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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아-25화 (25/104)

〈 25화 〉 25 ­ 다시 라피에 초원으로 上

* * *

이야기는 다시 버트에게로 돌아온다.

페이니가 깃들고 나서 버트는 멍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루하다는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

그는페이니가 눈앞에 있었다면 갈가리 찢어놓았을 것이다.

그 증거로 성 내부에서 무사한 게 세 기사와 버트밖에 없었다. 루하다는 그만큼 강렬한 파괴행위를 벌이고 있었다.

두 번 속이다니!

그것도 그렇지만 버트의 믿음을 배신했단 것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래서 애꿎은 지형지물을 박살내고 있었다.

「페슈트 이년, 내 너의 모든 존재를 부정할 것이다.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게 해주마!」

정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세 기사들은 버트에게서 피어오르는 자그마한 무언가에 집중했다.

"어?"

그리고 루하다는 쏜살같이 그 작은 뭉치를 낚아챘다. 그의 손에 잡힌 건 손바닥만한 크기의 페이니였다. 작아진 만큼 팔다리도 앙증맞게 변해서 상당히 귀여워졌건만. 루하다의 눈엔 영 거슬렸나보다. 그는 으르렁거리며 붙잡힌 페이니에게 말했다.

「남기고 싶은 말은?」

"어…… 살려줘?"

루하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힘을 주었다. 그러나 페이니는 터지지 않고 물렁하게 변하여 흘러내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루하다가 한 가지 가정을 떠올리고 소리쳤다.

「이년, 감히…… 그릇의 정신에 깃든 거냐!」

"아니, 잠깐 빌린 거지. 지금처럼 네가 날 죽여 버리면 곤란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페이니는 당당하게 손을 올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버트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버트는 흐른침을 슥슥 닦고 일어나며 주변을 살폈다. 페이니와 눈이 마주쳤다.

버트는 얼굴이 단숨에 새빨개져서 냉큼 세 기사에게 달려갔다. 그러더니 기사들의 나신을 보고 홱 돌아서 루하다에게 돌아왔다.

길 잃은 병아리 같은 모습! 페이니가 깔깔 웃었고 루하다의 손이 그녀를 짓뭉갰다.

"아이 참! 그만 좀 해! 어차피 버트에게 별 짓 안했어! 그냥 섹스만 주구장창……."

"으와아아악!"

버트가 두 팔을 흔들며 난리를 피웠다. 페이니는 깐족거리며 주변을 뛰어다녔다.

"버트는~ 몽마씨와~ 섹스했대요~ 얼레리 꼴레리~"

"그만해애~!"

버트가 울먹이며 번쩍 날아 페이니를 잡았다. 페이니는 그녀의 슬라이딩에 힘없이 붙들렸고 루하다는 뭔가를 눈치챘다.

「저 몽마는 그릇께서 죽일 수 있습니다! 그릇과 연결되어 있으니 그대로 힘주어 터뜨리면……!」

루하다는 버트가 페이니를 꼭 껴안고 불안해하는 얼굴을 보며 말을 멈추었다. 마치 야만인을 보는 듯한 눈빛에 루하다가 의아해하였다.

버트는 페이니를 안아들고 조심히 걸어와 말했다.

"저기…… 루하다…… 얘 데려가면……."

「안 됩니다.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년입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합니다!」

버트의 모든 걸 품어주던 루하다가 웬일로 반대를 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버트는 발끝을 비비며 시무룩해졌다. 마치 버려진 개를 주워와 부모님께 어리광부리는 꼬마 같은 태도!

정작 설득해야할 페이니가 허, 웃어버렸다.

"얘가 나쁜 짓 한 것도 아니고…… 봐주면 안 돼?"

「그릇을 속이고 기만한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나쁜 짓이 아니라니요! 그릇께선 너무 온화하십니다!」

"우……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응? 응?"

버트가 계속 저자세로 나오자 곤란한 건 루하다였다. 섬기는 입장에서 섬기는 대상이 고개를 숙이단 건 상당히 불편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부탁을 덥썩 들어주기엔 페이니가 너무 불안했다.

버트는 눈망울을 촉촉히 적시며 최대한 귀여운 얼굴로 루하다에게 들러붙었다. 이건 세영이 그녀에게 자주 쓰는 수법!

결국……

「대체 왜 데려가시려는 겁니까? 죽이지 않아도 놔두고 가도 되지 않습니까?」

"아, 그게……."

페이니와 엘도트를 번갈아보던 버트는 눈을 꾹 감으며 말했다.

"나와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흠.」

루하다의 태도에 그가 믿지 않는단 게 단번에 느껴졌다. 그래서 다른 변명거리를 생각해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루하다는 더 추궁하지 않고 허락하였다.

페이니는 그 작은 몸으로 버트의 머리에 올라서 깡총깡총 뛰었다. 버트도 헤헤 웃으며 좋아했다.

"그보다 저 남자들 옷은 입혀줘야 하지 않을까?"

페이니가 버트의 머리 위에 늘어지며 가리킨 곳은 알몸의 세 기사였다. 벗어둔 옷은 어디에 있나 싶어 주변을 보니 흔적도 없이 망가진 갑옷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시선을 따라가보니 흔적의 끝엔 루하다가 있었다. 루하다는 헛기침을 하며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버트는 입힐만한 옷이 없을까 해서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그들이 입을만한 갑옷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는 버트에게 페이니가 속삭였다.

"뭐, 나도 이래저래 모아온 게 있으니까 거기서 들고 오면 돼."

창고란 곳에는 상당한 재화가 있었다. 아마 이건 이 지역을 클리어하면 주는 보상이겠지?

버트는 전부 제치고 기사들이 입을만한 갑옷을 찾았다.

그렇게 선별된 건 이디아에겐 푸른 경갑옷, 브론트에겐 회색빛의 판금 갑옷, 마지막으로 엘도트에겐 새까만 중갑옷이었다.

각자 늑대, 곰, 호랑이가 새겨진 문양 덕분에 야수를 연상케 하였다.

그들에게 새로운 무기 역시 전해졌다.

이디아에겐 검은 동굴에서 얻었던 「투명한 화살」과 이곳 창고에서 가져온 「유령을 쫓는 자」라는 반투명한 활이 주어졌다. 브론트에겐 「질주를 막는 힘」이란 방패와 「충격검」이란 한손검. 마지막으로 엘도트에겐…… 「몽마사냥꾼」이 쥐어졌다.

왜 이런 게……? 버트가 바라보니 페이니는 자신을 노린 이모탈들을 죽이며 얻은 거라 말했다. 아이템을 뒤지던 버트의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밤 소리를 가둔 귀걸이」

"아!"

버트는 냉큼 그걸 꺼내들어 귀에 찼다. 동시에 그녀의 온몸에서 변화가 일었다.

「밤 기사의 갑옷(진화형)」

아직도……?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새로운 세트를 찾았다는 것에 기쁨이 느껴졌다. 페이니는 놀란 눈으로 「밤」 세트의 변화를 보면서 루하다를 보았다.

루하다는 고개를 저었고 페이니는 인상을 구기며 끄덕였다.

둘의 시선 교환도 모르고 아이템을 뒤지던 버트는 니스와 라이가 좋아할만한 것도 챙겼다. 그렇게 돌아갈 채비를 마친 버트는 윙던 숲으로 향하는 여정을 밟았다.

*

잠깐 떨어졌다고 그새 보고 싶었는지 리버가 버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한가득 품을 채우는 뽀송뽀송한 감촉! 버트가 행복해하며 녀석을 안아주다 포르르 날아오는 슈어드와 인사를 나누었다.

"넌……."

"음……."

슈어드와 페이니는 서로를 보며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지만 금세 표정을 풀었다.

"그릇. 널 찾으러 왔단 녀석이 있어서 말이야."

"날?"

버트가 리버를 꼭 끌어안으며 슈어드가 안내한 곳으로 향했다. 거기서 넝쿨에 묶여있는 한 여인의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니스?!"

"버트!"

니스가 눈물을 찔끔 뿌리며 발버둥쳤다.

"빨리 풀어 달라 해줘……! 애들이 바른대로 말하라면서 얼마나 괴롭힌 줄 알아?!"

"어, 어……?"

버트가 당황해서 리버를 내려놓고 넝쿨로 달려들었다. 니스가 축 늘어져서 버트에게 안겼고 버트는 슈어드를 바라보며 상황을 물었다.

"수상해보여서 아이들에게 맡겨놨습니다."

"뭘 했길래……."

"간지럼이요."

푸학! 버트가 웃음을 터뜨리자 니스가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니가 안 당해봐서 그래! 꼼짝 못한 채 여기저기 들러붙어서 괴롭히는데 그게 얼마나 괴로운 줄 알아?!'

"그에흐…… 미아내애……."

쭉쭉 늘어나는 볼을 따라 그녀의 말도 늘어졌다. 니스는 한참을 꼬집고 나서야 화가 풀렸는지 아랫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눈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거 찾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건넨 건 반지였다.

「밤 하늘이 깃든 반지」

수도 크람스로 가기 전 발르틴에서 봤던 세 장신구 중 하나였다.

"고마워……."

"흠흠."

쑥쓰러워 하는 니스를 뒤로 하고 버트는 반지를 착용했다. 그러자 아까처럼 밤 기사의 갑옷이 반응하더니 스르르 변화하였다.

「밤 기사의 강림」

이게 완성형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실망하는 버트의 눈에 띈 건 이 아이템을 설명하는 문구였다.

태초에 리아주크가 내려앉아 이 세상을 만들었으니……

버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이걸 니스에게 말하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적인 의견을 내보였다.

꺅꺅거리며 손을 잡고 좋아라하는 두 여인을 향해 엘도트가 다가와 말했다.

"식량은 전부 조달받았습니다. 이제 언제 출발해도 문제없습니다."

버트가 알았다하니 그가 물러났다. 니스는 음흉하게 웃으며 버트를 툭 치며 말했다.

"오올…… 위엄있는 거 봐."

"아이, 뭐래…… 자, 가자. 너도 같이 갈 거지?"

"응. 어차피 약속 때까지 한참 남았고…… 안녕 리버야~ 누나 처음 보지?"

버트의 옆에 있던 리버가 헥헥거리며 니스에게 안겼다. 리버를 안아든 니스와 함께 버트는 일행에게 돌아왔다. 여기까지 왔을 때와는 달리 풀과 나무로 엮인 마차로 편히, 세 기사와 만나게 된 도시 윌카로 향했다.

*

여정 속에서 페이니와 루하다는 그녀의 정신과 그림자 속에 숨어있었다.

[저 애한테도 신성이 옮은 거야?]

'신성……?'

[씨앗의 기운을 말하는 겁니다. 쉽게 풀어 말해라 페이니.]

[예~ 예~ 아무튼, 뭔가 쟤도 다른 이모탈이랑은 다른 거 같아서 말이지.]

'으음……나와 접촉한 뒤로 저렇게 됐다고 했어…….'

[그렇단 말이지?]

이때는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하였다면 훗날 벌어질 일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무튼 싱글벙글. 마차 안의 모두를 바라보며 웃는 버트를 보며 페이니가 말했다.

[아, 그리고 '다크나이트'의 힘이 안정될 때까지 기사들이랑 주기적으로 섹스 하는 거 잊지 마.]

'어, 엉?!'

페이니의갑작스런 말에 화들짝 놀란 버트에게 엘도트가 괜찮냐 물었다. 버트는 그와 눈이 마주치고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다행히니스는 밖을 보고 있었기에 몰랐지만 괜스레 머쓱해진 버트가 목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말해줘? 그러니까 저들의 자지를 네 보지에……]

'아니이! 힘이 안정될 방법이 꼭 그것 뿐이야?!'

[훔훔…… 사실 오래 붙어있어도 돼. 꼭 껴안고 있거나 팔짱을 끼고 있어야 해. 대신섹스보다 더 오래 있어야하지. 셋과 동시에 하루 종일 붙어있어야 하는데 그러다 일상 생활도 못해. 그에 비해 몇 번 몸 섞으면 금방 끝나고, 기분 좋고…… 이쪽이 더 좋지 않아?]

'으으…….'

버트는 두 팔을 문지르며 질색했다. 홀로 표정이 변하고 꿈틀대는 그녀를 보며 브론트와 이디아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오직 리버만이 그들의 발치에서 변함없이 고롱고롱 잠을 자고 있었다.

*

야영의 시간. 그들은 순식간에 나무를 구하고 불을 지피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두 여인은 뻘쭘하게 앉아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신속한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굉장하네……."

"그러게……."

"엉? 그러게라니? 이제까지 같이 다닌 거 아녔어?"

"어어……나도이렇게 빠른 건 처음 봐서……."

둘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자리가 마련됐다. 니스와 버트는 나란히 잠자리에 누웠다.

기사들은 서로 불침번을 어떻게 서야할 지 논의했다. 이디아가 먼저 모닥불 앞에 앉고 나머지 둘은 따로 마련된 자리에 누웠다.

버트와 니스는 달이 높이 차오를 때까지도 계속 얘기를 나누었다. 브론트가 불침번을 교대해주었을 때야 이디아와 함께 잠에 들 수 있었다.

모두가 잠에 빠졌을 때. 버트가 멍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어진 얼굴…… 열기로 가득 찬 눈…… 그녀의 시선이 옆에 누워있는 니스와 모닥불을 보며 앉아있는 브론트를 번갈아보았다.

꼴깍…….

뚫어질 듯이 보는 시선을 느낀 건지 브론트가 눈을 돌렸다. 동시에 둘은 눈이 맞았다. 브론트가 화들짝 놀라 다시 앞을 봤다. 버트는 이리저리 살펴보다 슬금슬금…… 그에게 기어갔다.

"저기……."

"네…… 네…… 주군……."

"……버트라고 불러주세요."

"아, 알겠…… 습, 습니다……버트……."

버트는 브론트의 옆에 슬쩍 앉았다. 돌연 페이니가 꿈에서 덮치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페이니는 성인도구를 매달고 마치 남자처럼 버트의 아랫도리에 쑤셔 박으며 말했다.

"다크나이트는 리아주크 님의 마기를 바탕으로 만든 거야. 리아주크 님의 씨앗을 품고 있는 너라면 그들과 정신적으로 연결이 가능할 거야."

"흐응…… 으응……! 여, 연결……?"

엎드린 채 페이니에게 박히던 버트가 할딱이며 되물었다. 페이니는 그녀의 등에 몸을 뉘이며 젖가슴을 주무르며 속삭였다.

"그러니까 버트가 무슨 생각이나 감정을 느끼면 그것이 그들에게 전달되지. 그러니 너가 위험하다면 곧장 네가 있는 곳으로 달려올 것이고…… 너가 슬퍼하면 위로해줄 거야. 참 편리하지?"

"으흐…… 하앙……!"

대답 대신 신음이 들렸다. 버트의 귓가에 페이니의 혀가 낼름낼름 춤추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가 발정이 나면 그들도 똑똑히 알아챌 거야. 그러니 언제든 섹스를 요구할 수 있어."

"세, 섹…… 섹스를……?"

"그럼. 너가 하고 싶어서 잔뜩 달았는데, 그들이 모를까? 아마 단번에 알아챌 걸?"

"하앙……!"

페이니는 히죽 웃더니 그녀를 빙글 돌려 마주보고선 확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번쩍 들어 올리고 자신에게 매달린 버트의 엉덩이를 잡고 양옆으로 벌렸다.

"자, 그건 그거고…… 이제 너의 음몽과 마주해야겠네……? 너의 꿈이 뭘까……?

"자, 잠깐…… 그…… 그만……!"

"어머, 벨루그하랑 섹스하고 싶었어? 그것도 촉수처럼 엄청 많네……."

"꺄악……!"

순간 페이니에게 농락당한 게 떠오른 버트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브론트도 똑같이 몸을 떨었다.

"저기……."

"예……."

버트는 끌어안은 다리 위로 손을 얹고 꼼지락댔다. 슬쩍 옆을 보니 모닥불을 노려보는 브론트의 단단한 얼굴이 그녀만큼이나 붉게 물들어있었다.

순간 풉 웃음이 나왔다. 브론트는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저…… 하고 싶어요……."

브론트는 굳이 뭘 말입니까라고 묻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선배와 후배가 자고 있는 쪽을 살피고 여기저기 둘러볼 뿐이었다.

"……불침번인지라."

"여기서…… 하면 안 될까요……?"

상당한 유혹이었다. 예전의 브론트였다면 당장 이디아를 깨웠을 것이다. 허나 마기에 침식당하고 쾌락의 맛을 알아버린 지금은 거부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연결된 정신을 통해 그녀의 흥분이 전해졌다. 동시에 간절함마저 느껴졌으니 브론트는 숨을 흡 들이키고 침착하게 말하였다.

"소리가 날 겁니다."

"괜…… 찮아요……."

"참으실 수 있겠습니까?"

"네에……."

"그렇다면……."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은 가볍기도 가볍고 벗는 것도 쉬웠다.

주섬주섬. 갑옷의 하반신을 분리하던 브론트는 버트가 슬쩍 몸을 붙이는 걸 보았다. 마지막 부분을 분리하였을 땐 손을 쑥 집어넣기까지 했다.

대담했다. 지금까지 봐왔던 버트와는 달랐다. 그녀 스스로도 이렇게 바뀐 자신의 모습에 놀랄 정도였다.

꽉 움켜쥔 음경을 위아래로 문질러대더니 곧장 그의 다리를 타고 넘어갔다. 입으로 덥썩 무는 모습은 정말 자연스러웠다.

"우움……."

쪽쪽……

그녀가 생각한 건 앞에다 넣어보자였다. 솔직히 욕심이 나기도 했고…….브론트만 뒷구멍을 쓰게 했단 사실이 불편했다.

입으로 열심히 빨고 손으로 어루만져주며 준비를 마친 버트가 냉큼 그의 위로 올라탔다.

앉아있는 그의 위로 버트가 하반신을 드러내고 올라탔다. 눈앞에서 확 밝아진 듯한 착각이 들만큼 야하고 빛나는 몸이었다. 그 모습은 브론트의 눈에 꽂혀버렸다.

‘아름답다.’

단순히 마기에 취해서가 아니었다. 실제로 버트의 육신은 아주 조금씩, 주변 스스로는 물론 그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변하고 있었다.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해지고 팔다리와 허리는 가늘어지며 피부는 매끈하고 살은 부드러워졌다. 그야말로 섹스에 안성맞춤의 몸으로 변하고 있었다.

버트는 그런 몸을 갖고 스스로 음부를 벌리며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꾹 눌러오는 음경의 느낌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고 앞뒤로 허리를 흔들어 비볐다.

슬쩍슬쩍 힘을 주니 그 두터운 귀두가 서서히 밀려들어왔다. 버트는 지체 없이 체중을 실어 주저앉았다.

"읍……!"

아프다……!

아무리 단련되고 튼튼한 버트의 몸이라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브론트는 삽입하자마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버트의 어깨를 잡았다. 그나마 버트의 몸이 변했기에 삽입을 시도라도 했지 그게 아니었다면 그냥 막혔으리라.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우우……."

버트가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두 발은 땅에 디딘 채 천천히 움직였다.

브론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빡빡한 질 구멍을 힘겹게 오가는 자신의 음경을 내려다보았다. 쭈욱 빨렸다가 쏘옥 뽑혀져 나오는 굵직한 음경이 오늘따라 더욱 딴딴해졌다. 버트는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하반신이 뻐근함을 느꼈다.

아픔이 좀 가시니 힘겨움이 느껴졌다. 그때 브론트가 그녀를 주저앉혀 끝까지 삽입시킨 뒤 한 팔로 어깨를 감쌌다. 다른 손으론 엉덩이를 부여잡고 하반신을 튕겨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몰아붙이자 버트는 신음을 참기가 힘들단 생각에 숨을 멈췄다. 얼굴은 새빨개져 터지려 했다. 질을 격동시키는 음경은 귀두가 자궁의 입을 쉴 새 없이 때렸다. 당연히 자궁 안까지 그 울림이 전해져 씨앗이 바들바들 떨었다.

버트는 몸이 제멋대로 움직임을 느끼며 더 이상 신음을 못 참겠단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때맞춰 브론트가 그녀의 얼굴을 움직여 입을 맞췄다. 다행히 비명은 막혔다. 대신 살 부딪치는 소리와 찔걱대는 소리만이 모닥불을 흔들었다.

얼마 안 가 이루어진 질내사정…… 버트는 브론트의 몸 위로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그리고 안쪽에서 여전히 딴딴한 음경의 느낌. 그에게서 전해지는 감정. 모든 걸 알아챈 버트가 힐긋 그를 보며 지친 얼굴로 물었다.

"아직이에요……?"

"예…… 부끄럽게도……."

"그럼…… 만족하실 때까지……."

그들의 정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결국 다음 불침번인 엘도트가 깨기 직전에서야 끝을 낼 수 있었다.

*

이들의 은밀한 정사는 윌카에 도착하고 정비를 마친 뒤 발르틴으로 향할 때까지도 계속 되었다. 버트의 이러한 만행은 그들끼리도 알고 있었지만 함구하였다. 니스는 당연히 예전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다.

나무를 하러간 엘도트를 따라가서 후배위 섹스를 했다. 자고 있는 이디아에게 다가가 서로 마주 누운 상태로 섹스를 하기도 했다. 물고기를 잡으러 간 브론트와도 한 번. 어쩔 땐 브론트와 이디아 둘과 함께 하기도 했다. 갈수록 난잡해져가는 그녀의 성생활에 니스가 하다 못해 마차 안에서한 마디 하였다.

"치녀."

버트는 이제까지 들키지 않은 줄 알고 있다가 니스의 꾸지람에 어떤 변명도 못하였다. 니스는 팔짱을 끼고 근엄하게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분들도 생각해줘야지. 네가 하고 싶다고 무작정하면 안 되는 거야. 그들도 꼭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잖아?"

"난 아닌……."

중얼거리던 이디아는 니스가 노려보자 뒤를 돌아보았다.

"미아안……."

"으휴…… 어떻게 넌 밖에선 청순한데 여기만 들어오면 미쳐 날뛰니?"

니스가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버트의 위로 올라탔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한쪽 무릎을 집어넣어 누르면서 한 손으론 벽을 치고 다른 손으론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다. 그리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말하였다.

"아니면 내가 진하게 한 번 놀아줄까?"

"헉…… 컥…… 컥……“

“뭐야……?!”

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코피가 터진 이디아와 코를 막을 것을 찾는 브론트……. 잔뜩 굳어져서 할 말을 잃은 엘도트.

마지막으로…….

[어마마…… 얘 진심이네? 진심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트를 따먹을 셈이야! 와…… 대체 얼마나 변태인 거니 넌!]

[……시끄럽다.]

버트는 아무 말도 못했고 니스는 깔깔 웃으며 제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그렇게 떠드는 동안 발르틴에 도착했다.

버트는 반가운 얼굴을 만나기 위해 잽싸게 루하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안녕하십니까, 리아주크 님을 품은 성녀시여…… 저는 부족하나마 블랙스타에서 추기경의 직위를 맡고 있는 카반이라 합니다."

중년 사내가 깊이 고개를 숙이며 버트를 맞이했다. 버트는 어리둥절해 하며 마주 인사했다.

"저…… 퍼드롬 할아버지는요……?"

"교주님께선 본단으로 돌아갔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용서해주십시오."

"아, 아녜요…… 그러면 혹시 그때 주셨던 갑옷과 투구, 비슷한 게 있으면 찾아 달라 전해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부디 리아주크의 축복이 함께 하길……."

"아, 아멘……?"

발르틴을 떠나고 버트가 최종 목적지로 삼은 곳은 라피에 초원이었다. 버트는 바닥에서 계속 늘어져있던 리버를 안아들곤 얼굴을 비볐다.

그녀는 이제 리버를 떠나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깐만이라도 같이 있단 느낌을 가지려 했다.

"그렇게 좋아했잖아."

니스의 물음에 버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얘가 차기 족장이라잖아. 어리광 부리면 안 되지……."

니스가 기특하다며 버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버트는 민망해하며 그녀의 손을 치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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