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이현설 (8)
* * *
나도 눈을 감고 잠을 자려했지만 옆에서 현설이가 코오...거리며 자고있으니 신경쓰여서 눈을 감을수가 없었다.
'음... 그냥 소설이나 마저 볼까?'
[그거 좋지. 이제 슬슬 다음 사람도 찾아봐야지?]
당분간 보이지 않던 신의 문자가 지잉 하고 상단바를 차지했다.
'아 깜짝이야! 근데 다음 사람이라뇨? 그게 뭔소리죠?'
[엥, 설마 이현설로 만족하는거야? 뭐... 한사람을 향한 순애보도 나쁘진 않지만... 그러기엔 눈에 밟히는 사람들이 꽤 있지않아?]
...저런 말을 하면 나도 할말이 없다. 수많은 럽코물을 봐오던 나에게 아쉽고 가슴아픈 히로인이 없냐고 하면 당장 생각나는 캐릭터만 해도 한두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흠냥... 수현아..."
움찔...! 하지만 현설이가 무심코 한 잠꼬대가 내 양심을 콕콕 찔렀다. 으으... 하지만...
[ㅋㅋ... 그럼 내가 좀 도와주지.]
또 다시 스마트폰의 상단바에서 신의 문자가 보임과 동시에 내 ptsd를 자극하는 인터넷창이 스륵하고 열렸다.
'아 시발...'
물론 내가 쌓아왔던 분노와 애절함을 터뜨리게 만든건 '별들이 나를 너무 좋아함'의 히로인인 현설이었지만 지금 화면에 보이는 그녀는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히로인이었다.
현재 내 핸드폰의 화면엔 갑옷을 입었으나 아름답게 웨이브진 회색의 머리칼을 포니테일로 묶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여성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가 왜 고개를 떨구고 있냐하면...
"주인이여... 부디 저를 잊어주시옵소서... 부디.. 쿨럭... 나를 생각하며 그 아까운... 눈물을 흘리..."
그녀의 가슴팍에 창 하나가 꽂힌채 그녀가 있는 기력을 다해 독백을 하지만 그 말을 잇지 못하고 기력이 다해 쓰러지는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씨발! 그 장면을 보자마자 내 가슴 깊은곳에서 빡침과 동시에 애절함이 올라왔다. 빡침은 이 장면을 보여주는 신때문이요, 애절함은 그녀 하인젤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 미안미안... 화내지 말라고. 하지만 널 설득하려면 얘가 최선이었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했다면 빌어먹게 정답이었다. 하인젤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마자 현설이에 대한 생각은 싹 사라지고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씨발, 웃으며 행복해 하는 장면ㄷ...'
[그랬다면 넌 지금처럼 '구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안 했을 거잖아. 물론 내가 잘못했다고 천번만번 생각하고 있어.]
신이 내 생각을 끊고 말했지만 나도 신의 말을 보자마자 그렇긴 하지... 라고 납득해버렸기에 나 또한 유죄였다.
'하지만 난 현설이가 있어. 내겐 현설이를 행복하게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하... 너는 역시 꽤나 착한아이구나. 다른 놈이였다면 '오? 이거 완전 합법적 하렘아니냐? 개꿀'이라고 생각했을텐데. 너는 그런 생각 하나도 없이 오로지 이현설만을 생각했어.]
'애초에 이건 착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이지... 현설이가 상처받을걸 생각하면 내 가슴이 아파온다고.'
물론 평소엔 좀 짖궂고 장난스러운 면도 있지만 그만큼 눈물도, 애교도 많은 사람이다. 설령 현설이 본인이 허락해준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타들어가고 있을게 분명했다.
"으우... 진짜... 가면 갈수록 사람 부끄럽게 만들어..."
어? 현설이가 언제 깬거지? 어느새 일어났는지 현설이가 자신의 두손으로 얼굴을 덮고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아, 걱정하지마. 이미 내가 너랑 나눈 얘기랑 감정들 전부 이현설의 꿈으로 전달했으니까.]
'뭐?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요! 내가 딴 여자 생각했단거 알면 상처받을거 아니에요!'
그 소리에 나는 버럭 화를 내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사과하며 이야기해도 모자랄 판에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인가. 물론 지금까지 나에게 도움만 주었던 신이지만 좀 화가 났다.
[...이거 참... 참고로 아직도 전달중이다.]
"우으으..."
현설이는 손으로 얼굴을 덮다못해 어느새 이불까지 덮어써 눈만 빠꼼히 내밀고 있었다. 와... 졸라 귀여워
"...신님, 이제 충분해요오..."
현설이가 끙끙 앓는소리를 내며 신에게 애원한 듯 했다. 그러고보니 현설이는 신과 어떻게 소통하는거지? 나처럼 핸드폰이 아닌 텔레파시 같은 걸 쓰나? 얼마간 현설이가 이불속에서 꼬물꼬물대더니 진정된듯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내렸다.
"하아아... 진짜, 수현이 너, 나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긴하다. 하지만 이건 불가항력이었다. 애초에 소설속 세상에서 데뷔후 5년도 안되어서 톱스타를 찍은 현설이인 만큼 연기력은 물론 외모또한 그쪽 세상에서 원탑을 찍었는데 거기다가 귀엽고 매력이 넘치기까지 한다. 그런사람이 나 좋다고 달라붙는데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나.
"야, 너 또 이상한 생각하지. 하아... 됐고, 내가 나오는 소설 그... 별들이 뭐? 그것 좀 켜서 보여줘."
그녀가 한쪽 볼을 부풀리며 팔짱낀채 내게 한쪽속만 탁 하고 내밀어 핸드폰을 요구했다. 왜일까? 싶어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잔말 말고 내놓으라고 한다.
'화난건가...? 역시 다른여자 생각하면 화를 내는게 당연하겠지?'
얼마나 지났을까, 현설이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게 달려들기에 나는 그녀를 말없이 품어주었다.
"흐으윽... 원래는... 원래는 내가 이어지지 못하는 게 맞았구나..."
현설이는 흐느끼며 내게 안긴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원래 소설에서 그녀가 연예계에 입성한 것은 소설의 남주 덕이었다. 고민하던 그녀에게 남주는 그녀의 고민을 덜어주었고 그 덕에 그녀는 웃으며 연예계에 입성한다. 그때 처음 그녀는 남주에게 빠져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고, 그럴때마다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남주에게 찾아갔으나 남주는 대부분 김별에게만 신경을 쏟을뿐 아주 가아끔만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가끔이 결정적인 순간들이라 더욱 그에게 빠져들었다고...
'이게 뭔 어장관리도 아니고...'
소설관 달리 그녀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주가 진짜 개 쓰레기 새끼였다. 아무튼 다시 현설이의 얘기로 돌아가서.
하지만 결국 그는 현설이 아닌 김별을 택했다고 한다. 그때 자신이 다시 비상하긴 하나 슬럼프를 겪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고 한다.'아, 그는 내게 관심이 있던 게 아니었구나... 내 어필들은 그냥 잠깐의 욕망을 일으킬 뿐이었지 그의 심장까지 닿지는 않았구나.' 라고. 그러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현설이가 남주에게 반했던 것 또한 꽁깍지가 씌였던 것이라고 자조했다.
"...기현이는 아마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멋진 사람은 아니었나봐... 아니, 오히려 기현이가 김별에게 이정도까지 노력하는데 내가 나쁜년이었을지도... 힝... 이게 뭐야... 나만 이상한년 됐잖아..."
현설이가 다시금 내게 고개를 파묻고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무리 소설속이라고 해도 그녀가 나 차수현이 아닌 최기현에게 느낀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검은 기운들이 올라왓으나 뭐... 과거는 과거고 지금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아무말 없이 그녀를 감싸안고 토닥여주며 위로해주었다. 그러고 또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점차 안정되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있지... 난 괜찮을 것 같아. 솔직히 나도 널 혼자서만 갖고 싶은데, 아까 니가 그 여기사?를 생각하며 느꼈던 감정을 나도 느꼈는데... 나도 눈물이 나더라."
...나는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세상에, 나였다면 그녀를 남과 공유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발작이 일어났을 텐데, 그녀는 나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이현설도 너의 그 동정심으로 인해 구원을 받은 거라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닐까? 애초에 아까 네가 하인젤을 생각했을 때 느낀 슬픔이 강렬했기에 그럴수도 있지.]
신이 부가설명을 덧붙여주었지만 솔직히 크게 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 일말의 불안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내가 현설이를 포기하고 하인젤을 선택할수도 있다고 생각한건가? 내가 하인젤을 떠올리며 느꼈던 슬픔이 너무 강렬해서 자신이 밀릴 수 있다고 생각해 버린건가?'
그럴 리 없겠지만 정말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이건 커다란 시한폭탄이었다. 결국 마지못해 인정하는 것과 다를게 없는거고.
[헤에... 너 진짜 왜 그 동안 연애 못한거냐? 눈치도 빠르고 외모도... 나쁘지 않고, 키가 작은 것도 아니고, 성격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런 이유를 알았으면 연애를 했겠지.
'아니, 오히려 연애를 못하고 있던게 다행일수도? 그덕에 이렇게 현설이를 만나게 되었으니 이건 필시 신에게 감사할 일이다. 애초에 내가 생각만해도 그게 맞다,아니다 하고 알려주는 치트키가 있는데 실패하는게 이상한 걸수도.'
[음음, 계속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하지만 지금은 그런것보다 현설이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난 아직 품에 안겨있는 현설이의 얼굴 이곳저곳에 입맞춤을 해주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현설아. 나 진짜 너무너무 행복해... 이렇게 너가 내게 와줘서 난 진짜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아."
"...그치만 그 여자도 나처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거잖아."
역시나 현설이는 마지못해 하렘을 인정하고 있었던 거다. 자신이 버림받을까 두려워서.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내가 그렇다고 너에 대한 사랑이 식는다거나 하는 건 아니야. 너도 알잖아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솔직히 말하자 그녀가 내 감정을 느꼈던게 기억났는지 풋하고 웃음을 흘렸다.
"풋... 그건 그렇지. 그냥 머릿속에 나밖에 없던데?"
분위기가 꽤나 좋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말을 이었다.
"현설아... 진짜 너무너무 사랑해. 신께 이사랑 더하면 더했지 부정적으로 변하지 않겠다고 신께 맹세할수도 있어."
[내가 보증하지. 만약 그가 너에 대한 사랑이 변한다면 시간을 돌려서 다시 너를 사랑했던 때로 무한반복해주마.]
그건 좀 무섭긴한데... 그래도 나이스 어시스트 장인어른. 신의 장담 덕인지, 아니면 내 진심이 먹혀서 인지 그녀의 얼굴에 미약하게 남아있던 그림자도 사라지는게 보였다.
"아하하하... 진짜... 수현아 지금 나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을거야..."
그녀가 싱긋 웃으며 내 볼에다 입을 가볍게 맞추며 말을 마저 잇는다.
"하지만 바로 갈건 아니지? 그럼... 그동안은 너의 그 사랑을 증명해줘."
그녀의 말을 끝으로 나와 그녀는 서로 마주보고 얼굴을 포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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