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20 악몽의 성 中
* * *
버트를 두고 올라온 루하다와 세 기사는 수월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 성의 주인이 버트만 노린 것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세 기사는 묵묵히 앞서가는 루하다를 따라갔다. 인내심이 끝에 달할 쯤. 얼마 안가 낡은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나무문이 나타났다.
“들어가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소, 루하다.”
루하다는 액체 같은 몸으로 돌아섰다.
“씨앗이 깨어나면 남작님의 몸이 붕괴될 거라 그랬소만?”
엘도트의 물음에도 루하다는 말이 없었다.
“당신의 충심을 의심하는 건 아니오. 다만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서 묻는 것이오.”
이디아는 엘도트가 답지 않게 뜸을 들인다고 생각하였다.
“그 말은 진실이오, 루하다? 씨앗이 깨어나면 남작님의 몸이 붕괴된단 소리 말이오.”
루하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문을 열어서 그 안을 가리키며 다른 말을 하였다.
「들어가라.」
“대답은 들은 걸로 하겠소.”
엘도트가 먼저 들어갔고 브론트와 이디아가 따라들어갔다. 루하다는 그들이 들어가고 나서 잠깐 있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
내부는 곳곳에 붉은색, 보라색의 베일들이 걸려있었다. 거기에 코를 건드리는 달큰한 향까지 더해지니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특히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보이는 천장. 여기에 별처럼 알알히 박혀있는 은은한 빛들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눈을 이끄는 요소가 많았다. 그렇다고 기사들은 감상에 빠질 수 없었다. 저 멀리 왕좌에 앉아있는 여인 때문이었다.
망사스타킹에 덮인 다리. 그 절반을 덮은 굽 높은 매끈한 가죽 부츠. 나머지 부분은 하얀 살결이 망사 사이로 비쳐졌다. 거기에 다리를 꼬고 있어서 그런지 짧은 검은 바지 밑의 통실통실한 허벅지가 부각되었다.
그 위론 배꼽이 한 점. 속이 비치는 하늘하늘한 천이 명치 부분에서부터 갈려져있었다. 그래서인지 배 부분은 또렷하게 보였다. 대신 쏙 들어간 옆구리와 검은 누드 브래지어가 채워진 가슴은 은은하게 비춰졌다.
그야말로 관음증을 유발하는 모습!
팔꿈치까지 닿는 장갑에 덮인 손이 꼬아진 다리 위에 사뿐히 얹어졌다.
“안녕.”
그러더니 눈 근처에서 손인사를 살랑거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드러난 것만으로도 매혹적이었다.
여인의 손인사는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이디아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으니…… 엘도트가 그의 뒤통수를 때리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대가 루하다의 지인이오?”
루하다란 이름에 왕좌에 앉아있던 여인이 팔걸이를 잡고 일어났다. 이디아는 장갑으로 가려진 가는 손가락이 팔걸이를 감쌀 때, 괜히 자신의 몸이 잡힌 것 같아 흠칫거렸다.
또각 또각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둣굽 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그러자 가려졌던 나머지가 보였다. 하늘하늘한 천 뒤로 펼쳐진 건 검은 피막의 날개. 그리고 짧은 반바지 뒤에서 흔들거리는 건 끝이 뾰족한 파충류의 꼬리였다.
마지막으로 검녹색 얹은 머리. 그 양옆엔 고둥껍질처럼둥글게 말려있는 뿔이 삐죽 솟아있었다.
여인은 검보랏빛 아이라인이 그려진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었다. 동시에 검은색으로 옅게 칠해진 입술이 열렸다.
“나이트피어 일족의 족장, 리아주크의 뜻을 헤아리는 자…….페슈트 이타리니라고 해요. 페이니라고 불러 줘요.”
페이니는 뒷짐을 지더니 한쪽 발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마치 수줍은 소녀와 같은 인사. 그러나 하는 짓과는 달리 겉모습과 목소리가 너무 고혹적이었다.
“엘도트 그라이버라 하오.”
“브론트 갈디락이오.”
“이디아 오즈요.”
차례대로 인사를 마친 기사 셋의 뒤로 루하다가 솟아올랐다.
“간만이네 벨루그하? 이것들은 뭐야?”
「그릇의 종들이다.」
뭔가 무시하는 듯한 대화에도 그들은 선뜻 나설 수 없었다. 루하다를 처음 봤을 때도 그렇고 눈앞의 페이니도 강한 위압감을 뿌리고 있어서였다.
그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둘은 편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페이니는 허리춤에 한 손을 얹고 고민하나 싶더니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니까……내부에 심어진 씨앗이 그릇의 쾌락에 반응한다 이거지?”
「모든 감정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쾌락일 뿐이지.」
“걱정 하지마. 쾌락이라면 우리가 전문이잖아? 원한다면 저기 종들도 씨앗의 성장을 돕게 할 수 있어.”
「그릇의 쾌락을 말인가?」
“그래, 씨앗을 키울 수 있게 말이지.”
말이 묘하게 엇나가가고 있었다. 그러나 루하다는 괘념치 않았다.
‘여차하면 죽여버리면 된다.’
루하다는 덤덤했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저들은 나한테 맡겨.”
「그러지.」
그 순간 페이니가 세 기사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녀의 손은 빠르게 한 명의 이마를 찍었다.
첫 표적이 된 이디아는 눈을 허옇게 뜨며 쓰러졌다.
엘도트와 브론트가 무기를 빼들며 뒤로 물러났다.
“위험”
이디아가 쓰러진 직후 다시 몸을 날린 페이니의 손에 브론트가 방패를 뽑아들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엘도트는 검을 뽑아들고 페이니를 향해 가로로 검을 휘둘렀다.
샥
페이니는 아이의 장난을 받아주기라도 하듯 검을 살포시 쥐었다. 그리곤 힘을 팍 주었다. 검은 힘없이 동강나버렸다.
더 이상 저항할 수단이 없다! 엘도트는 무방비하게 페이니의 손가락에 이마를 내주었다.
“어머?”
그러나 엘도트는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이를 악물며 부릅뜬 눈으로 페이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페이니는 눈을 맞추는 동안 제법 놀란 듯 보였다. 그것도 잠시…… 그의 뺨을 두드려주었다.
그러자 엘도트는 나머지 둘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페이니는 팔짱을 끼고 히죽 웃으며 쓰러진 세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
“아항……! 아앙……!”
그 시간 버트는몽마 하나와 다리를 엇갈린 상태…… 이른바 가위치기 자세로 음부를 비비고 있었다.
서로의 질척하고 미끈한 치부가 압박되며 상당한 자극이 되었다. 다른 몽마는 버트의 손에 음부를 비비면서 그녀와 입을 맞추었다. 마지막 하나는…… 알 수 없는 얼굴로 버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해졌다.’
그녀와 몸을 섞은 이후로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다. 만일 이대로 간다면 나이트피어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욕망에 가까운 자들인 만큼 본능에 잘 휘둘렸다. 그리고 이 몽마는 특히 지배욕이 강해서 버트를 보는 눈이 아주 뜨거웠다.
그 고고한 페이니를 정복하고 나이트피어를 지배한다!
그 생각을 하며 몽마는 버트의 몸에 깃들었다. 그리고 마기가 흘러나오는 뱃속…… 정확히는 자궁 안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꺄아아악!”
몽마는 씨앗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흡입력에 경악했다. 도망치려고 몸을 빼냈지만 씨앗은 단숨에 몽마를 집어삼켰다. 버트와 섹스를 즐기던 두 몽마는 다른 몽마 하나가 뜬금없이 소멸해버리자 얼이 빠졌다.
“메크린? 어떻게 된 거야 이게……?”
“하앙…… 하아……?”
버트는 한창 즐기던 도중에 갑자기 멈춘 몽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황당함과 함께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너…… 메크린에게 무슨 짓을……!”
몽마가 이를 뿌득 갈며 날아들더니 버트의 몸에 깃들었다. 그녀는 얼마 안가 처음 몽마처럼 비명과 함께 사그라졌다. 남은 몽마 하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른 채 순식간에 동족 둘을 잃었다.
그리고 그 둘처럼 달려들지 않고 도망치는 쪽을 택했다.
“어…… 어……?”
어쩌다 혼자 남겨진 버트는 상황파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아직 여운이 가시진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홀로 풀기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체 뭐야……”
버트는 갑옷을 원래대로 바꾸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그녀가 마음먹고 달리니 오르막 길인데도 쉽게 지치지 않았다. 그녀는 순식간에 최상층까지 도달했다.
“후아…….”
숨 한 번 들이쉬고 문을 열어젖힌 버트는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우선 루하다. 그는 여전히솟아오른 슬라임같은 모습으로, 공허해 보이는 둥근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매혹적인 악마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을 법한 여인이 요염한 자태로 서있었다.
마지막으로 세 기사는
어디 갔지?
“안녕, 그릇. 아니, 버트라고 불러줄까?”
“어…… 안녕하세요……?”
“페이니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슈어드와는 달리 누가 봐도 어른처럼 느껴졌다. 말투에서도 성숙함이 깃들었기에 버트는 절로 말을 높였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 루하다가 소개해줬단 생각에 의심하지 못했다. 그저 세 기사가 어딨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루하다. 그 세 분은 어디 계셔?”
“아, 걔네들?”
루하다 대신 페이니가 반응했다. 이 부분에서 버트는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짠~”
손뼉을 치자 바닥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세 기사가 솟구쳐 올랐다. 왜 저렇게 나타날까. 그 의문은 그들의 이마와 눈에서 흘러나오는 검은빛 때문에 막혀버렸다.
색 좋던 그들의 피부가 왠지 칙칙하게 변했다. 마치 인성이 없는 인형처럼 멍하니 서있었으니 버트의 정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저분들이 왜……?”
“어때? 왠지 너무 약해보여서 내가 특별히 손봐줬지. 이제 이들은 리아주크의 의지를 수호하는 자들, 다크나이트가 된 거야.”
“그…… 래요……? 근데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데…….”
“그런가? 하긴, 한 번 죽이고 되살렸으니 제정신은 아니겠다.”
이 한 마디가 버트의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그녀의 안쪽에서 요동치는 씨앗을 느낀 루하다가 페이니를 툭 건드렸다. 루하다의 노한 눈빛을 접한 페이니는 생글 웃으며 간지러운 손인사를 했다.
“혹시나 해서 다시 깨워봤거든? 그런데 다짜고짜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남작님을 위협하지 마라였어. 얼마나 무섭든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단 걸 느낀 루하다가 말하였다.
「이봐, 페슈트.」
“그래서 보란 듯이 친구 하나를 죽여 봤지. 그 활 들고 있는 애 말이야. 그런데도 꿈쩍 않더라. 아니, 움찔했지만 드러내지 않은 건가?”
「페슈트. 그릇이 불안해하고 있다. 그만해라.」
“아하하, 아무튼 그렇게 당당하게 죽어가면서도 네 원망은 안 했을까 몰라. 버트, 너 때문에 죽었는데…….”
「페슈트!」
루하다의 외침에 페이니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
“넌 그릇을 챙기는 거야, 씨앗을 챙기는 거야? 뜻이 뒤집혔을지언정 지체는 말아야지, 안 그래?”
「그러니까, 씨앗이 그릇의 감정에 반응해서……!」
“마기의 근본은 마이너스, 네거티브 에너지야. 근데 쾌락과 기쁨이 씨앗을 성장하게 한다고? 말이 돼?”
「페슈트 너 설마……?」
팔짱을 끼고 있던 페이니가 손가락을 튕겼다. 루하다의 몸이 검보랏빛 연기로 뒤덮였다.
「페슈트!!」
루하다가 분노하여 덩치를 키웠지만 연기가 뒤덮는 속도가 더 빨랐다. 연기는 둥근 구체가 되었고 구체는 쉴 새 없이 들썩였다. 그 안에 갇힌 루하다가 반항하고 있는 듯 했다. 페이니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삐딱하게 서서 그걸 보다 버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버트는……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같이 지낸 시간은 얼마 안 됐지만 그들과 최대한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깐깐하긴 해도, 무뚝뚝하긴 해도, 삐딱하긴 해도. 그들과 지내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니스와 라이가 없을 때 같이 지내던 루하다, 리버와는 달리……
인간적이었다. 사람들과 같이 다닌단 느낌이 가슴을 적셨다.
‘나 때문에 죽은 거야?’
이번 일은 버트 스스로가 간접 살인을 했다고 여겼다. 방금까지 자신을 걱정하며 바라봐주던 사람들이 죽어있다니?
만일 버트가 몽마와의 일에 정신을 팔지 않고 올라왔다면?
이곳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들과 만나지 않았다면?
이 게임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악몽…….
이건 지독한 악몽이다…….
버트는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내가 죽인 거야?’
주저앉은 그녀를 향해 페이니가 생글 웃으며 다가와 말하였다.
“아하하…… 정말 좋아, 그 우는 얼굴…….”
페이니가 구두코로 버트의 턱을 톡 치더니 자신을 올려다보게끔 고개를 들게 했다.
눈물범벅으로 붉어진 눈과 헝클어진 머리칼. 빼꼼 나온 콧물과 윗니에 물려있는 아랫입술……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을 뿜어내는 울음이었다.
페이니는 당장 버트에게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싶었으나 최대한 인내하였다.
더 큰 쾌락을 위해!
“사실 그들은 완전히 죽은 게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죽어가고 있는 거지. 정신도 내가 잠깐 잡아두고 있는 거여서 내가 풀어주면 잠깐이나마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페이니는버트의 눈물 가득한 눈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러면 저들에게 걸린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알려줄게.”
그녀가 요염하게 손가락으로 입술을 훑었다. 버트는 저주를 푼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바……방법이요……?”
“그래…… 어디보자…… 그새 딴맘 먹고 날 공격할 수도 있으니…….”
“아…… 아녜요! 시…… 시키는 대로 할 게요…… 그러니 알려 주세요!”
“정말?”
페이니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눈을 맞췄다. 버트는 그녀의 맘이 바뀔 새라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그녀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힘을 자각했다면. 세 기사의 일로 정신이 다치지 않았더라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다른 마음을 품고 덤벼들었다면?
페이니를 건드리지도 못하고 세 기사 중 하나에게 깃든 저주가 폭발하여 죽어버렸을 것이다.
페이니는 굳이 이걸 말하지 않았다. 그저 순순히 복종해오는 버트를 보며 차오르는 정복욕을 느꼈다.
“자, 그럼…….”
페이니는 허공에 다리를 꼬고 앉더니 얹어진 쪽의 발을 버트의 앞에 뻗었다. 그러자 구두가 사르르 녹아내리고 그녀의 피부처럼 깨끗한 맨발이 드러났다.
버트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페이니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핥아 봐. 그럼 복종했다고 믿어줄게.”
이제까지 마기에 취한 이들의 정성어린 애무와 위해주는 섹스만을 받아온 버트에겐 참으로 낯선 일이었다.
물론 구강성교를 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것과는 별개였다.
그래서 잠깐 주춤거렸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기사들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다. 이걸 해본 적이 없단 이유로 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버트는 조심히 페이니의 발을 받쳐 들었다. 그리곤 혀를 빼냈다가 어디부터 건드려야 할지 살폈다. 그리고 문득 느껴진 건 그녀의 발이 제법 곱다는 것이었다.
발가락 길이도, 피부색도, 발바닥의 모양새도…….
미인은 발까지 예쁘구나.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며 엄지발가락을 혀로 핥아 올렸다.
“으훙…….”
혀에 닿는 건 찝찔한 맛과 함께 달큰한 향이었다. 다른 사람의 발도 이런 건가. 아니면 그녀만 특히 그런 건가.
그렇게 페이니의 발가락을 하나하나 핥았다. 어정쩡한 그녀의 혓놀림에도 페이니는 별 불만 없이 턱을 괴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의외라고 생각한 건 이제까지 살펴온 그녀의 행로 때문이었다.
처음 버트를 본 건 발르틴에서부터였다. 그때 시중을 드는 하녀의 몸에 깃들어 있었다. 루하다도 눈치를 채지 못했을 정도로 페이니의 잠입은 은밀했다.
아무튼 그렇게 만난 버트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귀여웠지.’
아주 순수했다. 분명 욕망에 취해있었지만 더럽혀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 페이니는 그녀를 마주하고 나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씨앗이 심어진 부작용인가? 아니면 그녀의 성격 때문인가.
그래서 조금 더 살펴보기로 했다. 루하다가 눈치 채지 못하게 다른 공간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깨달은 건 그녀에게 모순이 자리 잡은 게 아니라 그녀의 생각이 잘못 되었단 것이었다.
마기…… 아니, 굳이 마기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기운의 이치. 그건 순리대로 흘러감에 있다.
자연스러움, 혹은 본능에 의한 이끌림…… 생각을 배제한 행동이야말로 마기의 근본이었다. 그야말로 버트의 행동은 마기에 가까운 순수함이었다.
그리고 그 순수함은 본능과 연계되어 쾌락을 추구함에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바람이나 다름없는 마기를 접하고 모두가 성욕을 느끼고 섹스를 벌인 것이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라이칸 역시 그들과 같은 마신의 일부이기에 본능적으로 버트를 해치지 않았다. 마성자들은 자신이 숭배할 대상과 관계된 자이니 난폭하게 굴지 않았다.
그외의 것들. 레드윙이 잃지 않은 기사의 신념, 어린 하인들의 순수함 같은 것의 발전이었다.
물론 코르크나 병사들처럼 전부가 버트를 위해준 게 아니었다. 다행히 이걸 극복하였지만 여전히 버트의 마음은 여렸다.
“놀라운 걸…….”
특히 자기 때문에 짐승 하나가 죽을 수도 있다고 펑펑 운 모습이 페이니의 흥미를 이끌었다.
그래서 한 번 만나고 싶었다. 그랬기에 버트가 지하에 붙들려있을 때 찾아온 루하다와의 얘기에서 시치미를 뚝 뗐다.
씨앗의 성장을 돕고 싶다.
그 한 마디로 루하다를 유인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끌어올 수 있었다.
“흐후후…….”
열심히 자신의 발을 핥는 버트를 보며 페이니는 생각을 마쳤다.
“그렇게 감질나게 핥아서 언제 내가 만족하겠어?”
페이니는 그렇게 말하며 발을 버트의 입 안에 쑤셔 넣었다. 앞발이 전부 들어가진 못하고 새끼발가락이 삐죽 튀어나왔다. 페이니가꽉 물린 앞발을 조금씩 움직이다 발가락으로 혀를 꾹꾹 누르며 다그쳤다.
“혀가 쉬고 있잖아. 제대로 핥으라고. 아니…… 평소에 남자들과 했던 것처럼 해봐.”
이렇게 말한페이니는 버트가 알아먹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자지 빨던 것처럼 해보라고.”
듣기 민망한 소리였지만 버트는 시키는 대로 했다. 입 안에 들어온 페이니의 발을 쭉 빨아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혀로 발가락 사이사이를 간질여댔다.
분위기를 탄 것일까…… 두 손으로 발을 받쳐 빨던 버트가 입에서 발을 빼내었다. 왜 그만 두냐고 따지려던 페이니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버트가 그녀의 발을 세우더니 앞발에서 뒤꿈치까지 발바닥을 혀로 훑어 내렸다.
발날에 입을 맞추고 발가락을 다시 입에 물고 오물오물…… 온갖 성행위와 변태적 욕망을 봐온 페이니에게 이런 애무는 익숙했지만 버트가 하는 건 왠지 달랐다.
간절함.
부디 이걸로 저들을 살려달란 마음이 새로운 자극이 된 것이다. 페이니는 홍조와 미소를 같이 띄우며 침으로 뒤덮인 발을 뒤로 확 빼냈다. 그러더니 버트의 눈앞에서 꼬물꼬물 움직여보았다.
자신의 침으로 물든 발을 확인한 순간. 버트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핥은 거야……? 스스로에게 물었다가 창피해져서 생각을 멈추었다.
“정말……분위기를 잘 타는구나? 응?”
페이니는 그렇게 말하며 발가락으로 그녀의 코를 집고 흔들었다. 버트는 괴로운 소릴 내면서도 뿌리치지 않았다.
이러니 페이니의 몸이 도무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보자…… 시킨 대로 잘 했으니…….”
구두를 다시 만들어내고 일어선 페이니를 보며 버트가 희망으로 눈을 빛냈다. 페이니는 세 기사 중 이디아에게 다가가더니 눈앞에서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이디아가 움찔거리더니, 눈에서 검은빛이 걷히며 정신을 차렸다.
“나, 남작님? 넌……!”
버트와 페이니를 번갈아보던 이디아가 활을 빼들려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몸이 꿈쩍하지 않았다.
페이니는 여전히 히죽거리며 버트를 돌아보더니 이디아의 엉덩이를 콱 잡으며 말했다.
“섹스 해.”
“네……?”
“뭐?”
둘의 얼빠진 반응에 페이니가 다시 한 번 말하였다.
“섹스 하라고 둘이.”
“아, 아니 이게 다짜고짜 무슨……!”
“다짜고짜가 아냐. 너 하고 나면 나머지 둘도 할 거야. 아, 무슨 일인지 알기 쉽게 저 둘도 깨워둘까?”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기니 엘도트와 브론트도 정신을 차렸다. 그들도 시선을 돌렸다가 이디아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둘은 분노 어린 눈으로 페이니를 노려보았다.
“자, 다시 말할게…….”
페이니는 손뼉을 치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내가 보는 앞에서, 짐승처럼 섹스를 벌여봐.”
*
루하다는 분노하였다.
「찢어 죽여주마……!」
페이니의 생각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건 그녀를 시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자의 목숨을 담보로 얻는 쾌락. 그건 버트가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는 짓이다.
그걸 알고 있는루하다는 구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썼지만 꼼짝할 수도 없었다.
나이트피어와 둠워퍼는 물리성이 없는 존재 중 으뜸이다. 그중 나이트피어는 보이지 않는 공간 즉 환상에 능통했다. 이 구체 역시 조금의 물리성도 없이 그를 속박하고 있었다.
물리성이 없는 가짜의 힘.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리아주크가 페슈트…… 나이트피어 일족에게 내린 힘이었다.
그 원리를 알아야 한다. 물론 루하다는 이걸 깰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까지 버트의 정신이 버틸지 장담 못했다.
루하다의 몸이 구체로 번져갔다. 서서히……페슈트가 만든 구체의 감옥을 잠식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