“흠흠, 뭐... 그... 아셨으면 되셨습니다.”
그녀들이 의심을 지우고 연무장을 정리하는 틈을 타 나는 재빨리 나머지 문자를 보냈다.
나:미안 미안 ㅎㅎ... 대신 내가 매일은 못 하더라도 자주 연락할게. 사랑해♡
이런 문자를 보낸 뒤에 재빨리 핸드폰을 다시금 주머니에 숨기며 이후 있을 가정교육을 들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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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게 대학교 적인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중세의 특성상, 나같은 어린애들은 주로 부모에게 교육을 받는게 주된 교육이었다. 귀족같은 경우는 부모가 시간을 내는 것 보다 전담 교사를 선임하는게 더 나은 질의 교육을 행할 수 있고, 또 부모는 부모대로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게 더욱 효율적이기에 그렇게 한다.
"...레이즈? 14+12가 어떻게 2가 되는건지 다시 설명해 주겠니?"
다만 나는 백작에게 떼...가 아닌 요청을 해서 하인젤과 레이즈와 같이 교육을 듣는데, 다행인 점은 교사로 오게 된 여 아카데미 생이 신분에 막 엄격하거나 해서 하인젤과 레이즈를 배척하지 않는다는 거였고, 불행인 점은 그 교사가 여자였다는 거였다.
"음... 싫어요! 나는 알렉님이랑만 이야기할 건데요."
"하하... 그럼 도련님? 한번 물어봐 주시겠어요...?"
이렇게 대놓고 여교사에게 날을 세우며 꼬장을 부리고, 그거에 지쳐 교사가 내게 말을 걸어오면 눈총을 보내기 일수였다. 이상하다... 멜이랑은 꽤 사이좋게 지내던 것 같은데. 그냥 쟤네 교육은 멜에게 맡기는 건 어떨까 생각하다가도...
'으아아앗...! 죄송해요! 꽃병 깨뜨렸어요오오... , 으아악! 버... 벌레! , 어라...? 이게 왜 이렇게 되는거지?'
생각만 해도 스쳐 지나가는 멜의 만행들에 과연 그녀들의 교육을 맡겨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언니, 그건 빼기라구요. 더하기는 두개를 합치는 개념이라고요."
다행히 하인젤이 레이즈를 잘 챙겨줘서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그러고 나면 항상 나를 주시하고는 뭔가를 요구한다는 거였다.
"와아~ 하인젤, 참 잘했..."
탁!
그리고 그런 하인젤을 칭찬하려 나 대신 여교사가 손을 뻗으니 하인젤이 그녀를 째려보며 손을 탁 쳐내고는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
"..."
아니 뭐, 어쩌라는 거야... 내가 계속 가만히 있으니 자기가 알아서 손을 뻗어 내 손을 잡고는 자기 머리로 가져간다.
스윽 스윽 스윽.
그러고 나면 이제 레이즈쪽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게 시작된다.
"하아..."
내가 한숨을 쉬고 그냥 빨리 빨리 넘어가려고 자발적으로 레이즈를 쓰다듬으면 레이즈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인젤에게 자랑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하하... 그럼 이제 다음 문제인..."
이 세계에서도 교사란 극한 직업인 것 같았다.
아, 이쯤되면 그냥 따로 수업을 듣는게 낫지 않냐고? 왜 안해봤겠는가, 저번에 그랬더니 얘들이 그쪽 수업은 들으러 안가고 내 수업시간에 계속 난입해 들어와 의미가 없었다. 신분교육으로 호되게 혼쭐을 내주려고 해도 나와 백작의 앞에서는 말 잘 듣는 고양이이였으니 뭐... 그래도 한번 혼낸 게 이 정도였다. 전에는 어휴... 벌써 세번째 가정교사였으니 어떤지 알거라 생각한다.
내가 너무 오냐오냐 해줘서 이렇게 된건가? 사실 그녀들이 공식적으로 사용인 신분이 되면 메이드장이 알아서 교육해주고 할 텐데, 지금 그녀들은 내 직속 노예인 신분이라 뭔가 붕뜬 상태였다.
역시 애를 키우는 건 어렵다. 중요한 건 말은 잘 듣고 다 하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 내가 휘둘리는 것 같다는 거였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숙제 다 해오시고, 도련님은... 잠깐 할 이야기가 있는데."
레이즈와 하인젤을 잠시 물려달라는 말이었다. 아... 또 올게 오는구만, 그래도 이번 가정교사는 4개월이었으니 꽤 오래 버틴 거였다.
"그, 아시다시피 하인젤과 레이즈가 좀... 수업에 참여하려는 의지도 부족하고 아시잖아요?"
끼이익...
나와 교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문틈이 살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엿보고 있는건가? 그때 좋은 생각이 났다.
보통 아이가 잘못했을 때 부모가 굽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가 충격을 받고 고치려 한다는 걸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예... 죄송합니다, 그 저희 애들이 나쁜애들은 아닌데... 참...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휴우..."
그래서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내 잘못을 시인하며 그녀들에게 내가 너희들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니 너네가 좀 고쳐라! 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하려고 했다.
"에... 예? 갑자기 왜 무릎을, 도련님 어서 일어나셔요오... 이러시면 제가 곤란한데."
하지만 내가 얼굴을 있는 힘껏 써가며 뒤를 봐요 뒤! 라는 표현을 해보았지만, 지능과 눈치는 맞바꿔 먹었는지, 교사또한 내앞에 마주 절하며 내 계획을 산산조각 내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두번째작전으로 가야겠다.
"후우... 이거 역시 제가 너무 오냐오냐 받아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녀들을 제 밑에 두는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배속을 바꿔야..."
쾅!
"아... 안돼앳!"
휴, 걸려들었다. 레이즈가 문을 박차고 들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런 등장에 교사의 눈이 동그래졌는데, 진짜 저래가지고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깜짝이야! 레이즈, 설마 엿들은거야? 후... 안되겠다. 너희 잠깐 얘기좀 해."
설마 들켰을까? 내가 연기하긴 했지만 조금 어색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긴했다.
아, 레이즈는 몰라도 하인젤은 확실히 눈치챘을 것 같긴한데... 그래도 뭐, 어쩔거야 내가 하지 말라는데. 연극인걸 알면서도 명분은 내게 있기에 저들은 내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을거다.
"어.. 음, 그...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도련님...?"
가정교사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주섬주섬 짐을 챙겨 방을 빠져나갔다. 진짜 앞날이 조금 걱정되는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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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 레이즈, 하인젤. 내가 너희랑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건 맞아. 그래서 지금 너희가 이렇게 나랑 가까이 있는 것도 난 기뻐."
처음엔 당근을 살짝 줘 본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하인젤과 레이즈 모두 내가 칭찬을 했음에도 기뻐하거나 하지 않고, 고개 숙인 채 반성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내 입장이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야. 너희를 위해 하는 건데도 집중 안하는 건 아니지. 아까도 봤잖아, 선생님이 곤란해 하시는거."
"그 여자가 곤란해 하시는 게 문제인 건가요?"
하인젤이 총명한 눈동자로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물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여기서 대답 잘못하면 ㅈ된다고. 어쩌면 공수관계가 바뀔만한 질문이었다.
"뭐? 그게 왜 문제야. 내가 이야기 하는 건 예의범절에 관한거야.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서 너흰 웃사람에게 행할 행동을 하지 않은거라고. 너희가 그러면 너희를 욕보이는 걸 떠나서 우리 골드르크 백작가의 명성에도 흠을 낸다는 걸 너도 잘 알텐데?"
"...그건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여자가 먼저 잘못했는걸요."
엥? 잘못? 무슨 잘못이지? 가정교사는 그녀들에게 평범하게 대해줬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시대적 관점에서 보자면 무척이나 존중해 주고있었다. 혹시 나 없는 자리에서 면박을 준건가?
"그래! 그 여자가 먼저 알렉님 머리를 마음대로 만지고, 볼 꼬집고 했는걸! 그리고 은근슬쩍 알렉님만 보는게 유혹하는게 틀림없어."
아니 그건 교사랑 학생간에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아, 얘네는 그런거 몰라서 그런건가? 아닌데??
"근데 너희 메이드장이 나한테 그랬을 땐 아무렇지 않아 했잖아."
그러자 허를 찔린 건지 하인젤과 레이즈 모두 움찔하는게 눈에 보였다. 아하... 그렇게 된건가?
"...하리엘님은 걱정이 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 여자는... 주인님에겐 위험합니다."
하리엘은 우리 메이드장으로, 이제 50을 바라보시는 아주머니셨다. 가끔 내게 쿠키를 주거나 할 때 귀엽다는 듯 볼도 꼬집고 머리도 쓰다듬어주시는데, 그녀들도 이건 별 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다, 가정교사가 '젊은 여자'라서 문제인 거였다.
"그런데 너희 저번 가정교사는 남자였는데도 더 심했잖..."
"그건 알렉 말고 다른 남자가 우릴 건드는 건 절대 용납 못하니까!"
"그건 주인님 말고 다른 남성과는 눈을 마주치는 것도 싫기 때문입니다."
...이야, 이건 좀 감동이긴 한데?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문제였다. 그럼 결국 나이있는 여성에게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건데... 그럼 결국 메이드장인 하리엘에게 맡기면 되는 거니 큰 상관은 없다.
다만 문제는 나는 그럴 수가 없다는 거지. 하리엘은 평민출신의 메이드로 실력과 특유의 눈치로 메이드장까지의 자리에 오른 인재였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때문에 예의범절이라면 몰라도, 지식은 평민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래뵈도 귀족가의 장남, 그보다 더 높은, 고등수준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자리인 게 문제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또 애들이 뛰쳐나와서 수업을 안 들으면...
[그럼 그냥 니가 쟤네 수업시간때 같이 있어줘. 너 어차피 한가하잖아]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 그러면 이 문제도 여기서 일단락 짓는다고 하고...
"그럼 너흰 하리엘한테 교육받아. 대신 나도 그건 같이 들어줄게, 그 대신 너희도..."
"응! 그럼 알렉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두배로 늘어나는 거네? 나 진짜 말도 잘 듣고 말썽도 안부릴게!"
아니 뭐... 이미 두명다 나와 연관된 인간 관계 빼고는 별 다른 말썽을 부리진 않았다. 그래도 막상 저렇게 나오니,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나도 여기서 뭔가 더 말하는 것도 이상했기에, 그냥 이 주제는 여기서 끊어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휴... 진짜 마음만 같아서는 그냥 확 순식간에 눈 뜨고 나면 쟤네들도 다 철들고 했으면 좋겠네.'
[그래? 그럼 그렇게 해줄게]
주머니에서 웅웅거리는 핸드폰의 화면을 확인하기도 전에 딱! 하는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
아니, 선생님 그 이중 확인 그런건 하셔야죠...
이윽고 두통과 함께 지나간 시간동안 있었던 기억들이... 어어? 아니 신님, 이거 얼마나 건너뛰신 거에요. 이거 중간중간 기억 안난다는 듯 끊어진 부분 있는 거 같은데?
똑똑
"주인님, 들어가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노크 소리와 들려오는 듣기 좋은 하이톤의 목소리와 함께 멍해져 있던 나는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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