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33 솔란의 탑 下
* * *
“오늘의 실험은 이겁니다!”
큐엘의 손에 들린 건 남성의 생식 기관을 본따 만든 플라스틱 물건이었다. 소위 딜도라고 불리는 것이었지만 판타지아에서는 흔치 않은 물건이었다. 그 모습에 버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뼉을 쳤다.
“와! 진짜 만드셨네요?”
둘의 관계는 하룻밤만에 뒤바뀌었다. 하루 종일 섹스를 한 큐엘은 그대로 지쳐 쓰러졌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제정신을 차렸다. 성욕이 뽑히다시피 해소된 그는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거 설마……’
혹시나 싶어 배치된 실험체의 기록을 조회해보니 외견부터 특징까지 전부 달랐다. 보기 드문 몽마인지라 들뜬 마음에 그냥 넘긴 게 실수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버트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진실을 토로했다. 뒤늦게 큐엘은 무고한 이모탈 하나를 겁간했단 걸 깨달았다.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욕망을 채우고 있었다니……!
그가 자책하는 모습에 버트는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마신의 씨앗에 대한 걸 제외하고 자신의 상태가 몽마와 비슷하다고 언급했다. 물론 다른 이모탈과 달리 육체적인 접촉도 할 수 있단 점도 설명했다.
그러자 큐엘은 단번에 그녀의 몸을 훑어보았다. 실례인 줄은 알아도 그런 상태는 아주 특이한 것이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특수한 현상만큼 흥미를 이끄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큐엘이 연구하는 몽마와 관련된 일이었으니 더더욱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큐엘은 버트에 대한 걸 포기하려 했다. 그 이유는 즉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괜한 희생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의 고고한 실험 정신에 버트는 감탄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의 태도에 호감이 일었다.
그래서 버트는 그에게 몇 가지 제안을 했다.
바로 매혹과 관련된 실험! 특정 행동과 언행으로 그에게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따지고 보면 무모한 짓인 데다 몸으로 직접 뛰는 실전 실험이었지만 큐엘은 버트의 제안에 솔깃했다. 그녀와의 첫 섹스도 기분이 좋았고 무엇보다 그녀의 태도가 큐엘의 흥미를 끌어냈다.
“좋습니다.”
그때부터 둘의 관계는 미묘해졌다. 실험자와 실험체의 관계가 아니라…… 마치 섹스 파트너와의 관계 같았다.
“이건 어때요……?”
“좋습니다……”
“이건……”
“읏…… 조금 아픈데요……?”
“그럼 이건요……?”
“아……! 이건 좀 색다른……”
서로의 의견을 묻는 섹스. 큐엘은 물론이고 버트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버트는 평소 때보다 흥분하게 되었다. 뭔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고, 이게 얼마나 음란하고 이상한 짓인지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그 모습을 인정하게 되면서 버트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어졌다. 지금 큐엘이 들고 온 물건이 바로 브레이크가 사라진 이유 중 하나였다.
이따금 호기심이 들었던 성인 기구! 그것을 판타지아에서 재현해낸 것이다. 이 세계에서도 성인 기구는 있었지만 소수 변태들을 위한 물건일 뿐 대중화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쓸 수 없었다.
성인 패치는 그야말로 자살 행위! 듀크 사에서 주기적으로 감시를 하고 있을뿐더러 쇼크로 인한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건 버트나 니스의 전용 아이템인 셈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큐엘은 그저 자기가 만들어놓고도 신기해하며 말했다.
“솔직히 이런 전동기구는 흔치 않아요. 하지만 음란 행위에 있어서 자동화라니…… 이건 대단한 발견입니다!”
버트는 오버 테크놀러지가 자신의 성욕으로 나타날 줄 몰랐다. 이런 비슷한 건 있었지만 큐엘이 만들어온 건 한 술 더 떠서 진화해있었다. 이 건에 대해서는 니스 역시 황당해했다.
[ 이러다 신도 꼬시겠네ㅋㅋ ]
버트는 바깥 세계에서 메시지를 받고 얼굴이 붉어졌었다. 물론 그녀에게 중요한 건 바로 성인 기구의 성능이었다. 거리의 간판이나 인터넷의 광고 외에는 직접 본 적이 없었기에 호기심은 있었어도 선뜻 건드릴 수 없었다. 산다 해도 보관할 때도 마땅치 않고……
지이이잉
그랬기에 버트는 손에 들린 딜도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어마어마한 기세로 진동하는 딜도를 한 번 본 버트는 큐엘을 곁눈질 했다.
“……써볼까요?”
“……그래야죠?”
*
즈으으응
“으우웃……”
“어떤가요?”
“조금…… 더 강해도 될 거 같은……”
“알았어요.”
버트는 두 다리가 활짝 벌려진 채 딜도를 삽입하고 있었다. 의자는 그녀의 하반신을 든 상태로 두 다리를 단단하게 고정하고 있었는데 마치 산부인과에서 쓰는 검진용 의자 같았다. 그런 노골적인 자세에서 두 손은 팔걸이에 단단히 묶여있었으니…… 이건 버트와 큐엘이 합의하에 만든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강제성이 더해진 것이 좀 더 흥분된다는 게 그간의 실험(?)의 결과였다. 두 사람은 이제 어떻게 해야 상대가 흥분하는지, 좀 더 느끼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버트야 선천적으로 음란한 기세가 있었지만 큐엘은 학습을 해야 했다. 큐엘이 아무리 라이에게 밀렸다고는 하나 마법사의 탑에서 나름 수재라 알려진 인물! 그는 버트의 부탁으로 만든 성인기구에 대해서 응용까지 전부 설계한 뒤였다.
천재…… 그리고 다른 의미로 천재와의 만남은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큐엘은 그녀의 사지를 결박하고 기구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자극적인 말과 행동을 시도했다.
“네년이 숨어든 걸 모를 줄 알았어? 대답해……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침입한 거지?”
“아앙……! 마, 말 못해요……!”
“음탕한 년! 이런 짓을 당하는 걸 기대하고 온 거 아냐?!”
어느 새 큐엘은 버트에게 윽박지르면서 딜도를 힘차게 쑤셔 넣었다. 강렬한 진동을 품은 딜도는 버트의 물컹물컹한 질벽을 긁어대며 부드럽게 안으로 파고 들었다. 그러자 질벽만이 아니라 그 진동이 자궁까지 울렸고 그 안에 들어있는 마신의 씨앗에까지 전해졌다.
분위기에 취한 버트는 울 듯한 얼굴로 헐떡대면서 손과 발을 꼼지락거렸다.
“아앙……! 아니에요……!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거짓말 하지 마라 음란한 년아! 이렇게 보짓물을 흘려대고 날 유혹하고 있는데 아니라고?!”
큐엘의 말대로 버트의 음부는 물로 가득 차있었다. 실제로 딜도로 찌를 때마다 철퍽거리며 축축한 소리가 울렸다. 그의 지적에 버트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손이 묶여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큐엘은 그런 버트를 보며 딜도로 음부를 쑤셔대면서 얼굴을 가까이 붙이며 말했다.
“이 몸으로 날 꼬시려고 한 거겠지? 저급한 년…… 네년 소원대로 실신할 때까지 괴롭혀주마!”
“아앙……! 앙……!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아앙!”
그렇게 한 차례 딜도 사용이 끝나고 흥이 오른 두 사람은 그대로 섹스를 시작했다. 물론 버트는 묶여있었기에 큐엘이 일방적으로 박아댄 것이었지만 두 사람 다 충분히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었다.
섹스가 끝난 후에는…… 둘 다 동시에 허무함을 느끼고 머쓱거리며 뒷정리를 했다.
“……음, 괜찮았나요?”
“네, 네……”
방금까지 윽박지르고 욕하고 수줍어하고 울어대던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식의 어설픈 상황이 방금 전의 연기를 불타오르게 하는 건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그게 가짜란 것이 확신하게 되었으니 좀 더 심한 말이나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버트도 이제 창녀라든지, 천박하다든지, 저급하다든지의 말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이전에는 아이가 한 말에 울어버렸지만……
괜히 그때 생각이 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게임 속 캐릭터가 한 말일 뿐인데 그렇게 펑펑 울기나 하고…… 그때 버트는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큐엘을 보게 되었다.
‘게임 속 캐릭터.’
버트는 과연 이 세상이 정말 게임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아가 출시되기 이전부터 인공 지능에 대한 논란은 많았다. 어떤 게임은 특정 캐릭터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이슈가 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캐릭터가 사실 비밀리에 연구 중이던 A.I의 결과물이었단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제법 충격이었다. 그 캐릭터는 정말 사람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판타지아의 세계는 그 이상이었다. 캐릭터 하나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사실적이었다.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땅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도, 하늘도, 건물도, 숲도, 짐승도, 모든 것이 진짜 같았다.
그랬기에 니스의 말이 확 와닿았다.
‘판타지아에서 금기 시 되는 건 게임 캐릭터와의 연애.’
큐엘의 얼굴은 평균 이상이었다. 게임에서는 흔하디 흔한 얼굴이었지만, 현실 세계에서 마주한다면 그래도 한 번쯤은 힐끔거리며 볼만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게임에서의 자신은 언제든지 보정을 할 수 있었다.
미남·미녀의 삶. 심지어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의 눈치도 거의 보지 않아도 됐다. 몸을 섞지 못할 뿐이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판타지아에서 커밍아웃한 플레이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플레이어였단 건 몇 년 뒤 지금에서야 밝혀진 일이었다. 아마 말하지 않았다 뿐이지 APC와 연애 비슷한 걸 한 사람은 제법 있을 것이다.
‘그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여기에 붙들리겠지……?’
버트는 내심 이 게임의 흡입력이 두려워졌다. 그녀는 섹스의 쾌락을 떠나서 이 세상이 정말 즐거웠다. 사냥도, 친목도, 그저 하루를 보내는 일상도, 모두 즐거웠다. 현실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었고 하나 같이 질리지 않았다.
‘나도 이런데 본격적으로 빠져든 사람들은 어떨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큐엘이 말했다.
“차라리 이런 게 나을지도 몰라요.”
“네?”
“버트 님. 절 도와주실 수 있나요?”
큐엘은 애액으로 절은 딜도를 내던지고 버트의 손을 꼭 잡았다. 버트는 혹시나 자신에게 고백하는 건가 싶어 난처해할 때……
“덕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성이 오르가즘이 주는 행복을……! 당신이 기분 좋게 느낄 때마다 저 역시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발명한 도구로 즐기실 때는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지요. 그러니 결정했습니다. 이제 탑의 주인이니 뭐니 상관없습니다. 전 지금부터 이것…… 성인 기구란 것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대단한 결심을 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버트에게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혹시 마기로 인해 성격이 변질된 건가 싶기도 했다.
그녀의 추측은 반은 맞았다. 버트에게서 흘러나온 마기가 그의 성격을 바꾼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명예욕을 다른 방향으로 바꾼 것일 뿐, 그 근원까지 바꾼 건 아니었다.
“그러니 부탁이 있습니다. 제 실험 발표의 견본이 되어주십시오!”
“네, 네……?”
*
“그래서 그걸 허락했다고?”
은송은 판타지아에서 로그아웃을 하고 얼마 안가 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학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세영은 그녀의 전화를 받고 근황을 듣자마자 황당함에 되물었다. 은송은 민망해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세영은 두건을 벗으며 말했다.
“뭐, 상관없어. 그건 어디까지나 은송이 너의 선택이니까. 그래도 내가 저번에 했던 말, 잊지 않았지? 게임에 너무 빠져들면 안 된다는 거.”
“어……? 응……”
은송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잊지 않긴. 틈만 나면 게임에서 이상한 짓이나 하면서……”
“내가 뭘……!?”
“으이구, 라이랑 마법사의 탑 가고 나서 영 소식이 없더니 결국 또 이렇게 됐구나.”
세영의 추궁에 은송의 얼굴이 벌개졌다.
“어쩔 수 없는 걸……!”
“어쩔 수 없긴 하지! 우리 은송이가 야한 거에는 한없이 약한 여자니까!”
“너 알바 하는 곳 어디야.”
“왜? 와서 때리게? 이걸 어쩌나~ 우리 쏭이 동네랑 다른 동네인데~”
“방학 끝나고 두고 봐!”
“이걸 어째~! 나 다음 학기 휴학인데!”
“이익!”
은송은 킥킥 웃으면서 자연스레 동혁의 근황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원래는 해안가에서 잡은 보스를 연구하기로 했다고 하던데……”
“걔가 너한텐 자세히 말 안했나보네? 3대…… 아니, 이제 2대 공략불가 지역이지. 그곳 중 하나인 드러커스의 미로에서 몬스터들이 나와서 설치고 있나 봐. 그래서 판테스 왕국의 동쪽 국경에 있는 ‘마나타 요새’에서 대치중이라고 해.”
“혹시 이벤트가 벌어지는 건……”
“그럴 리가. 물론 이전에도 미로에서 탈출한 몬스터로 이벤트가 벌어지긴 했지만…… 아직 여름 이벤트의 열기가 가시기도 전인 걸? 이렇게 연달아 이벤트를 했던 적은 없어. 거기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판타지아에서 시련은 플레이어와 달리 세계의 위험이라고 할 정도로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전에 일어났던 시련과 비슷한 징조가 벌어지고 있으니 주의 하는 건 당연했다. 오죽하면 판테스 왕국의 이웃 국가인 키런 왕국도 기사단을 지원해주겠다고 나설까.
“아무튼 일이 진정되면 다시 말하겠지만…… 당분간 라이는 탑으로 못 돌아갈 거야.”
“으흥……”
“그러니까 충분히 즐기라고?”
“너”
세영은 은송이 뭐라 하기 전에 끊어버렸고 은송은 핸드폰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뭐, 큰일은 없겠지.”
하지만 일은 은송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
“지금부터 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큐엘은 정갈한 마법사 복장으로 단상에 섰다. 버트는 그런 큐엘의 옆에 검은 가죽옷과 반가면을 장비한 채 서있었다.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마법사의 탑에 위치한 101층의 단상! 그것도 수 백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12층에 이르는 관중석에는 각 층을 대표하는 마법사들이 빼곡하게 차있었고 탑 꼭대기 120층의 주인 ‘넬하트’ 역시 자리하고 있었다.
발표회는 대개 일정 수 이상의 인원이 모이면 비정기적으로 시작된다. 큐엘은 마지막 순서로 앞서 여러 마법사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자동 조리기구나 위험지역 탐사장치 등 하나 같이 판타지아에서의 기술을 넘어선 것들 투성이였다. 그랬기에 버트는 걱정스레 큐엘을 보고 있었다.
‘정말 이런 걸로 괜찮은 거야……?’
큐엘이 발표하는 것은 고작해야 성인 기구였다. 이것이 어떻게 앞에서 나온 발명품들에 견줄 수 있단 말인가! 버트로서는 큐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그에게 중요하단 건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일단 최대한 그에게 협조하리라 마음먹었다.
큐엘은 실전에 앞서 해당 성인기구들에 대한 제작법과 구성, 목적 등을 나열했다. 외부에서 물건을 팔러온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큐엘의 말은 유창했다. 특히 이 기구만의 장점과 작동 원리 등을 설명할 때는 버트조차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정작 버트는 모두의 앞에 선다는 긴장 때문에 쪼그라 들어있는데…….
“그럼 실전 사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해당 실험에 앞서 실험자를 소개하겠습니다.”
큐엘이 눈짓하자 버트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이번 발표회에 협력해준 ‘버트’입니다. 해당 기구들의 실전 사용 및 반응 체크 등 모든 항목을 숙지하고 동의해주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기구입니다. 실전 사용의 경우 후방의 스크린으로 실험자의 인체도를 간략화하여 연결하였습니다. 폐활량, 혈류량, 근육의 경직도, 체온, 전기 신호 등 실험자의 인체 정보를 바탕으로 쾌락 정도를 분석한 것이니 참고해주십시오.”
큐엘이 먼저 꺼낸 건 로터였다. 진동에 특화된 소형 기구로 보통 성감대에 직접 대고 자극하는 용도로 쓰는 것이었다. 이것의 강렬함은 이미 맛보았기에 알고 있었지만……
‘차, 창피해……!’
버트는 문득 자신에게 닿는 시선에 얼굴이 벌개졌다. 지금 자신은 수 백 명이 보는 앞에서 자위를 해야 했다. 게다가 등 뒤에는 자신이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 보여준다지 않는가!
어째서 이 사실을 떠올리지 못한 걸까. 아무리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지만 이건 정말 창피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었다. 애초에…… 버트도 분위기에 휩쓸린 뒤였다.
‘모르겠다……!’
버트는 타이트한 가죽 바지 위로 로터를 갖다댔다. 얇은 옷을 입었다고는 하나 로터의 진동은 확실하게 그녀의 음핵까지 파고 들었다. 버트는 조금씩 얼굴이 붉어지면서 허벅지를 맞대다 큐엘을 보았다. 큐엘은 로터를 작동하자마자 이것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틈틈이 그들의 질문을 받았다.
“반응을 보아서는 확실히 효율적일 듯 하나 과한 쾌감 신호로 인해 고통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 역시 보완해두었습니다. 심각할 경우 경련 상태에 빠질 수 있겠지만, 기기 내부에 자체적으로 체온과 근육의 경직도를 측정케 했습니다. 만일 설정해둔 이상으로 체온과 경직도를 감지한다면 자동으로 꺼지게 해두었습니다.”
“허면 성행위란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겠습니까? 오르가즘으로 인한 과열과 경직을 잘못 감지해서 작동이 멈춘다면 분위기도 안 좋아질 것 같습니다만?”
“그것 역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만일 3회 이상 같은 시도가 벌어진다면 기기가 자동으로 꺼지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그 간격이 짧다는 가정 하에 말이죠.”
“흠, 그렇다면 그로 인한 사고의 경우는 생각해보셨습니까?”
“그것까지 고려한다면 이 발명품을 내놓을 수 없겠지요. 물론 사용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로서는 최대한의 방비를 할 뿐이며, 예외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에 맞게 대처할 뿐입니다.”
큐엘은 침착하게 질의응답을 했다. 그 와중에 버트는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분명 자신은 음란 행위를 하고 있는데…… 심지어 그들의 시선까지 받고 있는데…… 흥분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사들의 시선은 지극히 차갑고 객관적이었다. 그녀의 몸을 훑는 것에는 그 어떤 욕심이 없었다. 그저 큐엘이 만든 것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듯 했다. 물론 몇몇은 버트가 익히 알고 있는 시선이었지만 대부분이 과학도의 눈빛이었기에 자기만 변태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이 버트를 고양시켰다.
“효과가 있는 모양이군.”
“혹시 마약을 복용한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몽마를 잡았다고 들었는데, 그 몽마가 아닌가?”
“그럴 리가. 몽마들은 죄다 콧대가 높다고. 저렇게 금제도 안 걸었는데 순순히 협조할 리가……”
그들의 수군거림은 버트의 예민한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왠지 품평당하는 기분까지 드니 흥분이 치솟았다. 점점 화면에 보이는 버트의 흥분도가 높아지자 큐엘은 다음 기구의 사용을 부탁했다.
그가 다음에 권유한 건 딜도였다. 남성기를 본따 만든 이것은 로터처럼 진동 기능이 있었다. 버트는 잠깐 망설이나 싶더니 바지를 찢어 치부를 드러냈다. 자위를 하는 것도 창피한데 이런 식으로 음부를 보이는 건……
‘으으……’
버트는 딜도를 쥐고 마법사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천천히 딜도 끝을 질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미 촉촉하게 젖어들고 흥분으로 부드럽게 풀린 질 구멍은 딜도를 쉽게 집어삼켰다. 이어서 큐엘은 이것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혹여 실험자가 약을 복용하였거나 몽마가 아닌가 의심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이 분은 개인적인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10성 마법사의 명예를 걸고 신원을 보증하지요. 그리고 만일 흥분시키는 약물을 쓰지 않았나 의심이 되신다면 제가 탑에서 지원받은 재료들, 그것도 부족하다면 제 거래 내역을 추적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선천적으로 잘 느끼는 몸이라는 건가.”
“아니면 큐엘의 도구가 그만큼 좋다는 걸지도 모르지.”
슬슬 큐엘에 대한 신임이 살아날 쯤 버트가 몸을 움츠렸다.
“흐읏……”
화면에는 버트의 체온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온몸의 신호가 활발해지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큐엘이 잠시 버트를 보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버트는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씩씩하게 웃어 보이더니 한 손으로는 로터를 들고 음핵을, 다른 손으로는 딜도로 음부를 푹푹 쑤셔댔다. 딜도가 속을 빠져나갈 때마다 애액이 튀었고 축축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쯤 되니 객관적으로 보고 있던 마법사들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큐엘이 기구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아……’
버트는 무아지경에 빠졌다. 그들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단 것도 모른 채 서서히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두에게 보여지는데……
절정한다!
츠퍽 츠퍽 츠퍽
버트는 입술을 잘근 씹으면서 몸을 서서히 뒤틀었다. 하반신에 유독 열기가 집중되는 것이 보이면서 모두가 그녀의 오르가즘을 예상했다.
“읏…… 하…… 아아……!”
버트는 일어선 자세로는 불편했는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던 큐엘조차 말을 버벅거릴 정도로 버트의 자위는 정말이지 강렬했다.
신음…… 야릇한 몸짓…… 현실 세계에서와는 달리 판타지아에서는 포르노가 없었다. 기껏 해야 창부를 사거나 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자극적인 쇼가 벌어지니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제는 큐엘이 만든 기구의 성능은 뒷전이었다. 모두가 버트의 자위에 빠져들었다.
“힉…… 히잇……! 히잇……!”
버트는 서서히 치고 올라오는 쾌락에 결국 상체를 뒤로 넘겼다. 그리고 딜도를 깊게 박음과 동시에 애액을 오줌처럼 뿌려대며 절정했다. 얼마나 느낀 건지 들고 있던 로터를 떨어뜨렸고, 딜도를 놓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딜도의 경우 음부에 단단히 꽂혀 있어서 떨어지거나 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흐앗……?!”
대중 앞에 선다는 긴장감으로 차올랐던 요의. 그것이 갑자기 폭발한 것이다. 안 그래도 쾌락으로 긴장이 풀리면서 하반신의 근육도 늘어졌고……
쪼르륵
“으, 아아……!”
버트는 가면 쓴 얼굴을 가리며 절규했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는 황금빛 물줄기가 뿜어지면서 애액으로 젖은 딜도가 질 밖으로 밀려나왔다.
갑자기 마법사들에게서 침묵이 돌았다. 큐엘은 다급하게 발표회를 마무리 했고, 버트는 그의 부축을 받고 무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
“꼴찌라니……”
큐엘에게 발표회 소식을 들은 버트는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마 마지막에 자신이 버린 추태 때문이리라! 다행히 마지막 발표였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뒷사람에게까지 민폐를 끼쳤을 것이다.
“아니, 뭐 그게 버트 때문도 아니고……”
“그렇지만……”
“애초에 발표회는 세상 밖으로 꺼내느냐 마느냐 거치는 과정일 뿐이에요. 실용성과 대중성은 별개의 문제죠. 여기서의 점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버트는 여전히 미안해했고 큐엘은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 뭔가를 한 꾸러미 건넸다.
“이모탈이라고 했죠? 선물이에요. 지금까지 제가 설계하고 만든 것들이에요.”
“아, 네……”
“버트 덕분에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꼭 유명해져야만 최고가 아니란 것도 깨달았어요. 눈앞의 여인을 기쁘게 하고 만족시켜주는 것도 제법 괜찮았거든요.”
“아……”
버트는 민망한 미소를 보이며 주머니를 받았다. 사실 말이 주머니지 그 크기만 버트의 몸뚱이만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만든 건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요.”
“네……”
그렇게 버트는 큐엘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마법사의 탑을 나섰다. 큐엘은 그렇게 버트를 마중하고 실험실에 틀어박혔다.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성인용품…… 그것들이 시중에 풀리면서 어둠의 세계(?)에서 큐엘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 물론 엄청난 돈을 벌여들이면서 유흥가의 왕이 되지만 이건 나중의 이야기다.
한편 버트는 밖에 나오자마자 간만에 보는 햇빛에 인상을 구겼다. 아무리 탑 안에 조명이 있다고는 하나 종일 안에 박혀 있었으니 이런 자연적인 빛은 간만이었다. 그런 버트의 앞에 나타난 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여인이었다.
“목표. 포착.”
“응?”
여인은 단숨에 버트에게 달려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