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35 타티샤의 망루 中
* * *
“드러커스의 미로가 공략 불가 지역으로 지정된 이유는 간단해. 들어갈 수 없어서야.”
실상 드러커스의 미로 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지상에 있는 전투마을 메일드로우였다. 메일드로우는 수많은 탑과 벽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마을이었다. 그 구조 때문에 처음에는 이곳이 드러커스의 미로라고 불렀다. 곳곳에 설치된 함정과 숨겨진 몬스터의 수준이 극악에 이르렀으니 그런 오해 받기 딱 좋았다.
지하에도 미로가 있으며 그것이 드러커스의 미로라고 알려진 건 판타지아 오픈 후 4년 쯤 뒤였다. 이때 지옥의 파수견이 탈출했으며 이 지역에 대한 진상이 알려지게 되었다.
“일단 첫 번째 고난은 메일드로우의 외곽이야. 바로 5개의 거대한 망루와 그것을 잇는 벽들이지. 성벽과 망루의 단단함을 둘 째 치더라도 각각의 망루에서는 일정 확률로 지휘관을 꿰뚫는 저격이 발휘 돼. 그래서 군대를 끌고 갈 수도, 소수 정예로 칠 수도 없어. 일단은 누구든 하나가 죽기 때문이지. 물론 망루 자체에서 발휘되는 화력과 벽의 방어력도 무시할 수 없어.”
그 다음 고난은 메일드로우 곳곳에 숨겨진 함정들! 웬만한 스킬로는 찾아내기도 힘들뿐더러 혹시 찾더라도 해체하는데도 상당히 어려웠다. 이와 같은 함정이나 미로 장치는 많았지만 이곳처럼 극심한 곳은 없었다. 함정의 종류도 종류거니와 며칠만 지나면 함정의 위치까지 바뀌어댔다. 무려 이곳에서 상정된 함정의 종류만 2,000 여 개! 마을이라고는 하나 미로인 이곳에서 그 수많은 함정을 뚫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이곳은 판타지아 대륙에서 시설로 인한 난이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참고로 악몽의 성은 퍼즐 요소로, 샤만의 해저는 지역적 특색으로 인해 공략이 불가했다.
각설하고 어찌어찌 망루를 넘고 함정이 그득한 미로를 넘더라도 곳곳에 몬스터가 즐비했다. 이곳의 몬스터는 저마다 특이한 힘을 갖고 있었다. 마냥 강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일일이 파훼법을 찾아야 했다.
“그럼 거점을 마련하면 되잖아?”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미로나 함정이 어떻게든 수복되거든. 그렇다고 미로 내에서 거점을 마련하자니 보급이 마땅치 않아서 거점의 의미가 없어. 그래서 쭉 나아가는 수밖에 없으니 지옥의 행진이지.”
“……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은 바로 미로의 입구를 가로 막는 문이었다. 이 문은 각각 망루와 미로에 숨겨진 열쇠 조각을 모아야만 열 수 있었다. 그래서 드러커스의 미로로 직행을 할 수 없었다.
“……그럼 미로를 전부 돌아야 한단 거야?”
“미친 거지. 몬스터의 난이도도 있는데 금방 수복되는 함정까지 돌아야 해. 그래서 군대 하나로는 안 되는 거야. 문제는 또 있지.”
“거기서 또?”
“응. 13개의 열쇠 조각 중 하나가 가짜일 확률이 있어. 그래서 만일 가짜를 합치고 문을 열려 하면 그대로 펑. 그리고 열쇠는 조각나서 다시 흩어져버려. 다시 찾아야 하는 거지.”
“와 씨……”
“욕 나오지? 그나마 여기까지 알아낸 것도 앞서 베타테스터들의 희생이 있어서란 것만 알아둬.”
“그 중 한 명이 너고?”
“음…… 난 악몽의 성 쪽이었지만.”
간만에 만난 세영과 은송은 판타지아에 대한 얘기로 한참을 떠들었다. 은송은 드러커스의 미로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이지만 세영의 관심사는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그 몽마를 내세우기로 한 건 누구 생각?”
“어? 어……”
“보나마나 그 여자 생각이겠지 뭐. 우리 쏭이한테 그런 머리가”
세영은 말하다 말고 은송에게 볼이 꼬집혔다.
“아그그…… 하여간 잘 했어…… 안 그래도 그별 쪽에서도 네 뒤를 찾겠다고 난리더라.”
“응……? 네가 알고 있는데도?”
“그러니 문제지. 정보를 독점하고 있잖아. 원래 조직이란 게 이 파벌이 있고 저 파벌이 있기 마련이거든. 당장 나랑 연이 닿는 클베 사람들도 이건 실드를 못 쳐주겠다더라고.”
“그렇구나”
“그러니 기왕할 거 철저히 연기해.”
“알겠어!”
그렇게 세영의 응원을 받은 은송은 용기를 갖고 판타지아에 접속했다.
*
버트는 페멜로 백작과 페이니와 함께 요새 파틸카에 도착했다. 사실 산 위에 지어져 있어서 요새라고 불리기도 애매했다. 성벽은 높지도 두껍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크게 지을 수 없었는지 성벽이라는 구색만 갖춘 느낌이었다. 그래도 두 나라가 힘을 합친 만큼 설계 자체는 부실하지 않았다.
‘크네.’
파틸카의 첫 인상은 언젠가 문화재 탐방 때 본 고성이었다. 이제까지 봐온 것들 역시 성이었지만 지금 보는 파틸카는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높이에서부터 차이가 있었으니 버트로서는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노을을 배경으로 서있는 모습은 웅장하기 그지없었기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버트는 요새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페이니를 보았다. 그녀는 페멜로 백작과 계속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국제 정세라든지, 아니면 판테스 왕가의 역사라든지…… 하나 같이 버트로서는 괴리감 있는 것들이었건만 페이니는 곧잘 대답했다.
특히 뮬러 7세 이전의 뮬러 5세의 업적에 대해서 말할 때는 페멜로 백작조차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박식함에 질문은 점점 개인적인 것으로 넘어갔고 버트는 그저 옆에서 감탄했다.
[ 페이니…… 대체 몇 살이에요……? ]
[ 그렇게 묻는 거 실례라구~? ]
페이니는 요염하게 웃어 보이며 페멜로 백작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무래도 아직은 남작의 지위인지라 제 손으로 잡아낸 건 방랑 기사 하나밖에 없사옵니다. 나머지 세 분은 델폰 남작의 수하였던 것을 데리고 왔을 뿐이지요.”
백작의 질문은 어째서 기사단을 대동하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당장 파틸카 안에만 해도 백작보다 앞서 도착한 그의 기사단이 있었다. 무려 서른에 이르는 기사들이었고 그들은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었다. 이처럼 비단 백작이 아니라 당장 델폰 남작만 해도 다섯 이상의 기사를 두고 있었다. 그에 비해 페이니는 그 어떤 세력도 없었기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 그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소. 그 작자가 무례를 범했다고 하던데……”
“여인으로서 모욕적인 행위를 하였지요.”
백작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그래도 아쉽군. 여차하면 내 땅을 내주겠네. 아무리 이모탈이라 해도 붙어있을 땅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건 아주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아무리 정계에서 밀려난 귀족이라 해도 영지를 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제 막 귀족 딱지를 단 이모탈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페이니의 공로가 지대했다. 그녀의 막힘없는 화술과 끝모를 지식이 백작을 끌어당긴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진짜 블랙 남작은 버트였다. 페이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백작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럼에도 백작은 아쉬움에 다음에 영지를 방문하란 말로 더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상황은?”
“가고일이 발견된 직후 보고를 올렸습니다. 그래서 언제든 움직임이 보이거나 공격을 받을 시 응전하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병사는 판테스 왕국군 120, 키런 왕국군 100. 기타 인원까지 합하면 도합 300입니다.”
“식량은?”
“비축분까지 합하면 한 달은 너끈히 버틸 수 있습니다.”
“지원군 500이 오기로 했다. 여차하면 천막을 쳐야할지도 모르니 군수품 전부 재점검 후 부관에게 보고하도록.”
“네!”
“괜찮겠지, 남작?”
“물론이지요.”
이번 파견 경계군의 지휘관이 페멜로 백작이었으니 자연스레 페이니가 부관으로 임명되었다. 실상 백작의 기사에게 맡겨도 될 일이었지만 페이니가 마음에 들었기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보고하도록. 응전 사태의 경우 내게 직접 보고하라.”
“네!”
“그럼 남작. 일단은 여독을 풀게.”
“배려 감사 하옵니다, 각하.”
그렇게 페이니와 버트는 배정된 천막 안에 들어섰다. 천막이라고는 하나 침대는 물론 티테이블, 팔레트와 이젤, 몇 개의 악기까지…… 심지어 바닥에는 두꺼운 천도 깔려 있어서 어느 정도 고급 여관의 느낌을 주었다.
세 기사는 그대로 천막 앞을 지켰고, 페이니는 곧장 침대에 앉았다.
“하~ 우리 그릇 덕분에 이렇게 호강하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귀찮아지셨네요.”
그 말에 페이니는 묶었던 머리를 풀며 다리를 꼬았다.
“우리 그릇은 사람 다루는 법을 좀 배워야겠어. 무작정 미안하다고 하면 돕는 사람으로서는 의욕이 빠진다구?”
“아, 죄송”
버트는 무심결에 사과했다가 입을 막았다. 그 모습에 페이니는 킥킥 웃더니 손짓했다. 버트는 쭈뼛거리다 그녀의 옆에 앉았고 페이니는 거리를 두고 앉은 버트를 허리를 당겨 바짝 붙이게 했다.
“가만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네?”
“우리 진짜 섹스해본 적 없지?”
“아”
버트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고 페이니는 싱글벙글 웃었다.
“성에 있을 때는 환상에서만 놀았잖아? 초원에서도 그냥 감질나게 놀았고…… 발르틴에서는 몸을 빌려서 섞었으니 논외겠지?”
페이니의 두 손가락이 허리에서부터 가슴 밑까지 기어올랐다. 버트는 손가락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어깨를 움찔 움찔 떨었다. 그리고 그 손이 가슴에 닿기 직전…… 손바닥의 온기가 닿는다고 생각할 때 페이니는 버트의 배로 손을 옮기고 상체를 맞붙였다.
“어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기에 버트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들키면……”
“설마 내가 그렇게 허술하게 빈틈을 보이겠어? 걱정 마. 지금 요 근방에는 정보원들 없어. 애초에 누가 귀족의 뒤를 밟겠어? 그것도 소문도 자자하신 블랙 남작님을 말이야?”
버트의 심장 소리가 페이니의 어깨로 전해졌다. 버트의 달큰한 체취가 페이니의 몸을 적셨다. 버트의 애달은 숨결이 페이니의 코에 뿌려졌다. 버트의 따뜻한 온기가 페이니의 몸에 전달됐다. 버트의 야릇한 망상이 페이니의 뇌에 담겼다.
“무엇보다 지금 많이 달았잖아? 감시하는 눈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이야.”
“그건……”
페이니의 말은 반쯤 맞았다. 실상 APC와 몸을 섞는 건 버트가 이모탈 귀족이 아니란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그들에게 기사들과 섹스를 하는 게 보인다면 아마 페이니를 블랙 남작이라 확신할 것이다.
문제는 스킬 체크와 프라이버시였다.
‘내가 플레이어란 걸 알게 된다면……? 그것 때문에 블랙 남작인 걸 들킨다면……? 그렇게 되면 내가 게임에서 음란한 짓을 하게 된단 게 오프라인에도 알려지게 될 수 있어……!’
니스에게 물어봤을 때 플레이어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방법은 주로 ‘소지품 확인’이나 ‘훔치기’라 말했다. 일정 거리 이상에서 붙어야 하니 사람이 북적대는 곳이 아니면 쓸 수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베타테스트 때의 얘기! 정식 서비스를 개시한지 몇 년이 지났어도 아직 모든 스킬이 공개된 건 아니었다. 이건 듀크 사가 정식으로 내놓은 정보였다.
‘들킬 수도 있어.’
그런 무모한 도박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페이니의 뱀 같은 손길이 버트의 몸 곳곳에 닿았다. 언제 생각해도 그녀는 능수능란했다. 아주 가벼운 손길이라 해도 그녀의 가슴을 들뜨게 만들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그곳으로 온 신경이 쏠렸다. 성감대가 아닌데도 온몸의 신경이 살아 숨 쉬는 느낌이었다.
“아…… 아아……”
버트는 그녀의 애태우는 손놀림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안 그래도 유혹에 약한 버트가 이런 쪽에 능숙한 페이니를 이길 리가 만무했다. 결국 버트는 페이니의 유혹에 넘어가버렸고 두 사람은 침대 위에서 하나가 되었다.
*
“지독하군.”
페멜로 백작 소속 윙라이온 기사단의 부단장 럭켄이 말했다. 단장은 아니긴 했지만 그도 상당한 실력자였다. 웬만한 이모탈이 범접할 수 없는 힘을 가졌음은 물론 그 지위도 결코 낮지 않았다.
“무엇이 말입니까?”
“보이지 않더냐?”
럭켄의 말에 부하 기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블랙 남작의 천막을 쳐다보았다. 그제야 럭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 교대하지 않은 겁니까?”
“저 셋은 지금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희 몰래 쉬고 온 건……”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 달이 뜨고 있다. 최소 몇 시간 째 지켜보고 있는데 꿈쩍하지 않았다.”
기사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냥 서있기만 해도 힘이 드는데 갑옷으로 무장한 채 꼼짝하지 않았다! 이건 체력적으로도 힘들거니와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가 심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체벌과 단련을 목적으로 가만히 서있는 것을 넣었을까. 당장 럭켄 자신만 해도 저렇게 하라고 하면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저자들의 주인은 본래 델폰 남작이라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힘을 숨겼다기엔 말이 안 되지. 분명 블랙 남작이 이모탈의 힘을 이용해 성장시킨 게야.”
그래야만 그들의 힘을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럭켄이 알고 싶은 건 다른 것이었다.
‘대체 지금…… 안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 것인가.’
단순히 쉬고 있는 걸 경계 한다기엔 기사들의 기세는 강렬했다. 천막 안에서 뭔가 중요한 일을 준비하고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삼엄하게 경계할 수 없었다.
‘대체 저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기에……’
*
“아하핫……! 페이니이……!”
“우리 그릇은 옆구리가 특히 약하더라지?”
“그만해요오……!”
천막 안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세 기사는 고역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지치지도 않고 잘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애정 행각이 그들을 괴롭혔다. 소리야 어떻게든 흘려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버트에게서 전달되는 흥분과 쾌락이었다.
그들은 버트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조금만 집중한다면 그녀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굳이 읽지 않아도 버트는 얼굴에서부터 티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페이니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지금…… 그녀의 사념이 조금도 걸러지지 않고 그들에게 직행되었다.
페이니와의 스킨십으로 인한 흥분, 그것으로 벌어진 발정 상태, 욕망의 갈구!
세 기사는 필사적으로 유혹을 견뎠다. 그 감각을 외면하고 무시하려 애썼다. 그랬기에 그들은 평범하게 서있는 것보다 더 힘든 고난을 겪고 있었다. 겉으로 보인 것보다 훨씬 괴로운 상태……!
“아…… 아아……”
그러거나 말거나 버트는 페이니의 애무에 완전히 녹아내렸다. 동성과의 관계를 한두 번 해봤지만 페이니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부드럽고 향긋한 여체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촉촉한 혀, 유연한 손가락, 보들보들한 피부, 향긋한 숨결, 모든 것이 최고였다.
극상……! 언젠가 사우나에 갔을 때 앉았던 마사지 의자처럼 그녀의 몸은 추욱 늘어졌다.
“후후…… 우리 그릇, 참 느끼기 쉬운 몸이구나?”
“그야 페이니가 능숙해서……”
“천만에~ 이렇게 금방 달아오르고 쉽게 흥분하는 건 흔치 않아. 아무리 예민해도 몇 분 정도 전희에 집중해야 하는데 우리 그릇은 벌써 가기 직전이잖아? 그야말로 타고난 몸이야.”
페이니는 그렇게 말하며 골반에서부터 겨드랑이 밑까지 손가락으로 훑어 올렸다. 버트는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신음을 점점 크게 키우다 마지막엔 콧소리를 냈다.
“그런 말…… 하나도 안 기뻐요……”
“그래? 은근 마조 끼가 있어서 좋아할 줄 알았는데.”
버트는 페이니의 시선을 피했다. 페이니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네?”
“그야……”
“그야?”
“……아니에요.”
“뭔데에~”
페이니는 콧소리를 내며 버트의 가슴을 한 움큼 쥐었다. 한 손으로 잡기엔 버거운 크기. 넘쳐나는 부드러움을 만끽하며 그녀의 가슴을 손 안에서 주물럭거렸다. 기분 좋게 풀어진 버트의 육신은 어딜 만지든 신음을 내게 만들었다. 그건 가슴도 마찬가지였다.
버트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을 새도 없이 헐떡거리며 페이니에게 기대왔다. 그러자 페이니는 허벅지를 쓰다듬다 손가락을 들어 음부에 감춰진 음핵을 정확하게 찔러왔다.
“헤윽……!?”
“말 안해줄 거야?”
가슴을 쥐던 손이 천천히 올라가 유두를 꼬집었다. 음핵은 계속 손가락에 짓눌렸다. 버트는 페이니의 턱밑에 얼굴을 파묻고 헐떡거리다 조용히 속삭였다.
“일단 아니라고 부정해야…… 나중에 인정했을 때 더 기분 좋아서……”
“어머?”
버트는 생각보다 대담했다. 자존심이 있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 어떻게 하면 쾌락에 빠져들 수 있는지 잘 알았다. 페이니는 히죽거리며 웃더니 버트를 침대에 눕히고 한쪽 다리를 잡아들었다.
“하, 할 거예요……? 가위치기……”
주로 여성들과 몸을 섞을 때는 다리를 교차하여 하반신을 맞대고는 했다. 그리고 이건 발르틴에서 마성자와의 성례에서 알게 되었다. 다만 지금까지 그런 전문용어(?)는 민망해서 쓰지 못했다.
페이니는 고개를 젓더니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그녀의 음부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음경이 돋아났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이전에는 음부 위쪽에 돋아났는데 이번에는 음부의 균열을 가르고 나왔단 점이었다. 그래서 굴 안에 숨어있던 뱀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알지? 꿈에서 당한 거?”
“아, 아……”
페이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버트의 한쪽 다리를 끌어안고 두툼하게 솟아난 음경을 버트의 음부에 찔러 넣었다. 금세 구멍을 넓히고 들어온 음경은 질 주름을 하나하나 필 기세로 긁어댔다.
쯔거억
굵다……! 길다……! 뜨겁다……! 이미 한 번 겪어본 것이고 다른 것들처럼 숱하게 느껴온 것이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어때? 좋아?”
“아응……! 네에……!”
“그릇이 좋아하니 나도 좋네~”
페이니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앞뒤로 흔들며 버트의 질 속을 쑤셔댔다. 음경은 무식할 정도로 힘차게 내부를 긁어댔다. 그 충격이 어찌나 터프했는지 버트는 아랫배가 웅웅 울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만큼 살이 부딪치는 소리와 질퍽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 소리는 바깥에서 경계 중인 기사들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어디 조금 더 가볼까?”
페이니는 그렇게 말하며 다리를 교차한 채 편히 누웠다. 버트 역시 바른 자세로 누운 상태……! 둘의 음부는 페이니에게서 돋아난 음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같은 방향으로 하반신을 맞대니 서로의 음부가 밀착되었다.
“이런 것도 좋아했지?”
소위 말하는 가위치기 자세로 하반신을 맞댄 페이니는 위아래로 허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둘의 음부가 키스를 나누듯 끈적하게 맞붙었다. 그 압박은 서로의 음핵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버트의 질속에 깊이 박힌 음경 역시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그런데…… 조금 달랐다.
“하앙……?!”
버트는 난데없이 큰소리를 냈다. 그 이유는 뱃속에서 느껴지는 전혀 다른 느낌 때문이었다.
“페, 페이니……? 이건……?”
“어때? 좋지?”
쯔푹
페이니의 음경은 마치 촉수처럼 그녀의 질 안쪽에서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물론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음경은 그대로 질벽을 때려대다 곧장 자궁 입구를 푹 찔렀다.
“흐앙?!”
이미 삽입한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삽입이 이루어진 셈! 질에서는 촉수같이 변한 음경이 자궁 입구를 찔러댔고, 질 밖에서는 음부가 서로 닿아 음핵을 비벼대고 있었다.
마치 남녀와 동시에 몸을 섞는 듯한 색다른 기분에 버트는 이불을 씹으며 발끝을 오므렸다. 페이니는 히죽 웃더니 그런 버트의 움츠린 발을 잡아들더니 입에 넣고 쪽쪽 빨았다. 버트가 어쩔 줄 몰라하며 헐떡이니 페이니는 발가락 사이사이를 핥아주며 말했다.
“그때는 우리 그릇이 빨아줬지? 그 보답이양~”
“아앙……! 앙……!”
페이니는 그렇게 말하며 발뒤꿈치를 깨물어주다 발바닥을 혀로 훑어 올렸다. 버트는 쾌락 사이로 치고 올라오는 간지러움에 발바닥에 주름이 질 정도로 발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페이니의 혀끝이 그 주름 사이사이를 핥아버려서 간지럼에 저항조차 못하게 만들었다.
“아웅……! 하지 말아요……!”
“싫은데~”
페이니는 콧노래를 부르며 버트의 다리 사이에 파고 들더니 그대로 상반신을 맞붙였다. 단단해진 페이니의 유두가 버트의 유두를 꾹 눌렀다. 둘의 유두는 가슴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살덩이에 파묻힌 유두는 서로 비비적거리며 문질러지고 있었다.
“흐잉……! 흣……!”
페이니는 신음하는 버트를 코앞에서 내려다보며 하반신을 꾹 맞댄 채 엉덩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자 음핵과 질내가 동시에 자극되면서 버트를 절정으로 서서히 이끌었다.
“여기서 끝내면 안 되겠지?”
페이니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그대로 손을 내려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항문에 닿은 건…… 꼬리였다!
“페, 페이니!?”
“여기까지 해버리면 미쳐버리겠지?”
페이니는 약 올리듯 꼬리 끝으로 항문을 꾹꾹 누르기만 할뿐 삽입하지 않았다. 힘주어 넣는 듯 하다가도 미끄러뜨리고…… 다시 넣을 듯 하다가도 튕겨냈다. 이러니 꼭 혀로 핥아주는 느낌에 버트는 안달이 났다. 안 그래도 절정 직전에 멈추어서 갑갑한데……!
버트는 눈물로 가득 차 커다랗게 변한 눈망울로 페이니를 안쓰럽게 보았다.
“넣어줘요……”
“보지에? 똥구멍에?”
“둘 다요……!”
“좋지~ 솔직한 게 좋아~”
페이니는 그렇게 말하고 곧장 꼬리를 밀어 넣었다. 항문으로 밀려들어간 꼬리는 그대로 속을 헤집더니 이내 질내에 들어간 음경과 함께 힘을 주었다. 그렇게 하니 대장과 질 사이에 끼인 살은 가위에 끼인 것처럼 문질러졌고 버트는 눈을 서서히 까뒤집으며 애액을 뿌려댔다.
“힉…… 히익……!”
페이니는 싱긋 웃으며 자신의 품에서 절정으로 전율하는 버트를 내려다보았다. 그 여운도 길게 느껴주게끔 지스팟이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음경과 꼬리로 압박하여 문질러주었다. 그 덕에 버트는 꼬박 몇 분 동안 오르가즘에 헤매야했다. 그 꾸준한 자극 덕분에 오줌까지 지리고 나서야 페이니는 버트를 놓아주었다.
“정말이지 귀여운 그릇이야…… 기왕이면 내가 즐길 수 있을 때까지 놀고 싶은데 말이지……”
버트는 헐떡거리며 의아한 얼굴로 페이니를 보았다. 그러다 페이니가 검은 드레스로 옷을 바꿔입는 것을 보고 뭔가를 눈치챘다. 뒤늦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큰일입니다……! 이상 징후가……”
그 소리에 페이니는 버트를 향해 싱긋 웃었다.
“일단 옷부터 갖춰 입는 게 어떨까, 버트?”
“으엑……?!”
버트는 다급히 옷을 만들어냈다. 이 모습을 들킬지도 모른단 생각에 황급히 옷을 입었고……
밖을 지키던 경계병이 보고를 하러 들어왔을 때 그는 심장이 멎을 뻔했다.
웅장한 기세를 뿜으며 서있는 검은 기사. 밖에 서있는 브론트란 기사보다 더 덩치가 커보이는 그가 위압감 있게 서있었다.
경계병은 상태 이상에 걸린 채 옆에 서있는 페이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 남작님…… 일단 백작 님께도 말씀드렸지만……”
“무슨 일이지?”
“가, 가고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페이니는 경계병의 안내에 따라 파틸카 요새에서 가장 높은 망루로 왔다. 거기에는 페멜로 백작이 럭켄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왔군, 남…… 이쪽은?”
“저의 호위기사 리실버라 하옵니다.”
페이니는 상큼하게 웃으며 검은 기사로 변한 버트를 소개했다. 리실버란 가명은 급하게 생각해낸 가명이었다. 단순히 실버트리를 거꾸로 하고 뒤를 제거한 이름! 아는 사람이 보면 참으로 유치했지만 모르는 사람은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백작은 상당한 기세의 버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혼자만으로도 존재감이 엄청 났으니 다른 기사를 구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며 저 먼 곳을 가리켰다.
“방금 가고일들의 움직임이 확인되었다. 스무 마리 전부 날개를 펼친 채 하늘로 날아올랐지.”
페이니는 럭켄이 건넨 망원경을 받고 저 먼 곳을 보았다. 수많은 첨탑과 요새 위로 떠오른 가고일들이 달빛을 받은 채 날갯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왕성에서는 물론 각국에서 병사를 파견했네. 곧장 오더라도 여기까지 오는데 며칠 정도 걸리니……”
“그때까지 저희가 수비를 맡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말이 수비지 아직 지원받은 경계군조차 오지 않았다. 그랬기에 요새에 있는 병사 300과 백작의 기사단 서른, 페이니의 기사 넷이 전부였다. 아직 초대형 가고일의 전력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크기만 보았을 때 요새의 전력으로 저항하긴 어려웠다.
그런 것이 스물……! 전부는 아니더라도 하나만 오지 않을 것이다. 요새의 전력으로는 가고일들을 막기란 역부족! 하지만 병사들이 오기 전에 시간을 끌어야 했다.
‘미끼.’
버트조차 상황을 파악했을 정도니 나머지도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왕의 명령이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때 페이니가 말했다.
“심려치 마세요, 백작 각하.”
“……아아. 물론. 믿고 있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가고일들이 곳곳에 퍼져나갔다. 그 모습에 백작은 눈을 부릅 떴다.
4마리. 요새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정확히 4마리였다.
“모두 경계 태세를 갖추어라아!! 몬스터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
백작의 한 마디로 요새는 비상사태에 빠졌다. 백작은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가 멈칫거렸다.
“왜 그러시나요?”
“아니…… 아무 것도 아닐세.”
백작은 순간 페이니에게 왜 웃고 있냐고 따지지 못했다. 그녀의 미소는 너무 여유로웠고 당연해보였다.
그리고 얼마 안가 백작은 그 미소의 진위를 알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