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27 다시 라피에 초원으로 下
* * *
라피에 초원. 늑대들의 땅이라 불리며 이모탈 대부분이 꺼려하는 곳이다. 그 이유는 난이도와 드랍률에 있었다. 늑대들의 단합력은 굉장했다. 하나하나의 힘은 보통이지만 본격적으로 무리 싸움을 하면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그런 난이도에 비해 아이템 파밍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렙의 이모탈이 방문하였다가는 늑대 무리에 갈가리 찢겨나갈 뿐이었다.
왕국에서도 어쩌지 못한 애물단지…… 그런 라피에 초원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긴 간만이네.”
“그러게.”
버트와 니스는 감회에 젖어 있었다. 엘도트와 두 기사는 이곳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충분히 경계했고 루하다와 페이니는 웬일로 잠잠했다. 리버는 아무 생각 없이 헥헥거리며 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참 어지러운 동네군.”
휴트…… 새롭게 합류한 이 중년의 사내는 껄껄 웃으며 초원을 보고 있었다. 눈썰미 좋은 이디아 정도나 휴트의 얼굴을 보며 갸우뚱했지 니스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판테스 왕국의 실질적인 권력자이자 지금은 죽었다고 알려진 가이람 백작이었다. 영지가 멀어 얼굴을 확인 못하는 세 기사나 정세에 관심 없는 버트가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
오직 니스만이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휴트의 등짝을 때리며 함부로 대했다.
“그런데 여기엔 무슨 볼일이……?”
“만날 사람이 있어서 아, 여기!”
엘도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저 멀리 보았다. 보이는 건 늑대뿐인데……? 그보다 늑대 무리의 시선을 끌어봐야 좋지 않았다. 이미 버트의 무력을 확인했다지만 그녀는 자신들이 섬기는 주군이었다. 위험에 제 발로 나서는 모습이 달가울 리 없었다.
예상대로 늑대들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이디아는 활을 겨누고 브론트가 방패를 들고 버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 버트가 브론트를 제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하필 이디아가 활을 겨누는 방향을 등지고 가는 바람에 화살도 쏠 수 없었다.
“버트!?”
“냅둬.”
니스는 뚱한 얼굴로 말했고 이디아가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보면 알아.”
버트가 늑대 중 한 마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버트에게 덮쳐진 늑대는 그대로 뒤로 나뒹굴었다. 나머지 늑대들은 버트의 몸 곳곳에 코를 박으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멀리서 보면 공격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하하하! 옆구리 찌르지마아!”
늑대들이 버트를 반기고 있었다! 버트는 그게 익숙한지 즐거운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오늘도 먹게 해주는 거냐?”
“난 교미가 하고 싶다!”
“냄새 좋다. 냄새 좋다.”
“카르릉!”
거기다 늑대들은 말까지 하고 있었다. 그들은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엄연히 라이칸슬로프였다. 물론 늑대인간처럼 두 발로 서거나 하진 않았지만 언어를 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버트는 한바탕 녀석들과 푹신푹신한 싸움(?)을 치르고 나서 돌아왔다.
“곧 슈트도 온댔으니까 기다리자.”
“슈트? 설마 화이트슈트……?”
“응, 맞아.”
“그때 본 그 녀석 맞지? 대단하다…… 설마 걔랑도 한 거야?”
“그럴 리가?! 그런 건 안 들어간단 말이야……!”
버트가 니스의 말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버트의 반응에 니스는 음흉하게 웃어보였다. 지금 이 대답으로 버트가 어디까지 상상했는지 알만 했다.
“정말 기상천외한 아가씨야.”
이디아가 이렇게 말했고 엘도트는 그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엘도트 역시 그 말에 공감했다. 그리고 그들이 주변 경치에 수다를 떨기 시작할 때 하얀 무언가가 달려왔다.
화이트슈트! 이 초원에서 보스급 엘리트 몬스터로 이름을 떨치는 초원의 지배자였다. 그는 특유의 거체를 자랑하며 버트의 앞에 섰다. 버트는 빛나는 눈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슈트는 잠깐 눈치를 보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숙여 버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버트는 그 촉촉한 코와 푹신하고 부드러운 털가죽에 온몸을 묻으며 행복해했다. 옆에서 구경하던 니스도 부러워서 지켜볼 정도였다.
“자, 그럼 가자.”
슈트는 버트와 그 일행을 모두 태워주었다. 그리고 처음 버트가 농락당했던 그 장소로 이동했다.
*
“안녕 얘들아~”
버트는 해맑은 얼굴로 늑대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휴트나 니스 정도는 평범하게 웃으며 지켜보았지만 나머지는 아니었다.
“적응이 안 돼요.”
“나도 그렇지만…… 적응해야지.”
“음……”
그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들이 리버를 대하는 태도였다.
“오셨습니까, 족장이시여.”
“이가 나고 계시군요. 고기를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리버를 극진히 대접했다. 기사들이 보기에 그저 잘 큰 강아지처럼 보이는데…… 이들의 족장이라니! 이디아는 리버가 슈트처럼 커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고 엘도트는 버트가 이들과도 교미를 했는지 우려했다.
그 사이 버트의 심상에서 페이니가 한탄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야…… 이것들 왜 이렇게 약해졌어?]
[……나와 비슷한 경우지.]
[너랑 비슷해……? 너도 지금 약해빠진 상태인데 이것들은 너한테 저항도 못할 정도로 약해졌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종족 보존은? 힘의 유지는? 미래를 위한 준비는?]
루하다는 은근히 자기를 까내리는 말에도 반발하지 않았다. 자신이 전성기에 비해서 약해진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저 ‘그들’에게 저항한 결과일 뿐이다. 아마 저 덩치의 이전에도 비슷한 행위를 벌였다가 당한 것이겠지. 전부 너처럼 계획적이지 않아.]
[계획적?! 이 멍청이들 진짜……! 수컷들은 죄다 대가리가 가랑이 사이로 옮겨간 거야?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생각이! 무작정 저항한다고 끝이 아니잖아 머저리 새끼들아! 나중을 위해 잠깐 자존심을 굽힐 줄도 알아야지! 그렇게 무식하게 굴어서 어쩌자고!]
루하다는 조금씩 쭈그러들었다. 분명 페이니와는 입장 차이가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세력을 충분히 꾸렸다. 거기다 이 세상에 잘 적응한 경우였기에 ‘그들’이 심한 터치를 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루하다나 라이칸슬로프는 아니었다. 대놓고 저항하고 싸우는 것을 택했기에 극심한 공격을 받고 온갖 제지를 당했다. 그 결과 루하다는 조각조각 나서 자아가 흐트러졌고 라이칸슬로프는 리아주크의 힘을 거의 잃어버렸다. 거기다 늑대 취급을 받으며 말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후회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대로 행했고 성격대로 분풀이를 했으니…… 다만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세력을 상회할만한 힘이……]
[뭘 잘했다고 떠들어? 내가 몽마들로 여기저기서 정보를 모아오는 동안 너희는 이따위로…… 역시 안 되겠어. 그릇은 내가 맡는 게 낫겠어.]
[그게 무슨]
[이렇게 생각 없이 구는 것들이 그릇을 데리고 있어봐야 이 녀석만 위험해. 차라리 내 손에 그릇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잠시 안전한 게 낫지.]
[웃기지 마라! 그러다 그릇이 불안정해진다면 씨앗에 무슨 영향이 갈지]
[언제까지 개인 감정을 섞을 거냐, 벨루그하!!]
그들의 싸움은……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루하다가 이러는 건 저 때문이니까.]
소심하게 끼어든 버트의 목소리로 끝났다.
[그릇이시여……]
[그릇?]
두 사람도 놀라고 있었다. 여기 심상 세계는 버트의 마음속이긴 하나 정신적인 수행이 없다면 간섭하기 어려운 곳이다. 왜냐하면 이 공간은 무의식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 본래 육체가 있는 이모탈이라면 여기를 알기 더더욱 어려웠다. 그녀가 어떻게 이곳을 느꼈는지는 다음 문제였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어?]
페이니의 말에 버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 반응에 페이니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뭐, 이러면 얘기가 빠르지. 네 육체를 부숴서 씨앗을 피울 거야. 어쩔 수 없지. 신을 만들어내는데 육체가 무사할 수 없]
[네.]
버트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는 거야?]
[알아요. 다만…… 조금 더 시간을 주었으면 해요.]
[시간을? 왜?]
[그야……]
버트는 뜸들이다 말했다.
[……이 게임을 더 하고 싶으니까요.]
[게임. 그래…… 이모탈들이 종종 하는 말이지.]
페이니는 그렇게 중얼거리다 말했다.
[하지만 이 세상은 너희에게 게임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아니야.]
[네. 그래서 거절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왜 곧장 몸을 넘기지 않겠다는 거야? 루하다 이 녀석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 세상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 그게 안 느껴지는 거야?]
[그래도…… 보고 싶은 걸요.]
버트는 나긋나긋하게 할 말을 시작했다.
[이 게임을 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어요. 물론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일들이었지만 좋은 일도 많이 있었어요. 저쪽 세계에서 하지 못할 경험도 하고 귀여운 친구도 만나고 모르는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그래서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이곳을 즐기고 싶어요. 게다가……]
페이니는 순간 아무 형상도 없어야할 버트의 눈길이 느껴졌다.
[제게 한 부탁…… 이뤄지는 걸 보고 싶었어요.]
[……그거 농담이었는데.]
[정말요?]
……
[정말로요?]
……
[정]
[진심이야! 그래! 거짓말 아냐! 그만 물어!]
[으히히……]
버트는 바보 같은 웃음소리로 화답했다.
[그러니 적어도 그 결과를 보기 전까지 만이라도 이곳에 있게 해주세요. 그 뒤에는 마음대로 하게 해드릴 테니까요.]
[흥, 그깟 꼰대 녀석 꼬시는 건 일도 아니지.]
[근데 왜 말도 안 붙이고 있어요?]
……
[너…… 순진하지만은 않구나?]
[에헤헤……]
[뭐, 됐어. 그릇이 이렇게 말했으니, 루하다 너도 할 말 없지?]
루하다는 잠깐 망설이다 버트에게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응.]
[……괴로우실 겁니다.]
[……알아.]
버트는 루하다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몸 상태를 모르지 않았다. 육체가 무너진다면…… 엄청난 아픔을 느낄 것이다.
[여차하면 로그아웃 해버리지 뭐.]
[……알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싸워. 둘이 친구잖아.]
버트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루하다가 말했다.
[착한 분이시다.]
[그건 나도 알아. 알지만…… 해야 해.]
[……그런데 그릇께 무슨 부탁을 했]
[묻지 마.]
[어째서]
[묻지 말라고.]
*
버트는 리버를 초원에 맡기기 전에 당분간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니스였다.
“곧 ‘시련’이 온대. 그래서 그걸 찾기 위해서 가야 해.”
시련. 판타지아에서 일어나는 대형 이벤트를 칭하는 말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이 시련을 통해서 강력한 장비를 얻거나 좋은 아이템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언제나 대륙이 떠들썩할 정도의 일이 벌어졌기에 거기에 참여하는 재미는 남달랐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어떤 시련이 있었어?”
“음…… 아크메이지 귀르디가 악마에게 타락해서 리치가 된 일도 있었고…… 드러커스의 미로에서 지옥의 파수견이 탈출한 일도 있었어. 아, 클로즈 베타 때는 늑대인간들도 있었”
니스가 말을 하다 말고 섬뜩한 기세에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늑대들이 니스를 보고 있어서였다. 니스는 잠깐 눈치를 보다 은근슬쩍 뒷말을 넘기며 말했다.
“하여간…… 여름 이벤트는 흔치 않으니까…… 아무튼 나중에 보자.”
“응……”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그별(그림자를 쫓는 별)’ 정보처 어딘지 알지? 거기로 얘기해. 초원 근처 마을에 분점 하나 있으니까.”
“알았어.”
“그럼 나중에 보자”
니스는 그렇게 말하며 버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입맞춤이었고 두 사람은 잠깐 그것이 이상하단 걸 인지하지 못했다. 기사들이 멍한 얼굴로 쳐다보기 전까지는……!
“가, 갈게?”
언제나 거리낌 없이 스킨십을 해왔던 니스가 당황해서 가버렸다. 그러자 버트도 덩달아 당황해서는 근처에 있는 늑대 하나를 끌어안고 부비적거렸다.
“……그럼 난 뭘 할까.”
버트는 그렇게 말하며 안고 있는 늑대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기사들이 뭔가를 느꼈는지 황급히 자리를 비웠다.
아, 맞다. 버트는 자신과 그들이 연결 되어있단 걸 상기했다. 순간 야한 마음이 든 건 사실이었지만…… 아주 잠깐이고 아주 조금이었을 뿐인데……! 하지만 그들이 구태여 자리를 비워준 이상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
“흐아아”
버트가 흐느적거리며 엎드려 있는 슈트의 옆구리에 파묻혔다.
“즐기고 왔나?”
“……으응.”
슈트는 귀를 팔락거리며 버트가 보이게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뭔가 달리 필요한 거라도 있나?”
“궁금한 게 좀 있어서.”
버트도 슈트의 얼굴이 보이게끔 몸을 돌렸다. 버트는 그의 커다란 눈을 보며 말했다.
“달빛의 영광을 잃었다고 했지……?”
버트는 수도 크람스로 갔을 때 루하다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슈트는 잠깐 망설이다가 눈을 감았다.
“맞다.”
“그건…… 그러니까…… 마기를 잃어서 그런 거야?”
“적어도 나는 아니다. 하지만 내 동포들이 힘을 잃었지. 그래서 터무니없이 약해진 거다. 다행히 리버화이트께서는 이 힘을 유지하고 있지. 아마 조만간 각성하지 않을까 싶다.”
“확실히…… 문제네. 그러면 혹시 말이야. 기존의 늑대들도 힘을 되찾을 방법이 있어?”
“뭐……?”
슈트는 멍청하게 버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아마 힘들 거다. 리아주크께서 현신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저 짐승이 될 뿐이지.”
“아……”
“그래도 그 마음만큼은 고맙게 받으마.”
“그치만……”
여전히 미련을 갖는 버트의 옆으로 페이니가 솟아올랐다.
“우리 그릇께서 늑대들 자지에 푹 빠지셨나보네?”
페이니는 버트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귀를 씹으며 속삭였다. 버트는 길게 콧소리를 내며 몸을 틀다가 버둥거리며 저항했다.
“아녜요……! 그냥 슈트의 친구들을 돕고 싶어서……!”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맞지 않아.”
“그게 무슨 소리에요?”
페이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루하다가 솟아나 말했다.
「쓸데없는 말로 그릇을 현혹하지 마라.」
“불가능한 것도 아니잖아?”
“루하다.”
「……이 녀석이 하려는 말은 아마 권속으로 두려는 것일 겁니다.」
“권속……?”
「그릇께서 데리고 다니는 다크나이트와 같은 경우지요. 직접적인 연결을 함으로써 그릇이 품고 있는 씨앗의 힘을 수월하게 나누어주는 겁니다. 다만……」
“내가 좀…… 괴롭거나 하겠구나……?”
「그렇습니다. 거기다 이 초원의 늑대들을 전부 거두려면 필요 이상으로 씨앗이 깨어나야 하는데…… 그것을 노리는 게 분명합니다.」
버트는 눈을 깜빡이며 페이니를 돌아보았다.
“정말 그런 거예요……?”
“……아예 아니라고는 할 수 없네. 하지만 유일한 방법이기도 해. 더군다나 이 녀석들은 태초부터 리아주크의 힘을 간직하고 태어났으니 다크나이트들과 달리 힘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어. 오히려 한 번 힘을 나눠주면 스스로 키울 수 있을 거야.”
이번에는 루하다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다만…… 여전히 씨앗의 힘을 억지로 개방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실 거지요?」
“응. 모두가 행복해지는 거니까.”
「당신은?」
“……나?”
「그릇께서는…… 행복하게 됩니까?」
“……응.”
버트는 활짝 웃어보였다.
“루하다도, 페이니도, 슈트도…… 전부 행복해지니까…… 나도 행복해.”
버트는 그렇게 말하고 페이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잘못 되면 기사분들을 부탁해요.”
“걱정 말라구. 그 저주를 심은 게 누구라고 생각해?”
“……여전히 그건 용서하기 어렵지만…… 사랑 때문이니까…….”
“쉿.”
페이니는 몸을 바짝 붙여왔다. 입술이 닿을락말락한 거리에서 페이니는 눈웃음치며 버트를 바라보았다.
“입이 싸면…… 확 물어버릴 수가 있어?”
“……죄송해요.”
“사과할 것까지야…… 그럼 일단 어느 정도 개조를 해야 하니…… 루하다. 도와줘.”
「뭐? 내가 어째서……」
“너도 그릇이 괴로운 건 싫잖아. 그나마 나랑 비슷한 네가 도와야 빠르고, 안전하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어.”
「……일리 있군.」
“그리고 이래야 내가 허튼 짓을 안 하도록 감시할 수도 있지. 너 진짜, 성에서부터 느낀 건데 너무 머리를 안 쓰는 거 아냐?”
「먼저 들어가 있지.」
루하다가 도망치듯 사라지자 페이니가 슈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넌 그릇을 좀 도와줘.”
“뭐……?”
“알잖아. 씨앗이 감정에 반응한다는 거. 최대한 힘을 끌어내게 도우라 이거지.”
“……하아.”
영문 모를 대화가 오가고 페이니가 버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버트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바로 슈트가 작아지는 것이었다. 버트는 놀란 얼굴로 쳐다보다가…… 상상 이상의 현상에 경악했다.
“왜 그러지?”
슈트가 작아졌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풍성한 털가죽이 찰랑거리는 긴 백발로 변하고 생동감 넘치는 몸은 인간의 몸이 되었다. 슈트는…… 컸다. 키가 굉장히 크고 몸도 늘씬했다. 예전 번화가 거리에서 한 번 본 적 있는 모델과도 같았다. 거기에 사람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늑대의 귀가, 엉덩이에는 늑대의 꼬리가…… 나머지 몸 곳곳에서도 늑대의 흔적이 있었다.
“앗……!”
버트는 신기해서 이리저리 보다가 슈트의 손바닥에 박힌 육구를 보았다. 그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손바닥에 버트는 콧김을 뿜으며 열심히 주물렀다.
“이봐……”
“아……!”
버트가 놀라서 뒷걸음질 치자 슈트가 한 걸음만에 다가섰다. 엄청난 보폭 차이! 거기다 이국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이제까지 본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본래 모습으로 했다간 몸이 터져버릴 거야.”
많은 내용이 생략된 말이었지만 버트는 한 번에 알아들었다.
“그, 그렇긴 한데…… 그런데 갑자기……?!”
버트는 놀라서 눈을 한 곳에 두지 못했다. 슈트는 바로 앞에 서서 그녀의 팔을 붙잡고 내려다보았다.
“싫은가?”
“싫진…… 않은…… 아니, 좋아……”
슈트는 그 말에 한참 몸을 숙였다. 그리고 버트와 입을 맞추었다. 슈트와의 키스로 버트가 느낀 게 하나 있었다.
‘서툴러……?!’
그것도 그럴 것이 슈트는 지금까지 다른 암컷과 교미를 한 적이 없었다. 나이는 많았지만 경험이 없었으니, 키스조차 어색했다. 버트는 그런 슈트의 목을 한 손으로 감싸며 자기 턱을 들었다. 그제야 입이 완전히 포개질 수 있게 각이 잡혔다. 버트는 순간 까치발을 들어 빈틈없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혀를 뒤섞으며 슈트에게 몸을 붙였다.
쭈웁
“흡”
슈트는 버트의 공세에 뒤로 밀려났다. 그녀의 혀가, 체온이, 피부가, 향기가, 슈트를 강타했다.
단숨에 그의 다리 사이가 부풀어 올랐고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버트는 슈트를 깔고 앉는 와중에도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그야말로 슈트를 잡아먹을 듯이 입을 맞추다, 헐떡거리며 내려다보았다.
“하아…… 하아……”
자기보다 큰 남자가 깔려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미남! 그 순간 버트의 가슴 속에서 욕망이 들끓었다.
지배욕.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당하기만 하던 버트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덮치고 있었다. 물론 버트의 마기에 취해 유도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버트 자신이 적극적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버트의 가슴은 쉼 없이 뛰고 있었다.
새로운 자극에 대한 갈망. 그것이 버트의 뱃속에 있는 씨앗을 자극했고 요동치게 했다. 그리고 버트만이 아니라 슈트까지 취하게 만들었다. 본래 슈트였다면 영향을 받지 않았을 마기였지만 지금은 버트의 감정으로 폭주한 탓에 이전보다 짙어졌다. 때문에 슈트는 그녀와 몸을 섞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쪽
버트가 몸을 숙여 슈트의 목을 물었다. 그리고는 소리 나게 피부를 빨아들이다 천천히 내려갔다.
‘남자도 느끼려나……?’
버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넓은 가슴을 두 손으로 더듬었다. 그러더니 삐죽 솟아있는 유두를 꼬집었다.
‘딴딴해……’
자기도 이랬을까. 그랬다면…… 무엇을 원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버트가 슈트의 유두를 꼬집다말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그 오돌오돌한 것을 입에 담고 혀로 부드럽게 굴렸다. 슈트는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며 꼬리로 바닥을 탁탁 쳤다. 이미 다리 사이에선 음경이 말도 안 되게 부풀고 있었다.
버트는 침에 젖은 유두를 다시 손가락으로 굴려주며 슈트를 보며 웃어보였다.
“기분 좋아……?”
“……좋다.”
자기 아래에 깔려서 헐떡이는 슈트의 모습……! 버트는 히죽 웃으며 손을 뒤로 뻗었다. 그리고 손에 잡힌 음경의 크기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크다. 이건 단순히 크다는 말로 부족했다. 지금까지 받아들이기 벅찼던 브론트도 이렇지 않았다. 물론 그는 굵어서 애를 먹은 것이지만…… 슈트의 음경은 길었다. 거기다 살짝 휘어져서 흉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꼴깍.
버트는 침을 삼켰다. 이런 게 들어갈까. 만일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성욕과 호기심. 욕망과 자존심이 뒤엉켰다.
버트는 결국 마음이 가는대로 그걸 넣어보기로 했다. 슈트는 눕게 놔두고 음경 위로 천천히 올라섰다. 완전히 일어선 상태로 살짝 쭈그리기만 해도 닿을 정도의 길이라니……! 버트는 혹여 음경이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느리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음경은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귀두 어림까지는 들어가도 그 뒤는 잘 들어가지 않았다. 길이는 길어도 굵기 자체는 다른 기사들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끄응……”
그때 슈트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차 싶었던 버트가 귀두를 빼내고 내려다보았다.
“아팠어……?”
“……아니, 조금 갑갑해서 그러니 신경 쓰지 마라.”
버트는 잠깐 고민했다가 한 가지 방도를 떠올렸다.
“일어나볼래?”
버트는 그렇게 말하고 슈트가 보이게 엉덩이를 뒤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상체를 바닥에 납작대고 두 다리를 쭉 뻗으며 벌려보였다. 삼각대처럼 서있는 그녀의 하반신이 살랑거렸다. 버트는 그 자세를 하고서 슈트에게 말했다.
“슈트가 넣어줘……”
마치 암캐의 구애 활동마냥 버트는 자극적인 목소리로 슈트를 유혹했다. 슈트는 주저 없이 그녀의 하반신에 달려들었다.
쯔걱
처음 버트가 넣으려던 것과는 달리 슈트가 넣으니 미끄럽게 들어왔다. 단숨에 질내를 가르고 자궁 입구까지 때릴 정도의 길이! 문제는 그만큼 넣었는데도 아직 남아있단 것이다.
‘으으……!’
버트는 지금까지 닿지 못했던 곳까지 파고 드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슈트가 어느 정도 넣다가 막혀서 주춤거리는 동안 버트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다리가 풀리고 허리가 빠질 것만 같았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음……”
슈트는 본능대로 허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만족감은 크지 않았다. 그래서…… 슈트는 다른 곳을 노려보기로 했다.
쯔윽
슈트는 버트의 애액으로 흥건히 젖은 음경을 허리를 뒤로 빼서 뽑았다. 버트가 의아해하며 돌아본 그때…… 슈트의 음경은 다시 전진했다. 음부가 아닌 항문으로!
“흐앙?!”
이번이 몇 번째 하는 항문 성교일까. 처음 델폰 남작의 성 이후로 악몽의 성에서 브론트와 한 번…… 그 뒤로 간간이 기사들과 쓰리썸 이상을 할 때 빼고는 많이 하지 않았다. 역시 익숙해지지 않은 감각이었기에 앞으로 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슈트가 정신없이 박는 모습에 말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뒤쪽 구멍이라 해서 특별히 질이 떨어지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길쭉한 슈트의 음경을 삼키기에 적합했다.
“허억…… 헉……”
슈트의 꼬리가 맹렬하게 흔들렸다. 그는 짐승처럼…… 본연의 모습으로 버트와 교미를 했다. 버트 역시 앞뒤로 흔들릴 정도로 힘차게 박히며 헐떡였다. 지금까지 늑대들과 했던 것과는 달랐다.
항문에서부터 장 내부 곳곳을 귀두가 긁어댔다. 안 그래도 음경이 휘어있어서 그냥 스치는 것이 아니라 굵은 손가락으로 긁어주는 느낌이었다. 장벽에서 문질러지는 그 느낌은 굉장했다. 버트의 혼을 쏙 빼놓기 충분할 정도!
물론 그건 슈트도 마찬가지였다. 슈트는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다가 버트의 허리를 잡았다. 체급 차이 때문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움직이기 불편해서였다. 슈트는 그대로 버트를 번쩍 들었다. 버트는 두 발을 허우적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슈트는 버트의 오직 팔 힘으로 들어올리고…… 허리를 흔들어댔다.
“흐앙……?! 항……!?”
버트는 허공에 들린 채 섹스를 했다. 아니, 당하고 있었다. 섹스라기보다는 그저 욕구풀이를 위한 장난감 같은 취급이었다. 처음 덮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슈, 슈트읏……”
“싫은가……? 그만둘까……?”
슈트가 헐떡거리며 물었고 버트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럼…… 계속……”
슈트는 쉴 새 없이 버트의 항문을 찔러댔다. 처음으로 이종족에게 사정을 하고 나서도, 섹스 후의 여운을 느끼며 버트의 몸을 만지는 와중에도…… 슈트는 허리를 멈추지 않았다. 버트 역시 그와의 항문 성교에 빠져들었다. 강압적이지만 싫지 않았다.
터프하고…… 강한…… 자신이 한 마리의 암컷이라도 된 것만 같은 기분……!
“아……!”
버트는 그렇게 달이 뜰 때까지 슈트에게 엉덩이를 내주었다. 멈출 줄 모르는 그의 정력은 하루가 아니라, 이틀, 사흘…… 쉬지 않고, 먹지도 않으며 섹스에 몰입했다.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저거 봐. 그릇 배가 빵빵 부풀었어. 똥꼬도 헐겠는데.”
발아된 씨앗의 안정화 작업까지 끝낸 페이니와 루하다는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 루하다는 페이니의 말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하시니 됐다.」
“하여간…… 짐승 같다니까.”
그렇게…… 라피에 초원에서의 일상이 지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