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아-54화 (54/104)

〈 54화 〉 54 ­ 베즈웍 유적지 下

* * *

[네가 추종하는 자는 누구냐 벨루그하!!]

페이니의 한 마디가 머리를 떠나가지 않았다.

둠워퍼 일족은 마신 리아주크의 그림자다. 그렇기 때문에 마신을 섬기고 추종하며 뒤를 따른다. 리아주크의 발걸음을 쫓는 자라는 이명이 생긴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마신의 그림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마신이 사라진 지금 둠워퍼의 존재는 무의미했다.

‘나는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

루하다는 거듭된 실험에 빠져드는 버트를 보고 있었다. 그녀와 긴밀하게 연결된 루하다였기에 행복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만일 버트가 조금이라도 거부감을 느꼈다면 연구원들을 찢어발겼으리라.

하지만 그녀를 지켜보면 볼수록 기분이 이상했다. 이건 언젠가 씨앗의 성장을 위해 시험해보던 그때의 기억 때문이었다.

‘크람스로 향하던 그때.’

버트가 처음 사람을 해쳤던 그때. 씨앗의 성장을 돕는 게 부정적인 감정도 있다는 걸 모를 수 없었다.

마기는 모든 것의 근원.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감정이 씨앗을 키울 수 있다 생각했다. 예상대로 버트가 부정적인 감정에 빠졌을 때 씨앗이 반응했다.

동시에 루하다의 정신에 이상한 영향을 끼쳤다. 이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기도 전에 버트는 어느 샌가 자신의 마기로 도적떼를 홀려버렸다. 루하다는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한 가지 감정을 깨우쳤다.

‘동정심.’

그 감정을 지우기 위해 도적들을 사살했다. 다행히 버트는 그들이 죽었단 걸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자리를 비운 사이 버트가 지하에 갇혔다. 그 후 엄청난 학대로 힘들어했을 때 루하다는 분노했다.

‘감히.’

라이칸슬로프가 버트를 탐했을 때도 이렇게 화가 나지 않았다. 전신의 형체가 일그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섣불리 난동을 부리면 백신들이 쫓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차분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왜……? 이유는 모르겠다. 버트를 추종하는 자신을 밝히고 싶었다.

이후 칼라 해변에서 가이람 백작과 다투었을 때 몹시 짜증이 일었다. 나누어서 상대를 농락하고 있을 때 새삼 육신을 가진 백작을 의식하게 되었다.

‘물질적인 육신일 뿐이다.’

버트와 몸을 합친 그가 루하다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버트가 교성을 지르기는 했어도 무의식에서 흘러 들어오는 행복감은 자신이 더 컸다.

그런데도…… 석연찮았다. 분명 버트는 자신을 더 좋아하는데 몸을 합치는 그 순간 짜증이 났다. 그래서 니스가 버트의 친구란 걸 알았음에도 심술궂게 다뤘다.

그때 느낀 그 감정은 분명 질투였다. 이후에도 버트가 눈에 밟혔다. 그리고 계속 그녀를 걱정하게 됐다.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될 때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떠나가지 않았다.

머지않아 버트가 실험에 대해 고민할 때 그 감정을 알았다. 버트가 루하다의 일부와 마기를 섞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묘한 감정이 섞였다.

기쁨……? 루하다는 그 감정을 접하자마자 행복감으로 차올랐다. 그 순간 루하다는 지금까지 버트에게 느낀 모든 감정을 깨달았다.

「나는……」

*

실험기록 006.

“히힛……! 힉……!! 히핫……! 히잇……!”

반쯤 정신을 놓아버린 듯한 웃음 소리. 지금 버트는 발정제의 70% 농도를 투여 받은 상태였다. 처음 실험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이 정도까지 올 때까지 버트는 몇 번이고 실험을 그만두고 난교에 빠졌다. 그만큼 만드라고라에서 개발한 미약은 효과가 대단했다.

버트가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지만 그녀의 육신에 통하는 약은 드물었다. 현재 버트에게 적용되는 저항력은 독지를 맨몸으로 걸어도 중독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런 저항력을 뚫고 신경을 자극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생물 병기도 만든 시점에서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랬기에 버트가 허리를 들썩이며 애액을 쏘아대고 있는 것이다.

버트는 허리를 한계까지 뒤로 꺾은 채 들썩이고 있었다. 주입만 했을 뿐인데도 연달아 절정에 빠질 쾌락이 터졌다. 옛날 같았으면 주입하자마자 로그아웃 했겠지만 버트는 이성을 잃어도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다.

푸슛­ 푸슛­

애액을 쏘아대는 모습은 연구원들의 차트에 기록되었다. 이전의 실험 기록을 토대로 약물은 차근차근 버트를 잠식했다.

“힛…… 힉……”

버트는 애액을 싸지르다말고 연구원들을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약물에 적응시키기 위해 몇 번이고 쾌락으로 해소해준 결과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버트에게는 이 상황은 실험이 아니었다. 그저 갑갑할 때 그들이 기분좋게 풀어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버트가 발정제에 적응하고 연구원들과 몸을 섞는다. 이 순환을 반복한 결과가 지금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연구원들은 버트를 붙잡더니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에으…… 으…… 섹스…… 안 해요……?”

“오늘은 바로 하지 않아요.”

“그러니 최대한 참아보세요.”

밧줄은 버트의 몸을 완벽히 옭아맸다. 그저 묶기만 한 게 아니었다. 두 팔을 속박하고 숨통을 제한했다. 유방을 짜내듯이 휘감고 몸 곳곳이 조이게 묶였다. 버트가 몸을 꿈지럭댈 새도 없이 몸이 허공에 들려졌다. 밧줄에 체중이 실리니 피부에 강하게 파고들었고 압박감은 이전보다 세졌다.

“학…… 흑……!”

버트의 가랑이에서 애액이 방울져 떨어졌다. 지금 그녀에게 밧줄의 속박감마저 찐득한 애무 같았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밧줄이 조이면서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얌전히 있지 않았다. 몸을 비틀 때마다 밧줄이 조이는 게 기분 좋아서 그랬다.

그러자 연구원 하나가 목 부근의 밧줄을 당겼다.

“헤흑……”

“얌전히 있으세요.”

분명 말을 높이고 있었다. 하지만 줄을 당기는 손짓이나 표정만큼은 하대나 다름없었다. 그런 막대하는 태도야말로 자극제였다. 버트는 눈을 데굴 굴리면서 작게 기침했다. 줄이 당겨지면서 턱 밑으로 파고든 밧줄이 호흡을 제한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면 질식해버릴지도 몰랐다.

케흑­ 켁­

버트가 그 말을 듣고 무심코 몸을 뒤틀었다. 그러자 그녀의 허벅지로 연구원 한 명이 들고 있는 패들이 작렬했다.

짝!

“흐앙……!”

“얌전히 있으세요.”

“아, 알았…… 어요……”

연구원은 패들로 방금 때린 부분을 쓰다듬었다. 버트는 얼얼함을 느끼면서도 괜스레 그걸 힐끔거렸다. 맞는 것인데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 좋았다. 이색적인 자극이 신경 쓰이니 계속 시선이 갔다.

그걸 알아챈 연구원은 다시 한 번 패들로 그녀의 허벅지를 때렸다.

짝­ 짝­

땀에 절은 충만한 살덩이는 차진 소리를 냈다. 그 농밀한 자극은 버트의 성욕을 정제했다.

“핫……! 힛……! 빠, 빨리…… 빨리…… 해줘요……”

버트의 울음기 섞인 애원은 소용없었다. 몇 번이고 부탁해도 버트의 몸속의 열기는 빠져나갈 기색이 없었다.

뜨겁다. 피부가 지글지글 익다 못해 근육이 터져버릴 거 같았다. 밧줄의 속박감만으로는 해소하기가 어려웠다. 커다란 응어리는 지금 눈앞의 연구원들과 몸을 섞지 않으면 불가능할 거 같았다.

버트의 입에서 땀에 섞인 침이 떨어졌다.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의 근육이 노곤노곤하게 녹아내렸다. 버트는 고개를 축 숙였다가 거세게 흔들었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정신은 몽롱하게 잠식됐고 육체는 뜨겁게 타올랐다.

약물로 벌어진 상반된 효과는 버트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해주면 될까요.”

“섹스…… 섹스 해주세요……! 보지에 자지든 손가락이든 집어 넣어주세요……! 미칠 거 같아요……! 좀 더 만져줘요…… 지릴 때까지 여기저기 만져줘요……!”

“들어드리겠습니다.”

연구원이 한 발 물러났다. 그러자 누군가 버트의 앞에 당당하게 서있었다. 버트는 흐릿해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잘 빠진 몸이었다. 여기저기 근육이 알알이 박혀있는 탄탄한 몸에 키도 제법 컸다.

“이 분이 나의 모체인가?”

간드러진 목소리. 버트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의 커다란 손이 허벅지를 쥐었을 때 모든 성욕이 해소되는 착각까지 들었다.

“아……”

버트가 멍하니 입을 벌리자 남자는 몸을 숙여 입을 맞췄다. 단단히 속박된 버트는 저항할 새도 없이 키스를 허락했다. 아랫도리에는 그의 꼿꼿하게 선 음경이 파고 들었다. 녹아내릴 수준으로 풀린 질이 음경을 빨아 들였고 버트는 남자와 키스를 하면서 몸을 떨었다.

“흐웁……”

남자는 키스를 하며 곧장 섹스를 시작했다. 곧게 선 그의 음경은 버트가 원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문질러주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처럼 원하는 부분을 정확히 찔러오니 버트는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튕겨대며 기뻐했다.

남자의 두 손이 버트의 전신을 더듬었다. 약 기운 때문에 뜨거워진 몸은 손이 닿을 때마다 흠칫 떨렸다. 남자는 버트의 말랑말랑한 혀와 입술을 즐기다 입을 뗐다.

“좋은가요?”

남자는 물었다.

“네…… 좋아요…… 자지가 보지를 푹푹 찌르는 거…… 좋아요……”

버트는 음란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는 방긋 웃었다. 그의 미소에 버트의 마음이 무방비하게 풀렸다. 그리고 헤벌쭉 웃으며 혀를 삐죽 내밀었다. 다시 한 번 키스를 바라는 요망한 혓놀림. 남자는 그녀의 도발에 응해주었다.

*

그렇게 버트가 남자와 몸을 섞는 동안 연구원들은 바쁘게 실험 결과를 도출하고 있었다.

“샘플 X­003 미리 준비해둬.”

“X­041이 주입 받고 있는 마기는 어느 정도야?”

“분당 1은 넘길 거 같습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전부 기록해둬야 해. 그릇에게서 나오는 파장은 누가 기록하고 있어?”

“접니다. 이대로 계속 진행하면 샘플용 마기 200개는 거뜬히 나올 겁니다.”

“추출되는 대로 C 섹터로 보내!”

“실험 장치랑 관찰 장치가 마기에 오염되고 있다! 수리공 대기해!”

버트가 한 번 실험을 거칠 때마다 만드라고라는 수라장을 거쳐야 했다. 처음 실험은 단순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실험이 전개될 때마다 마기와 온갖 자료가 넘쳐날 정도로 쌓였다. 연구원들은 다급하게 루하다의 일부와 버트의 마기를 뒤섞어가며 실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결과를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수 십, 수 백 년을 거쳐 만든 키메라학의 판도를 뒤집을 생물이 만들어졌다. 그 어떤 생명 공학과 마법 지식을 부정하는 개체. 그야말로 ‘창조’의 영역이었다. 당연히 이 부분에 대해서 만드라고라 연구원들은 때 아닌 회의가 벌어졌다.

과연 이 실험을 지속해야 하는가. 아니면 금단을 범접하는 걸 그만두어야 하는가.

물론 결과는 금세 나왔다. 한 때 마신의 위상을 넘보았던 셀기디어의 휘하였다. 이런 그들이 마신의 모방이라는 일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나탈리의 말을 따라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셀기디어가 감시 격으로 보낸 연구원조차 그들의 뜻에 휩쓸릴 정도였는데 나머지는 오죽할까.

덕분에 실험은 급진적으로 진행되었다. 버트와 섹스 중인 남자가 성과였다.

“이 정도로 마기 친화적인 육신이라면 씨앗을 안착시킬 수도 있겠어.”

“아니면 멸족한 둠워퍼의 아종을 만들 수도 있고!”

“설사 모두 안 되더라도 타티샤 님의 연구를 이어받아 더 강한 물질을 만들 수 있어!”

연구원들은 희망적이었다. 버트를 통해 기술이 발전한 데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실험에 인력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버트가 양질의 마기를 뿜는지, 루하다의 일부와 어떻게 섞어야 하는지 연구했다. 그리고 실험체 X­041과의 섹스로 나오는 기록을 확인하며 실험 계획을 짜내려갔다.

*

결론적으로 말하면 섹스면 뭐든 상관없었다.

실험기록 013. X­041과의 섹스 이후 몇 번이나 다른 실험체와 몸을 섞었다. 개중에는 X­041과 달리 추하게 생긴 남자도 있었고 테크닉이 떨어지는 남자도 있었다. 심지어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버트는 누구와 섹스를 해도 마기를 잔뜩 뿜어냈다.

실험기록 016. 초반에 만들어진 개체 중 형태가 완전하지 못한 것과 교합시켰다. 해당 실험체는 생식 기능이 없는 데도 촉수처럼 번져나가 버트와 교미했다. 버트는 당연스럽게도 마기를 듬뿍 뿜어내며 절정했다.

실험기록 017­1. 이건 실험기록에 들지 않는 기록이었다. 바로 버트가 실험기록을 확인하다가 몸이 달아 연구원들과 몸을 섞는 경우였다. 버트는 영상을 보면서 연구원들의 몸을 만졌다. 연구원들 역시 버트의 몸을 만져주었다. 그렇게 흥분으로 달아버린 그들은 단번에 난교로 돌입했다.

“흐하……”

버트는 판타지아에서 몇 주 사이에 어마어마한 섹스를 즐겼다. 이제는 이 정도로 즐겨주지 않으면 서운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방탕한 실험을 지내니 실험체들도 점점 진보했다. 이건 아주 놀라운 성과였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몸을 섞어본 적 없던 실험체가 그녀의 성감을 전부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버트의 성향가지 단번에 파악했다.

“읏…… 아……! 아……!”

실험기록 031.

실험체 X­055는 손 하나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가슴을 현란하게 유린했다. 수 백 가닥의 얇은 촉수는 유방을 휘어잡고 유륜을 조이며 유두를 뒤덮었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에 힘이 생기면 이런 느낌일까. 간질거리면서도 확실한 압박감에 버트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X­055가 버트의 머리채를 잡아들며 속삭였다.

“암캐 새끼가 어딜 함부로 고개를 내려.”

“미안…… 미안햇……! 앙……!”

“미안해?”

“죄, 죄송해요……!!”

X­055는 버트에게 고압적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그녀가 원하는 타이밍에 맞춰 성감을 자극해주며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능숙하게 대처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마치 이전 실험체들의 기억이 모두 전이된 듯 싶었다. 그리고 연구원들이 이 추측을 확신한 건 실험기록 033때였다. 이번 실험체는 X­059였고 그는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 버트의 봉사를 받고 있었다. 열심히 음경을 빨아대는 버트의 머리를 쓰다듬던 X­059는 대뜸 천장을 보았다.

“……뭐야?”

그의 눈빛은 몹시 그윽했다. 결코 쾌락 때문에 고개를 든 게 아니었다. 그걸 확신한 이유는 버트를 감시하던 연구원이 ‘시선’을 느껴서였다. X­059는 그윽하게 천장을 보다 시선을 내려 버트를 보았다. 연구원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실험은 멈추지 않았다. 기술의 진보를 위해 ‘사소함’ 정도는 넘어간 것이다.

실험기록 039.

그 후 버트는 평소처럼 실험체들과 난교를 벌였다. 개처럼 변한 X­014와 섹스를 하면서 중년 사내 형태의 X­023과 키스를 했다. 바로 옆에서는 여성체 X­030가 버트의 가슴을 주물러주었다.

“헥헥헥­”

“쭙쭙­”

“그릇, 기분 좋은가요?”

버트는 황홀한 얼굴로 할딱였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버트의 기쁨은 그들에게 전해졌다.

여기서 연구원들은 버트의 마기가 계승된단 결론을 내렸다. 또한 그녀의 마기로 만들어지거나 마기로 계약된 것처럼 의식이나 기억이 공유된단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잊고 있던 게 있었다. 아니, 알고서도 외면한 사실이 있었다.

처음 특이 현상을 보였던 실험체 X­059. 이건 버트를 통해 발견한 특성과 결합되어 새로운 위험으로 변이되었다.

“어때, 그릇. 기분 좋아?”

실험기록 052. 실험체 X­065가 성심성의껏 버트에게 봉사했다.

전희만 1시간. 버트는 땀에 푹 절어 녹아내릴 듯 했다. 흐릿해진 두 눈은 어딘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져버렸다. 이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X­065는 냉담한 얼굴이 되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싶을 때 그는 가차없이 버트와 몸을 합쳤다.

실험기록 055.

실험기록 062.

실험기록 066.

실험을 거듭하면서 실험체는 점점 진화했다. 이윽고 80번째 실험 때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 나의 육신은 신의 씨앗을 품기 적합합니까?”

실험체 X­099. 그는 섹스로 늘어진 버트를 뒤로 한 채 연구원에게 물었다. 버트와 섹스하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가…… 신음조차 내지 않던 그가 처음 연 말은 충격적이었다. 이 말을 들은 연구원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높은 확률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실험체 X­099는 위험성이 판단되어 격리되었다. 버트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남성기를 달고 있는 여성 실험체와 섹스를 즐겼다.

*

“무슨 일이지?”

만드라고라의 연구팀장은 심각한 얼굴로 보고를 받았다. 곧이어 나탈리가 찾아왔다. 연구원은 연구팀장에게 말한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

“……인질극?”

실험체 X­101. 그것은 버트를 휘어잡은 채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몸은 이제 씨앗을 품기 적합합니다. 그러니 그릇에게서 씨앗을 추출하고 내게 심어주세요.”

그의 정중하고도 건방진 부탁에 나탈리가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그림자에서 루하다가 솟아나 X­101과 대치했다.

「건방진 놈……」

X­101은 루하다가 솟구치자마자 두 손을 들었다. 버트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고 루하다는 잠시 갈쿠리 같은 손을 거두었다. 그때 X­101이 말했다.

“이건 당신에게도 좋은 제안이 될 겁니다. 벨루그하 다프모스.”

루하다는 잠시 버트를 바라보았다. 버트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라.」

“지금 그릇이 입고 있는 건 갈가리 찢긴 마신의 육체…… 그리고 몸에 품고 있는 건 마신의 씨앗입니다. 육체가 전부 모이고 싹이 튼 씨앗이 완전히 자라나게 되면 마신은 부활하게 됩니다. 그렇죠?”

「그래.」

“그렇게 되면 그릇의 육신은 신의 위상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게 됩니다. 이것 역시 알고 있겠지요?”

루하다는 버트를 보았다. 버트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다만 어째서 그가 이 부분을 꼬집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그랬기에 루하다는 인상을 구기며 그를 재촉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당신은 그릇을 보존하길 원하시죠? 그걸 위해서는 제게 씨앗을 옮기는 게 옳습니다. 구태여 이 그릇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루하다는 말이 없었다. X­101의 말은 타당했다. 버트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분명 그녀가 씨앗을 심기 적합했다. 예언도 있었다. 그렇다고 예언과 적합성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었다.

눈앞에 새로운 그릇이 생겼다. X­101이 없었더라면 이 말은 헛소리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하는만큼 씨앗을 심기 충분했다. 버트의 마기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인 듯 했다.

만드라고라에서 난제라 여겼던 신규 실험체의 계승. 그건 어디까지나 루하다와 버트의 기억과 지식이 이어졌을 뿐이었다. 어쨌든 이 계승 덕분에 실험체는 스스로 판단 하에 씨앗을 품기 적합하다 결론 지었다. 그리고 곧장 루하다와 협상을 시도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X­101은 미소 지었다. 그는 간접적으로 루하다의 바람을 느꼈다. 그가 버트를 원하고 있는 것도 알았다. 그랬기에 이 협상이 성공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서둘러 추출을……”

「허나 내가 섬기는 건 그릇이지 네가 아니다.」

“……예?”

「나는 리아주크의 발걸음을 쫓는 자. 마신의 그림자이자 시종이고 가장 아래에서부터 보필하는 추종자다. 그러니 네게 씨앗을 옮겨심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무슨…… 저를 섬기란 말이 아닙니다. 저를 씨앗이 탄생할 매개체로 삼아달란 뜻이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X­101은 마신의 힘을 노리고 있었다. 다만 이 감정까지 두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일방통행이나 다름없는 계승이었기에 그의 검은 속내는 들키지 않았다. 하지만 변수라고 한다면 루하다의 변덕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섬겨야할 대상이 바뀐다. 그건 마음에 들지 않는 군.」

“모순입니다. 저는 당신이 보필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보다 마기를 잘 이해하고 있고 씨앗을 어떻게 키울지 다 계획해두었습니다. 마신의 육신을 되찾는 것 역시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봐도 제가 이 그릇보다 우수하지 않습니까?”

X­101의 호소는 짙었다. 그러나 루하다는 심드렁했다.

「기각한다.」

“당신의 고집으로 마신의 부활이 늦춰질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신이 부활하게 된다고 해도 그릇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걸로 만족하십니까?”

「그릇께서는 이미 희생을 각오하셨다. 그 각오를 무위로 돌리고 싶지 않다.」

“이건 효율성의 문제입니다! 마신의 부활이 지체되도 괜찮다는 건가요? 그건 오히려 마신을 섬기는 게 아니라­”

「그릇을 섬긴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건 마신을 섬기는 일이기도 하다.」

“그게 무슨 소­”

X­101은 말을 하다 말고 단번에 그의 의도를 깨달았다. 어째서 알지 못했을까. 그는 씨앗을 탈취하겠다는 야망에 취해있어서 루하다의 본래 목적을 알지 못했다. 그저 그가 버트에게 마음을 두고 있단 것에만 집중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당신 설마……”

X­101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루하다는 이미 마신의 부활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마신을 살려내려는 건 맞지만 전혀 다른 형태의 부활을 노리고 있었다. 그걸 확신한 순간 X­101은 잽싸게 버트의 등을 꿰뚫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단숨에 그림자에 휩싸여 바닥에 사그라졌기 때문이었다.

버트가 놀랄 새도 없이 X­101은 사라졌다. 루하다는 그를 그림자 속에서 갈가리 찢어버렸다.

「죄송합니다, 그릇이시여.」

“아, 아냐.”

버트는 손을 내저으며 일어났다. 버트가 마음이 여리긴 했어도 자신의 목숨까지 노리는 사람을 넘길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다.

“그럼 이 실험은 끝…… 이지?”

버트는 조심스레 물었다. 루하다는 버트를 빤히 바라보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웃음을 보였다.

「아쉬우신 겁니까?」

“그­”

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기 전에 약물 몇 개를 받아두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 것만큼 더 기분 좋은 일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응…… 좋아.”

버트는 아이처럼 순진하게 웃었다.

“그럼 어디로 갈까……?”

「떠나기 전에 그릇과 저의 결실을 거두겠습니다.」

결실이란 말에 버트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걸리는 게 있었다. 실험체 중에서도 몸정이 붙은 몇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소리였다. 루하다는 잠시 버트를 보다 몸을 숙여 속삭였다.

「나중에 또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달콤한 속삭임에 버트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루하다는 짓궂은 말을 남기자마자 그림자를 뻗쳐 실험체들을 흡수했다.

버트의 마기를 먹고 자란 루하다의 일부. 특이하게 진화하고 변이한 실험체들은 루하다에게 스며들었다.

이때 변수가 일어났다.

루하다의 속삭임으로 촉구된 버트의 망상. 그것이 루하다에게 영향을 끼쳤다. 루하다가 그림자를 전부 거두어 들였을 때 그 망상은 현실이 되었다.

“어­”

“왜 그러시­”

버트가 얼빠진 얼굴로 루하다를 보았다. 루하다는 그녀의 시선에 질문을 던졌다가 스스로의 변화에 말을 멈추었다.

흑발의 미남자. 새까만 그림자였을 루하다가 사람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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