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아-48화 (48/104)

〈 48화 〉 48 ­ 달의 신전 下

* * *

“은퇴한다.”

라이는 드러커스의 미로 사태 이후의 상황 보고서를 전달하던 중 충격적인 선언을 듣게 되었다.

마법사의 탑의 주인, 12성 마법사라 불리는 넬하트는 대뜸 은퇴를 언급했다. 라이는 들고 있던 보고서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바닥에 팽개쳤다.

“4년 뒤에 한다면서요!?”

“이번 흡혈귀들 사태로 깨달았다. 나도 이제 많이 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예?!”

라이가 다른 10성 마법사들과 함께 넬하트를 지원하려 갔을 때를 떠올렸다. 넬하트는 10인의 노스페라투 기사를 상대로 도합 17가지 마법을 시전하며 왕과 신하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라이와 마법사들이 합류하기도 전에 기사 셋을 가루로 만들고 둘을 다른 공간으로 보냈으며 넷을 조각내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를 처리하려던 순간 회심의 일격으로 왕이 중상을 입었다. 넬하트는 간신히 그를 치료했으나 깊은 저주로 인해 당분간은 국정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라이는 그때를 다시 떠올려도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노스페라투 기사의 힘은 확실히 알았다. 그들은 마법 저항력이 특히 강해서 웬만한 마법으로는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건 우르간드라는 흡혈귀와의 싸움에서 확신했다.

만일 노스페라투 기사들이 마법사의 탑을 침공했고 넬하트가 없었다면 마법사 대부분이 죽어나갔을 것이다.

근데 그런 괴물들을 상대로 선전해놓고 엄살이라니!

넬하트는 못마땅한 라이의 표정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

“그러니 이제 탑의 주인을 네게 물려줄까 하는데……”

“아니, 제가 말했잖아요! 저는 지금 제 직위에 만족한다고! 다른 11성 마법사들도 많은 데다 부탑주 그레노 님도 있는데 왜 저한테 물려줘요? 제정신이에요?”

“최고 권위의 마법사에게 제정신이냐고 묻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개소리를 그럴싸하게 하니까 그렇죠! 제가 그런 말 듣는다고 감사합니다, 하고 받을 줄 아셨나본데! 저도 듣는 귀가 있고 생각하는 머리가 있어요! 제가 탑주가 되면 얼마나 반발이 심할지 알고나 그러세요?”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그리고 나도 탑주가 됐을 때는 음해 세력도 있었고 욕도 많이 먹었어. 원래 머리 찬 것들 위에 서면 다 그렇게 돼.”

“그게 싫어서 거절하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 알아봐요! 저는 마법 연구만 하는 걸로 만족한다구요!”

“에잉…… 요즘 젊은 것들은 좋은 걸 준다 해도 고맙게 받지를 않는다니까.”

“귀르디 님의 마법서랑 구느하르의 유해를 가져다준 게 누구였죠?”

“알았다, 알았어! 그래도 은퇴는 할 거니까 그리 알아둬.”

라이는 처음에 그저 농담으로 넘겼다. 하지만 얼마 안가 마법사의 탑에 충격적인 소식들이 걸렸다.

[ 마법사의 탑주 넬하트의 은퇴 선언! ]

[ 새 후계자는 누구? 부탑주 그레노는 누구든 최대한 보조하겠다고 표명! ]

[ 후계 다툼에 앞장 선 건 마끼야또. ]

[ 이모탈이 탑주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주제로 토론회 결성 ]

불과 몇 주 사이에 폭발하는 이슈를 본 라이는 넬하트의 눈앞에 신문을 팽개쳤다.

“이게 뭐예요!?”

“뭐냐니? 보이는 그대로지. 이제 남은 마법사들이 알아서 후계자를 내세울 거야.”

“아니, 그때 한 말이 농담이 아니었어요?! 은퇴한다는 게 정말이었냐구요!”

“그럼 내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디?”

“와씨 미치겠네! 안 그래도 요즘 아드레이 왕국과의 수교 때문에 복잡한데 탑주님까지 이러면 어떡해요!! 지금 자리싸움으로 얼마나 신경전을 벌이는 줄 아세요?!”

“아, 그럼 네가 후계자 맡지 그랬어? 그러면 이런 논란도 없고 얼마나 좋아.”

“아아!!”

“게다가 그레노가 많이 서운해 하더라. 네가 탑주도 안 맡고 자길 구하러 오지도 않았다고……”

“아, 그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니까요!”

“아드레이 왕국의 공주 말이냐? 거 참, 여색에 빠져서는……”

“내 말 좀 들어 이 노친네야!!”

다시 며칠이 지났다. 결국 후계자를 뽑기 위한 몇 가지 시험을 선발하기로 했다. 물론 라이 역시 강제로 후보에 들었고 이걸 따지기 위해 넬하트를 찾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넬하트만 있지 않았다.

“에잉, 노크도 없이 들어오더냐?”

“하여간 늙은이를 돌로 보는 게지.”

“건방지기를 하늘을 찌르는 구만!”

“내가 저 놈 저럴 줄 알았지.”

“그러게 내가 뭐랬어? 교육 한 번 하자 했지?”

그들은 각 층을 대표하는 11성 마법사들이었다. 1층부터 11층까지 1명씩, 부탑주 그레노와 상인 울트만을 포합해 도합 13명으로 이루어진 장로회! 가장 젊은이가 50대일 정도로 그들의 평균 연령은 높았다. 이들은 하나 같이 라이를 향해 쓴소리를 늘어놓았다.

그에 대한 라이의 반응은……

“다 꺼져 구닥다리들아!”

“저, 저 말뽄새 하고는.”

“책임감도 없는 것이 도덕성도 없구나.”

“건방지기를 하늘을 찌르는 구만!”

“내 저 놈 저럴 줄 알았다고 했지?”

“이거 늙은이들 서러워서 살겠나.”

라이는 온몸의 핏줄이 서는 느낌이었다.

“거기 주인양반! 내가 왜 후보에 있어요!? 난 그냥 지금 직위에 만족한다니까요? 10성 마법사가 낮은 직위는 아니잖아요!”

“낮지 않지. 그러니까 자네를 추천한 거고.”

“직접 추천했다고요?!”

“그래. 장로회 만장일치로 말이지.”

“나한테 왜들 이래!!”

라이의 절규에 장로들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거 요즘 젊은이들 중에 이만한 재능이 어디 흔한가.”

“그리고 학구열도 충만하고……”

“선배에 대한 존중만 좀 배우면 좋겠다만.”

“의리도 좀 있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더 잘생긴 애가 낫겠지.”

“강제로 추천 했으면 좀 맘에 없는 칭찬이라도 해 이것들아!”

라이는 씩씩거리다 넬하트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구요? 입후보에서 떨어지면 명예를 깎아먹는다고 칭얼거릴 거 뻔해서 일단은 하겠습니다만 뭘 원하는 거요?”

“마스터.”

넬하트는 히죽 웃었다.

“너희 이모탈 말마따나 모든 마법을 통달한 마스터, 올 클래스 매지션이 아닌 매지션 마스터가 되었으면 하네.”

*

츠퍽­ 츠퍽­

“아앙……! 앙……!”

골목길에서 작게 울리는 신음 소리. 그건 리버에게 뒤를 내주고 있는 버트의 소리였다.

리버가 본격적으로 성을 깨우친 이후로 버트는 하루 종일 시달려야했다. 물론 바쁜 일이나 그런 건 없었고 간만에 즐기는 섹스였기에 버트도 그를 환영했다. 문제는 자고 있을 때도, 자고 일어날 때도 하루 종일 섹스를 벌인다는 점이었다.

질 안에 정액이 가득 쌓여 막혀있다면 항문에 삽입했다. 여기마저 가득 찼다면 입을 썼다. 버트는 앞뒤로 정액을 질질 흘리면서 입안까지 끈적끈적해져야만 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음식을 씹어도 정액의 냄새나 맛이 배어나올 정도였다.

‘……싫진 않지만.’

버트는 점점 음란해져갔고 솔직해지고 있었다. 쾌락에 반응하는 자신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이제는 즐기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아마 욕구불만에 이르면 근처 아무나 끌고 가서 덮칠 지도 몰랐다.

카르릉!

리버가 버트의 허리를 꽉 안은 채 하반신을 꽉 맞붙였다. 이걸로 3번째 사정…… 아니, 버트가 깨어나고 3번째 사정이었다.

‘집에 기저귀가 남아나질 않는단 말이야……’

버트는 난처하게 웃었다. 뱃속을 뒤집어놓는 정액의 격류와 굵직하게 자라난 음경의 존재감에 다리를 베베 꼬았다. 날이 갈수록 리버의 힘이 늘고 있었다. 게다가 어떻게 그렇게 허리 놀림이 좋은 건지 유독 한 곳을 집중적으로 찔러대는 그 느낌은 참을 수가 없었다.

“리버…… 만족했어……?”

“으응……”

리버는 앓는 소리를 내며 버트의 엉덩이를 콱 쥐었다. 아무래도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슈트에게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물론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자고 있는 버트와 섹스를 나누겠지만…….

버트는 아쉬워하는 리버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더니 꼭 안아주었다.

“또 오면 그때 또 다시 하자.”

“……응.”

아쉬워하는 리버를 보고 버트는 다시 한 번 가슴이 불끈거렸다. 그건 리버도 마찬가지였다. 정액이 질척하게 묻은 음경을 발기시킨 채 귀와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버트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리버의 음경을 손으로 잡았다.

“빠르게 끝낼게?”

버트는 그렇게 말하며 정액투성이 음경을 입으로 물고 빨아주었다. 리버는 신음하며 허리를 떨다 결국 버트의 입안에 싸질렀고, 리버는 나름 만족하며 초원으로 돌아갔다.

리버가 이렇게 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인간과 라이칸슬로프의 외교 때문이었다. 뱀파이어(엠파이어)에 이은 신규 종족의 등장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차지했다. 안 그래도 새로운 국가와 종족으로 들뜬 와중에 흡혈귀만큼이나 유명한 늑대인간이 나온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희소성은 한 베타테스터의 열변으로 그 가치가 입증되었다.

자연스레 이들과 교역하려는 이들이 늘었다. 그러다보니 일단은 족장의 위치에 있는 리버가 필요했다. 이따금 리버가 여유로운 틈을 타서 로디아로 오긴 했지만 조만간 이런 만남을 갖는 것도 어려워질 지경이었다.

‘못 만나면……’

버트는 아쉬운 얼굴로 손에 묻은 정액을 낼름낼름 핥아댔다. 비릿한 맛을 즐기며 여운을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흥약?!”

“정말이지, 음란한 기질은 타고 났다니까.”

“으, 응?”

버트는 놀란 얼굴로 니스를 돌아보았다. 분명 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샌가 떨떠름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에 플레이어들도 자주 오가는 데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그것까진 생각 못 했네……”

“뭐……”

니스는 슬쩍 다가와 버트의 가슴을 콱 쥐었다.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거대한 젖살은 니스의 손가락을 쭉 빨아들였다.

“으핫……?!”

“그렇게 보이는 것조차 즐기려나?”

“니, 니스……?”

니스는 노골적으로 버트의 가슴을 주물렀다. 당황한 버트는 몸을 흠칫 떨면서도 그녀를 뿌리치지 못했다.

오히려……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니스는 그런 버트의 눈빛을 알아챈 건지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더니 뜨끈하게 데워진 유방을 직접 주물러대다 유두를 꼬집으며 괴롭혔다.

“읏…… 흣……!”

“정말, 못 말릴 정도라니까.”

“미안……”

“흐흥, 미안한 건 아나봐~?”

니스는 버트의 유두를 부드럽게 주물러주며 웃었다. 버트는 입꼬리에 침을 흘리면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나저나 뭘 만들려고 하는 거야?”

“으응……? 응……?”

니스의 한 마디에 버트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쾌락에 취해있기도 하거니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랐다. 니스는 잠깐 버트를 빤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아냐, 모르면 됐어. 그나저나 오늘따라 젖꼭지가 통통하니 기분 좋네~”

“아으으……”

니스는 부끄러워하는 버트의 귀에 대고 온갖 음담패설을 속삭였다. 그렇게 버트가 니스에게 녹아내리고 있을 때…… 로디아 마을 한 구석에서 은밀한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

“아무래도 성녀께서 부담을 가질만한 일이외다.”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을 표출하지 못한다는 건 너무하지 않던가.”

“나도 그 뜻에 찬성하네. 고작 조각상일 뿐인데 말이야.”

“무엇보다 달의 신전은 조금 밋밋한 감이 없잖아 있네. 잘 생각해보게. 떠오른 달을 배경 삼아 고고하게 서있는 모습을!”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다양했다. 그들은 심각한 얼굴로 달의 신전의 도면을 가운데에 두고 토론을 하고 있었다.

신전은 이름 그대로 새하얀 대리석으로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 어떤 장식도 없어서 밋밋했다. 울룩불룩하지도 않고 문양조차 없었기에 관광을 목적으로 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라이칸슬로프와 교류를 할 수 있으니 찾아오지 그게 아니었으면 창고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신전의 뒤에 조각상을 하나 세우자는 의견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모델이 되는 건 다름 아닌 버트였다.

블랙스타의 성녀이자 라이칸슬로프의 은인! 버트의 뜻에 따라 로디아 마을을 개발했지만 아무래도 께름칙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받은 은혜에 비하면 반의 반도 갚지 못했다. 하다 못해 이 마음이라도 표현하잔 것이 이번 집회의 목적이었다.

여기에 G라는 인물까지 끼어들었다. 그는 버트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을 했다. 그래서 잠시 블랙스타의 마성자들에게 경계를 받았으나……

“그 분의 검은 정말로 고귀하였고 자태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소! 그분이야말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기사이자 강자의 모습이요, 자애로운 여성상이자 여신의 모습 그 자체였소!”

G의 광적인 찬양에 마성자들까지 감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에게서 받은 엄청난 자금을 바탕으로 30미터에 이르는 조각상 건축 계획이 완성되고 있었다.

“그래도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아이가 아닌가.”

이때 노인 한 명이 찬물을 끼얹었다. 그의 의견에 G가 발끈했지만 마성자들은 납득했다.

“확실히…… 성녀께서는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단에서도 최대한 알은 체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이건 민폐인 건가요?”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식저해. 공간왜곡. 감각분할. 의지혼선. 몇 가지 마법을 곁들이면 그 문제는 해결할 수 있네.”

“그게 무슨……”

“크기가 얼마나 됐든 여신상이 그 아이의 모습이란 걸 숨길 수 있단 것이네. 어느 정도 관광 상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신앙심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이 되기도 할 터.”

노인이 도면에 손가락을 댔다. 그러자 신전이 솟아나고 신전의 몇 배나 되는 크기의 여신상이 만들어졌다.

“어떻게 보이나?”

그 자리의 모두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성녀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고귀한 기사의 모습으로 보이오.”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입니다.”

뭔가 미묘하게 엇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았고 노인은 빙긋 웃었다.

“그 아이라고 알고, 믿는 이들은 그렇게 보일 걸세. 그게 아니라면 그저 커다란 여신상으로 보겠지. 이거라면 자네들의 신앙도 지키고 그 아이의 프라이버시도 지킬 수 있지 않겠나?”

“오오오……!”

“과연…… 그런데 그것이 영구적으로 되는 마법입니까?”

“조금만 힘쓰면 될 일이지. 그러니 탑 근처에 도서관 하나만 지어주게. 요즘 무료해서 살 수가 있어야 말이지.”

“아, 작은 마탑에 머무르고 계신 분이셨군요. 알겠습니다. 이 정도 지원을 해주는데 어찌 그 정도도 못하겠습니까.”

“내 당신을 오해했소, 혹여 내 영지에 찾을 일이 있다면 언제든 찾아와주시오. 극진히 대접해드리리다.”

“알았네, 길렌 백작.”

“험­ 여기서는 G라고 불러주시오.”

“허허허­”

노인은 기분 좋게 웃었다. 버트가 라이의 친우란 것도, 그녀가 블랙스타와 관계된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호기심 삼아 찾아왔는데 일이 생각보다 재밌어졌다.

‘악명에 비해서는 정말 소소한 종교로군. 한 번 가입해볼까?’

은퇴한 마탑주 넬하트. 그는 여러모로 위험한 생각을 하며 집회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

그리고 여신상의 모델이 된 버트는 난처한 상황에 조우하게 되었다.

“그만해 리버……!”

“저 누나랑도 할 거야!”

버트는 리버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리버가 니스를 덮쳐버릴 테니까!

니스는 황당한 얼굴로 리버를 보았다. 버트와 한창 부대끼고 있던 중에 갑자기 리버가 난입했다. 일 때문에 가야 된다기 무섭게 돌아온 것이다. 그러더니 대뜸 버트에 대해 소유욕을 드러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아직 애처럼 보이는 녀석이고 버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면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다짜고짜 니스와 섹스를 하겠다고 선포했다. 버트는 모르겠지만 니스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그녀의 살벌한 표정을 본 버트는 질색하며 리버를 말렸다. 니스가 이렇게 정색했던 경우는 몇 번 본 적이 없었다. 그때도 엄청나게 화가 나있었고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크르르……!”

그때 리버가 이를 드러내며 짐승 소리를 냈다. 본능은 니스를 덮치고 싶은데 억류되니까 점점 야생 본능이 깨어났다. 리버의 소리에 니스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크앙!”

버트는 리버를 어떻게든 억류했지만 녀석의 손톱에 팔이 상처를 입었다. 팔뚝이 긁혀 피가 나고 그 냄새가 리버의 코를 자극했다. 덕분에 야생성은 더 강해졌다. 리버는 버트의 팔뚝을 꽉 쥐어뜯었고 버트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놓쳐버렸다.

“아……!”

니스는 으르렁거리며 달려드는 리버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은 정말 차가웠다.

퍽­

니스가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그림자 분신이 솟구쳐 리버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리고 니스가 리버의 머리채를 잡아들고 턱을 잡아챘다. 리버는 송곳니를 내보이며 으르릉거렸다. 그때 니스가 이마를 딱 때리고 버트를 보게 했다.

“네가 한 짓을 봐.”

“크르­?”

리버는 니스의 손에서 버둥거리다 버트를 보았다. 버트는 울먹거리면서 피범벅이 된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아프다…… 초원에서 피를 나눠줄 때 단검으로 그은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피부를 찢고 근육까지 가르고 들어간 손톱은 핏줄까지 터뜨린 모양이었다. 그나마 버트의 육신이 강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다. 조금씩 아물어가고 고통이 가시는 팔을 보던 버트는 리버와 눈이 마주쳤다.

“아, 괜찮……”

“버트.”

니스는 서늘한 눈으로 버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리버의 턱을 놓아주고 턱짓했다.

리버는 방금처럼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버트를 보고 있었다.

“훈육할 때는 훈육해야 해.”

니스가 분신을 거두자 리버가 귀와 꼬리를 늘어뜨렸다. 버트는 아직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팔을 슥슥 닦으며 다가섰다.

“리버.”

“……미안해, 누나.”

버트는 무심코 괜찮다는 말을 하려다가 니스의 눈치를 보았다.

“아팠어.”

“미안해……”

버트는 리버의 머리를 헝클어주었다.

“나도 미안해. 절제하는 법을 알려줬어야 했는데…… 나도 좋다고 같이 충동질 했으니까.”

리버는 조금 어려운 말이었지만 버트의 진심을 이해했다. 마냥 좋다고 허리를 흔들어댔어도 그건 버트가 좋아서 그랬다. 이렇게 상처 입히고 아파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나마 처음에 이렇게 잡아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면 나중에 큰 상처를 주었을지도 몰랐다. 손톱을 세워 붙잡든지 목덜미를 문다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행동이 정당화 되는 건 아니었다.

“좀 더 침착하게 가르쳐주었어야 했어. 미안해, 리버.”

버트는 뒤늦게 슈트가 자신에게 리버를 맡긴 이유를 알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쪽에서만큼은 그녀가 더 어른이었다. 당장 슈트만 해도 버트와 몸을 섞었을 때 경험이 없었다.

기대를 배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트는 울적해진 얼굴로 리버를 꼭 끌어안았다. 리버는 버트의 품에 안겨 꼬리를 살랑거렸다. 니스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버트는 나름대로 절제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전보다 성숙한 길에 올랐다. 이제 오냐오냐 해주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니스로서는 버트가 리버를 위해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누나.”

그때 버트의 품에서 벗어난 리버가 다가왔다. 니스는 팔짱을 끼고 말없이 노려보았다.

“왜?”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저질렀어요.”

니스는 꾸벅 고개를 숙인 리버와 버트를 번갈아보았다. 그의 순순한 사과와 애틋한 목소리에 니스는 콧김을 푹 뿜었다.

“그래, 아무한테나 그렇게 들이대는 거 아냐. 그건 버트가 다시 잘 가르쳐줄 테니 알겠지?”

“네…… 그래도 버트 누나도, 누나도 정말 예쁘고 좋았어요. 그래도 안 된다고 하셨으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리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단기간에 가르쳤다기에는 리버는 생각보다 예의가 발랐다. 아마 버트의 색기에 취한 통에 기존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듯 했다. 니스가 묘한 눈으로 버트를 보았다. 버트는 찔끔해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돌아온 리버를 안아주며 어색하게 웃었다.

“에휴…… 아, 그보다 라이가 탑주가 된 건 알고 있지?”

“응? 그랬어?”

“정말 섹스 말고는 관심도 없구나.”

“그렇게 말하지 마……!”

“하여간 그거 알려주려고 온 거야. 그리고 겸사겸사 다음 세트 템도 찾을 겸 해서.”

“아, 맞아.”

버트는 자기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최근 들어 밤 세트에 대한 소식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찾아나서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니 이참에 라이한테 물어보고 오라고. 무슨 소린지 알지?”

축하 겸 라이를 찾아가란 소리였다. 버트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자신을 애처롭게 올려다보는 리버와 눈이 맞았다.

“……조금만 더 이따가.”

“에휴, 그래. 대신 이번에는 게이트 이용해라?”

“알았어.”

그렇게 버트는 다음 목적지를 살리마 왕국으로 잡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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