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71 콴타르의 길 中
* * *
PK. 속칭 플레이어 킬,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간의 전투.
판타지아에서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불법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걸 권장하는 듯한 시스템이 많이 보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수면 녹화 시스템. 수면 중 암살, 혹은 도둑질을 예방하는 시스템이었다. 옛날 버트가 이 기능을 몰라 니스에게 비밀을 들킨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을 암살하거나 물건을 훔친 상대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용했다.
물론 이게 만능은 아니었다. 변장이나 화면에 잡히지 않는 방식을 쓰는 등, PK범들도 치밀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시스템을 넘어서서 대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 중 하나가 ‘동족상잔’이란 길드였다. 판타지아에 많고 많은 길드 중 낚시 길드 ‘강태공’이나 보물찾기 길드 ‘몬타나존스’, 수렵을 위한 길드 ‘사냥꾼들’, 엘리트 혹은 보스 몬스터 전문 사냥 ‘보스 헌터’ 등이 있지만 동족상잔은 단연코 특색이 있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이모탈(플레이어)을 전문적으로 죽이는 길드였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특성 때문에 매장 당하는 게 맞았지만 판타지아의 자유도와 그들의 성격이 한 몫 했다.
바로 복수. 자신을 무고하게 죽이거나 악질 행위를 한 플레이어에게 소정의 의뢰금을 받고 복수해주는 게 그들의 기본 이념이었다.
또 하나는 정쟁. 그들은 수많은 길드의 싸움에 용병의 형태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 중 대표격이 퍼스트 제네레이션과 보스 헌터가 만트라 대협곡의 엘리트 몬스터를 사냥권을 두고 전쟁을 벌일 때였다. 동족상잔 길드는 이 중 보스 헌터에 고용되어 싸웠고 최초이자 최강의 길드인 ‘퍼제’와 동등한 싸움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들의 위상은 너무 거셌다.
“이런 씨발! 저게 뭔데!”
“창기사 PVP 좆밥이라매! 누가 그랬어?!”
“아씨 저런 건 너프 안 하냐! 하향 좀 하라고!!”
공대장을 선두로 각종 네임드 플레이어들이 나타나 전쟁을 압도했다. 특히 부길드장 유진희의 17:1의 전투나 간부 돼지국밥의 드래곤 몰이는 영상으로 남아 폭발적인 조회수를 보여주었다.
각설하고 동족상잔 길드는 이때의 전투를 기점으로 더 이상 PK를 불법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오히려 전문적인 전투 길드로 성장시켜 나갔다.
그렇다고 PK에 대한 인식이 좋은 건 아니었다. 이처럼 PK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성격과 결과를 보여준 길드가 있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저 마차인가.”
알타 구릉지. 대륙 최남단에 위치한 이곳에서 수 십 킬로미터 떨어진 마차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악질이라 불리는 플레이어……! 게시판에 그들의 이름을 검색했다 하면 욕과 증거자료들이 넘쳐났다. 누군가는 그들의 신상을 캐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현실에서 만나면 살해당할 수도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그가 있었다.
인간사냥꾼 코노야로. 그는 악명도 악명이지만 은근히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족상잔 길드와는 다른 의미로 손님들이 자주 찾았다. 지금처럼 특정 상대에게 원한이 있거나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이들은 많았다. 그리고 이런 코노야로 외에도 몇 명이 더 있었다.
“키런 왕국으로 향하는 길이 몇 개나 있지?”
“가장 넓은 길은 로아흐 평원을 경유한 셀스타 상로. 그 옆에 보조 상로가 있고 북쪽에 미스타 언덕을 타는 자논 행상로가 있다.”
“그게 끝이야?”
“마지막으로 콴타르의 길, 값비싼 걸 옮기거나 혼자 다니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야.”
“그래?”
“몬스터의 출몰도 잦고 길을 닦기 위해 투자하기에는 공사비용이 너무 들어. 아드레이 왕국이 새로 개척한 문월 교역로처럼 가망성이라도 있어야 하는 데 그런 것도 없지. 길도 울퉁불퉁하고 다른 교역로에 비해 거리도 멀어. 빙 돌아갈 게 아니라면 갈 필요가 없는 곳이니 개발될 일은 없어.”
“선택할 가능성은 낮겠군.”
그들은 코노야로 못지않게 PK에 숙달된 플레이어들이었다. 백정 우스터, 아이템 강탈자 쿠쿠, 뒷치기 블랙잭 등 지금 이들을 잡으면 명성이 폭등할 수준이었다. 개중에는 병사를 살해하고 국가에서 지명수배를 받은 녀석도 있었다.
하나하나가 인간 사냥에 최적화 된 사람들! 그들은 누구보다 날카로운 눈으로 마차를 보며 분석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경험이면 경험, 무력이면 무력 무엇 하나 뒤지지 않았다. 다른 플레이어나 왕국의 추적을 피해 다니는 만큼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실력은 입증되었다.
물론 팀워크까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들 중 팀을 이루는 건 고작 해야 두 사람 정도였다. 나머지는 저마다 블랙마켓과 통하거나 다른 범죄자와 연계하는 게 끝이었다. 그나마 돈이라는 공통 사항이 없었다면 뭉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이 어마어마하다면?
인당 주어진 골드는 5천 골드! 심지어 이건 선수금이었다. 일에 성공하면 성과에 따라 최소 1만 골드 이상 돌아갔다. 그저 그런 돈이 아니었다. 상대가 약세 조직이었다면 그냥 넘겼겠지만 대륙 3대 정보 조직 중 하나인 그림자를 쫓는 별의 의뢰였다. 그저 그런 고객이 아니라 힘 깨나 쓰는 고객이었다.
잘만 하면 좋은 백을 둘 수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연줄을 만들 기회기도 했다. 거금을 떠나 엄청난 기회! 하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게 있었으니…… 지금 의뢰를 한 사람들이 내부 정쟁에서 밀려난 이들이며 그들의 마지막 발악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만큼 그림자를 쫓는 별의 싸움이 은밀했고 신경 써서 사람을 선별했단 소리였다.
그들은 오직 마차 안의 표적을 노리기 위해 집중했다. 지금은 배신이나 의뢰금에 목맬 때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누가 먼저 설계할 거지?”
질문을 던진 건 백정 우스터였다. 그는 코노야로처럼 정면 돌파 및 대결을 주로 했다. 반면 블랙잭은 유리한 지형지물로 유도하는 설계파였고 쿠쿠는 표적의 상태나 주변 상황을 확인하는 전략파였다. 그 외에도 함정을 파거나 이간질을 하는 형식으로 PK를 이끌어가는 녀석도 있었으니 먼저 질문을 던진 것이다.
우스터의 말에 가장 먼저 손을 든 건 계속 말이 없었던 불법사냥꾼 바야바였다.
“이 근방은 키런 왕국이 틈틈이 토벌을 하고 있어도 몬스터가 아직 많다. 오히려 그들을 피하기 위해 더 치밀해지고 강해진 녀석들이 수두룩 하지. 그것들 습성은 파악하고 있으니 저 마차가 갈 곳에 유도하면 된다.”
“여기에 뭐가 있더라.”
“놀과 데스웜, 저거노트, 켄타로스 정도. 그 외에도 변이종도 종종 보이지.”
“몇몇은 사냥하기 까다로운 것들이네. 괜찮군.”
“네임드 몇 마리도 있다고 들었어.”
“거기 근방에 도적도 있으니까 연계를 해도 되겠어.”
한 명은 마차의 움직임을 살피고 나머지는 지도까지 펼치며 작전을 짰다.
“셀스타와 미스타, 이 두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좋아. 그럼 가볼까.”
“비상 시를 제외한 바다하피 깃털은 사용 금지.”
“분배금은 균등하게 나누되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1할 추가.”
“뒤통수 치기 금지.”
“왜 날 봐?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런 일을 받고 그런 짓은 안 해!”
코노야로를 제외한 모두가 자신의 무기를 들며 일어났다. 코노야로는 미심쩍은 얼굴로 마차를 보다 망원경을 접었다.
이제 그들은 마차가 올 곳에 몬스터들을 유인하고 도적들을 불러모을 것이다. 함정도 깔아두고 조금씩 표적의 피로를 누적시킨다. 그렇게 지친 사냥감은 모두가 힘을 합쳐 사냥한다.
무려 이틀에 이르는 설계……! 마차가 교역로의 절반 정도 주파했을 때 엄청난 시련이 시작될 것이다.
*
콴타르의 길.
본래 이곳은 교역로가 아닌 기사단 훈련장의 일부였다. 그 중 교관 콴타르가 개발했다는 15가지의 하드 트레이닝을 하는 곳 중 하나였다. 지금은 키런 왕국이 다른 나라와 교역을 시작하며 추가로 만들어진 길이지만 원래는 자갈도 많고 길도 제대로 나지 않았으며 틈만 나면 몬스터가 습격을 하는 곳이었다. 몇 번의 소탕을 벌이긴 했다지만 키런 왕국 측에서도 여길 개발할 의향은 없었다.
왜냐하면 콴타르라는 사람 자체가 왕국 내에서도 괴짜 취급을 받기 때문이었다. 스케줄 하나하나가 사람 한 명이 소화하기에는 어려운 것들뿐! 그마저도 끝내고 난 뒤에는 더한 훈련이 기다렸다.
그의 기행이 알려진 건 과로사로 죽은 뒤였다. 스스로가 만들어내서도 맞추지 못하는 훈련은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결국 이 길은 유명해졌다. 물론 그것도 이모탈들 사이에서 알려졌을 뿐, 관광 요소로도 쓸 수 없었다.
길도 험하다. 몬스터도 많다. 그렇다고 이걸 개척해버리면 그 험한 길을 찾아오는 의미가 없다! 콴타르의 길이 방치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서 교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피해야 하는 장소였다.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동 시간을 참지 못해 텔레포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지루하고 귀찮은 길이었다.
하지만 버트는 아니었다.
“으으으응~”
그녀는 콴타르의 길에 진입하고서 기분 좋은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간만에 여유로운 여정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느긋해지고 잠이 솔솔 쏟아졌다. 그만큼 편한 여행이었다.
“루하다, 정말 안 들어올 거야?”
“저는 괜찮습니다.”
루하다는 마부석에서 고삐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마차에 있는 건 버트와……
크르르
그녀가 직접 잡은 엔실라였다. 그녀는 손목과 발목만 포박된 채 마차 한 구석에 놓여있었다. 그녀는 출발하기 직전까지 아무 말도 안하고 이만 드러냈다. 다행히 발버둥치거나 하지 않았지만 루하다는 몇 번이고 주의를 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팔다리를 자르는 건 너무하지.’
버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엔실라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역시 예뻤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외모였다. 왜 갑자기 그녀에게 욕심이 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셀기디어가 두고 가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데려와버렸다.
한편 엔실라는 싱글싱글 웃고 있는 버트가 불편했다. 이미 그녀의 힘은 겪어봤기에 방심하지 않았다. 아마 다시 싸운다면 신중하게 전투에 임하거나 바로 달아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여전히 마법은 써지지 않았다. 백신의 금제는 사라졌다. 그렇다고 본체로 현현할 수도 없었다.
텁
“읏”
버트의 손이 엔실라의 허벅지에 얹어졌다. 살집은 좀 없지만 그래도 매끈하니 보기 좋은 허벅지였다. 특히 피부가 보들보들하니 쓰다듬을 때 촉감이 심상치 않았다.
“손…… 떼……”
버트는 엔실라에 말에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는 성욕에 취했다지만 지금은 만족감이 가득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들어줄 여유가 있었다.
“싫으면……?”
엔실라는 입술을 꽉 물며 버트를 노려보았다.
그 표정……! 날카로운 눈매라서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에서 분하다는 듯이 째려보는 표정은 예술이었다.
이게 새디즘인가?
그녀의 싫어하는 표정을 좀 더 보고 싶었다. 여기서 더 싫은 짓을 하면 어떻게 일그러질지 궁금했다.
평소 버트라면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발상이었다. 지금까지 섹스나 그 비슷한 걸 하면서 상대의 의사를 짓뭉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촉수로 기절할 때까지 겁탈한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를 어떻게 괴롭힐까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루하다와의 섹스도 기대됐지만 이 순간만큼은 엔실라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이름 알려주면 그만둘게.”
버트는 허벅지에 손을 슬쩍 떼며 말했다. 엔실라는 버트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렝거스.”
버트는 눈을 깜빡였다. 사실 그녀의 이름은 셀기디어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저 놀려줄 생각으로 물은 거지만 설마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네?”
“그렇지.”
“거짓말이니까 그렇지.”
버트는 슬쩍 손을 뻗었다. 엔실라는 가슴으로 오는 손을 막기 위해 두 팔을 들었다. 그러자 버트의 손이 쑥 내려가 엔실라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설마 같은 곳을 만질 줄 몰랐고 반응할 수 있는 속도도 아니었다. 버트는 허벅지를 집요하게 주무르다 꾸물거리며 안쪽으로 손을 움직였다.
“킷……”
엔실라는 혀를 차며 이를 갈았다.
다시 봐도 좋은 표정이었다. 분에 못 이겨 구겨진 얼굴이란……! 버트는 군침이 돌아 두 손으로 양쪽 허벅지를 더듬었다. 간지럽히듯이 더듬는 손길 때문인지 엔실라의 일그러진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다른 표정도 보고 싶다!
그 생각이 든 순간 새로운 방법이 떠올랐다. 이 짜증 가득한 얼굴을 강제적으로 바꾸게 할 방법……! 물리적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었다.
“흐핫……!”
버트의 손이 허벅지 안쪽을 간질였다. 엔실라는 깜짝 놀라 다리를 오므렸다. 그 반응은 정말 귀여웠다.
“흐헤헤……”
버트는 바보처럼 웃으면서 엔실라를 확 잡아당겼다. 그러더니 다리 사이에 그녀를 앉히고 단단히 묶인 두 손목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게 했다.
“뭐…… 뭐하는 짓”
두 팔은 촉수로 봉쇄. 하반신은 움직이지 못하게 두 다리로 꽉 붙들었다. 버트는 여유로운 두 손을 꼼지락대더니 엔실라의 옆구리를 삭 쓸어올렸다.
“끄읍……!”
엔실라의 몸은 이상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버트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몸에 간섭해 조정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백신의 금제가 없어도 본체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서! 고작 이런 이유 하나로 엔실라는 인간체로 고정되었고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개발되었다. 여기에 조금씩 버트의 욕망이 깃들면서 엔실라는 서서히 버트의 입맛에 맞게 변하고 있었다.
이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당사자인 엔실라도 그렇고 이 짓을 벌인 버트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서로가 다른 생각을 하면서 이 기이한 변화를 맞이했다.
“흐…… 흐흣…… 흣…… 으흣……”
버트의 손길은 참으로 오묘했다. 간질거리는 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이 적당하게 엔실라의 웃음보를 자극했다. 그래서 조금씩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꾹 눌러 담았다.
“으음”
버트는 계속 옆구리를 간질이다 겨드랑이를 슥 훑었다. 이번에도 엔실라는 온몸을 비틀면서 웃음을 참았다. 분명 콧소리는 새어나왔지만 기대하는만큼 커다란 웃음은 터지지 않았다.
뭔가 아쉽다. 촉수로 괴롭혀도 되지만 그건 뭔가 맛이 살지 않았다. 지금은 능욕하는 게 아니라 장난스럽게 괴롭히는 것이니까……
츠츠츳
그때 그림자에서 무언가 솟아올랐다. 루하다는 이미 마부석에 있었으니 나올만한 건 딱 한 사람이었다.
“리아……?”
리아는 멍하니 마차 바닥에 앉아 올려다보았다. 엔실라는 숨을 고르면서 자기 발밑에 앉아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버트와 똑같은 생김새…… 하지만 머리색도 달랐고 표정도 달랐다. 버트가 즉석으로 자신의 분신을 만든 것이라 생각했지만 뭔가 좀 달랐다. 엔실라는 수련이라는 명목하에 능욕 당하고 실신하기 바빴으니 리아가 버트의 창조물이란 사실까지 알지 못했다.
다만…… 묘하게 짙은 마기…… 그 점이 경계심을 품기 충분했다.
“너도 같이 해볼래?”
리아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하는 공동 작업! 걸음마를 막 뗀 아이를 보는 게 이런 기분일까, 버트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리아가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뭐…… 뭘……”
리아는 엔실라의 한쪽 다리를 잡더니 신발을 벗겼다. 그러더니 발바닥을 손가락 끝…… 정확히는 손톱이 살짝 스치게끔 간질였다.
“흐읏……?! 흣……!”
엔실라가 발바닥을 오므리며 저항했지만 리아는 틈이 없었다. 오히려 새하얗게 될 정도로 오므리고 주름진 발바닥 틈새를 손가락으로 후벼팠다. 그러자 이번에는 엔실라가 발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피하려 했다. 그러면 리아는 무심하게 그녀의 발이 움직이는 걸 손으로 따라갔다. 그렇게 움직이면 웬만하면 손톱에 긁히거나 어설프게 자극을 줘버리게 될 텐데 그게 아니었다. 리아는 가만히 있는 걸 괴롭히는 것처럼 정밀하게 엔실라를 간질였다. 흡사 합을 맞춰서 공격하고 수비를 하는 것마냥 엔실라의 회피가 무의미해졌다.
그렇게 인실라가 발에 집중하고 있을 때 버트가 기습했다. 그녀의 두 손이 옷 안으로 파고 들더니 맨살을 간질이기 시작한 것이다. 옷 위로 자극할 때와 피부를 직접 건드리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였다. 특히 갖은 수모(?)를 통해 단련된 버트의 기술과 모진 능욕으로 개발된 엔실라의 몸은 직접적인 간지럽히기를 버틸 재간이 없었다.
“크훕…… 훕……!”
급기야 엔실라는 얼굴이 벌개지도록 숨을 참았다. 잘못 숨을 뱉으면 소리까지 터질 거 같았다. 그러자 두 사람의 손길은 더 집요해졌다. 발바닥을 간질이는 리아는 이제 발등과 발가락 사이까지 간질였다. 버트는 갈비뼈 틈 사이와 겨드랑이 안쪽 살을 번갈아 공략했다.
두피까지 저릿거리는 간지러움……! 엔실라는 폐가 근질거렸다. 당장이라도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자니 자존심이 살지 않았다. 애초에 모든 자존심이 깎일 정도로 능욕당한 시점에서 끝이었지만……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호흡에 한계가 있었다. 1분 넘게 숨을 참으니 슬슬 속이 아팠다.
“흐하! 흐하! 흐하아……!”
그렇게 참았던 숨을 들이키니 속에서부터 웃음이 치고 올라왔다. 심지어 버트와 리아가 엔실라의 숨소리를 듣자마자 손톱 끝이 스치게끔 손가락을 꼼질댔다.
“프훕!”
그 순간 엔실라의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으하하하!! 으하하학! 그마안!! 아하하하학!!”
엔실라는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참았던만큼 큰 소리로 웃으니 뭔가 개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간지러움이 멈추는 것도 아니었고, 웃음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한 번 웃음을 터뜨리니 도중에 멈출 수가 없었다.
배 근육이 당기고 호흡이 달렸다. 온몸의 근육이 잔뜩 긴장해서 경직되어 힘이 들었다. 그런데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엔실라의 깨끗한 발성으로 뿜어지는 웃음은 두 사람을 즐겁게 만들었다.
“귀여워……”
“귀여워.”
버트는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리아는 버트의 말을 따라했다. 미친 듯이 웃던 엔실라는 어설프게 숨을 참았다. 하지만 한 번 터진 웃음보를 갈무리할 수 없었다.
“으흐후흐흐…… 아흐흐……! 아하하하!!”
웃음을 참고 참았던 엔실라는 좀 더 쾌활하게 웃었다. 버트는 그 웃음에 힘입어 엔실라의 옷을 걷어 올렸다. 그러더니 매끈한 겨드랑이를 핥아올리면서 가슴에 손을 댔다. 유두 끝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겨주면서 배꼽 부근을 손으로 간질였다.
엔실라는 촉수에 묶인 두 손을 미친 듯이 꿈틀거리며 발버둥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리아가 엔실라의 두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버트가 혀를 쓰는 걸 보더니 그녀의 발바닥을 핥아올렸다. 그 다음은 발가락 하나를 머금고 혀로 훑어주고 마지막으로 발등을 가볍게 깨물었다.
“그마한…… 미친…… 년들……! 동성끼리 이러는 거허…… 부끄럽지도 않하아……?!”
애무가 가볍게 곁들여지니 엔실라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차마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오들오들 떨리면서 신음이 섞여 나왔다.
부끄러움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그런 엔실라의 반응이 두 사람을 끌어당겼다.
“어때, 리아. 괜찮은 거 같아?”
“발 맛있어. 다리도 맛있어.”
리아는 처음 제대로 입을 떼고 말하는 게 음담패설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엔실라는 발에서 다리로 타고 오르는 리아를 째려보았다. 그때 버트가 엔실라의 고개를 확 돌리게 하고 입술을 덮쳤다. 그리고 유두를 확 비틀었다.
엔실라는 콧소리를 내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리아는 꾸물꾸물 기어 올라와 무릎을 한 번 깨물더니 바지를 훌러덩 벗겨버렸다.
‘귀엽다.’
버트는 지금 이 구도가 익숙했다. 언젠가 라피에 초원으로 향하는 동안 페이니와 니스가 자신에게 한 짓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를 놀리는 게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무엇보다 자기 입맛대로 상대를 능욕한다는 게 가장 좋았다. 혀를 뒤섞으며 키스를 하고 유두를 계속 꼬집고 비틀면서 움찔대는 반응을 즐길 수 있었다.
이것이 가학심. 인간체였던 화이트슈트를 덮친 경험도 있었지만 이렇게 동성을 덮치며 주도하는 건 처음이었다.
키스와 애무, 스킨십. 지금까지 이성과 동성 이종족 가리지 않고 쏟아지던 걸 다시 배출하고 있었다.
쪽 쪽
그건 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선지 그녀는 엔실라의 음부를 핥는데 거북함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음부를 살짝 벌리고 음핵의 표피를 혀로 긁어대며 애무하기까지 했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됐다고 보기에는 정말 능숙한 혓놀림이었다.
‘역시……’
버트는 리아의 커닐링구스를 곁눈질로 살피며 엔실라의 양쪽 가슴을 주물렀다. 숨쉴 틈도 없이 키스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훕…… 훕…… 후웁……”
엔실라는 위아래로 빨아대는 입 때문에 꼼짝하지 못했다. 촉수가 모든 구멍을 관통하던 것과는 달랐다. 오히려 그때보다 부드럽고 안정적인 키스와 애무가 엔실라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흥분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조금씩 스며드는 마기는 이제 직접적으로 엔실라를 변화시켰다. 이미 인간체로 고정되고 몸의 감도가 올랐지만 조금 더 심층적인 변질이 일어났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리아에게 있었다. 거진 씨앗에서 태어났다고 무방한 짙은 마기…… 씨앗을 품고 있는 버트…… 둘 사이에 끼이면서 마기는 엔실라를 변화시키지 못한 부분마저 차츰차츰 뒤바꿨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레즈비언들의 가벼운 놀이 정도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남달랐다.
엔실라의 무의식. 거기에 직접적으로 새겨지는 버트에 대한 충절. 이건 버트가 자신을 좋아해줬으면 하는 마음과 그녀가 자신을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염원……
뒤바꾼다! 버트를 향한 적의는 애정으로 바뀌었다. 그녀를 경계하는 마음은 두근거리는 긴장으로 바뀌었다. 부정하려는 생각은 수긍이 되었고 저항하려는 의지는 무엇이든 수용하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버트…… 아……’
엔실라는 어느 샌가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그러더니 이제는 버트의 혀에 맞춰 자기 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스에 빠져있던 버트는 이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리아와 함께 합을 맞추며 엔실라를 녹여 내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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