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49 랑그라 밀림 上
* * *
“여긴?”
“으응…… 조금만 더 세게 해도 돼……”
“여기는?”
“부드럽게…… 아, 거기서 조금 더……”
리버는 조심스레 버트의 몸 여기저기를 애무했다. 처음 섹스를 하고 허리를 흔들 때와는 달랐다. 차분하게 애무를 하면서 버트의 반응을 살폈다. 처음부터 이런 식의 애무가 잘 된 건 아니었다.
리버는 본능대로 움직이려는 걸 억누르기 위해 애썼다. 몸이 이끄는 대로 버트의 질 안에 음경을 쑤셔 박으려는 걸 참았다. 간질간질한 이로 물어뜯지 않으려고 견뎌냈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억눌렀다.
그렇게 참고 참고 또 참았다. 목에 걸린 초커가 전신을 옭아매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극한까지 쌓여서 머리가 저릿거렸다. 결국 참지 못하고 터지려는 순간……
버트의 얼굴이 보였다.
행복에 잠긴 미소. 흥분에 겨워 들떠하는 얼굴. 표면으로 드러나는 쾌락.
그걸 본 순간 가슴에 진 응어리가 녹아내렸다. 갑갑했던 기분은 단번에 즐거움으로 변했고 스트레스는 만족감으로 바뀌었으며 저릿거림은 전율이 되었다.
리버는 비로소 수컷으로서 암컷을 만족시키는 기쁨을 알았다. 자신의 인내로 맺어진 행복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랬기에 조금 더 버트를 위해 애무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점점 성숙해졌고 리버는 조금씩 소년 티를 벗기 시작했다.
버트는 이런 리버의 변화에 상상 이상으로 만족했다. 때때로 애무만으로 절정해버리기도 했으며 섹스까지 못 버티고 탈진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살리마 왕국으로 떠날 때가 가까워졌을 때는……
“후후…… 누나 만족했어?”
“아, 으으……”
버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오들오들 떨었다. 리버는 자기 손에 가득 묻은 애액을 낼름 핥고 있었다. 키스부터 전희까지 버트는 견디지 못하고 3번에 이르는 절정을 맛보았다. 덕분에 그녀의 몸은 늘어져서 꼼짝할 수 없었다.
리버는 그런 버트를 보다가 다리 사이로 파고 들었다.
“힘들겠지만 조금 더 하고 싶어. 어울려주면 안될까?”
리버는 그렇게 말하며 조금 더 튼튼해진 음경을 디밀었다. 촉촉하게 젖은 음부 위에 얹어진 음경을 비비적거리니 버트가 앓는 소리를 냈다.
“나야 언제든……”
“해달라고 해줘.”
리버는 싱긋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짓궂은 미소…… 일부러 버트를 놀려주려는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
버트는 자기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소년에게 가슴이 쿵 뛰었다. 마구간에서 당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버트의 입이 열렸다.
“리버의 자지…… 누나 보지에 꼭 넣어줘…… 버트 누나는 리버랑 섹스하고 싶어……”
그 말에 리버는 주저없이 음경을 삽입해왔다. 충분할 정도로 젖은 질은 심각할 정도로 자극받았다. 애초에 버트의 질에는 무엇을 넣어도 괜찮아보였다. 무엇이든 촘촘한 질 주름을 자극해준다면 기쁘게 소리를 지를 것이다. 닿지 않는 곳까지 긁어준다면 좋아서 까무러칠 것이다.
버트는 헐떡이면서 리버의 절제된 섹스에 취했다. 리버는 하반신이 적당히 부딪칠 수준으로 힘을 주었다. 아프지 않을 정도의 충격이 질과 자궁을 울렸다. 그 에너지는 하반신을 격렬하게 데워주었다.
버트는 리버의 성욕을 마음껏 받아냈다. 리버는 허리를 틀거나 하반신을 올려치면서 섹스에 깊이를 더해갔다. 그리고 얼마 안가 정액을 게워내며 버트의 몸에 푹신하게 늘어졌다.
“하아…… 하아……”
버트는 리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여전히 질 안에서 크기를 유지하는 음경이 느껴졌다. 아직 리버의 성욕이 풀리지 않은 듯 했다. 붉어진 얼굴로 헐떡대던 리버는 엉덩이를 뒤로 뺐다. 그러자 버트가 그의 허리를 다리로 안아서 다시 삽입시켰다.
“누나……?”
지금까지 리버가 욕망을 억눌렀단 걸 알았다. 때때로 그걸 해방시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보상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곧 떠날 때가 되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다른 암컷을 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풀어주어야 했다.
“조금만 더.”
버트는 리버의 뺨을 쓰다듬었다.
“오늘은 원하는 만큼…… 실컷 해도 돼.”
“정말로……?”
“응. 정말로.”
리버는 침을 꼴깍 삼켰다.
쯔퍽
정액이 가득 찬 질 안을 휘저었다. 어느 정도 해소되었던 갑갑함이 서서히 풀려나갔다. 그렇게 리버는 2번째 섹스를 벌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3번째, 3번째 섹스로 이어나갔다.
버트는 조금씩 지쳐갔지만 리버의 성욕을 전부 받아주었다. 그렇게 해가 뜬 시간에 시작된 섹스는 달이 뜨고 기울어질 때까지 계속 되었다. 하루 종일 몸을 섞은 두 사람은 찐득해진 몸을 부비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
살리마 왕국으로 향하는 날.
어느 정도 유동 인구가 있어야 설치되는 게이트가 로디아 마을에 마련되었다. 그것도 일회용이 아닌 반영구적으로 기동할 수 있는 게이트였다. 덕분에 이곳을 거점으로 다른 지역으로 가기 용이해졌다.
본래 게이트 설치는 여러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는 데다 비용도 상당했다. 그랬기에 허가부터 건축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렸다.
“예쁘다.”
버트는 며칠도 안 되어서 건설된 게이트를 보고 있었다. 달과 별의 조각이 가득한 게이트는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했다. 언뜻 보면 다른 세계로 통하는 관문처럼 보였다. 게이트 속에 일렁이는 포탈을 보던 버트는 시선을 옮겼다.
저 멀리 달의 신전을 포근히 안고 있는 여신상이 보였다. 버트의 눈에는 여신상의 형태가 또렷하게 보였다.
‘뭐야.’
리버랑 진하게 놀고 있는 며칠 사이 세워진 여신상. 게이트와 같이 갑작스레 건설된 조각상이었다. 문제는 그 여신상의 얼굴이 버트였다는 점이었다.
‘저게 대체 뭐야?’
아무리 온갖 마법을 걸었다고 해도 버트는 여신상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혹시나 싶어 라이나 니스가 지적하지 않을까 물어보지도 못했다. 버트는 그저 외면해버렸다.
버트는 이 일의 배후에 루하다도 있단 걸 모른 채 다급히 게이트에 올랐다. 리버는 일 때문에 바쁘다고 나오지 못했기에 그녀 홀로 포탈에 다가섰다. 그렇다고 아예 혼자는 아니었다.
“오늘도 함께네.”
「언제나 함께였습니다.」
루하다가 버트의 그림자에서 기어나오며 말했다. 버트는 배시시 웃으며 포탈에 올라섰다.
*
스우웅
버트는 게이트를 나서면서 고개를 털었다. 그리고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곳곳에서 시선을 느꼈다. 시선은 버트를 응시하다가 그대로 흩어졌다. 마치 게이트를 철통 감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버트는 어리둥절해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수도 라트베아에 있는 곳 중 평범한 식당에 들어서고 얼마 안가 라이가 나타났다.
“후아.”
어째선지 라이는 두터운 후드를 쓰고 나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법사 차림을 손가락질 하더니…… 취향이 변덕스럽다 생각했다. 라이는 슬쩍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버트의 앞에 앉았다.
“사람 달고 온 거 아니지?”
“내가 아이돌도 아니고 뭔……”
“어후, 요즘 바빠서 숨도 못 쉬겠어.”
라이는 한탄하면서 음식을 주문했다. 버트는 탑주 승진 축하와 부탁을 하려 했는데 라이의 상태가 안 좋아보여 입을 떼지 못했다. 라이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안 그래도 정세 복잡한데 아주 난리도 아니야.”
“어, 엉?”
라이는 버트의 반응에 멀뚱히 바라보았다.
“너 정세에 도통 관심이 없구나.”
“그야…… 나 놀기도 바쁘니까……?”
“그래, 그게 보통 플레이어지. 그래서 나도 정치에 엮이기 싫었단 말이야! 게다가 하필 교체날에 맞춰 국제 정세도 미쳐 돌아가고……!”
라이는 격렬하게 한탄하다가 주변을 살피고 고개를 숙여 목소리를 낮췄다.
“하여간 힘들어 죽겠어.”
“어어…… 그래, 일단 축하하기에는 좀 그런 거 같고…… 부탁하기도 좀 그렇겠네.”
“부탁……? 아, 밤 세트 아직 다 못 모았지?”
“응. 최근에는 다른 일 하느라 못 찾았어.”
“다른 일?”
버트는 라이의 반응에 흠칫 떨었다. 다행히 라이는 금세 납득했다.
“하긴 어떤 정보도 없었지. 세트템 찾은 것도 내가 센스가 있어서 안 거니까.”
“하, 하, 그래.”
라이는 심각한 얼굴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못 들어줄 것도 없지. 친구 부탁을 못 들어주겠어?”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데…… 치킨이라도 사줘?”
“야, 나한테 들어오는 골드 환전만 해도 치킨집 차려!”
“그러시겠지. 그래서 뭐 부탁하려고?”
버트는 라이의 말을 가볍게 넘기며 물었다. 라이는 미묘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신생국 아드레이가 다른 나라와 교역하는 거 알고 있지?”
“……아니?”
“어후, 일단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오래 걸리니까 본론만 말할게. 다른 나라랑 수교하는 걸 도와주려하는데 장애물이 좀 생겼어. 엘리트 몬스터가 좀 나타났다는데 용병들이 속속들이 패퇴하고 있어.”
“내가 거기 가서 그 엘리트 몬스터를 잡으면 된단 거지?”
“맞아. 돈이든 교통이든 전부 편의 봐줄게. 어때?”
“나야 꿀릴 건 없지!”
실상 버트에게는 아주 좋은 제안이었다. 때마침 모험이 고프던 참이었다. 라이는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 큐엘이랑은 무슨 사이야?”
“큐엘”
익숙한 이름이었다. 버트는 솔란의 탑에서 성인기구 만드는 걸 도왔던 걸 떠올렸다. 그리고 모두의 앞에서 시연했던 것도 기억했다. 그때 라이가 없어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의 상황을 전부 들켰을지도 몰랐다.
“……왜?”
버트의 되물음에 라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최근 그 녀석이 의욕을 되찾았더라고. 실력은 충분한데 괜히 나한테 열등감 갖고 있던 놈이었거든. 근데 버트란 사람한테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혹시나 싶었지.”
“아하…… 자세히 들은 거야?”
“엉? 실험 기록은 마법사의 프라이버시야. 발표회가 아닌 이상 캐물을 수 없어. 알 필요도 없고.”
라이의 대답은 뭔가 모순되었다. 탑을 총괄하는 주인인데 그걸 모를 수 있을까. 하지만 버트는 안심했다.
“좋아. 그래서 어디로 가면 돼?”
“스리마 숲을 통해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밀림 하나가 나와. 거기서 개발하다 만 길이 있을 텐데 그곳까지 가면 다른 마법사가 안내해줄 거야.”
*
“이렇게 모험 떠나는 건 오랜만이다~”
버트는 신이 난 얼굴로 마차에서 들썩거렸다. 그녀의 옆에는 루하다가 뚱한 얼굴로 앉아있었고 맞은편에는 이디아가 있었다. 이디아가 초빙된 이유는 간단했다. 밀림이라는 특성 상 레인저가 활약할 일이 많아서였다. 애초에 버트의 명령인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최근에는 로디아 평원에만 있었지?”
“아, 네. 무슨 일 있었나요?”
이디아는 버트를 묘한 눈으로 보았다.
“……말해도 알겠어?”
“무시하지 마세요!”
“으음, 사실 나도 이해가 잘 안 가서. 무시하려는 건 아니고.”
이디아는 그렇게 말하며 버트의 옆에 앉았다. 루하다는 이디아를 가만히 바라보다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이디아는 버트의 허벅지에 손을 얹고 쓰다듬으면서 어깨동무를 했다. 정말 자연스럽게 시작된 스킨십. 이건 버트의 무의식을 읽어낸 이디아가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버트 역시 무슨 상황인지 알았기에 얌전히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자초한 일인데 저항하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이디아는 심각한 얼굴로 어깨를 쓰다듬고 귀 아래를 긁어주다 허벅지를 꽉 쥐며 말했다.
“그러니까 신규 왕국이 생긴 거 알지? 아드레이 왕국.”
“네.”
“아드레이가 규모는 작아도 지하 시설이 많아서 드러난 것보다 규모가 더 크다네. 근데 여기가 다른 나라에게 뒤덮여 있잖아.”
버트는 난처하게 웃었다. 지도는 몇 번 봤지만 전체적으로 본 적이 없어서였다.
“그러니까……”
이디아는 배를 쓰다듬었다.
“여기가 마법사들의 왕국 살리마.”
그러더니 양쪽 허벅지를 번갈아 주물렀다.
“이쪽이 판테스, 이쪽이 키런 왕국이야. 마지막으로……”
이디아의 손이 가랑이 사이에 들어가기 직전에 멈추었다. 버트의 두 눈이 그의 긴 손가락에 머물렀다. 조금만 더 내리면 가죽갑 하나에 뒤덮인 음부를 건드린다. 그것도 버트의 의지에 따라 푹신푹신해져서 맨살을 만지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디아의 손은 애꿎은 허공만 긁어댔다.
버트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었다. 이디아는 가만히 버트를 바라보며 웃었다. 버트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고 흠칫 놀랐다. 그녀가 슬금 시선을 피하자 이디아는 미소를 감추지 않고 음부에 직접 손을 댔다.
옷에 감싸진 부드러운 음부가 손가락에 짓눌렸다. 말랑말랑하고 푹신한 겉면 아래로 단단한 뼈가 느껴졌다. 이디아는 한 번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가 그 후로는 힘을 빼고 쓰다듬었다. 옷에 덮여있다고 해도 그림자에 씌인 데다 얇아져서 이렇게 해도 자극은 충분했다. 이건 몇 번의 섹스 끝에 알아낸 정보였다.
“여기가 아드레이 왕국. 대략적인 위치는 알겠어?”
“……네.”
“지금 이곳이 이슈라고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나나 다른 선배들도 별 관심은 없어. 정치는 기사의 몫이 아니니까.”
“……네.”
“듣고 있지?”
“……네.”
버트는 하반신을 앞으로 빼고 마차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조금 더 이디아의 손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본능에 집중하느라 이디아의 말에 대답 정도나 간신히 뱉었다.
이디아는 발칙한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웃었다. 손에 집중하는 버트의 뺨을 깨무니 화들짝 놀라 바라보았다.
“하여간 아드레이 왕국이 다른 나라와도 수교를 원하고 있대. 두 군데가 조금 버벅이고 있다는데 우리가 가는 곳이 그 중 한 곳이라네.”
“그렇군요……”
“제대로 안 듣고 있지?”
이디아는 그렇게 물으며 음핵 위쪽을 꾹 눌렀다.
“흣?! 핫?! 듣고 있어요……! 그러니까 국가 간의 문제란 거잖아요……!”
“진짜 듣고 있었어?”
“그야 듣고 있죠……!”
“정말 의외네~”
“그런 것만 생각하는 건 아니라구요……!”
“그래?”
“……조금은.”
이디아는 미소를 감추지 않고 버트와 몸을 포갰다.
“그럼 목적지까지는 시간이 제법 되니까……”
버트는 기대 어린 시선으로 이디아를 보았다. 이미 그녀가 뭘 바라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디아가 말한대로 시간은 넉넉했고 구태여 급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이디아는 계속 감질나는 손길로 버트를 애태웠다. 결국 버트는 이디아에게 직접 애원했다. 그리고 남녀는 마차가 들썩일 정도로 즐거운 여정을 보냈다.
*
7성 마법사 린베스는 12성 마법사의 연락에 기겁했다. 그녀는 살리마 왕국의 대표격으로 아드레이 왕국을 지원하기 위해 밀림에 파견되었다. 하지만 말이 대표격이지 그녀가 하는 일은 밀림의 생태를 관찰하면서 몬스터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게 일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전투 마법사가 아니었다. 오직 이론으로만 똘똘 뭉친 학자였다.
그녀를 따라온 다른 병사나 다른 왕국의 지원군들은 몬스터 토벌에 집중했다. 그들은 수월한 교역로를 개척하기 위해 온 것이다. 결국 린베스를 제외한 모두가 전투에 집중하고 있었다. 당연히 중요도를 따지면 지원군들이 더 높았다. 그런데 린베스에게 직접 라이의 연락이 온 것이다.
그것도 수정구로나 할 수 있는 마법 통신을 매개체 없이 이루고 있었다. 린베스는 귓가를 간질이는 라이의 목소리에 놀라면서도 차분히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탑주님의 손님이시기도 하니 극진히 대접하겠습니다.”
[ 아니, 그럴 필요는 없고. 그냥 편의만 봐주라는 얘기야. 괜히 더 챙겨주는 것보다는 가만히 놔두는 게 더 나으니까. ]
“네……? 네…… 알겠습니다.”
[ 그럼 나중에 보자고. ]
“아……! 네……!”
린베스는 감격 어린 얼굴로 대답했다. 살리마 왕국에 몸담고 있는 이상 귀르디의 탑을 동경하게 된다. 이곳이 마법사들에게는 성지이자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런데 그런 탑의 주인이 직접 총애를 한다는 건 범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린베스로서는 전심전력으로 손님을 보필할 생각이었다. 병사들도 바쁜 와중에 린베스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보다 몇 시간 늦게 마차가 도착했다.
린베스는 차분히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피고 머리칼을 정돈했다.
털컹
무기질의 말이 이끄는 마차가 도착했다. 보통 사람들은 쉽게 이용하기 힘든 골렘 마차였다. 린베스는 기대감 어린 눈으로 마차를 응시했다.
과연 누굴까. 탑주의 지인인데다 따로 언질을 줄 정도니 분명 대단한 사람이리라. 어쩌면 소문으로만 듣던 11성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장로회일지도 몰랐다. 그것도 아니면 최근 들어 두각을 뽐내고 있는 10성 마법사일지도 몰랐다.
린베스가 부푼 기대를 안고 있을 때 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걸어나온 건……
“아, 안녕하세요.”
땀에 흠뻑 젖어 숨을 고르는 버트와 말없이 그녀의 뒤에 서는 이디아였다. 린베스의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누가 봐도 마법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뭔가 능력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마차 안의 열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평범하게 온 게 아니었다. 심지어 수행자는 반반한 남자였다. 린베스가 곱게 볼 수 없었다. 둘 중 누가 탑주의 지인이건 이성을 안고 온 것 자체가 달갑지 않았다.
“……혹시 탑주님의 의뢰로 오신 건가요?”
“네! 버트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7성 마법사 린베스라고 합 아 혹시 발표회에서 큐엘 씨의 피험체로 나오신 분 아니신가요?”
“네?”
버트는 린베스의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라이의 말로는 발표회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린베스가 특별했을 뿐이었다.
발표회는 마법사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공간이다. 당연히 유출은 엄격하게 막고 있다. 그건 같은 마법사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발표회에 대해 알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서기였기 때문이었다.
발표회 당시의 모든 기록을 확인했고 관전까지 한 참이었다. 아무리 버트가 가면을 쓰고 있었다지만 린베스가 그 이름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파격적인 발표회는 처음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런 문란한 분석이라니! 당시에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몇 남자들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설마…… 탑주님도 몸으로 꼬신 거야?’
린베스는 탐탁지 못한 시선으로 버트를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침착하게 안내를 시작했다.
“현재 C포인트를 기점으로 확장 작업 진행 중입니다. 각국의 지원군 도합 600여 명이 있는데 대부분 전쟁의 후속 조치 때문에 바쁜 상태입니다. 그래서 질적으로는 떨어지지 않다고는 해도 수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죠. 특히 미리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골칫거리 하나 때문에 교역로 공사가 더뎌지고 있습니다.”
린베스의 말에 버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트 몬스터로 지명된 ‘검은비늘’은 교묘할 정도로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덫은 물론 합격진도 간파해서 파훼해놓는 실정이죠. 그래서 보스 몬스터로 격상해야 할지 고려 중입니다.”
“그렇군요.”
“달리 궁금하신 건 없으신가요?”
“아드레이 왕국의 사람들은 어딨나요?”
두 사람은 군락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간단한 텐트가 세워져 있다고는 하나 수 백 명이 머물고 먹고 자는 곳이었다. 버트는 널따란 이 곳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국가나 영지의 문양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드레이 왕국군은 보이지 않았다.
린베스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 버트로서는 순전히 호기심 삼아 질문을 던졌지만 제법 예리한 질문이었다. 아드레이 왕국의 수교를 위한 교역로인데 그들이 없다니?
역시…… 린베스는 버트가 첫인상에 비해 대단히 날카롭다 생각했다. 탑주가 괜히 추천해준 게 아니라 생각하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외교적인 문제가 많이 섞였지만 정당한 거래라고 하더군요. 아시다시피 왕가 습격 사건은 정당방위로 넘어간 상태죠. 그런 상황에서 지금 이 교역로를 만드는 것이 정당한 대가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린베스는 인상을 구겼다.
“그만한 재물을 지급했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들의 태도를 보면 자신들의 위에 사람이 없다고 여기는 거 같아요. 그걸 좋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별로고……”
“린베스 씨는 어떻게 하고 싶으신데요?”
“네?”
버트의 천연덕한 질문은 린베스의 허를 찔렀다. 어떻게 하고 싶냐니.
어쩌면 이건 탑주의 시험일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드니 대답이 신중해졌다.
“저는”
쾅!
린베스의 대답은 폭발음에 막혀버렸다. 군락의 한쪽이 터지면서 크게 소란이 일었다. 버트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날렸다. 그리고 린베스는 버트가 사라지고 없는 자리를 보며 놀란 눈으로 꼼짝하지 못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