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22 에니스트 외전 上
* * *
지금부터 은송…… 실버트리의 얘기를 잠시 접어두고 그녀의 친구인 세영, 에니스트의 얘기가 시작된다.
에니스트……이하, 니스는 버트와 접촉한 이후 그녀와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물론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버트에게서 받은 「그림자」 세트. 이걸 통해 이모탈 중에서 최초로 어쌔신의 마스터가 되었다.
그녀의 놀랄만한 성취에 ‘그림자를 쫓는 별’에선 그녀에게 몇 가지 직위를 내렸다. 우선 판테스 왕국에 설치된 분점 중 열 여섯 곳을 직할로 내렸고 왕국 부지부장의 위치를 주었다. 동시에 임무 하나를 지령하였다.
가이람 백작 암살.
‘흠.’
대외적으로 알려진 백작의 위세는 그렇게 대단치 않았다. 옛 전쟁에서 소드마스터란 이름으로 모든 나라를 상대로 공포를 떨게 한 것 정도. 그래봐야 지금은 그저 뒷방 늙은이 신세였다. 표현 그대로 백작은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 후견인을 배출하며 대부분의 생활을 저택에서 보냈다. 그를 일컬어 사람들은 ‘허물 백작’ 혹은 ‘저택의 귀신’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건 떠들기 좋아하는 이들의 헛된 정보일 뿐. 판테스 왕국의 주요 인사나 그림자를 쫓는 별처럼 정보를 다루는 집단에서는 그가 숨은 거인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니스는 이번 임무를 망설였다. 그가 강하단 걸 얼추 알고 있기도 했고 이제까지 사냥만 다니느라 실전 감각(암살업)이 떨어져서 그렇기도 했다.
「그림자」 세트 덕분에 더 은밀하고 치명적인 공격이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아이템의 효능만 믿을 순 없었다.
이런 신중함이 그녀를 이모탈 중 최초로 마스터란 이름을 달 수 있게 해주었다.
“까짓 거 해보지 뭐.”
붙들리면 대부분 감옥에 갇힌다. 그럴 경우 탈출을 하면 될 일이다. 설사 탈출에 실패한다 해도 그녀가 가진 스킬 중 {통각 차단}, {무거운 입}, {둔감한 피부} 등 고문을 견디게 할 것들이 많았다. 사망 시에는 그림자를 쫓는 별에서 뒤처리를 해주니 밑져야 본전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림자를 쫓는 별에서 각인시킨 금제. 이건 집단에 대한 모든 비밀 발설을 막아주었다. 덕분에 정보를 파는 배신행위를 할 수 없었다.
패널티를 받을 래야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물론 이걸 믿고서 안이하게암살을 벌였다가실패한다면 명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가이람 백작이었다면 내부에선 쉬쉬할 것이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니스는 고민 끝에 이 일을 수락하였다.
‘여차하면 버트한테 도와달라 해도 되려나.’
백작이 다스리는 도시 크포티아로 향했다.
*
도시에 도착한 직후. 니스는 몸에 착 달라붙는 야행복과 눈만 뚫린 두건으로 갈아입었다. 눈 주변엔 검은 잉크까지 칠했다. 이렇게 하니 눈을 가늘게 뜨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변장을 마친 니스는 곧장 성으로 향하며 저택 구조를 끊임없이 되새겼다.
탓
가이람 백작의 성 오산.
경계는매우 하찮았다. 어두운밤이건만 돌아다니는 경비병은커녕 주변을 밝히는 불조차 없었다.허물 백작이란 이름에 걸맞게 형편없었다.
사람이 살고 있긴 한 걸까……?
니스는 풍선처럼 크기만한 저택의 벽을 오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창문 곳곳에 은은한 빛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걸 보니 누군가 있긴 한 모양인데…….
설마 자신이 잘못 찾은 걸까?
실없는 생각이라 여기며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의 벽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섰다. 그리곤 검을 하나 꺼내들어 지붕에 둥글게 구멍을 냈다. 크기를 가늠해본 니스는 고갤 끄덕이더니 껑충 뛰어올라 구멍속으로 쏙 빠졌다.
착
지붕 안쪽에 들어선 니스는 바닥에 귀를 대고 눈을 감았다.
발소리…… 그건 아주 작았고 한 쌍 뿐이었다. 그 한 명을 확인한니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다니며 저택 내부 구조를 떠올렸다.
‘어떻게 저택 안도 경비가 허술하지……?’
돌아다니는 사람은 몇 명 뿐.그 어떤 마법도, 함정도 없었다. 아무리 그가 알려지지 않은 실세라지만 이건 위장치곤너무 심했다.
이런 연극은 정말로 백작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었다.
바로 지금 니스가 잠입하는 것처럼 말이다!
니스는 곧장 백작의 침소 쪽으로 움직였다. 왠지 암살을 막기 위한 가짜 침소들도 두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장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보통 암살을 하기 위해선 경계를 뚫고 들어가는 것이 우선된다. 하지만 암살 직후의 탈출도 매우 중요했다. 그러니 실내 구조 파악 및 병력 수준을 알아두는 건 필수였다.
그런데 니스는 모든 과정을 무시했다. 조금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이런 작업 과정이 오래 걸릴 것을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새벽에 일을 시행하게끔 계획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시간을 아껴야겠다 생각하며 침소 위쪽으로 이동했다.
‘…… 숨소리가 없다.’
니스가 인상을 구기곤 천장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귀를 갖다 댔다.
왜……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는 거지? 그러다 처음 발소리를 들었던 곳을 떠올렸다. 그곳은 분명 집무실 근처…….
맙소사.
니스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대들보를 탔다. 그리고 집무실 위쪽이라 생각되는 천장에서 멈추었다. 귀를 대보니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사각사각…… 펜 소리?
쩝쩝…… 뭔가를 먹는다……
숨소리는…… 아주 작았고…….
“내려오게.”
“흡…….”
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니스는 헛바람을 삼켰다.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게임을 하면서 이렇게 놀란 적은 손에 꼽았다. 버트가 알고 보니 매우 음란했단 것과 자신의 몸 역시 그녀처럼 변했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니스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땀으로 범벅됐다.
단순히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그저 암살을 하려다 들킨 것인데……!
도망칠까?
몸을 일으켰던 니스는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에 멈칫거렸다.
“내려오라 말했네.”
그냥 도망쳤으면 됐을 걸…… 니스는 훗날 그렇게 생각했다.
만일 그랬다면 천장 째 갈려나갔을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니스는 정직한 자신을 탓하며 천장을 떼어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탓
니스가 처음 본 건 창가를 등지고 앉아있는 사내였다. 달빛을 조명마냥 등지고 있는 그 모습이란!
말끔히 넘긴 적갈빛 머리칼. 딴딴해보이는 이마. 짙은 눈썹. 선이 뚜렷한 이목구비. 굵은 선의 얼굴…….
그야말로 장수라고 할 만한 모습이었다.
넓은 어깨와 커다란 손에 비해 그가 하고 있는 건 작은 종이에 깃펜으로 하는 서류 업무. 정말 괴리감이 들었다.
옆에 비스듬히 세워진 장식용 검만이 그가 한 때는 기사였단 유일한 증거였다.
“감이 좋네. 그래도 아직 검을 놓진 않았나봐?”
니스가 비꼬며 말했다. 가이람 백작이 푸후……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릴 내며 펜을 놓았다.
“내가 예순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진 팔팔하다네.”
그 말에 니스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 정도 나이면 허리가 구부러져야 마땅하건만. 지금 가이람 백작은 너무 건강해보였다.
주름도 보기 좋게 패인 것 말곤 늙었단 인상이 전혀 없었다. 복장도 단정했고 피부색도 조금도 죽지 않았다. 그저 나이가 조금 든 신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허나 방심하지 않았다. 어쩌면 암살에 혼란을 주기 위해 세워둔 가짜일 수도 있었다. 니스는 단검을 뽑아 거꾸로 쥐었다. 단검에서 검은 연기가 뭉클 피어오르더니 검날에 붙었다. 그러자 날의 길이를족히 세 뼘은 늘려주었다.
「그림자」 세트의 효과 중 하나인 ‘검은 칼날’. 공격 거리는 늘어났으나 무게의 변화는 없고 되려 절삭력이 매우 높아진다.
게다가 검을 휘두르다 베기 어려운 장애물에 걸린다면 갈대처럼 흐느적하게 변한다.
반 인공지능의 검날!
이건 전면전에서의 살상력을 극도로 높여주었다.
하지만 니스는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천장에서 자신을 감지한 것도 그렇고. 지금 눈앞에 암살자를 마주하고 있는 데도 매우 느긋했다.
“검을 잡은 지 오래 되었는데…….”
그렇게 말한 가이람 백작이 옆으로 손을 뻗었다. 손바닥이 향한 몇 미터 거리에 장식용 검이 있었다.
니스가 놀라서 한 걸음 물러났다.
판타지 세계에서 소위 소드마스터란 이들이 했던 일! 검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것인가?
…… …… …….
터벅 터벅
“검이 날아오는 게 아니었……!”
가이람 백작은 직접 걸어가 검을 집었다.
니스는 그걸 보고 무심코 소리쳤다. 뭔가 기대감이 배신당했다 해야 하나…….
니스는 그가 가진 소드마스터란 이름에 무의식적으로 경계했단 걸 자각하고 두 걸음 앞서나왔다.
“내가 마법사도 아니고 어찌 검이 날아오겠나. 무엇보다 이건 장식용 검일세. 자네, 실전 경험은 있는 건가?”
가이람 백작의 말에 민망해진 니스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지금 나를 뭘로 보고……! 이래봬도 어쌔신 중에서 몇 안 되는 마스터란 말이야!”
“오호……”
입을 동그랗게 말며 가이람 백작이 탄성을 냈다. 진짜 감탄인지 아니면 비아냥인지.
니스는 검을 집어 들고 걸어오는 가이람 백작을 노려보았다.
“나 역시 기사로서 마스터란 칭호를 얻어냈지. 그리고 과분하게도 소드마스터란 별칭도 받았고 말이야. 헌데, 그거 아나? 왜 내가 소드마스터라 불리는지?”
그 부분에 대해선 자세히 조사한 적이 없었다.
으레 검 하나로 전장을 지배하였다, 한 번의 검놀림으로 기사 수십을 베었다, 이럴 거란 생각에 넘어갔다. 그리고 이런 방심이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변수를 만들었다. 물론 그녀는 아직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가이람 백작이 검을 들고 몸을 날렸다.
스학
엄청난 속도!
니스 역시 그 못지않게 날렵하게 단검을 휘둘렀다. 그 한 번의 공수교환으로 승부가 갈렸다.
가이람 백작은 중간쯤에서검을 투창하듯 니스에게 던졌다.
‘빨라?!’
던져진 검과 비슷한 속도. 백작이 니스에게 달려들었다. 검에 집중하고 있던 니스는 날아오는 검을 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돌진까지 막을 수 없었다.
턱
그녀의 왼쪽 어깨에 가이람 백작의 주먹이 닿았다. 말 그대로 그저 닿기만 하였다. 그 어떤 충격도 없이……
‘이 새끼가!’
니스는 자신이 농락당했음을 여기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가이람 백작의 대처가 더 빨랐다.
탓 탁
그의 두 손은 각자의 역할을 해냈다. 니스의 팔을 붙들고 검날을 잡았다.
단숨에 그녀의 공격이 무력화 됐다.
“검을 이용한 전투, 혹은 검에 대해 완전히 깨우친 자.”
백작은 검날을 집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단검은 과자가 바스러지듯 쉽게 깨져버렸다. 당연히 ‘검은 칼날’ 역시 박살나버렸다.
니스가 경악하고 있을 때 가이람 백작이 빠르게 손을 놀렸다.
그녀의 목젖, 명치, 옆구리 등을 한 번씩 건드린 백작은 밝게 웃어보였다.
“자, 방금 자넨 세 번 죽었네. 그러니 세 가지 질문을 하지. 누가 날 죽이라 사주했으며, 왜 노렸고, 어디에서 보낸 건가?”
실책이다. 기사란 자가 검술보다 체술에 뛰어나다니! 그 생각을 한 니스는 눈을 감았고…….
“죽여.”
“그러지.”
니스는 마지막으로 가이람 백작의 빠른 손놀림을 보았다. 너무 빨라 마치 한 번에 대여섯 번은 때리는 것처럼 보이는 주먹을…….
*
촤악
“끙…….”
전신을 흠뻑 끼얹은 차가움이 그녀를 일깨웠다. 니스는 정신이 들자마자 눈을 뜨기도 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점검하였다.
앉아있다. 손목은 팔걸이에묶여있으며 입엔 뭔가가 물려있다. 눈에서 이질감이 없는 걸 보니 안대는 없고. 발목은 의자 다리에 개별로 묶은 게 아니었다. 교차시켜 하나로 그것도 의자와는 따로 묶어두었다.
몸이 으슬으슬 하지 않고 덮는 느낌이 익숙한 걸 보니 옷을 벗기지도 않은 모양이다.
얕보는 건가. 니스는 그 생각을 하며 눈을 떴다. 눈앞엔 하얀두건을 덮은 사내와 상의에 조끼만 입은 사내(편의상 두건사내, 조끼사내로 서술), 총 둘이 서있었다. 두건사내가 니스의 눈앞에 손을 흔들어 보이더니 뺨을 두어 번 툭툭 때렸다.
“깨어났군. 백작 님께 말씀드려.”
누가 있긴 있었구나. 그 생각을 하던 니스는 그가 재갈을 풀어주는 걸 보고 자신을 심문할 것이라 예상했다.
아마 의례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니스가 거절하면 고문만 질리도록 할 것이다. 그러다 그녀가 지칠 때쯤에 한 번씩 물을 것이다. 니스는 눈을 지그시 뜨며 말을 기다렸다.
“누가 보냈…….”
퉤
두건사내는 뺨에 묻은 침을 닦아 털어냈다. 그러더니 무심하게 그녀의 뺨을 툭툭 두드렸다.
“질문이라도 다 들어주면 안 될까?”
“죽여.”
“후우…… 정말, 이런 귀찮은 건 나만 시킨다니까.”
이때 조끼사내가 돌아왔다. 두건사내는 조끼사내가 끌고 온 흉악한 쇠붙이가 가득 담긴 카트로 향했다. 송곳 하나를 들어 보이며 횃불 빛에 비춰보는 그를 향해 니스가 피식 웃었다.
기선제압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끈다.
도구를 점검하는 것도 그걸 위함이다. 스스로가 만든 작은 공포를 서서히 키워나가게끔 유도한다.
고문의 시작은 정신을 지배하는 것. 하지만 니스처럼 이미 모든 걸 파악하고, 스킬로 강화된 사람에겐 먹히지 않는 짓거리였다. 그래서 속으로 비웃고 있을 때 두건사내가 니스의 팔뚝을 잡고 송곳을 갖다 댔다.
“확인해보니 이모탈 중 마스터가 된 녀석이 맞다더라고.”
“어쌔신 마스터? 나 원, 그럼 고문이 무의미할 거 아냐?”
그렇게 얘기하며 두건사내가 얇은 송곳을 찔러 넣었다.
“흐악……!”
“응?”
“어?”
되려 두건사내가 놀라 송곳을 뽑았다. 니스는 손가락을 제멋대로 움직이며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떨었다. 두 사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특히 고문을 맡은 두건사내는 당황하였다.
방금 그 송곳은 고문용이 아니라 상대가 어느 정도까지 고통을 참을지 측정키 위한 것이다. 애피타이저에 들기는커녕 메뉴판에나 속한 행사였다.
그래서 그냥 찔러나보고 말잔 생각으로 한 건데…… 그녀의 반응은 절대 방심시키기 위한 게 아니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바들거리는 모습. 분명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야, 가서 말씀드려.”
“뭐라고?”
“내가 일일이 말해줘야겠냐?”
“아씨…….”
조끼사내가 투덜거리며 가는 동안 니스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판타지아는 쇼크사를 막기 위해 일정 고통은 차감된다. 물론 추가 조작으로 그걸 더 무디게 할 수 있었다.
더불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자동으로 로그아웃되기도 했다. 옛날 버트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가진 스킬 중 대부분이 고문에 내성을 갖거나 고통을 격감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 고문은 간질이는 느낌도 들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아픈 건데……?!’
그런데 방금 그 한 방이 너무 아팠다. 진짜 살에 송곳을 찌른 것처럼 미친 격통이 치고 올라왔다. 피가 송골 맺히는 상처를 보니 다시 아픔이 재현되는 거 같아 니스는 눈을 꾹 감았다.
아파…… 아파…… 대체 왜……?
그 순간, 버트를 만졌던 때를 떠올렸다.
이건 설마……? 버그 때문에……?
니스가 다급하게 로그아웃을 시도하려 했지만 전투 중엔 나갈 수 없단 메시지와 함께 창이 꺼져버렸다. 니스는 속으로 듀크 사를 욕하며 발버둥을 쳤고 이 모습은 고스란히 두건사내에게 보였다.
“흠.”
“말씀드리고 왔어.”
“뭐래?”
“그러니까 한 번…….”
수근대는 그들의 말소리 끝에 두건사내의 시작해볼까란 말이 들렸다. 니스가 놀라 고개를 퍼뜩 들었다. 좁혀진 동공으로 사내들과 카트 위의 고문도구들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 상태로 고문을 당하면 분명 쇼크사할 것이다. 니스는 새파랗게 질려서 부디 그가 다시 물어주길 바랐다.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고 그러면 고문을 멈추겠다고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날카로운 단검을 집어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듣자하니 이모탈은 두려움이 없는데, 그 중에서도 악독하기로 소문난 어쌔신의 마스터라니…… 이거,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는데?”
그의 말에 니스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자신에게 벌어질 끔찍한 상황들을 떠올리고 조금씩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단단히 결박된 몸은 그저 꿈틀거림으로 그쳐버렸다.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 이를 딱딱 부딪치며 서서히 다가오는 단검만을 바라보았다.
저거에 찔리면 얼마나 아플까……? 아마 푹 쑤시고 빙빙 돌리겠지……? 그럼 내 팔은 어떻게 되는 거지? 버틸 수 있는 건가? 아니, 버티게 된다면 그 다음은?
‘어째서 자동 로그아웃이 되지 않는 거야!’
니스가 달달 떨면서 단검만을 보느라 몰랐지만 두 사내는 그녀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마치 고문은커녕 한 대도 맞아본 적 없는 듯한 소녀의 반응……. 무엇보다 이모탈임에도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다. 이 건에 대해 보고한 둘은 백작의 재밌는 명령을 듣고 우선 그녀를 놀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톡, 검 끝으로 살을 찔렀다.
이 효과는 엄청났다.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니스가 눈물을 한 움큼 쏟으며 파들파들 떨었다. 그 섬세하게 느껴지는 날카로움과 살을 비집고 들어올 것 같은 차가움!
니스의 공포를 극한으로 증폭시켰다. 두건사내가 슬쩍 단검을 떼고 힘 있게 팔을 살짝 스치게끔 팔걸이를 팍 찍었다.
“워!”
니스는 거의 정신이 나간 얼굴로 소변을 지렸다.
이 일이 시사하는 건 많았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조끼사내는 그녀의 뒤로 갔다. 두건사내는 양동이의 물을 뿌려 새어나온 소변을 씻어내곤단검으로 니스의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모든 걸 불어. 그럼 풀어줄게. 어때, 좋은 조건이잖아?”
“나는…………에서 왔…….”
니스는 고민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를 털어내려 했다. 그런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마치 누가 입을 막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가 정보를 생각하고 말하려하면 목소리가 막혔다.
뒤늦게 이 조직에서 가한 금제를 떠올렸다. 암살자가 아무리 굳건해도 심문의 종류는 다양했고 모두 대비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모든 단원에게특정 정보를 떠올리고 말을 하려하면 목소리를 가두는 금제를 가하였다. 이 사실을 떠올린 니스는 두건사내의 어두운 표정을 보며 말했다.
“그, 그러니까 내가 파견된 곳…………인데…….”
“뭐?”
“그러니까……의 의뢰로……!”
마치 말장난이나 다름없는 상황. 두건사내가 이를 뿌득 갈며 분노를 내비쳤다. 조끼사내는 니스의 뒤에서 웃음을 참았고…… 니스는 새하얗게 질려 고개를 맹렬히 저었다.
“아, 아냐 이건……! 이건 금제 때문에……!”
“금제? 거 참, 마법사 집단이 우리 백작님을 노린단 소린 못 들어봤거든? 그들도 딱히 백작님을 건드리려 하진 않고…… 그렇게 나오겠다면 어쩔 수 없지…… 말이 나올 때까지 푹푹 쑤셔줘야지.”
“아냐……! 정말 아니란 말이야……! 내 말 믿어줘……! 이건 금제 때문에 그런”
니스의 절규와 함께 뒤에 있던 조끼 사내가 니스의 가슴어림을 집어 단검을 갖다 댔다. 그 상태로 쭉 잡아당겨 잘라내자 야행복 일부가 뜯겨나갔다. 그 안에 있던 탱글하니 부푼 젖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밀폐된 옷 구조 때문에 내부는 열기가 감돌았다. 그 덕에 그녀의 유방은 먹음직스럽게 번들거렸다.
이어서 조끼사내가 반대쪽 가슴도 똑같이 드러나게 했다.
꽤나 눈에 보기 좋은 차림. 그는 뒤에서 끌어안아 몸을 밀착하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봉긋한 가슴을 어루만졌다.
“자, 그럼 어디부터 잘라내볼까?”
“역시 여기가 좋겠지? 잘라내면 비명이 장난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효과는 좋잖아?”
둘의 대화는 반은 꾸민 것이었지만 니스에겐 너무 생생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손이 날카롭게 변해서 가슴을 뜯어낼 것만 같았다.
니스는 꼼짝 못하고 어깨를 굳히며 덜덜 떨었다.
두건 사내는 단검을 눕혀 날 옆쪽으로 유두를 탁 건드렸다.
“흐읏……!”
“이걸로 여기 부분만 똑 따면 어떻게 될지 알아?”
그렇게 얘기하며 슥슥 단검의 날 옆으로 유두를 긁었다. 그 차가운 감촉과 외부의 자극으로 연홍색 유두가 서서히 융기했다. 빳빳해진 유두는 자극에 예민해졌다.
혼란스러운 니스의 정신과는 달리 몸은 서서히 뜨거워졌다.
‘무서워.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공포로 다져진 그녀의 몸은 사소한 건드림에도 쉽게 반응하였다. 특히 가슴 밑부분을 간질이다 모아 올리듯이 부드럽게 짓누르는 손길에 니스는 상체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뭐,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좋아. 대신 우린 널 갖고 놀 거니까.”
그렇게 말한 두건 사내가 발목의 포박을 풀었다. 그리곤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아직까지 공황상태인 니스는 그가 하의를 가슴 쪽처럼 일부만 잘라내는 걸 보고 뒤늦게 눈치 챘다.
이들이 원하는 건 몸이다. 아픔이 없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한편 이 호색한들에게 본때를 보여야겠다고 생각했
“흐앙……?!”
생각만 하고 끝나버렸다. 채 빠져나오지 못한 소변으로 따끈하게 젖은 음부를, 두건사내는 망설임 없이 활짝 벌리며 안쪽까지 핥아주었다.
지린내가 날 텐데. 꽃처럼 피어난 선홍색 음순을 핥아댔다. 한 손으론 붉게 달은 음핵을 살살 굴려주었다.
조끼사내는 유방만을 조물거리다, 유륜을 꼬집고 유두를 손가락으로 눌러 비비며 애무해주었다. 이 둘의 입과 손으로 니스는 모든 두려움이 쾌락으로 바뀌어가는 걸 느꼈다.
‘이게 뭐야…… 몸이…… 간질거려……’
경직되었던 몸이 따뜻하게 풀렸다. 그대로 말랑말랑해지다 못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니스는 발을 들고 두건사내의 어깨에 다리를 걸쳤다.
이대로 목을 조이고…… 뒤통수로 박치기를 하여 뒤쪽의 사내를 제압 한다…… 그 생각을 하며 슬쩍 사슴벌레처럼 두 다리를 좁혀가던 니스가 갑자기 머리를 뒤로 젖혔다.
공격을 위해서? 아니다. 그녀의 머리는 조끼사내에 어깨에 닿기만 하였고, 두 다리는 앞으로 쭉 뻗어졌다.
“하으앙!”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
두건사내가 혀로 음핵을 눌러 비비다 입술로 조이며 빨아대서였다. 조끼사내는 양쪽 유두를 엄지와 중지로 집고 검지로 그 끝을 쓱쓱 문질러댔다.
‘안 돼 미칠 거 같아……! 이거 뭐야!’
니스는 간혹 자위를 하긴 했다. 당연하지만 성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렇게 진하게 애무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받은 적은 있어도 두 사람에게 동시에 당한 경험은 없었다. 니스는 갑작스럽게 성감대에서 느껴지는 말도 못할 쾌감에 몸이 들썩거렸다.
머릿속에 그려졌던 탈출 계획이 한 순간에 쪼그라들었다. 니스는 피 대신 애액이 흐르고 흉기로 찌르는 대신 손가락을 쑤셔 박는 이 고문에 정신이 날아가고 있었다.
유두를 나긋나긋하게 굴려주는 손길. 질 안쪽까지 파고들어 휘젓는 난폭한 손가락과는 달리 음핵과 그 주변을 정성스레 핥아주는 혓놀림. 숨이 넘어갈듯이 기분 좋다가 잠깐 쉬어주고 다시 몰아붙이는 그 배려……
니스의 마음을 함락시키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이러면 내가 그 아이처럼 돼버리는데……
하지만 이건 게임일 뿐이잖아?
게임 속이니까……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을 거야.
그래…… 그러니까……
내가 이걸 즐겨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할…… 거야…….
“흐읏!”
마음 속 깊이 걸려있던 자물쇠가 깨졌다. 마음의 벽까지 허물어지자 오르가즘까진 금방이었다. 니스가 두 눈을 부릅뜨고 아랫입술을 앙 물며 애액을 흩뿌렸다. 공포로 시작된 쾌락이 방출되는 순간.
그 해방감은 말도 못할 정도로 굉장했다. 니스는 눈동자를 조금씩 위로 올리며 생각했다.
이거…… 중독될 거 같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