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63 문월 교역로 下
* * *
“아드레이 왕국?”
은발의 여인은 황당한 투로 물었다. 그 말을 전한 금발의 남자 역시 표정은 좋지 않았다.
“흡혈귀들이 지상으로 나타난 건 생각지도 못했어.”
“그러게. 백신들이 규제하지 않는 거야?”
“그 부분이 의아했다. 그들의 조약대로라면 세계의 흐름을 벗어난 행위는 제약이 걸려야 하는데……”
금발 남자의 말에 은발 여인이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럼 그것들이 기어 나온 게 세계의 흐름에 맞다는 거야?”
“어쩌면 외래 문명과 교류하고자 그런 걸지도 모르지.”
그의 농담 아닌 농담에 은발 여인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이가 없어. 누가 봐도 수상해. 마신을 다시 살려내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딨어? 당장 거기 흡혈귀 하나가 마신을 구현하려 했잖아.”
“맞는 말이야. 그렇다고 그것들에게 따질 수도 없지. 여기서 또 반 토막이 날 수는 없으니까.”
“반 토막이 뭐야? 1할도 안 남았는데.”
“어쨌거나 그렇게 악착 같이 살아남았는데 누구는 제멋대로 하고 누구는 쳐박혀 있으라니. 그건 좋지 않아. 그렇지?”
“맞는 말이야.”
남녀는 죽이 맞았다. 히죽거리며 웃던 둘은 몸을 돌렸다.
“간다.”
“가야지.”
두 사람은 한 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
이미 선을 넘어버린 두 사람에게 더 이상의 허들은 없었다. 셔터킴의 경우 그녀의 남은 생(?)을 불태워주기 위해 노력했고 버트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덕분에 처음 노출 사진을 찍은 이후에는 더욱 거리낌이 없어졌다.
“이런 건 어디서 난 거야……?”
“전부 선물 받았어요. 언제 입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딱 기회가 왔네요.”
셔터킴은 옷걸이 대신 나뭇가지에 하나둘 걸리는 코스튬을 보며 감탄했다. 하나 같이 좋은 재질의 옷이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옷의 형태가 경악스러웠다. 구멍이 뚫린 속옷은 기본이었다. 옷인지 아닌지 분간도 안 되는 표면적의 옷도 있었다. 심지어 종류 별로 나뉘어진 동물 코스튬도 있었다.
셔터킴이 놀란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불법 패치가 이 정도까지 되던가?’
버트가 꺼낸 옷가지는 못해도 50여 벌! 아무리 면적이 적다지만 상당한 수의 장비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간간이 요리 도구를 꺼내거나 하는 걸 보면 옷만 있는 게 아닌 듯 했다.
당연하지만 플레이어의 ‘주머니’는 한계가 있었다. 모든 물건을 제약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다면 상행은 진즉 플레이어들이 차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버트는 지금 ‘주머니’에 한계가 없어보였다. 마치 끝없는 심연에 물건을 던져놓은 듯 했다.
이상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째선지 셔터킴의 감각에 버트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눈이 흐려지면서 나머지 감각이 예민해졌다. 하지만 그건 현실에서의 얘기지 게임에서의 얘기가 아니었다. 셔터킴이 리미트를 푼 건 눈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온기나 체취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혹시 프로그램이 고장났나싶어서 점검해봤지만 멀쩡했다. 설마 이게 듀크 사에서 경고했던 부작용이 아닐까 싶어서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보다는 버트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무슨 일이 터지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지금은 이 녀석을 위해 노력하는 게 최선이야.’
접속기기야 언제든 새로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버트는 아니었다. 언제 게임을 못하게 될지 몰랐다.
‘그나저나 대담한 걸.’
지금 버트는 알몸으로 서있었다. 그리고 이 수풀 건너에는 수많은 사람이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차가 멈추기 직전에 자위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참으로 대담한 아가씨였다. 누군가 화장실을 쓰러 오거나 경계를 하러 올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어쩌면 그것 때문에 더욱 대담해질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버트의 허벅지가 달빛을 받아 반들거리고 있었다. 이미 흥분으로 애액이 넘쳐 흐르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리 셔터킴이라고 해도 흥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리사욕을 채울 때가 아니었다. 필사적인 마인드 컨트롤 덕분에 그녀를 덮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게 가능한 것도 아니었기에 게임이 끝나고 이걸 반찬삼아 자위나 하잔 생각을 했다.
버트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풀 너머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늘어놓은 옷들을 하나하나 셔터킴에게 보여주었다. 그저 옷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랫도리가 질척해지고 있었다. 아직 사진을 찍지도, 옷을 입지도 않았는 데 벌써부터 그런 상황이 상상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감탄이 나오는 재능이었다.
“처음은 이거……”
버트는 오랜 고민 끝에 옷을 하나 골랐다. 그리고 그가 보는 앞에서 차분하게 갈아입었다.
“어때요?”
코스튬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바니걸. 사타구니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레오타드에 넥초커와 커프스. 하이힐과 토끼귀 헤어밴드까지! 정말 본격적인 코스튬이었다.
판타지아에서 의상은 그야말로 자유도의 끝이었다. 아무리 귀한 소재로 만든 방어구라 해도 제대로 가리지 않으면 효과가 없었다. 거기다 무거움과 감촉까지 구현됐다. 이건 일상복에도 적용됐다. 판타지아가 옛 시대를 표현하면서 의복까지 고증하지 않은 이유는 이 부분 때문이었다.
너무 저급하다! 옛날 의상까지 살려내기에는 의복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 거의 대부분 현실성을 살리는 판타지아에 있어서 하루 종일 붙어있는 옷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플레이어는 물론 NPC들까지 전부 의상을 신경 써야 했다. 플레이어만 차려입고 NPC가 신경 쓰지 않는다면 괴리감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의 의복은 NPC도 입는 옷이 대부분이었다. 의류계에 종사하는 직업군이거나 스킬의 도움으로 수제작하지 않는 이상 특이한 옷은 만들 수 없었다.
셔터킴이 주목한 건 바니걸이 아니었다. 그 뒤에 널려있는 수많은 수제 의상이었다.
“아주 예뻐.”
버트는 반 이상이 노출된 가슴을 내보이며 웃었다. 그 모습은 사진에 고스란히 담겼다. 두 손을 가슴 위에 얹으며 올려다보는 모습도 최고였다. 눈물이 고였다는 착각이 드는 맑은 눈망울과 어쩔줄 몰라 하는 표정,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은 채 올려다보는 시선 처리! 그녀는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바니걸 복장과 함께 받았던 당근 모양 막대기를 혀로 낼름 핥아올리는 모습은 사뭇 도발적이었다. 셔터킴은 새삼 버트가 상당히 문란하다 생각했다. 당근에 혓바닥을 딱 붙여서 핥아 올리는 데 달팽이가 줄기를 타고 오르는 거 같았다. 그러면서 눈은 게슴츠레 뜨면서 렌즈를 보는데 남자로서 아랫도리가 후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은 침을 펴바른 당근을 허벅지와 음부의 삼각지대에 끼워넣었다. 꼭 남성기가 달린 듯한 발칙한 모습! 버트는 이건 조금 민망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손으로 V를 그렸다. 그 풋풋한 모습이 더 좋았기에 셔터킴은 만족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그 다음 버트가 입은 건 오피스룩. 딱 붙는 H스커트에 깨끗한 검은 스타킹이 매력적이었다. 버트가 자신만만하게 서있더니 슬쩍 스커트를 당겨 올렸다.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스타킹 속의 팬티. 먹음직스럽게 스타킹으로 포장된 허벅지. 요망한 눈웃음.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버트는 역할 놀이에 심취한 건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도발적인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 겉옷을 살짝 풀어보였다. 그러자 검은 브래지어가 비치는 와이셔츠가 나타났다. 속옷을 안 입어도 예뻤겠지만 이건 이것 나름대로 느낌이 있었다.
그 다음 몸을 돌린 버트는 엉덩이를 강조하는지 하반신을 쭉 뒤로 뺐다. 스커트가 딱 밀착된 엉덩이는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선을 예쁘게 표현했다.
그 다음 버트가 입은 건 박스티에 돌핀 팬츠였다. 앞의 코스튬에 비해 간단한 차림이었다. 하지만 셔터킴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셔츠 위로 도드라진 유두 자국. 안쪽은 분명 속옷이 없었다! 쪼그려 앉아서 보이는 바지 틈으로는 사타구니와 음부 옆면의 살이 그대로 보였다. 언뜻 보면 모를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앞의 코스튬보다 훨씬 야하단 걸 알 수 있었다. 이때 셔터킴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굉장하네.’
버트는 남자의 로망을 잘 아는 거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할지도 아는 건지 원하는 포인트를 잘 짚어냈다. 버트는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그의 열정어린 시선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버트는 그냥 가볍게 놀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다보니 점점 그의 의지에 감화되었다.
버트의 성욕으로 지펴진 열정. 그 열정은 다시금 버트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셔터킴은 조금 의아함이 들었다. 버트가 마차 뒤에서 노출을 하던 그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야하고 말고를 떠나서 왠지 모르게 벽이 쳐진 느낌이었다.
“조금 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네? 헤헤, 저는 충분히 그러고 있는 걸요.”
셔터킴은 버트의 대답에도 마뜩찮은 얼굴이었다. 뭔가 걸리적거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시선에 추궁이라도 받은 걸까. 버트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조금…… 모독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모독?”
“셔터킴 씨는 분명 좋은 의도로 하고 있는데 괜히 저만 이상하게 이용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서요. 막상 할 때는 몰랐는데 사진이 찍힐 때마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그제야 셔터킴은 버트가 더 대담한 옷을 고르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뭘 이제 와서. 더한 것도 찍었잖아?”
“그래도……”
“그리고 사람을 너무 좋게만 보는 거 아냐?”
셔터킴은 한 발짝 다가와서 박스티에 손가락을 걸고 쭉 당겼다. 그렇게 헐렁해진 목구멍 사이로 보이는 젖가슴을 카메라로 찍어 버트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찍어서 사람들한테 돈 주고 팔 수도 있어. 그게 아니면 이걸로 널 협박할 수도 있고.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닐 수 있단 거야.”
셔터킴의 서늘한 경고에 버트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열기가 조금씩 감도는 얼굴. 셔터킴으로서는 그녀의 불편한 배려를 조금이라도 덜 생각이었는데……
버트의 눈빛은 두려움이나 경악이 아니었다. 이건 분명 즐거워하는 얼굴이었다. 그걸 본 셔터킴은 그녀가 시한부가 아니었다면 달아났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의 성욕은 그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아마 끝나기 직전에 욕망이 폭발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대단하네 정말.’
셔터킴은 버트의 머리를 덥썩 잡고 쓰다듬었다.
“으엉”
“괜찮아. 네 모습 찍는 거 정말 재밌고 보람차니까. 어떤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아.”
“아……”
버트는 그 말에 셔츠를 들어올렸다. 조금도 가릴 생각도 없이 드러난 맨가슴. 헐렁한 셔츠 안에 감춰진 압도적인 볼륨감이 나타났다.
찰칵
그 다음 버트는 돌핀 팬츠의 바짓단을 옆으로 당겼다. 그렇게 드러난 도톰한 균열부 역시 사진에 찍혔다. 그걸 본 버트는 다시 눈이 뒤집혔다.
“이, 이것도……!”
참다 참다 폭발한 것처럼 버트는 여러 옷을 입었다. 세로로 갈라져서 유두와 음부를 내보이는 속옷을 입고 가터벨트와 스타킹을 착용하는 게 시작이었다. 누가 봐도 흥분하고 있단 걸 보여주는 발기한 유두와 물에 젖은 음부……! 달빛 아래에서 더욱 뽀얗게 보이는 흰 피부. 버트는 기능성을 잃어버린 속옷을 입고 여러 가지 포즈를 취했다.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치켜 뜬 눈으로 본다든지 손가락 사이에 유두를 끼워 넣어 보이기도 했다. 아니면 처음 노출 사진을 찍었을 때처럼 음부나 유두를 손가락으로 아슬하게 가리기도 했다.
유두와 음부만 간신히 덮는 마이크로 비키니에 홀딱 벗은 거나 다름없는 전신 망사스타킹. 심하게 가위질해서 노출을 최대로 올린 흰 크롭티에 핫팬츠. 와이셔츠 한 장에 팬티. 가슴만 가로지르는 속옷 같은 탱크탑에 팬티 같은 반바지. 알몸에 곳곳이 찢어진 팬티스타킹 한 벌!
그렇게 한 차례 폭주한 버트는 진정하고 숨을 내뱉었다. 이미 여러 벌을 입고 수 백 장을 찍혔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버트의 머릿속에는 아직 많은 코스튬이 떠오르다 사라지고 있었다.
“이거……”
하트 모양 니플 패치. 유두에 딱 붙었지만 그 크기는 터무니없이 작았다. 일부러 작은 걸 골라온 건지 유륜은커녕 유두도 간신히 덮는 수준이었다. 본래 목적성은 잃었지만 누군가를 흥분하게 하려는 의도는 확실해졌다.
“대단하네.”
“그리고 이번에는……”
몸 여기저기를 가로지르는 리본. 어설프게 포장한 듯한 차림새였다. 여기에 음부는 굵은 리본 하나만 가로 질러 가리고 유두는 작은 리본으로 귀엽게 묶어두었다.
“생일 선물을 받는 기분이네.”
“에헤헤……”
이번에는 민소매 나시티에 반바지였다. 앞서 입었던 화끈한 탱크탑과 달리 가슴골의 위아래를 보여주지 않았다. 유두가 발기한 흔적은 충분히 야해보였지만 그걸로는 약했다. 그때 버트가 셔츠를 가슴 가운데로 모아 노출시켰다. 그러더니 상체를 천천히 흔들어 가슴이 흔들리게 했다.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는군.”
“으히히……”
그렇게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찍히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버트가 간과한 게 있었다.
“셔터킴 씨는 찍고 싶은 사진이 없나요?”
“엉?”
셔터킴은 아직도 버트가 자신을 생각해주나 싶어 말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말래도.”
“아, 아뇨……”
버트는 손을 내젓더니 한 발 다가섰다.
“……저한테 바라는 사진 말이에요.”
그제야 셔터킴은 질문의 의도를 알아챘다. 동시에 알 수 없는 욕망이 자극받는 기분이었다.
“아니 뭐……”
그때 셔터킴은 버트에게 넌지시 말했던 게 떠올랐다.
“……괜찮아? 전부?”
“아.”
그 질문에 버트는 뭔가 심상치 않단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피할 버트가 아니었다. 버트는 대답 대신 수줍게 고개만 끄덕였다.
*
“저기……”
“예?”
상단의 일꾼들은 저녁 식사 후 잠자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장은 캠프를 설치하고 잠자리를 준비하는 것 말고는 일이 없다지만 충분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편히 앉아서 얘기를 나누며 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손님이 찾아왔다.
붉은 머리카락. 땀에 젖기라도 한 건지 체취를 풍기는 여인. 버트는 조심스레 말을 붙여왔다.
“옷 입는 거 좀 도와주실래요……?”
“예?”
일꾼들은 당연히 어안이 벙벙했다. 옷 입는 걸 도와 달라니? 확실히 버트는 옷가지가 흐트러져 있었다. 단추도 제대로 못 꿴 셔츠에 치마도 헐렁거렸다. 처음 제안을 받은 일꾼은 동료를 보았다. 동료들은 킥킥 웃으면서 손짓했고 일꾼은 한숨 쉬며 말했다.
“혹시 어느 나라 귀족이신지요……?”
“아,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이건 좀 그러니까……”
버트는 일꾼의 귀에 속삭였다.
“예……?”
그가 되물어오자 버트는 조심스레 말했다.
“야한 부탁이라구요……”
어둑한 밤. 소리는 크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동료 일꾼들도 들었지만 정말 뜬금없는 내용이었기에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버트는 셔츠를 열어젖혔다. 그 안에 숨겨진 탐스러운 젖가슴과 늘씬한 상체가 드러났다. 은근히 근육도 있는 건지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하고 예쁜 반라가 그들의 눈에 꽂혔다.
힘들기는 했어도 그들은 남자였다. 음란한 모습의 아가씨를 보고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에게서 풍겨져오는 기이한 매력이 그들을 끌어당겼다.
“여기…… 여기에 이걸 달려고 하는 데 잘 못 달겠어요……”
버트가 자신의 한쪽 가슴을 잡아 보이더니 이번에는 방울 달린 고리를 꺼냈다. 타원형의 고리는 손가락에 끼우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굵기가 얇은 뭔가를 끼워 넣기에 충분해보였다.
이것만으로도 일꾼들의 망상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여기에 버트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더해지니 일꾼들로서는 저항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홀린 듯이 다가와 버트를 에워쌌다. 제대로 씻을 시간도 없었으니 버트는 그들의 체취에 흠뻑 빠져야 했다.
사방에서 풍겨오는 아찔한 수컷의 냄새. 서서히 발기하는 유두는 모두의 눈에 또렷하게 보였다.
“……달아주실래요?”
버트는 슬쩍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일꾼 하나가 침을 꼴깍 삼키며 고리를 받았다. 그리고 한쪽 가슴을 쥐고 차가운 고리를 갖다대자……
“아응”
버트는 숨김없이 콧소리를 터뜨렸다. 고리는 유두에 착 붙었지만 달리지 않았다. 유두가 너무 부풀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고리를 밀어대도 유두는 딱딱한 금속에 눌릴 뿐 들어가지 않았다. 버트는 계속해서 신음을 냈고 구경꾼들은 자극을 받았다.
꼴깍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버트는 유두를 만지작대는 일꾼을 보다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다른 분들도 도와주실래요……?”
“어, 어……”
“우리는 돈이 없는데……”
그제야 그들에게 현실이 느껴졌다. 이런 매력적인 여자가 갑작스레 나타나 몸을 내줄리 없다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버트는 주변을 힐끔거리다 소곤소곤 말했다.
“그럼 제가 조금은 드릴 수 있어요.”
돈을 주고서라도 몸을 만지게 하는 여자. 치녀도 이만한 치녀도 없었다.
끓어오르는 성욕. 잘 차려진 육신. 일꾼들은 단숨에 버트에게 들러붙었다. 그 사이 유두를 만지던 일꾼은 고리를 끼우는 데 성공했다. 유두를 단단히 집은 고리는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버트는 투박한 싸구려 방울 소리를 딸랑거리면서 그들의 터프한 스킨십을 받아들였다.
“아…… 아아……!”
얼마 안가 방울 소리는 버트의 신음에 묻혀버렸다. 버트는 사방에서 찔러 들어오는 땀내나는 음경과 투박한 손길에 파묻혔다.
*
버트가 일꾼들과 농밀한 시간을 보내고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던 셔터킴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둔 것이다. 일꾼들은 무슨 일인가 싶다가도 버트가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진을 찍었단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밤중에 남정네들을 찾아오는 여자니 그런 취향이 하나둘 정도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꾼들은 어젯밤을 기념하는 사진을 몇 장 받았다. 제각기 섹스를 하거나 음경을 물고 있는 등 자세는 달라도 하나 같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었다.
“그보다 아드레이 왕국에 도착할 때까지 남았는데…… 혹시 금방 떠나실 건가요?”
사진을 받던 일꾼 하나가 운을 뗐다. 지금 그들이 향하는 여정은 짧게 끝날 게 아니었다. 이 말은 즉 버트와의 만남을 더 가질 수 있단 뜻이었다.
셔터킴은 버트를 보았다. 버트는 싫지 않았는지 머리카락을 베베 꼬며 웃었다.
“그러면……”
버트가 상의를 젖혀보였다. 그러자 하트모양 니플패치가 붙은 맨가슴이 드러났다.
“나중에 부탁 드려요.”
이 한 번의 행동으로 버트에 대한 소문은 야금야금 퍼져나갔다. 하지만 의외로 상단 내에서 유출되거나 하진 않았다. 버트가 노린 건 일을 하기 위한 일꾼이나 짐꾼들이었다. 그들은 체력이 충분하고 윗선이랑 잘 대화를 나누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버트의 마기는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그녀에게 홀려지고 체력적으로는 강성해지니 버트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셔터킴은 그런 버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차마 그녀에게 밝히지 못한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깨어나는 성취향이었다.
관음증.
셔터킴은 버트의 모습을 촬영할 때마다 성적 욕구가 치솟았다. 이건 단순한 번식 본능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사진을 찍으면서 느껴본 적이 없던 감각이었다. 셔터킴이 성불구자란 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이런 취향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버트와 시간을 보낼수록 그도 모르던 취향을 각성하게 됐다. 사진에 담긴 음란한 모습. 렌즈를 보며 야릇한 미소를 보내는 그 모습이 셔터킴의 아랫도리를 세웠다. 하마터면 무심코 그녀의 연락처와 집주소를 물어볼 뻔했다.
‘안 되지 안 돼.’
이건 숭고한 목적이었다. 버트가 원하는 최후를 맞이하게 해주는 것이지 개인의 욕망을 채울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셔터킴은 아쉬운 생각으로 사진을 보았다. 이 모습을 보며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게임 밖에서는 이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게임 안에서 저지르자니 불법 패치를 추가로 받아야 하는데……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버트가 다가왔다.
“고마워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네가 즐겁다니 다행이야.”
“아.”
버트는 밝게 웃다가 그의 아랫도리를 보았다. 한창 망상에 사로잡혀있던 셔터킴의 하반신은 건강했다. 발기한 흔적을 본 버트는 손을 뻗어 바지 위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셔터킴은 화들짝 놀라 한 발 뒤로 뺐다.
“……아. 죄송해요.”
버트가 민망한 얼굴로 손을 뺐다. 셔터킴은 한순간 아래쪽에서 느껴진 감각이 착각이 아니란 걸 알았다.
“어떻게…… 그런 프로그램도 있었어?”
“네……? 무슨 말씀이신”
버트는 되묻다 말고 아차 싶었다. 발르틴에서 니스가 보여주었던 현상. 지금까지 다른 플레이어와 접촉한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실수했어.’
셔터킴은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버트의 어깨를 붙잡았다.
“미안해. 부탁 좀 할게.”
“네? 무슨 부탁이요?”
“……나도 해주겠어?”
지금 셔터킴으로서는 이성을 차릴 수 없었다. 욕구를 배출할 통로도 없는 상황에서 버트의 마기가 조금씩 잠식했다. 방금 그가 버트와의 접촉으로 놀란 건 뜨겁게 달궈진 음경의 감각이 느껴져서였다.
버그인가? 아니면 특수한 프로그램인가? 하지만 그건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더 참을 수 없다. 눈앞의 여인과 몸을 합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부탁할게.”
버트는 놀란 얼굴로 셔터킴을 보았다. 언제나 침착해보이던 그가 필사적으로 말하니 뭔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왠지 모르게 남자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좋아요.”
셔터킴은 결국 버트에게 몸을 맡겼다. 상상 이상의 시간. 왜 지금까지 그녀와 좋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후회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교역로에서의 생활이 좀 더 농밀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