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62 문월 교역로 中
* * *
셔터킴. 자글자글한 파마머리 남자는 버트의 음란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버트는 그의 제안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폰타지아’ 사이트에서 보고 찾아왔다는 말에 마음이 기울었다.
“보아 하니 엄청나게 즐기는 거 같던데 이 참에 사진으로도 나가보는 건 어때?”
셔터킴은 버트가 말을 편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기에 말을 놓았다. 아무래도 외견 상 나이 차이가 상당해보였기에 버트가 불편해하는 걸 알았다.
“사진…… 혹시 그 사이트에 올리는 건가요?”
“맞아. 대신 다른 곳으로 유출시키진 않을 거야. 거기 사람들이 빼갈지 안 빼갈지 모르겠지만…… 여차하면 얼굴만 가리고 몸만 나오게 해도 돼. 보아 하니 몸에 점이나 흉터, 털 같은 건 잘 안 보여서 특정 짓기도 어려우니 괜찮을 거야.”
그의 갑작스러운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버트로서는 이 음란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이미 공개적으로 자신의 음란 영상을 올린 시점에서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처음으로 하는 다른 플레이어와의 교류였다. 조금은 신중하게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근데 저희가 키런 왕국으로 떠날 예정이라……”
다음 목적지는 키런 왕국 아니면 스카이 왕국이였다. 실상 가까운 거리는 스카이 쪽이었지만 게임을 좀 더 즐기고 싶어서 돌아가게 되었다.
“아, 마침 베톰 왕국과 아드레이 왕국의 교역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길을 통해 가는 건 어때? 나도 그곳 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었거든.”
셔터킴의 제안에 버트는 더 거절할 수 없었다. 만일 다른 곳으로 퍼져나간다한들 그의 말대로 얼굴만 가리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버트라는 캐릭터로 은송을 특정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루하다는 잠시 버트를 보다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셔터킴은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그럼 곧장 가볼까.”
그렇게 셔터킴과 버트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
문월 교역로는 최근에 만들어진 길이었다. 아드레이 왕국과 베톰 왕국을 연결해주는 길로 판테스 왕국을 관통했다. 각국의 교역로도 있었지만 이 교역로는 신생 국가와 이어졌단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상인이나 건설업자, 용병들은 물론 멋모르고 덤벼드는 도적들도 있었다.
그러나 도적들의 노략질은 단 2번만에 끝이 났다. 도적들은 베톰 왕국의 땅에서 벗어나자마자 덤벼들었다. 하지만 아드레이 왕국에서 보낸 흑사병대에게 단숨에 제압당했다.
“으아악!”
“죽어라! 죽어! 제발!”
“살려줘! 제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금속으로 무장한 흑사병들은 도적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했다. 도적들의 칼은 흑사병의 무장에 닿지 못했다. 그에 비해 흑사병의 검은 도적을 단숨에 갈라버렸다. 드러커스의 미로 레이드 때도 연합군과 대치했던 이들이었다. 일개 약탈꾼들이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베톰 왕국에서도 약탈을 일삼던 강한 도적도 섞여 있었다. 그들의 경우 노스페라투 기사 단 한 명에게 전멸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력 차!
이번 실패를 기회 삼아 다른 도적들은 랑그라 밀림을 관통하는 때를 노렸다. 숨을 곳이 많고 온갖 복병이 가득한 이곳에서 도적들의 2번째 기습은 성공하는 듯 싶었다.
샤아아악
하지만 진짜 복병은 따로 있었다. 거대한 뱀 한 마리가 단숨에 도적떼를 휩쓸고 지나갔다. 이 검은 뱀은 그저 도적들을 쫓아내는 게 끝이 아니었다. 도적 한 명을 꼬리로 휘어감고 천천히 집어삼키는 걸 보여주었다.
“히익?!”
“도망쳐!”
도적들의 실패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안 그래도 이슈를 몰고 있는 교역로인데 안정성까지 보장되니 사람들이 몰리게 됐다. 당연히 교역로에 오르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마터면 못갈 뻔했어.”
셔터킴은 뒤를 보며 말했다. 상단 중에 사람도 같이 실어 나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인기 많은 교역로를 쓰는 것보다 어려웠다. 상단과 사람간의 신뢰가 있어야 하고 사람을 태우는 만큼 물건을 빼야 했다. 심지어 이미 계획이 정해진 상행의 경우 이런 일이 더 까다로웠다.
그런데도 셔터킴은 이 일을 성공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상단에 출발까지 1시간도 안 남은 상행이었다.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경악하거나 조금이라도 조사해봤겠지만 버트는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셔터킴과 버트는 상단의 최후미에 있었다. 달그닥대는 마차 뒤에 앉아있는 두 사람은 잘 정리된 교역로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뒤에 그들 말고는 없었으니 풍경을 보는데 큰 제한은 없었다.
“버트는 리얼 플레이를 좋아하는구나?”
“리얼 플레이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텔레포트를 이용하거나 웃돈 주고 사람들에게 맡기고 시간 가속을 해두거든.”
버트는 라이나 니스의 반응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셔터 씨도 그럼 리얼 플레이 쪽인가요?”
“응. 그냥 넘기면 놓쳐버릴 장면들이 많거든.”
셔터킴은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겉보기에는 판타지아 곳곳에 널려있는 구식 카메라지만 스크린샷보다 화질이 좋았다. 셔터킴은 교역로 풍경의 사진을 찍어서 버트에게 넘겨주었다. 빠르게 구도와 명암을 잡은 거라지만 사진의 퀄리티는 꽤 높았다.
버트는 사진을 보며 감탄했다. 사진에 문외한인 버트가 보기에도 상당히 예쁜 작품이었다. 그 순간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그가 자신을 원하는 걸까. 그리고 왜 그런 불법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걸까.
버트가 이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니 셔터킴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야했으니까.”
“네!?”
“농담이고.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 보통 카메라가 앞에 있으면 어색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거든. 근데 앵글을 챙기면서도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게 타고난 프로라고 생각했지. 만에 하나 초짜라고 해도 타고난 재능이 있을 거 같아서 그랬지.”
“야한 것도 시킬 건가요……?”
버트의 질문에 셔터킴이 당황해서 손을 저었다.
“그럴 리가. 애초에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네? 왜요? 너무 헤퍼서 그런가요……?”
버트는 남자들이 처녀성을 좋아한단 걸 생각하고 물었다. 셔터킴으로서는 난처한 질문이었다.
“그거야 NPC면 모를까…… 실제 사람이랑 하는 거나 다름없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몸 자체가 섞일 수가 없어. 여긴 게임이잖아.”
“셔터 씨도 패치를 받은 거 아닌가요?”
“받았지. 하지만 다른 감각을 깨운 건 아니야. 나는 이쪽만 손을 봤거든.”
셔터킴은 눈을 톡톡 치며 말했다.
“그래도 불법 패치란 건 달라지지 않지. 그래서 섹스 패치를 받은 사람이라 해서 편견을 갖고 보는 건 아니야.”
셔터킴은 버트를 불법 패치 사용자로 낙인찍은 모양이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판타지아 내에서 그런 기능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야한 사진은 안 찍는 건가요……?”
버트의 질문에 셔터킴은 기어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물론 찍긴 할 거야. 하지만 그 전에”
셔터킴은 기습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실망스러워 하는 얼굴이 담긴 자신의 얼굴 사진이 나왔다. 버트는 놀란 얼굴로 셔터킴을 바라봤다.
“너의 매력부터 차근차근 뽑아갈 거야. 어차피 아드레이 왕국까지 가는 데 몇 주는 더 걸릴 거고 그때까지만 가볍게 놀아도 괜찮겠지?”
“아, 네……”
“그럼 우선 가볍게 몇 장 찍을까.”
*
버트는 셔터킴의 지도 하에 여러 사진을 찍게 되었다. 물론 전부 의식하고 찍는 게 아니었다.
“맛있겠다.”
상단에서 배급받은 빵과 샐러드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모습. 옆의 상인과 자잘한 얘기를 나누는 모습.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장비를 정비하는 모습. 판타지아 토속 생물을 처음 보고 신기해하며 손가락질 하는 모습. 재채기를 하고 다급하게 손을 휘젓는 모습.
버트의 일상은 사진에 듬뿍 담겼다. 하루도 안 되어서 버트의 사진은 화보집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건 비단 셔터킴의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버트의 생동감 있는 모습 역시 사진의 퀄리티에 한 몫 했다.
그랬기에 셔터킴은 만족했다. 버트는 타고난 모델이었다.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음.’
그랬기에 셔터킴은 고민했다. 아무리 봐도 버트는 쾌락에 사로잡힌 아가씨였다. 사진 찍을 때는 몰랐지만 폰타지아에 올린 것만 본다면 완벽한 치녀였다. 이건 그가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판타지아의 플레이어 중 누구보다 눈썰미가 있다고 자부했다. 오죽하면 시각만 따로 패치를 해서 감각을 일체화 시켰을까.
이걸로 그녀의 욕구가 해소될 수 있었다. 버트의 성욕은 대단했고 노출증을 자극하면 충분히 풀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오히려 불타는 욕구에 장작을 넣는 꼴이라면?
바닷물과 같은 욕망. 그걸 채우기 위해서는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했다. 어쩌면 그 사진을 보고 이상한 플레이어들이 꼬일지도 몰랐다. 지금은 운이 좋아서 큰일이 안 난다지만 억지로 덮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버트가 이곳의 욕구로 만족하지 못해서 현실로 뛰쳐나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버트가 다가왔다.
“잘 찍혔어요?”
“어? 어어.”
셔터킴은 어영부영 말하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버트는 해맑은 얼굴로 사진을 받아보았다. 셔터킴은 그 얼굴을 보다 나직하게 말했다.
“욕구불만이 센 편이니?”
그 말에 버트는 고개를 기울이더니 얼굴을 붉혔다.
“……네.”
“그것 때문에 곤란한 일은 없었고?”
버트는 그의 걱정을 알아챘다.
“솔직히 좀 걱정이 됐어요.”
버트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말을 했다. 색에 빠지면서 드는 걱정. 스스로 고뇌하고 맘 졸였던 그때를 떠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나지 않을까. 정말 심한 짓을 당하거나 더한 짓을 하지 않고서 만족하지 못하지 않을까.”
셔터킴은 그녀의 말로 버트가 욕망에 자각하고 있단 걸 알았다.
“사실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응?”
“아마 몇 달 뒤…… 현실 시간으로 몇 달 뒤에는 이 게임도 못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그때까지 마음껏 즐기려고요. 조금 음란한 방식이기는 해도 현실에서는 그런 생각이 조금도 안 드니 괜찮아요. 게임에서 벌어진 일은 게임에서 해결하고…… 게임에서 느낀 감정 역시 게임에 묻어둘 생각이에요. 그러니…… 괜찮지 않을까요?”
셔터킴의 두 눈에 물기가 서렸다. 그는 버트의 말을 심하게 오해해버렸다. 사실상 누가 들어도 버트의 말은 오해하기 좋았다. 설마 판타지아를 접어야 한다는 말을 그렇게 말할 줄 누가 알까.
셔터킴은 버트가 시한부거나 그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해할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장애.’
셔터킴은 심각한 약시였다. 최근 수술을 받아 앞에 뭐가 있는지 구분까지 할 수 있었지만 거의 맹인이나 다름없었다. 지인을 통해 폰타지아 캡쳐본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런 만남조차 가질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런 셔터킴에게 판타지아는 기적이었다. 선명하게 보이는 사물. 또렷하게 보이는 색. 뇌리에 박히는 역동성.
모든 것이 확실하게 보였다.
그랬기에 버트의 집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녀가 스스로 절제하고 있단 걸 안 이상 도움을 주고 싶었다. 차라리 해달라고 매달렸더라면 매정하게 떨쳐냈겠지만 어느 정도 참는 걸 보인 이상 셔터킴은 도움을 주기로 했다.
“괜찮고 말고. 세상에 성욕 없는 사람이 어딨어. 그저 조금 걱정 되서 그런 거야. 하지만 네가 잘 넘기고 있단 걸 알았으니 괜찮을 거 같네.”
“그럼……!”
버트는 은근 기대하고 있던 건지 손을 꼼지락거렸다. 셔터킴은 그 모습에 웃음을 참지 않았다.
“자, 그럼 가장 기본적인 거부터 해볼까.”
셔터킴은 카메라를 들어보였다.
“일단 노출의 기본은 조금씩 애를 태우는 거야. 잠깐 건드려도 괜찮을까?”
“아, 네……”
셔터킴은 버트의 옷에 손을 댔다. 지금 버트의 차림은 갑옷을 뺀 편한 차림이었다. 셔터킴은 셔츠와 바지 정도의 편한 옷가지에 손을 대나 싶더니 셔츠 밑을 살짝 들었다. 그 안에 감춰진 늘씬한 배와 옆구리를 보이게 하니 버트가 그걸 빤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배가 이 정도로 보일 만큼 옷을 들어 올려 봐.”
“이렇게요……?”
버트는 셔터킴이 한 대로 옷을 들었다. 셔터킴은 그대로 사진을 찍어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어때?”
“오……”
사진에는 아슬아슬하게 가슴 밑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 뺀다면 잘 단련된 여자의 몸을 담아놓은 것 같았다.
“여기서 좀 더 전개를 하는 거지. 더 보여주나, 덜 보여주나. 물론 너는 더 보여주는 게 좋겠지?”
“헤헤헤”
“일단 시작은 가볍게 하기로 했으니 감을 좀 잡아볼까.”
셔터킴은 버트에게 이런저런 자세를 잡게 해주며 사진을 찍었다. 일상을 보여주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카메라를 의식해서인지 자연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을 계속 찍으니 조금씩 버트의 얼굴에 의욕이 살아났다.
버트는 그의 말대로 포즈를 잡다보니 두근거렸다. 시선을 만끽하는 기분이라 해야 할지.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시선을 끌어당기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베즈웍 유적지에서 연구원들에게 선보인 포즈를 되새기게 되었다.
‘살아나기 시작했어.’
셔터킴은 앵글 속의 버트를 보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음란한 사진을 찍는다는 것만 빼면 정말로 모델을 세워도 될 정도였다. 어느 샌가 버트의 몸짓과 미소에 홀리기 시작했다. 멍하니 셔터를 눌러대던 셔터킴은 버트가 더 대담해지는 걸 보게 됐다.
셔츠는 반쯤 올라가서 희멀건 유방의 반 이상을 보여주었다. 두 팔에 짓눌린 유방은 유륜만 살짝 노출되고 있었다. 바지는 사타구니를 훤히 보여주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음부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과 사타구니 사이의 속살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은근히 눈을 사로잡는 노출…… 수많은 미인을 접한 셔터킴조차 침을 삼키게 했다.
버트는 그냥 예쁘기만 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의 매력을 알았고 색을 이용할 줄 알았다. 게다가 사람의 시선을 어떻게 해야 가져올 수 있는지 아는 듯 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노골적인 노출이 나올 수 없었다.
그러다 버트가 다시 손과 팔을 움직였다. 셔츠는 아예 가슴 위로 말아올렸다. 그러면서 두 손은 가슴을 포개 브래지어를 대신했다. 손가락 틈으로 유륜이 살짝 보이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셔터킴은 가만히 바라보다 카메라를 가까이 댔다. 그리고 셔츠 끝을 잡고 버트의 입에 물려주었다.
찰칵
그렇게 나온 사진은 발칙한 아가씨의 도발적인 모습이었다. 입 근처까지 보이긴 했지만 버트는 상당히 만족했다.
“우와아아……”
버트가 가슴을 내보인 채 멍하니 사진을 보았다. 그러다 셔터킴이 시선을 돌린 모습에 아차 싶었다.
“……봐도 괜찮아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으히히……”
버트는 귀엽게 웃으면서 검지를 세워 유두만 가린 채 가슴을 쭉 내밀었다. 이제는 유륜이 대놓고 보였다. 유두만 가렸어도 보이지 않는 나머지가 절로 연상되었다.
셔터킴은 그걸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사진에 담았다. 그렇게 나온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야하다. 원래 실력이 있다지만 구도도 제대로 안 잡고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도 역광은 없고 피부는 뽀얗게 빛이 났다. 인물이 과하게 찍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슬쩍 보이는 배경이 죽지도 않았다.
자신이 찍었다고는 믿기지 않은 결과물이었다. 셔터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버트를 보았다.
“좀 더…… 찍어보고 싶네.”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요?”
“그럼 이번에는……”
버트는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살짝 안았다. 두 발은 교차했고 손은 종아리 어림에 가지런히 모였다. 정면에서 찍은 이 다리 사진은 언뜻 보면 그냥 평범해보였다. 하지만 교차된 다리 사이로 은밀하게 보이는 사타구니가 시선을 확 끌었다.
벗은 건가? 엉덩이 주변에 천조각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타구니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단 건 하반신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여기에 무릎 위쪽으로 슬쩍 보이는 미소를 머금은 입가……!
이 사진 한 장은 온갖 망상을 만들어냈다. 비단 이 사진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바지만 입고 상체는 완전히 노출한 사진. 머리카락이 가슴만 아슬하게 가리고 있었다. 늘씬하게 드러난 몸매와 당찬 미소가 눈에 띄었다.
등 뒤로 손을 모은 나신. 두툼한 엉덩이와 등골, 옆구리가 눈에 띄었다. 거기다 상체를 옆으로 살짝 틀어서 옆가슴까지 드러났다. 유두는 보이지 않았지만 희고 둥그런 유방의 자태가 숨김없이 드러났다.
이렇게 어느 정도 외설과 예술을 줄타기한 사진들이 늘어났다. 각자 다른 자세와 구도로 수 백 장에 이르는 사진이 뽑혔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진의 심도는 깊어졌다.
“……이건 좀 부끄러워요.”
버트는 한쪽 팔을 들어 매끈한 겨드랑이를 내보였다. 그러면서 검지와 중지로 겨드랑이 속살을 벌려보이게 했다. 장난스러운 미소와 가슴의 윗부분까지 노출된 겨드랑이 사진은 참으로 마니악했다.
“어차피 더한 것도 찍을 거잖아.”
셔터킴의 말에 버트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니악한 사진에 빠져들었다.
배꼽을 중심으로 배 위에 손으로 하트를 그린다든지…… 양쪽 발을 포개어 집중시킨다든지…… 혀를 빼꼼 내밀고 쩍 벌린 입을 찍는다든지…… 맞붙은 허벅지를 클로즈업 한다든지……
하나 같이 페티시즘을 자극하는 사진들이었다. 실제로 이때부터는 특정 부분을 확대해서 찍게 되었다. 어딜 찍어도 버트의 매력은 감출 수 없었기에 찍는 맛이 있었다. 어디 하나 모자라거나 부족한 부분이 없었다.
그 덕분에 버트의 사진집은 금세 완성되었다. 셔터킴은 능숙하게 사진을 붙이면서 책을 만들어냈고 나란히 앉아 사진집을 감상했다.
“……우와.”
사진을 모아놓고 보니 더 대단했다. 언뜻 봤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전문 모델 같았다.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숨기고. 사진빨이란 게 그냥 있는 말이 아니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렇게 사진에 심취해있던 버트는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가는 거죠?”
확신에 찬 질문. 셔터킴은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상을 찍을 때를 빼면 에로틱한 사진집은 고작 하루만에 완성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쭉쭉 나아가버렸다.
“시간도 늦었으니 이 다음은 내일 해도 괜찮겠지? 상단이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우움……”
“아니면…… 네가 다른 사람이랑 하는 걸 찍어줄 수도 있는데.”
셔터킴의 말 한 마디가 버트를 완벽하게 자극했다. 커다란 눈망울은 일단 주변부터 보았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은 수레 마차 안에서 은밀하게 찍은 것들이었다.
덜걱 덜걱
마차 바퀴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버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바깥을 등지고 섰다.
교역로이기는 해도 간간이 다른 상단이나 보부상이 지나가고는 했다. 참으로 대담하기 짝이 없는 노출이었다. 그러나 셔터킴은 그런 버트를 나무라기보다 진지하게 자세를 잡고 카메라를 들었다.
“두 팔을 좀 더 벌리고…… 이번에는 숨김없이 보여주는 거야.”
“네에……”
버트는 홀린 듯이 두 팔을 벌렸다. 이번에는 옷으로 아슬아슬하게 가리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막지도 않았다. 고스란히 드러난 알몸은 셔터킴의 카메라에 들어갔다.
버트는 그렇게 알몸을 보이고 미소 지었다.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알몸을 보여주었다. 셔터킴은 이번에 얼굴까지 한 번에 찍었다.
도저히 저 웃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찰칵 찰칵
셔터 소리. 버트는 더 이상 참지 않고 손을 내려 음부를 매만졌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자위에도 셔터킴은 침착하게 카메라를 겨누었다.
통통한 허벅지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손놀림. 예쁜 색의 음부를 사정없이 비벼대는 모습이 그대로 찍혔다. 셔터킴은 점점 거리를 좁혔다. 활짝 열린 음부와 애액과 땀에 흥건해진 사타구니가 코앞에 보였다.
버트는 그런 노출 행위를 하면서 자위에 빠져들었다. 그의 앞에서 낯부끄러운 짓을 하며 몸은 격렬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찌덕 찌걱
민망한 물소리가 심해지는 가운데……
털컹
마차가 멈췄다. 버트도, 셔터킴도 화들짝 놀랐다.
“여기서 야영 준비를 할 겁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출발은 언제 하나요?”
누군가 수레 마차 뒤로 들어섰다. 버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셔터킴은 여유롭게 그녀의 앞을 막아선 채 대답했다. 마부는 이상한 걸 못 느꼈는지 태연하게 답변해주고 돌아섰다.
셔터킴과 버트는 동시에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서로를 보다 킥킥 웃었다.
“시간 나면 다시 하자. 알았지?”
“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