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아-24화 (24/104)

〈 24화 〉 24 ­ 에니스트 외전 下

* * *

"에후……."

니스는 백작이 준 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 비키니 상의에 끈팬티가 고스란히 보이는 짧은 주름치마. 앞에는 에이프런(앞치마)을 둘렀다. 굽이 제법 있는 검은 하이힐 위론 살결을 야시시하게 내비치는 망사 스타킹이…… 그걸 흘러내리지 않게 잡아주는 가터벨트가 보였다.

게다가 옷을 입는 게 전부가 아니라 청소까지 하고 있었다.

왜 홧김에 그런 소리를 해서……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의 장식물들을 먼지떨이로 털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복장을 하게 된 이유는 가이람 백작의 후원 때문이었다. 그는 그저 버트를 풀어주는데 그치지 않았다. 왕국의 보물을 찾아준 것과 왕의 약속을 꼬집고 들어 귀족 작위를 얻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그림자를 쫓는 별에 인적, 물적지원을해주기까지 했다.

판테스 왕국 암시장의 일부를 환원해주겠단 전언.

당연히 조직에서도 미심쩍어 했다. 그러다 물 밀 듯 밀려오는 지원에 그를 반쯤 믿게 되었다.

덕분에 그림자를 쫓는 별에서는 니스에게 왕국 부지부장이란 자리만이 아닌 차기 지부장 자리까지 넘겨주었다.

버트가 귀족이 되었단 소식과 함께 접한 낭보. 이제껏 플레이어들이 해내지 못한 걸 자신과 친구가 해냈단 기쁨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니스는 홧김에 그가 부탁해준 옷을 입어주겠다 말했다.

"미쳤지, 내가."

먼지를 털어내던 니스는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를 지나치던 하녀가 니스를 보더니 인사를 꾸벅하고 지나갔다. 니스 역시 고개를 꾸벅 숙였

"꺄아아아악?!"

가이람 백작은 집무실로 달려온 니스를 환하게 맞아주었다.

“오, 무슨 ㅇ”

짝!

그러다 다짜고짜 뺨을 날리자 억울한 얼굴로 니스를 바라보았다.

"옷이 마음에 안들었나? 내가 보기엔 충분히 예쁜 것을……"

"그, 그…… 그게 아니라! 왜 사람이 돌아다녀!? 방금 누가 지나갔단 말이야!!"

"그야 이 저택에서 일할 사람이 없는 게 이상하지 않나……?"

"분명 지금까지 사람이 없었잖아! 근데 방금 하녀 하나랑 눈이 맞았다고!"

"아, 내보낸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네. 그대 덕분에 피가 끓지 않게 되었고 하니……."

그 말을 하며 가이람 백작이 흐뭇하게 웃으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굉장히 음란한 차림이야. 그대 때문에 내가 갈수록 호색한이 되어가는 거 같군."

"……안 입을 거야."

"어째서 말인가?"

"이런 꼴사나운 차림으로 돌아다니라고?! 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내 성벽이라고 둘러대게."

"그러면……!"

당신 명성이 깎이잖아. 그렇게 말하려다 니스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됐어. 이 짓도 안 할 거야."

"목적을 이뤘다고 그만두려는 건가?"

"당신 정말 저질이라고!"

"그대도 즐기지 않았나."

"누가 즐겨……!"

"그럼 며칠만 더 있어주게. 그간 얼마나 적적했는 줄 아나?"

가이람 백작의 부탁에 니스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냥 억제할 수 있으면 충분히 해낼 사람이 이렇게 부탁을 하다니. 정말 허를 찌르는 전략이라 여기며 니스는 먼지떨이를 꽉 쥐며 돌아섰다.

"하녀들이 보면 다 당신 때문이라고 둘러댈 거야……."

"알겠네. 내 따로 일러도 두겠네."

*

그녀가 청소를 끝내고 돌아오자 가이람 백작이 아주 깨끗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깨달은 니스가 다시 나가려 했다.

그때 가이람 백작이 그녀의 앞에 나타나 길을 막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건…….

"내가 개로 보여!?"

"기왕이면 네 발로 기어서 멍멍 짖어주지 않겠나."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이 아저씨가!"

백작은 멱살을 잡아채는 니스를 막지 않았다.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니스는 이 색골을 어떻게 혼내줄까 하다 말았다. 고작 옷만 입어주기엔 그가 해준 것이 크지 않은가.

짤각­

그가 들고 있는 목줄을 낚아채며 스스로 목에 걸었다.

가이람 백작이 잘 어울린단 말을 하자 그녀는 주저 없이 그의턱을 때려주었다. 그러다 개목걸이를 매만지고 늘어진 목줄을 내려다보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남자들은 왜 이런 걸 좋아할까…… 볼 안을 우물거리며 고민하던 니스는 엉덩이 쪽에서 느껴지는 손길에 홱 뒤를 돌아보았다.

"부탁하네."

"으휴……알았어. 대신 오늘까지 만이야. 또 부탁했다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달아나버릴 거라고."

"명심하지. 그럼 어서 내가 말한 대로 해주겠나?"

니스는 주춤거리다 자세를 낮추었다.

무릎을 꿇고……두 손으로 땅을 짚고…… 이렇게 네 발로 엎드려 있으니 시선도 같이 낮아졌다.

새삼 주변 모든 게 크다고 느껴졌다.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백작까지 더 커보였다. 니스는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머…… 멍멍……."

그렇게 말하고 5초 뒤. 니스는 얼굴이 새빨개졌고 부끄러움에 바닥을 굴렀다.

니스는 이런 플레이를 즐기는 여자들에 대한 경외심, 대체 이런 걸 왜 남자들이 좋아하는지 의문, 마지막으로 사지가 오그라드는 창피함이 뒤엉키고 있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걸 하게 되었을까…… 그런 니스와는 달리 가이람 백작은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가이람 백작의 기세가 달라졌다.

바닥을 구르던 니스가 일어나려다 말았다. 갑자기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위압감에 놀라버렸다.

가이람 백작은 이제까지 보였던 모습과는 다른 얼굴로 니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까지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이건 근원이 다른…….

두려움.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변화. 어째서 그가 이렇게까지 살벌하게 구느냐보다 마냥 그에게 압도되어 몸을 떨었다.

침을 꼴깍 삼키며 주저앉은 니스는 자신이 어떤 상태에 빠졌는지 알았다. 예전 버트가 라피에 초원에서 화이트슈트에게 포효 한 번으로 제압당한 것처럼. 또 버트가 왕궁에서 무심코 벌였던 기세 방출과 비슷한……

압도였다.

판타지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히든 시스템. 압도적으로 강한 자 앞에서 약자는 기가 죽어 전투력이 떨어지거나 상실한다. 그걸 막상 겪어보니 꽁꽁 묶여 송곳의 맛을 봤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공포가 몸을 잠식하였다.

"허억……!"

니스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갑자기 씻은 듯이 그에게서 뿜어지던 압박이 사라졌다. 가이람 백작은 잠깐 말이 없다가 주저앉은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허허, 미안하네. 이래야 몰입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다 니스의 눈꼬리에 달려있는 물방울을 보고 그녀를 안아주었다.

병 주고 약 주고란 말이 딱 맞아들었다. 백작으로선 그녀의 마음이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기에 그저 당황할 뿐이었다.

"진정 됐나?"

"후우…… 후우…… 으응……."

"미안하네. 이번 놀이는다음에 하도록 하지."

가이람 백작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니스는 진정하기 위해 가슴을 부여잡으며 판타지아의 접속을 끊었다.

그리고 심장을 졸이며 시간 배율을 최소로 돌린 뒤에 침대에 드러누웠다.

*

세영은 아직까지 몸을 뒤덮는 두려움 때문에 이불 속에서 몸을 떨었다. 팔뚝엔 오돌토돌하게 닭살이 돋아났고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다.

눈엔 핏발이 섰고 이가 쉴 새 없이 부딪쳤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잠깐 고생했다.

분명 버트 역시 자신처럼 압도당한 경험이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쉴 새 없이 세영을 괴롭혔다. 버트가 어떻게이런 상태로 게임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역시 곁에 있는 그 그림자(루하다) 덕분인가……? 두 발을 꼼지락거리며 고민에 잠겨있던 세영은 갑자기 하반신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왜 이러지……? 고민을 해보니 항상 이 맘 때쯤 가이람 백작과 잠자리를 해왔단 걸 깨달았다.

이젠 습관이 된 건가.

아니면……그저발정인건가.

고민……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봐야겠다. 세영은 이불로 몸을 말고 눈을 감았다.

*

가이람 백작은 처음 니스와 만났을 때처럼 어두운 밤에 달빛을 등지고 있었다. 그는 촛불에 의지하며 서류 작업을 했다. 그는 조금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자신의 거처라 해서 절대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예민한 신경과 쓸데없이 강한 체력이그를 잠못이루게 만들었다.

전쟁 후유증.

언제라도 암살당할지 모르는 지휘관의 위치다. 야간 기습은 숱하게 겪었고 아군이 적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많았다. 누구라도 쉽게 믿을 수 없는 곳이니 항상 긴장해야했다. 이건 곧 스트레스와 함께 습관으로 굳어졌고 주기적 발작으로 번졌다.

그 어떤 질병도, 암슴도 아닌 한낱 후유증이다. 그것이 판테스 왕국 최강의 기사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저주도 튕겨내고 그 어떤 아픔도 견뎌내는 정신이 유독 이것만큼은 제어할 수가 없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발작. 기어코 니스에게도 흩뿌렸고 가이람 백작은 평소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받아 예민해졌다.

"들어오게. 언제부터 눈치를 본 건가."

그 말에 문이 열렸다. 니스는 쭈뼛거리며 걸어왔다.

그녀는 일상에서 입던 가벼운 복장으로 가이람 백작을 찾았는데……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얼굴엔 열이 올라있었고 눈은 촉촉히 젖어있었다. 열병을 앓게 된 소녀 같았다. 그녀는 조심히 가이람 백작에게 다가갔다.

"도와줘……."

"흠……."

그는 깃털펜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그리곤 니스에게 다가가 한 팔로 그녀를 안아주었다.

"미안하네.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건가?"

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이람 백작을 툭 밀치며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음……?"

"미치도록 기분 좋게 해줘……."

가이람 백작은 손에 들린 걸 내려다보았다.

"이게 게임이란 걸 잊을 정도로…… 기분 좋게 해줘. 가이람 백작."

"게임?"

이모탈들이 그렇게 말한다는 걸 기억해낸 가이람 백작은 한 걸음 물러나 몸을 숙였다.

짤각. 니스의 목에 개줄이 채워졌다.

백작은 목줄을 잡아 들어보였다. 니스는 숨을 가쁘게 쉬며 가이람 백작을 마주보았다.

그녀의 열기가 닿는 것 같다고 느낀 가이람 백작은 줄을 놓지 않고 그녀에게 명령했다.

"옷은 벗어두게."

니스는 별말 않고 순순히 옷을 벗었다.

미끈한 피부가 돋보이는 젖가슴과 근육이 옅게 자리 잡은 배. 부드럽게 들어간 허리를 보여주었다. 그 다음으로 통통히 살이 오른 허벅지와 엉덩이. 마지막으로 살이 조금도 늘어지지 않은 종아리가 보였다.

신발까지 벗으려던 니스는 가이람 백작이 벗지 말란 한 마디에 그만두었다.

신발 하나만 신고 니스는 나체가 되었다. 그녀는 주변에 벗어던진 자신의 허물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다 점점 허벅지로 번져나가는 애액의 자국을 보며 고개를 들 수조차 없게 돼버렸다.

입을 꾹 다물며 바들거리는 니스를 향해 가이람 백작이 한 마디 하였다.

"예쁘구려."

이제까지 느껴온 고동과는 전혀 다른 충격이 니스의 심장을 때렸다. 이제까지 그에게서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뜬금없이……왜 하필 지금……!

니스는 푹 숙인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백작은 그대로 니스를 안아주었다.

외설 속에서 이런 따뜻함이라니…… 니스는 심장이 이대로 뛰다가 터져버리진 않을까 생각하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자, 그럼 이제 가도 되겠나?"

"으응……."

문을 열고 니스가 먼저 앞서 복도로 나섰다. 몸에 쫙 붙는 야행복과는 달리 맨몸으로 나설 때 닿는 공기의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오슬오슬한 느낌은 당연. 왠지 모르게 이 공기들이…… 시선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을 거란 생각. 그것이 아무도 없는 휑한 복도에서 느껴졌다.

그냥 상상일 뿐이잖아.

니스는 자신이 버트의 모습을 봤던 것처럼 누군가 보고 있지 않을까…… 아니 누군가 이 모습을 영상으로 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자잘하게 돋았던 닭살이 내려앉고 아랫배에서부터 흥분이 기어 올라왔다.

그래서 확 쪼그려 앉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괜찮나?"

가이람 백작이 다가와 묻자 니스는 그렇다고 말하며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그가 지그시 어깨를 짓누르는 게 아닌가. 니스는 어리둥절해하며 올려다보았다. 가이람 백작의 웃는 얼굴을 마주한 순간 뭔가를 알아챘다.

니스가 깜짝 놀라 그의 다리를 때렸다. 백작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싫어! 싫어!"

"이제 와서 뭘 그러나. 한 번 해보게."

니스가 아랫입술을 이로 물며 그를 노려보다 돌아서서 저번처럼 네 발로 엎드렸다.

그리곤…….

"멍……멍멍……."

개처럼 짖으며 천천히 기어갔다.

멍멍…… 공허히 울리는 그녀의 개 짖는 소리는 다시 돌아와 그녀의 귀를 찔렀다. 마치 번개처럼 그녀의 귀에서부터 발끝까지 내리쳤다.

누가 본다는 상상과 자신이 이런 짓을 한단 자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무엇보다 뒤에서 자신이 이러고 있는 걸 가이람 백작이 보고 있단 사실! 그게 그녀를 더욱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엎드린 자세다. 아마 뒤에서 본다면 달덩이같은 엉덩이와 그 사이로 물이 흐르는 음부가 보이지 않을까……? 이런 걸로 흥분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채지 않았을까……?

흥분된다.

니스의 유두가 불에 달군 것처럼 딱딱하게 변했다. 음부는 열기를 감당치 못해 애액이 말라붙을 정도였다.

가이람 백작은 한 팔을 뒷짐 지고 따라가며 말했다.

"기분 좋은가?"

"으…… 으응……."

"어허."

"아, 머……멍멍……."

가이람 백작이 방긋 웃으며 한 가지 제의를 했다.

"밖으로 나가보겠나?"

*

처음 니스는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호기심이 들었다.

밖에 나가면 더 기분 좋아지지 않을까? 현실에선 도저히 할 수 없고 생각지도 못한 일을 여기서 할 수 있었다. 기회가 있는데 굳이 내뺄 이유가 있을까?

외모를 바꿔서 현실의 자신을 알아볼 리 없었다. 만일 누군가 눈치 챈다면한동안 게임을 접고 잠적을 타면 될 일이었다.

그 생각이 가이람 백작을 볼 수 없단 생각으로 이어졌다.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자 가슴이 쿵 뛰는 걸 외면했다. 그래서 무심코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춥진 않나?"

저택 밖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백작이 물었다. 니스는 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다 말하고 목줄에 걸린 채 천천히 앞서 걸었다.

끼익­

이때만큼은 경비가 없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쇠창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니스는 우선 주변부터 살폈다. 막상 하려니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가이람 백작은 허허 웃으며 그녀의 볼기를 짝 때렸다.

"꺗?!"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화끈함에 니스가 사납게 노려보았다. 가이람 백작은 다른 곳을 보며 딴청을 피웠다. 니스는 여전히 얼얼한 아랫도리 때문에 입이 댓발 튀어나왔다.

니스는 마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깥 공기의 쾌적함은 그녀의 노출 증세를 증폭시켰다.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의 해방감은 어마어마했다. 이 생각은 점점 누군가 봐주지 않을까란 기대로 번졌다.

'미쳤나봐!'

스스로 생각하고도 창피했지만…… 버트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갈수록 자신에게 설득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애달은 몸을 놔둘 순 없었다. 모두가 사라진 한적한 밤거리에 도착하자마자 니스는 가이람 백작을 향해 몸을 돌렸다.

가이람 백작은 그녀가 뭘 원할지 알아채고 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그리곤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의 요청을 접수한 니스는 주먹을 꼭 쥐고 노려보았다.

하지만…… 기분 좋을 거 같은데…….

그가 속삭인 대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대로 다리를 양옆으로 벌렸다.

애액이 이리저리 번져나간 음부가 빠끔 벌려졌다. 당연히 이건 적나라하게 가이람 백작에게 보였다. 니스는 가이람 백작이 마주보며 쪼그려 앉자마자 눈을 꾹 감아버렸다. 그러더니 손을 슬금슬금 기어내려 음부를 매만졌다.

우선 음순을 문질렀다. 그 다음은 음핵이 덮여있는 위쪽 부분을 꾹 눌렀다.

남자 앞에서. 그것도 길거리에서 시작된 수음은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전보다 훨씬 빠르게 오르가즘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때 가이람 백작이 말했다.

"지금 뭘 하고 있소?"

"하아…… 으으……."

왠지 그의 의도가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거 같았다. 니스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고 음부를 짓누르며 말했다.

"밖에서…… 사람들 있었던 곳에서 지금…… 알몸으로…… 자위하고 있어……."

"더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소?"

"흐…… 으으…… 막 다리 벌리고…… 귀족 앞에서…… 손으로 보…… 보지 쑤시고…… 있어어……."

그녀의 앓는 투정에 가이람 백작이 흐뭇하게 웃었다. 니스는 수음을 하면서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만일 새로운 죽음이 있다면 그건 창피해 죽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기분이 좋았다.

‘기분 좋아…… 은송이는 매일 이런 걸 하는 거야……?’

스스로도 알고 있는 떳떳치 못한 행동. 그걸 입 밖으로 꺼내다니……니스의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찔걱거리며 손가락이 움직이는 음부에서 애액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음액은 그녀의 밑에 고였다.

가이람 백작은 더 참지 못하고 일어나 그녀의 가슴을 조물거리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빵빵하게 부푼 바지. 니스는음경을 꺼내드는 걸 보았다.

“아­”

열심히 음부를 매만지던 니스가 얼빠진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그 자세에서두 손으로 조신하게 땅을 짚었다. 그렇게 오직 입과 고갯짓으로만 그의 음경을 애무했다.

마치 앉아있는 개처럼, 백작의 음경을 빨던 니스가 엉금엉금 돌아섰다. 더 참지 못하고 그를 향해 엉덩이를 치켜세웠다.

흔들흔들…… 까치발을 들면서까지 삽입을 갈망하는 하반신의 요망한 유혹. 발정난 암캐의 구애. 가이람 백작은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푹 들어간 음경은 니스의 몸이 앞뒤로흔들릴 정도로 몰아붙였다. 니스는 두 손과 발로 땅을 디디며 학학……개처럼 혀를 빼물고 좋다고 소리를 냈다.

"이런 날 받아줄만한 건 그대밖에 없구려."

그렇게 말하던 가이람 백작은 니스의 허리를 감싸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니스는 두 손을 벽을 짚었다. 백작은 그녀의 몸 위로 상체를 숙였다.

허리만 튕겨 하반신을 움직인 가이람 백작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와 결혼해주겠소?"

이런 곳에서?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곳에서 청혼이라니?

니스는 기분 좋은 걸 떠나서 정신이 복잡했다. 게임에서 NPC와 결혼을 해……?

그보다 게임 속 연애라니! 오타쿠들이나 하는 걸 자기가 할 순 없는 일 아닌가?

푹푹……밤 속을 조용히 울리는 야릇한 섹스의 울림 속에서 니스는 말없이 절정에 다다랐다.

*

밤거리 섹스 때 받은 청혼 때문에 세영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게임 밖에서도 그에 대해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점점 갈수록 증세가 심해졌다. 청혼 이후론 그에 대한 것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대답해야 할까. 그 생각을 하며 수업이 끝나고 곧장 판타지아에 접속하였다.

그런데 보이는 건 아무도 없었다. 보통 집무실에서 살다시피 한 그가 이번엔 자리에 없었다.

어딜 갔지? 여기저기 돌아보던 니스의 눈에 창밖에 홀연히 서있는 가이람 백작을 볼 수 있었다.

왜 저기에 서있는 걸까?

니스는 내려가려다 갑자기 팔을 붙드는 누군가 때문에 멈춰야했다. 자신을 심문했던 사내 중 조끼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발작이시네."

"뭐……?"

"지금 눈앞의 누구라도 싸우려 들 거야."

"못 알아보는 거야?"

"아니."

조끼사내는 씁쓸한 얼굴로 밖을 바라보았다.

"알아보지만 그걸 알고서도 싸우는 거야. 피가 끓고 승부욕이 터진 시점에서 누구든 상관없게 되는 거지."

"누구든…… 이라면……."

"일반인도 가차 없이 죽일 각오가 되었단 거야."

니스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밖을 보았다.

"청혼해놓고……."

"뭐?"

팍­

니스가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자 조끼사내가 놀라 그녀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니스는 아랑곳 않고 가볍게 정원으로 탁 내려앉았다. '주머니'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내들어 거꾸로 쥐었다. 왼손바닥으론 손잡이 밑을 감싸 잡았다.

두 손으로 단단히 단검을 쥔 니스가 숨을 골랐다. 그러더니 이제까지 보인 적 없던 살벌한 눈으로 가이람 백작을 노려보았다.

심호흡 한 번.

"레이드 시작."

그녀의 말과 동시에 단검에서 '검은 칼날'이 솟아났다. 주변에서 검은 것들이 뭉클거리며 일어났다.

「그림자」 세트의 또 다른 효과 '검은 자객'. 착용자의 전투력 3분의 1을 갖는 분신. 그 수는 착용자의 스탯에 비례하여 늘어난다.

마지막으로 주변 일정 공간을 지배하는 '잠식'. 상대의 방어력을 대부분 무시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효과! 그래서 공격을 위주로 하는 암살자로선 최고였다.

니스는 분신들과 함께 몸을 날렸다. 백작이 그녀를 향해 검을 휙 한 번 휘두르며 마주 달렸다.

가로로 휘둘러진 맹렬한 검격. 바닥을 쓸며 피한 니스의 양옆에서 분신들이 치고나가 가이람 백작을 공격했다.

그리고 분신들이 검을 내지름과 동시에 두 동강이 나는 걸 보았다. 그 사이 니스는 땅을 박차고 그의 빈틈을 파고들려 했다.

가이람 백작이 이 정도로 당할 위인은 아니었다.

아주 쉽게. 검날이 닿지 않게 몸을 틀면서 저번처럼 잡아채려 시도했다.

물론 니스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손목을 탁 틀어 날을 눕혔다. 그리고 잡으려는 손을 향해 베어갔다.

"오호."

그녀의 변수에 가이람 백작이 옆으로 물러났다. 뒤를 치고 오는 분신 하나를 뒷발길질로 없애더니 니스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크읏!"

분명 검은 닿지 않았지만 뺨을 스치는 느낌이 있었다. 문득 여기서 죽으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정신 차려 등신아!’

니스는 입술을 깨물어 정신을 차렸다.

스악­

눈앞에 찔러져 오는 검을 보며 바닥을 굴렀다. 하마터면 눈과 함께 머리가 관통될 뻔했다.

"후우…… 후우……."

니스는 미친 듯이 솟는 땀을 닦아내며 분신들과 싸우는 가이람 백작을 노려보았다.

그는 일 대 일이든, 다 대 일이든 개의치 않고 싸웠고 전부 이겨냈다.

3분의 1의 전투력이라지만 웬만한 병사보다 강했다. 그런데도 가이람 백작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두셋의 분신을 쓰러뜨렸다.

"청혼해놓고 이제 와서……."

니스는 이를 까득 물었다. 그리곤 짓쳐들어오는 가이람 백작과 검을 마주하였다.

깡!

분명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검인데도 백작의 검은 갈라지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그의 검은 '검은 칼날'이 솟지 않은 부분과 부딪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알아챘다 해도 의미가 없었다. 손바닥이 터질 듯이 전달되는 충격! 뒤로 밀리는 힘싸움 때문에 대처할 틈이 없었다.

한 번의 힘겨루기를 한 가이람 백작이 니스의 검을 밀쳤다. 휘청대는 그녀를 향해 백작이 검을 내질렀다.

당장 꿰뚫릴 위기! 다행히 옆에서 새로 생긴 분신이 백작의 옆을 치고 들어온 덕분에 모면할 수 있었다.

퍽!

검을 거두고 팔로 분신을 때려눕힌 가이람 백작이 다시 달려들려다 멈췄다.

시야를 벗어났다. 백작은 니스를 찾았다.

어디로? 그의 눈이 주변을 훑었다.

빡!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가 솟구쳐 올라온 니스가 턱을 때렸다. 백작의 시야가 흔들렸다.

그 틈에 분신 셋이 파고들어 그의 옆구리와 팔뚝, 허벅지를 찔렀다. 가이람 백작은 그 통증 때문에 두꺼운 팔을 사납게 휘두르며 분신들과 니스를 전부 쳐냈다.

"끄윽?!"

그의 힘은 강했다. 마구잡이로 휘둘러진 팔에 얻어맞자 충격이 뱃속을 울렸다.

헛구역질이 일었고 몇 미터는 굴렀다. 니스는 풀바닥을 뜯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당장 끊어질 뻔한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그새가이람 백작이 회복했는지 성큼 걸어왔다. 니스는 눈물을 뚝뚝 떨구며 이를 빠득 갈았다. 그리곤 분통이 터져 소리쳤다.

"결혼하자며…… 그런데 왜 이 지랄인데!"

그 말에 가이람 백작이 멈칫거렸다.

니스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이러려고 결혼하자 한 거냐, 씨발새꺄!"

퍽!

그 어떤 공격도 허용치 않던 가이람 백작이 분신 셋에게 등을 내주었다. 그리고 백작은 끄륵…… 끓는 소리를 냈다.

"미안…… 하오……."

니스는 숨을 헐떡거렸다. 이제 뱃속이 진정됨을 느끼고 일어나며 그를 째려보았다.

"미리 말해둬야 했는데…… 허허…… 허허……."

"어후……."

마치 끝을 고하는 듯한 그의 말에 니스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그의 발치에 무언가를 떨궜다.

"갈게……."

"잘……가게……."

"그리고 다음에 왔을 땐 제정신 좀 차리고."

펑!

보라색 폭발이 가이람 백작을 휩쓸었다. 니스는 돌아보지 않고 저택을 벗어났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

허물 백작. 가이람 백작이 죽었다.

그 소문이 크포티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가 죽은 이유가끔찍한 병을 앓고 저택에 숨어살아서 그렇다는 말이 돌았다. 그 소문은 판테스 왕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던 중 누군가 수도 크람스에서 그를 보았단 말을 했다. 그러나 이 신빙성 없는 소문은 금세 사라졌다. 얼마 안가 그를 발르틴에서 봤다는 말까지 돌았다.

대체 이건 어찌된 일일까. 정보를 확인하는 니스가 구겨진 얼굴로 서신을 내려다보았다.

"아, 진짜…… 대체 왜 그딴 짓을 해가지고 날 귀찮게 해……!"

니스가 짜증을 내며 서신을 내팽개쳤다.

"얽매여 있는 그대보단 내가 떠나는 게 낫지 않소?"

"그럼 돈은 나만 벌어오라고? 이 무능력한 가장아!"

니스의 불호령 섞인 돌려차기에 서신을 건넨 사내가 옆구리를 얻어맞았다.

"끄윽…… 벌써부터 신혼을 생각하는 것이오? 이거 원…… 너무 성급하지 않소?"

"미, 미친……! 가문도 없는 놈팽이한텐 관심 없어!'

그녀의 말에 사내가 히죽 웃으며 그녀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목걸이.

중앙에 푸른 구슬이 빛나고 있는 줄 목걸이가 그의 손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청혼하겠소. 나와 결혼해주겠소?"

"어……?"

니스는 당황했다. 그리고 새빨개진 얼굴로 목걸이를 낚아채며 말했다.

"새, 생각해볼게……."

"고맙소."

"생각만 해본다니까! 아직 허락한 거 아니읍!"

사내는 거침없이 니스와 입을 맞췄다. 니스도 잠깐 반항하나 싶더니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깊게 키스를 나눴다. 얼마 안 가 그들이 있던 자리에선 야릇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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