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아-61화 (61/104)

〈 61화 〉 61 ­ 문월 교역로 上

* * *

큐엘의 가게는 삽시간에 성장을 이루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섹스토이의 상용화. 이건 혁명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라존의 실세들이 경계를 하지 않으니 세력이 점점 커져갔다. 여기에 직접 섹스토이의 사용을 보여주는 종업원의 역할도 한 몫 했다.

“어서 오세요~”

야한 복장의 버트가 손님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의 모습에 손님들이 히죽거렸다. 열에 여덟은 그들처럼 버트가 목적인 사람이 많았다. 얼굴도 반반하고 몸매도 나쁘지 않는 그녀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단 점이 흥미를 끌었다. 그런 손님 외에는 순수하게 섹스토이의 성능에 놀랐다.

진동이 더해진 플라스틱 물건들은 하나 같이 밤일에 혁명을 일으켰다. 특히 ‘아가씨의 왕좌’라는 조직이 후원하기 시작하면서 섹스토이는 라존에 널리 퍼져나갔다.

덕분에 큐엘은 라존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갈 수 있었다. 버트는 최선을 다해 큐엘을 도왔다. 그러면서 자신이 찾는 방패를 수소문했다.

“그 방패는 도박장의 사은품이에요. 그러니 도박장 관계자에게 얘기해서 얻거나 큰 돈을 주고 구해야 해요.”

버트에게 정보를 전해준 건 바니걸이었다. 큐엘의 가게가 다시 열자마자 난입한 토끼장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녀는 애타는 얼굴로 버트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 원인은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박힌 딜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딜도는 루하다가 덤덤한 얼굴로 쑤셔주고 있었다.

쯔퍽­

“아앙……!”

“고마워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이 정도로 뭘요……! 아앗……! 아앙……!”

버트는 거리낌 없이 바니걸의 음부를 괴롭혀주고 루하다를 보았다.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버트는 루하다에게 바니걸을 맡기고 방패 건을 처리하러 나섰다. 다행히 이 일은 쉽게 끝날 수 있었다. 버트의 부름으로 찾아온 사람들 중 하나인 세느트로가 도박장의 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루하다나 버트가 나섰다면 일은 금방 해결됐을 것이다.

그렇게 루하다가 친히 바니걸을 녹여주는 동안 버트는 방패를 얻을 수 있었다.

「밤 괴물의 방패」

방패는 단숨에 버트의 몸으로 녹아들었다. 그리고 세트 아이템의 글귀에 한 구절이 추가 되었다.

‘어둠뿐인 세계에 빛이 나타나게 되고……’

더불어 「밤 기사의 강림」은 「마신의 허물」이 되었다. 버트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건 세트 아이템을 모으면서 드는 성취감이 아니었다. 곧 있으면 완성될지도 모른다는 고양감도 아니었다.

‘이상해.’

버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가슴에 손을 얹었다. 묘하게 침착해지는 기분. 버트는 그 기묘한 느낌을 느끼다가 돌아온 루하다를 맞이했다.

“고마워, 루하다. 다음 거 찾으러 바로 갈까?”

“괜찮습니다.”

“응? 왜……?”

“그릇께서 원하신다면 곧장 가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쫓기듯이 가는 건 원치 않습니다. 아직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 게 아닙니까?”

버트는 그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라존의 자극적인 분위기는 매력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린치나 다름없는 일도 버트에게는 한낮 유흥이었다. 상대를 억지로 덮치는 일도 재밌었고 바니걸을 길들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조금만 더……

버트의 욕망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여기서 좀 더 자극적인 놀음을 하기를 원했다. 루하다는 이런 버트의 욕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엇보다 루하다는 버트가 모르는 비밀을 하나 알고 있었다. 아직 그걸 밝힐 때가 아니었고 지금 말해봐야 소용없었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그 남자가 숨기고 있는 또 하나의 육신.’

루하다는 잠시 라이에 대해 생각하다 버트를 보았다. 버트는 어느 샌가 바니걸 복장으로 옷을 바꿨다.

“어때……?”

루하다는 옅게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을 본 버트는 수줍음에 몸을 베베 꼬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루하다가 인간 육신을 가진 후로 한 번도 관계를 갖지 않았다. 버트는 문득 이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참에 여기서 말하려 했다. 돌아오는 골렘 마차에서는 분위기 때문에 하지 못했던 걸 신나게 즐기려 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접촉이 그녀의 계획을 방해하고 말았다.

“여기……”

그림자를 쫓는 별. 그곳에서 보낸 심부름꾼이 버트에게 서신을 전달했다. 버트는 루하다에게 말을 하려다 말고 어색하게 웃으며 편지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어?”

“무슨 일이신지?”

“아, 아무 것도 아냐. 오늘은 여기까지……!”

버트는 그렇게 말하며 루하다의 품에 안겼다. 루하다는 축 늘어진 버트를 안고 자리를 옮겼다.

*

은송은 로그아웃하자마자 편지에 적힌 내용을 검색했다.

‘폰타지아?’

포르노에 판타지아를 합성한 단어로 이름 그대로의 뜻을 가졌다. 판타지아와 관계된 모든 음란물을 일컫는 말이었다. 판타지아 내부에서의 관계 영상이라든지 야한 모습을 촬영한 자료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이걸로 얘기가 많았다. 음란물은 불법인 곳에서 이런 노골적인 음란물은 그렇게 좋은 시선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최고의 인기 게임인 판타지아에서 벌이는 일이니 손가락질 받는 건 당연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듀크 사는 명백히 뜻을 밝혔다.

“마음대로 해라.”

애초에 판타지아는 성적인 컨텐츠가 전부 잠겨있었다. 이건 비단 신체접촉만이 아니라 관람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버트나 니스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음란한 행위는 다른 장면으로 대체되거나 차단되었다. 자연스럽게 짜깁기된 정보 덕분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건전한 게임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앞서 말한 폰타지아가 가능하게 된 건 불법 패치 때문이었다. 그것으로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모든 감각을 일깨우게 했다. 불법 패치인만큼 듀크 사에서도 제지를 하는 게 맞았다. 물론 그들도 막으려 들었다. 하지만 기기 하나하나를 관찰할 수도 없거니와 보안법이 어느 정도 강화되어서 개개인의 자유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듀크 사에서는 입장 발표를 했다.

“해당 제품은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끝냈습니다. 불법 패치나 개조 외에 이상을 일으키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만에 하나 그런 경우가 있다면 저희가 전력을 다해 배상할 것입니다.”

당연히 이로 인한 블랙 컨슈머가 나타났다. 하지만 듀크 사가 철저하게 그들을 분석하고 반격하면서 이 사건은 단숨에 사그라졌다. 이로 인해 여론이 잠깐 들끓었지만 듀크 사의 제품 내구성만 증명하는 꼴이 되었다.

이후 듀크 사는 불법 패치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다.

“저희가 실제 감각과 차이를 둔 이유는 쇼크의 위험 때문입니다. 비단 그것만이 아니라 가상현실과 현실과의 괴리감을 조절하기 위해서기도 합니다. 해당 기기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불법 개조를 한 순간 저희의 손을 벗어나게 됩니다. 차라리 이 게임을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듀크 사 이외의 곳에서 수리나 개조를 하시면 안 됩니다. 비슷한 류로 판타지아는 저희가 내놓은 제품 이외의 것으로 가동하셔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저희는 불법 개조나 패치로 벌어진 모든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 말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몇 소비자들은 위험한 기계라며 불안에 떨었다. 어떤 이들은 듀크 사가 헬멧으로 모두를 조종할 거라 음모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런 소란도 이름 좀 있는 영상 제작자들이나 연예인들 덕분에 종식되었다.

“그렇게 위험한 물건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걸로 세뇌됐을 거였으면 진즉 AI한테 지배당했죠.”

“전 이거 종종 해요. 가끔 차 안에서 이동할 때도 즐기구요.”

“나 같은 아저씨도 하기 쉬운 게임이 어디 흔한가. 난 그냥 할란다.”

“이것도 다 합법 아닌가요? 그럼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잘못이죠.”

그들은 판타지아 자체는 문제가 없으며 나쁘게 쓰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태여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당연한 말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여론이 가라앉나 싶었지만 듀크 사의 대처가 한 번 더 이슈로 올랐다.

그들은 불법 패치나 개조를 잡지 않았다. 그로 인한 부작용을 엄중히 경고하고 광고하면서도 사용자들을 잡지 않았다.

왜?

오히려 이런 대처가 의문의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우스갯소리로 불법 사용자들은 전부 죽거나 다쳐서 막지 않는다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그걸 유머로 넘기기에는 듀크 사는 참으로 여유로웠다.

뒤늦게 머리 깨나 쓰는 이들은 듀크 사의 의중을 눈치챘다.

할 테면 해봐라.

아직 실제 피해자가 나선 적은 없었다. 나오기는 했으나 하나 같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거나 정신 착란이 온다는 식이었으나 전부 블랙 컨슈머였다. 그들이 진짜가 아니란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듀크 사의 경고는 무겁기만 했다. 이쯤 되면 호기심에라도 쓸 법 했건만 어느 누구도 쓰지 않았다.

죽을지도 모른다.

무의식에 담긴 가정과 그로 인해 빚어진 공포가 호기심을 억제했다. 물론 이걸 무시할 정도로 용감한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아직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폰타지아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그런데도 이슈화가 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용자들이 떠벌리지도 않거니와 듀크 사에서도 어느 정도 여론 조성을 막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방치를 한다고는 하지만 판타지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요소를 배제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이런 걸 쓸 사람들이 모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보안을 신경 쓰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 했다.

‘이건 세영의 의견이었지.’

은송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심각한 얼굴로 사이트 주소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이 사이트를 찾는 이유는 라존에 퍼진 영상 때문이었다. 그 영상이 업로드 되었다는 말에 은송은 다급하게 확인하려 했다. 어떻게 세영이 이 사이트를 알고 있는지는 넘어갔다.

어쨌든 은송은 이 사이트에 접속했다. 생각해보면 다른 플레이어와 연결할 수 있는 최초의 경로였다. 지금까지 판타지아 커뮤니티나 길드 가입조차 안한 은송에게는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그런 귀중한 첫 경험이 포르노 사이트가 될 줄은 몰랐다. 은송은 팔자려니 싶어서 간단한 회원가입을 거치고 접속을 했다. 어느 정도 보안은 있었던 건지 매크로 확인이나 설문조사 몇 개를 거치고 나서야 접속할 수 있었다.

‘우와.’

사이트에 있는 건 다양했다. 플레이어가 자신의 모습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남기거나 관계를 갖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몇 개는 일부러 모자이크를 해서 괜히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진짜 야동을 보는 것마냥 실감나는 현장에 은송은 얼굴이 벌개졌다.

‘음란해 진짜.’

은송은 그렇게 생각하며 사이트 속 모든 모습을 기억했다. 나중에 루하다나 다른 사람과 하게 될지도 몰라서였다. 어느 샌가 27페이지까지 넘어간 은송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라존을 검색했다.

‘진짜네.’

계속 페이지를 넘기느라 몰랐는데 버트의 모습이 찍힌 영상이 올라와있었다. 동영상은 영상 큐브를 관람하는 시점으로 진행되었다. 그것도 최근자로 브루트 서클의 깡패들에게 당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이렇게 보니 진짜……’

은송은 엄지 손톱을 씹으며 영상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적나라한 그 모습이 눈에 콕 박혀서 떠나지 않았다. 처음 세영과 버트의 모습을 관람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무심코 10분이 넘는 걸 다 본 은송은 고개를 털며 중얼거렸다.

“누가 이걸 올린 거야?”

이 사이트에 올렸단 건 플레이어가 보고 올렸단 소리였다. 하지만 앞서 말한 불법 패치나 개조가 아닌 이상 영상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게 떠올랐다.

‘가만 그러면 내가 한 건 플레이어가 한 일이야, 아니면 게임에서 한 일이야? 버트는 대체 어떻게……’

그 의문은 다른 의문으로 이어졌다.

‘근데 왜 이상한 생각이 안 드는 거지?’

새삼 느낀 거지만 게임 밖에서는 야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버트였다면 이걸 보자마자 곧장 자위를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엉겨붙었을 텐데…… 지금은 그저 야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자위를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약간의 괴리감. 분명 은송이 버트고 버트가 은송일 텐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은송은 그렇게 생각하다 영상이 끝난 걸 보았다. 그러자 어두워진 모니터에 자신의 얼굴이 비춰졌다.

“어?”

한순간 버트가 보였다. 은송의 모습과 버트가 겹쳐졌다고 해야 할지…… 언뜻 보면 헷갈릴 수준이었다. 그러다 광고가 나오면서 다른 화면으로 넘어갔다. 은송은 당황해서 스마트폰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얼굴 그대로였다. 버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럴 리가 없지.’

가상현실 게임의 영향이 현실에 미친다니. 버트의 플레이를 할 때마다 아랫도리에 홍수가 나긴 했지만 이건 비약이 심했다. 그건 감각이 연결되면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이고 방금 한 착각은 정말 말이 안 되는 가정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좀 아팠지?’

그러다 감각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라피에 초원에서 늑대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팔에 상처를 냈을 때였다. 그때는 무심코 넘어갔는데 제법 따끔거렸다. 심지어 마을에서 리버가 팔뚝을 손톱으로 찍었을 때도 쓰라렸다.

지금까지 크게 다친 적이 없어서 몰랐다. 하지만 쾌락을 그렇게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다른 것도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했다. 여태까지 음란함에 취해 그런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야한 생각이 들지 않는 지금에서야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불법 패치에 대한 정보를 안 시점에서 이건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복잡해.’

은송은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왜 이런 고민을 하는지조차 짜증이 났다.

게임을 그만두려고? 그게 아니면 다른 해결책을 찾으려고?

어찌 보면 상당히 안일한 행동이었다. 자기 몸 어쩌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은송은 짜증만 느끼고 있었다.

‘음……’

복잡한 고민을 넘기고 싶던 은송은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마신의 씨앗을 부화시키고 육신을 다 모으면 그만두게 될 게임이었다. 이런 고민으로 게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 때 떠오른 건 이 사이트에 올라온 버트의 모습이었다.

‘조금 올려볼까?’

얼마 전까지 민망해하던 것과는 달리 은송은 버트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이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은송은 슬쩍 세영에게 연락을 넣었다. 아직 게임 중이었던 건지 답은 오지 않았다.

‘조금만……’

은송은 언젠가 세영이 보내주었던 동영상 하나를 내놓기로 했다. 바로 레드윙 도적들에게 노리개로 쓰일 때였다. 세영이 하이라이트 컷이라며 정성스럽게 편집한 15분 내외의 영상이 사이트에 올라갔다.

‘설마 이걸로 누가 추적하거나 하겠어.’

은송은 기지개를 켜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간만에 판타지아에서의 수면이 아닌 헬멧이 없는 침대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

삐리리­ 삐리리­

삐ㄹ

“여보세요……”

“박은송.”

세영의 목소리였다. 은송은 나른한 목소리로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1시간 정도 지난 듯 했다.

“왜애……”

“너 폰타지아에 영상 올렸어?”

“올렸는데에……”

“어휴……”

세영의 한숨이 들렸다. 은송은 세영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무슨 일이 났나 싶어서 부스스 일어났다.

“왜 그래……?”

“알고서 올렸다면 상관은 없는데 사람들이 너 찾고 있는 건 알아?”

“날……?”

“그래.”

은송은 눈을 부비적거렸다. 아직 잠이 덜 깨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어휴, 지금 컴퓨터 킬 수 있지? 조회수를 봐.”

은송은 세영의 말대로 그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2만을 기록한 조회수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2만 번 봤다는데?”

“1시간도 안 돼서 조회수 그 정도 뽑히면 엄청 봤다는 거야. 지금 네 캐릭터가 여러 명한테 구경당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구나.”

“그렇구나? 이거 심각한 일이야. 사람들이 너한테 주목하면 어쩌려고 그래?”

은송은 가볍게 인상을 썼다. 세영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그러나 그렇게 심각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귀족인 걸 밝혔을 때보다는 이슈가 덜 할 거 같은데……”

은송의 말에 세영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실질적으로 이 사이트의 이용자 전부 판타지아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단순히 야한 걸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의 컨텐츠를 이용하는 플레이어 치고 이상한 프로그램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찔끔할만한 사람들. 은송이 그걸 염두에 두고 말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냥 넘길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야. 아직까지 듀크 사가 건드리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건드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특히 버트의 경우 빼도 박도 못해. 플레이어라면 이상한 버그가 있거나 불법 패치 의심을 받을 테고 캐릭터라면 이상 행동을 한다고 교정하려 들 거야. 뭐가 됐든 위험할 수 있어.”

“으응…… 미안.”

“나한테 사과해서 어째. 그보다 어지간히 보이고 싶었나봐?”

세영의 말에 은송은 잠시 주춤거렸다.

“……응.”

“기왕 올릴 거면 좀 더 야한 걸로 올려. 사실 거기에 올라온 것 중 버트가 제일 야한 건 알고 있지?”

“그래……?”

“그래. 너라면 다 훑어봤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자신 있어서 올린 거 아니었어?”

“아니……? 세영이 너는 다 본 거야?”

……

“하여튼 올릴 거면 각오하고 올려. 거기 고인물도 있을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알았어……”

은송은 전화를 끊고 사이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전화를 하던 사이에도 조회수는 쭉쭉 올라가고 있었다. 이걸로 딱히 돈을 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좀 더 올려볼까?’

*

버트의 포르노가 다섯 개 정도 추가로 올라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람들은 댓글로 엄청나게 음담패설을 지껄여놓았다.

[ 존나 허벌이네ㅋㅋㅋㅋ ]

[ 따먹히고 있는데 개좋아하는거 보소 ]

[ 물 흘리는 거 좆되네 ]

[ 마 함 주라 ]

[ 씹ㅋㅋㅋㅋ 개꼴린다 진짜 ]

버트는 그런 음담패설을 판타지아로 가져와 보고 있었다. 단숨에 아랫도리를 적시게 만드는 글귀가 눈에 꽂혔다. 그걸 보고 있던 버트는 옆에서 느껴진 기척에 흠칫 놀랐다.

“루하다……?”

“뭘 보고 계십니까?”

“야한 말……”

버트는 차트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루하다는 그런 버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음.”

루하다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윽고 버트의 귀에 대고 조곤조곤 무슨 말을 속삭였다. 그 말이 계속 되니 버트의 두 눈이 동그래지며 바들바들 떨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루하다가 말을 끝내고 입을 떼고 나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버트. 이번에 입을 건…… 버트?”

때마침 큐엘이 찾아와 새로운 옷을 제시했다. 앙고라트에서의 정착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여러 조직에서 후원도 받게 되었다. 지금 큐엘이 가져온 구멍 뚫린 속옷도 그 중 하나였다. 가게를 열기 전 버트에게 입힐 것들을 골라왔는데 그녀가 꿈쩍하지 않았다.

“버트, 왜 그러세요?”

“아, 아, 아.”

버트가 다급하게 손을 푸덕거렸다. 루하다가 설마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의외인 것도 있지만 루하다의 음담패설이 상상 이상으로 끈적하고 노골적이었다. 버트는 몸이 달아서 섹스부터 하자고 말할 뻔했다가 큐엘을 보고 말했다.

“이, 이제 슬슬 떠날까 해서요. 여기 온지도 몇 달이나 됐고……”

“그렇군요. 원하던 물건도 얻으셨는데 아직까지 있으셔서 의아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없으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없을 때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고 갈까요?”

“괜찮습니다. 지금도 버트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만큼 가게가 안정될 수 있었던 건 버트 덕분입니다.”

버트는 미소를 듬뿍 담아보였다.

“그러면 이거라도 갖고 가시겠어요? 어차피 버트가 아니면 입을 사람도 없으니……”

큐엘은 버트에게 여러 옷가지를 넘겨주었다. 하나하나 버트가 입었거나 입을 예정이었던 옷들이었다. 평소 그림자를 끄집어내어 장비하던 버트에게는 쓸모가 없었지만 나중에 필요할 거란 생각에 일단 받아두었다. 언젠가 잔뜩 받았던 섹스토이들도 쓸 데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쳐박아뒀으니……

버트는 큐엘에게 선물을 듬뿍 받고 미소와 함께 이별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손님이 방문했다.

“저기요.”

“아, 아직 문 열려면 멀었습니다. 그리고 종업원은 오늘 부로 그만둡니다.”

큐엘의 설명에도 파마머리의 중년 남성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버트. 이모탈 대 이모탈로 얘기를 하러 왔습니다.”

버트는 눈을 껌뻑였다. 그가 버트를 단숨에 이모탈이라고 지칭한 것도 놀랐지만 그가 플레이어란 사실도 놀라웠다. 어찌 보면 칼라 해변 이후로 다른 플레이어와의 첫 교류였다. 너무 설레는 상황에 버트는 눈을 반짝거렸다.

“뭔가요?”

“모델이 되어주지 않겠습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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