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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아-14화 (14/104)

〈 14화 〉 14 ­ 펠론의 지하 中

* * *

버트는 이 추운 곳에 갇힌 이유를 몰랐다. 발목에 묵직한 추가 달린 족쇄까지 달고 말이다. 아니, 감금당한 이유를 알긴 하지만 터무니없는 누명이었다.

귀족암살미수죄. 여기에 물품도난에 무단지리탐색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버트는 감옥에서도 가장 깊고 구석진 최악의 자리에 갇혔다.

‘말도 안 돼.’

버트가 손목을 구속하고 있는 나무수갑을 내려다보았다. 널빤지에 손이 끼어있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수갑은 굉장히 단단했다. 버트의 완력이라면 가볍게 부술 소재였지만 어째선지 꿈쩍 하지 않았다.

발목을 구속하는 거대한 추도 너무 무거웠고 「밤 기사의 갑옷」을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감옥이란 특별한 공간에 내린 금제 시스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탈옥은 꿈도 못 꿨다. 그래서 버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멍하니 앉아 판결을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벗길 수 없는 「밤 기사의 갑옷」을 제외하고 갖고 있던 것도 전부 뺏겼다. 그래서 평소에 시간 떼우기로 하던 아이템 분별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밤 도깨비 투구」를 뺏겼다. 이 누명을 풀고 아이템을 받지 않으면 위험했다.

그때 창살 너머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죄를 인정할 마음이 생겼나.”

“……전 정말 남작님을 죽이려한 적 없어요.”

“흠? 그럼 하나만 묻지. 그럼 무슨 목적으로 남작님의 거처에 머무르려한 거지?”

버트는 흠칫 몸을 떨었다. 자신의 목적을 말해야 하는 건가. 차마 아이템 때문에 여기에 머물렀고 그걸 어떻게 하면 받아갈지 생각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떤 누명을 더할지 몰랐다.

그래도 버트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 사실을 말하기로 했다. 귀족암살죄보단 나았으니까.

“남작님의 목걸이…… 그게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남작님의 침방을 기웃거리며 훔칠 기회를 노렸고, 거기다 암살까지 하려 한 건가?”

“아니에요!”

도돌이표가 그려지는 대화. 버트는 몸서리를 쳤다. 그가 뭘 노리고 있는 건진 몰라도 귀족에게 핍박받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아주 큰 누명을 썼다면 누구든 질색할 것이다.

남작은 물론 눈앞의 이 남자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저 정황상 증거만 보고 자신을 가뒀다.

침방 근처의 발자국과 침상 근처에 놓인 자신의 검. 방에 두었던 검이 덩그러니, 그것도 남작의 방에 놓였다. 버트로선 이 일이 조작된 것임을 진즉에 알아챘고 이들의 수작에 얼이 빠졌다.

버트는 계속 무고함을 호소했다. 결과는 지금 보는 그대로. 버트는 잠깐 과거를 떠올렸다가 코르크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이제 동기도 설명이 되는군. 처음부터 남작님을 노리고 이곳에 머무르면서 기회를 노렸겠군. 최근 며칠 동안 오후 내내 보이지 않았던 것도 설명이 되고.”

알리바이. 그게 없었다.

치명적인 지적에 버트의 안색이 파래졌다. 그 시간에 버트는 엘턴과 섹스에 빠져있었다. 그걸 얘기할 만큼 버트는 뻔뻔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엘턴이 휘말릴 수도 있거니와 이런 일을 얘기해서 득이 될 건 없었다. 그래서 버트는 다른 변명거리를 생각하려했지만 코르크가 한 수 빨랐다.

“대답을 못 하는 걸 보니 정말인가보군?”

“아니, 그건…….”

“그건?”

버트는 고갤 푹 숙였고 코르크는 씩 웃어보였다.

“네 처분은 남작님께 보고 드린 뒤에 결정할 것이니 그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도록.”

“자, 잠깐만요!! 혹시 강아지는…… 리버는 어떻게 됐나요……?”

간절한 눈빛과 애절한 목소리에 코르크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버트의 약점! 약한 곳을 발견한 이상 코르크가 그냥 둘 리 없었다.

“아직은 살아있지만, 네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처분이 달라질 거다. 아마 죽을 확률이 높겠지.”

“아…….”

버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크으­’

코르크는 속으로 미친 듯이 웃었다.

이제 됐다. 코르크는 버트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음을 확신하였다. 이제 조금만 더하면 그녀는 완벽하게 자신의 것이 된다. 남은 건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에 잡아먹히게 두면 될 일이었다.

코르크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리버…….”

버트는 혼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

다시 코르크가 찾아왔을 땐 버트의 모습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푸석해진 피부. 메마른 입술. 흐리멍덩한 눈. 창백한 얼굴. 몸에 걸치고 있는 누더기 같은 옷은 그녀의 상태를 한 층 더 나쁘게 만들었다.

그녀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훤히 보였다. 하지만 코르크의 눈에 그게 들어올 리 없었다. 초췌한 몰골에 숨겨진 미색을 보며 군침을 삼킬 뿐이었다.

“남작님의 결정이다. 그대는…… 처형이다.”

그 말에도 버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 이모탈이니 죽음이 두렵지 않겠지. 다시 살아나서 달아나면 되는 일이니 말이야.”

“리버는요……?”

“리버? 그 개 말인가. 놈도 죽겠지. 아쉽겠어. 그 개는 너와 같은 이모탈이 아니니 죽으면 끝이지 않나. 보아하니 잘 따랐던 거 같은데, 같은 걸 구하려면 힘들겠군.”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버트가 한없이 슬픈 얼굴로 말했다. 기운 없는 그 표정은 코르크의 시커먼 마음을 일깨웠다. 그는 간신히 충동을 참으며 계속 이죽거렸다.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말이야. 사실 이렇게 말을 전해주는 건 혹시라도 갱생의 여지가 있다면 처형은 면해주려 한 건데, 그런 거 같지도 않군.”

“갱생……?”

잠깐 희망을 엿본 버트는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래.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반성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면 처형은 당하지 않을 거야.”

“그, 그럼…… 리버는…… 그 아이도 살 수 있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겠…….”

“어떻게 하면 되죠……?”

코르크는 자신의 말을 끊었음에도 별로 화를 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욕설을 퍼부었겠지만 참아야했다. 무엇이든 급하면 일을 그르친다. 무엇보다 지금 주도권은 그가 잡고 있었다.

서두를 필요 없다.

코르크는 일부러 뜸을 들이다 말하였다.

“헌데 대가를 치를 수 있긴 한 건가?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닐 텐데…… 뭘 어떻게 하겠단 거지? 노역을 잘 하는 것도 아닐 테고, 그렇다고 잡일에 능해보이지도 않는데.”

그의 말에 버트의 표정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막상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잡질 못하다니!

하지만 코르크도, 버트 본인도 돈이든 인력이든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음을 전혀 몰랐다. 영지의 몇 달 치의 세금과 맞먹는 돈과 성인 노예 스무 명의 몫을 해낼 힘이 있거늘…….

버트는 그것들이 무색하게 스스로를 과소평가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코르크의 뒷말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그럼 죗값을 치를 만한 게…… 시중뿐이군. 그렇다고 하녀 일을 하기엔 억세지도 않은데 말이야.”

말을 흐리던 코르크는 씩 웃으며 말했다.

“밤 시중을 들라하면 할 수 있겠나?”

버트가 크게 몸을 떨며 코르크를 올려다보았다. 결코 그녀가 생각하는 걸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해야만 해.’

버트는 입술을 깨물더니 고갤 끄덕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불쌍한 리버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협상 완료! 코르크는 문서 하나를 내밀었다. 그걸 읽어본 버트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야말로 노예계약이었다. 소유권이 생기고 마음대로 쓰이는 노예! 그것도 밤 시중을 드는 성노!

버트가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고 고갤 숙였다. 코르크는 문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서 둘둘 말아 품에 넣었다. 그리곤 비릿하게 웃어보였다.

“환영한다. 새로운 노예여.”

*

다음 날. 버트는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지저분한 몸도 씻고 새로운 옷도 받았다. 꾀죄죄했던 그녀가 조금 화사하게 바뀌니 성노로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보였다.

버트는 손에 들린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보며 낯을 붉혔다.

좀 얇고…… 짧았다. 이렇게 노골적인 차림새로 어떻게…….

불평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순탄치 않은 게임을 해 온 그녀에게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걸 본인도 자각하고 있는 건지 부끄러워하면서도 옷을 입었다. ‘상태 창’을 열어본 버트는 자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딱 한 마디를 떠올렸다.

야해……!

이 옷은 안 그래도 얇은 소재인데 몸에 딱 들러붙었다. 거기다 가슴 커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한 치수 작은 걸 준 것인지 옷이 위쪽으로 말려 올라갔다. 그래서 둥그런 유방과 선홍빛 유두가 선명하게 비쳤다. 치마는 사타구니나 간신히 가려주고 허벅지부터 시작되는 부분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야말로…… 그냥 얇은 셔츠 하나를 입은 기분이었다. 몸을 조금만 숙여도 아래가 훤히 보이는 셔츠.

막상 입어보니 생각 이상으로 민망했다.

“다 입었나?”

옷을 전해준 하인은 남자였다. 그는 버트가 다 입었는지 확인하고 숨을 골랐다. 들끓는 욕정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녀는 남작의 전용 성노다. 함부로 건드렸다간 뼈도 못 추린다.

그렇게 자기 암시를 한 하인은 버트를 데리고 남작의 침소 바로 옆방으로 향했다.

‘그냥 야겜 주인공이나 다름없잖아……!’

걸을 때마다 치마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원피스의 치마가 살랑였다. 그 사이로 바람이 슥 지나가니 절로 허전함이 느껴졌다.

버트는 속으로 불평하다 금방 침착해졌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이것보다 더한 차림도 했었잖아.’

버트는 안정을 찾아갔지만 주변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를 힐긋 본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눈을 떼지 못했다. 아무리 그들이 하인들이라지만 집중되는 시선은 엄연히 사람의 것이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종류였다.

옷차림에는 적응했어도 시선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었다.

‘부끄러워……’

치욕스럽다…….

노예가 되어 이런 취급이라니. 마치 물건으로써 배달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결코 흥분되지도 않아야……

않아야 하는데…… 몸은 이미 반응해서 아래쪽에 습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하인은 방 앞에 오자마자 허벅지가 번들거리는 걸 보고 혀를 찼다.

무슨 이런 음란한 여자가 다 있을까. 아직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달아올라선…… 그래서 성노가 되었겠지.

하인은 그 생각을 하며 그녀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여기서 기다리며 남작이 원할 때마다 언제고 안겨지기. 그의 허락 없이 어떤 것도 해선 안 된다.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버트는 알겠다고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뭐가 생각났는지 우물쭈물하다 하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 저기…… 제가…… 제가 데려온 강아지는…… 어디 있죠……? 같이 있을 순 없나요?”

하인은 그녀의 요구에 비웃음을 흘렸다.

“노예 주제에 애완동물을 기르시겠다? 꿈도 꾸지 마. 이 천박한 년아! 살려준 걸 감사히 여기진 못 할망정, 때와 장소를 구분 못 해……?”

그의 으름장에 버트의 얼굴이 애달프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본 하인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안 그래도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 때문에 이성을 잡기도 어려운데 표정이 저렇게 변하니 주체할 수 없었다.

하인은 조심히 밖을 둘러본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을 밟듯이 버트를 덮쳤다.

*

하인의 성욕을 충족시켜준 버트는 비밀을 지킬 것을 꼭 약속하며 그를 보내주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버트는 계속 기다렸다. 여기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도망칠 수야 있겠지만 리버가 어딨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그렇게 기다린지 몇 시간. 창밖으로 달이 높이 떴을 때였다. 방 안의 종이 딸랑거리며 울렸다.

‘지금 가면 되나?’

버트는 남작의 방으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갔다. 버트의 두 눈이 심하게 떨렸다. 침대에서 옷을 벗고 있는 남작의 모습을 보며 심란해졌다.

이건 창부들이나 할 법한 짓인데…… 그 생각을 하자 두려워졌다.

이러다 정말 몸 파는 여자로 낙인이 찍히면 어떡하지?

버트가 침을 꼴깍 삼키며 남작에게 다가갔다.

델폰 남작은 겁을 집어먹고 있는 버트를 보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에게 버트는 조금 예쁜 여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보다 아름답고 기술이 좋은 여인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그녀 같은 '초짜'는 눈에 들지도 않았다.

델폰 남작의 생각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여태껏 그녀를 건드린 대부분이 마기에 취해서 정상적인 사고를 못했다. 그래서 본능에 충실하게 그녀를 탐한 것이고…….

헌데 그는 왜 멀쩡할까. 그 이유는 바로 목에 걸고 있는 「밤 이슬의 목걸이」 덕분이었다. 이 장신구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를 거의 막아주었다. 덕분에 남작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을 섞으면 얘기가 달라졌다. 아무리 「밤」 장비가 마기 친화적이어도 마신의 씨앗과 닿는다면 저항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왕성에서도 버트가 뿜어낸 마기에 휩쓸렸다.

다행히 남작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 침상에서 함께 잠을 잘 뿐이었다. 버트도 처음엔 불쾌했지만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것에 안심하며 편히 잠에 들었다.

이 날 밤은 어떻게 무사히 넘겼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었다. 푹 잠이 들었던 버트가 졸지에 죄인이 되어버렸다.

“이…… 이년이!”

델폰 남작의 외침과 갑자기 난입한 병사들. 버트는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왜 이러지?

병사 중 하나가 검을 뽑으며 위협했다. 그 무리에서 자신을 가뒀던 코르크가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델폰 남작은 옷을 대충 걸치며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버트가 일어나려던 찰나 손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묵직한 중량감에 시선을 내렸다.

온갖 보석이 박혀있는 화려한 단검. 그것이 그녀의 손에 들려있었다.

이게 왜……?

버트가 얼이 빠져 있을 때 기사가 검으로 그녀를 베어버리려 했다. 이때 코르크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어찌 감히 남작님의 침소에서 칼부림이냐.”

“이건……!? 이게 무슨……?!”

암살 미수.

이번엔 빼도 박도 못하는 결정적인 상황이 포착되었다. 물론 이 일을 전혀 벌일 생각도 없었던 버트는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저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해명하고 싶었다.

여기서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 단검은 어디서 났으며 둘째, 왜 그걸 쥐고 잤느냔 것이다.

버트가 무고함을 알리기 위해 이렇게 얘기를 해봤으나 결국 자백이나 다름없는 말이 돼버렸다.

“귀족의 침소에 호신 무기를 숨겨놓는다는 건 정설 중의 정설이다. 다만 아주 비밀스러운 곳에 보관하고 있어서 찾지 못할 뿐이지. 헌데 넌 이미 남작님의 방을 돌아다닌 경력이 있으니…… 암살 교육을 받았을 테니 숨겨놓은 장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지?”

거짓된 범죄가 여기에서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때 확실히 부정했어야 했는데…… 이때 다시 들려오는 코르크의 말은 더 이상 그녀를 변명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검에 쥐는 순간 잠에 빠져들게 하는 장치를 해놓았는데…… 죄송합니다, 남작님. 비록 이 덕분에 암살을 막았다하나 귀속의 자산에 손을 댔으니…… 처벌은 엄히 받겠습니다.”

교묘하게 자신의 공적을 떠벌리며 버트를 암살자로 만드는 발언이었다. 당사자인 버트는 억울함에 눈물을 가득 모았다.

남작은 버트의 심정도 모르고 두 팔 벌려 기뻐했다.

“내 어찌 충신을 욕하겠는가! 이 나를 위해서인데! 고맙네, 코르크 경이 아니었다면…….”

한바탕 촌극이 벌어졌다. 버트는 우악스러운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다시 감옥으로 돌아갔다.

*

버트는 멍하니 자신의 양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보고 있었다.

발르틴에서 퍼드롬과 블랙스타의 신도들과의 만남 때도 이랬다. 질긴 가죽 수갑에 쇠사슬. 다만 그땐 강제성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완벽히 억제되어 있었다. 그땐 괜히 두근거리고 긴장되었지만 지금은…… 이상했다.

억울함인가. 누명을 뒤집어쓰고 갇혀 억울해서 그런 것인가. 그녀의 기분은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리버…….”

“개를 찾을 여유가 있나 보군.”

버트는 코르크가 들어오자마자 죽일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둔한 버트라 해도 일이 이렇게 된 원인이 그에게 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코르크가 푹 팬 두 볼을 떨며 웃었다. 벌써부터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누르며 침착히 말했다.

“그 반항적인 표정……. 마음에 들어. 어디 한 번 네 무죄를 입증해보시지.”

코르크가 다가와 턱을 틀어쥐었다.

“잇!”

버트는 고개를 털어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눈에 힘을 풀지 않고 계속 노려보았다. 이번엔 버트도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했다.

하지만 아무리 얼굴을 일그러뜨려도 얇은 원피스를 입은 모습은 성노의 앙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코르크는 손을 가볍게 풀고 한쪽 벽면에 다가섰다.

횃불이 미약해서 몰랐는데 그가 간 곳엔 온갖 끔찍한 쇠붙이들이 걸려있었다. 꼬챙이나 톱은 기본. 용도 불명의 집게와 쇠막대. 구슬 달린 막대 등 온갖 도구들이 그녀의 불안감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거기다 주변에 말라붙은 핏자국은…… 이게 장난이 아니란 걸 실감하게 해주었다. 레드윙 산적 하나를 죽일 뻔한 뒤로 피에 대한 공포는 더 커졌다. 버트는 무서운 상상을 하며 코르크를 바라보았다.

“저, 전 정말 아니에요. 분명 누군가 제게 누명을…….”

“누가?”

“……네?”

“누가…… 왜? 뭘 얻으려고?”

“그……!”

막상 그렇게 물으니 할 말이 없었다. 설마 코르크가 자신을 노리고 이런 짓을 했을까. 아무리 그녀라 해도 코르크가 자신을 잡아 마음대로 하려고 누명을 씌웠단 생각을 하지 못했다.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눈을 보아도 흐려진 직감으로 의문을 풀 수 없었다.

“대답 못하는 건가?”

코르크는 날카로운 꼬챙이를 집어 겨눠보더니 허공에 슥 찔렀다. 버트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다급히 할 말을 생각했다.

그녀가 이렇게 필사적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선 로그아웃이 불가할 뿐더러 고문이란 상황이 매우 두려웠다.

만일 버트가 격렬한 전투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아니 설명서를 조금이라도 자세히 읽었다면 고통 지수가 감소되거나 아예 차단되어 아프지 않는단 걸 알았을 것이다.

코르크는 겁에 질린 버트의 모습을 감상하며 날이 잘 선 단검을 들어보였다.

“넌 하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는데…… 그럼 이제까지의 상황과 우리가 본 건 뭐지?”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자다 일어나보니 그렇게­”

코르크가 대뜸 다가와 팔을 붙들었다. 그러더니 팔뚝에 단검 끝을 쿡 찔렀다. 판타지아에서도 허용되는 통각이 그녀의 정신에 적용되었다.

따끔함이 느껴지니 소름이 쫙 끼쳤다. 그 작은 아픔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끝없이 샘솟아 버트의 의지를 뒤덮었다.

“얇게 썰어줄까, 아니면 잘게 다져줄까.”

무심한 그 물음에 버트의 입이 떨렸다.

이 자는 진심이다! 불안히 떨리는 두 눈이 코르크와 팔뚝에 닿아있는 단검을 번갈아보았다.

“자, 말해.”

“뭐…… 뭘요……?”

“너의 모든 죄를!”

“정말 안 했…….”

날렵하게 찌른 단검은 팔뚝이 아닌 버트의 얼굴 옆을 꿰뚫었다. 코르크가 아무리 썩었어도 기사였다. 검을 다루는 솜씨는 있었고 버트의 뺨엔 붉은 선이 길게 그어졌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칼놀림에 버트가 입을 뻐끔거렸다. 코르크는 단검을 뒤로 던져두곤 허리춤에 걸어놓았던 가죽 채찍을 꺼내들었다. 여러 갈래의 가죽 띠로 만든 이 채찍은 언뜻 보면 먼지떨이로 보였다. 하지만 결코 생긴 것만큼 가벼운 놈이 아니었다.

코르크가 히죽 웃으면서 채찍을 팽팽히 당겨보았다.

“그렇게 버틴다면야.”

버트의 옆으로 가선 엉덩이에 채찍을 휘둘렀다.

짝!

“꺄앗­!”

감옥을 울리는 차진 소리와 버트의 달뜬 비명에 코르크의 기분이 고조됐다. 얇은 원피스가 헤지고 직접 맞은 살 부분은 붉게 달아올랐다. 화끈거리는 엉덩이를 쓸어보려 했지만 두 손이 묶여있으니 하반신을 살랑거릴 수밖에 없었다.

“바른대로 말해! 안 그러면 네년은 물론 너와 관련된 모든 걸 찢어 버릴 테니까!”

큰 소리. 그녀가 언제 호통을 들어봤겠는가. 부모님도 바르게 자란 그녀를 심하게 혼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몰아붙이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발르틴에서도, 크람스에서도, 라피에 초원에서도 조금만 몰아붙여도 작아지는 버트였다. 험악한 분위기에 무차별적인 언어폭력까지 곁들여지니 금세 눈물을 쏟아냈다.

채찍질은 거세졌다. 이미 치마 부분은 너덜너덜해졌고 풍만한 엉덩이엔 붉은 자국들이 쭉쭉 그어졌다. 바들거리면서 몸을 이리저리 틀어대도 채찍은 집요하게 하반신을 노렸다. 허벅지와 엉덩이엔 채찍 자국이 그득했다.

아프다. 고통이 감소되었지만 피부에서 느껴지는 얼얼함은 어릴 적에 맞았던 회초리의 아픔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픈 건 누명을 썼단 것과 리버와 떨어져 감금당한 사실이었다. 말없이 훌쩍대는 버트에게 코르크가 채찍을 거꾸로 쥐고 몸 곳곳을 찔렀다.

“쓸데없이 몸뚱이만 발달했구나. 그래, 이 천한 몸으로 어떤 교육을 받고 지금 투입된 것이지?”

단단한 가죽 손잡이가 엉덩이를 찌르고 가슴을 꾹 눌렀다.

모욕적인 행사. 이제껏 느껴본 수치심과는 차원이 달랐다.

치욕. 정말 자존심이 찢어발겨지는 상황이었다. 왜 여기서 이런 모욕을 받아야 하나. 채찍으로 가슴을 꾹꾹 눌러대는 코르크를, 물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곤 로그아웃 창을 띄웠다.

“정신을 끊을 생각은 하지 마라, 이모탈. 눈을 감는 순간 개돼지한테 몸뚱이를 유린당하고, 잘게 다져서 말밥으로 던져줄 테니까. 더불어 그 똥강아지를 시작으로 네가 아끼는 모든 것을 찾아 부숴버릴 거다.”

로그아웃하겠냐는 질문. 그걸 보던 버트가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자기야 도망치면 끝나지만 나머지는? 니스와 라이는 판타지아를 좋아했고 리아주크와 퍼드롬, 화이트슈트…… 그리고 리버는 여기서 죽으면 끝이었다.

버트는 멍하니 고개를 떨궜다. 그녀의 턱을 코르크가 잡아들었다. 눈물에 젖은 허망한 두 눈이 코르크를 흥분시켰다.

평소 같으면 울고불고 매달리는 여자를 때리거나 짓밟았을 것이다. 하지만 왕마저 쉽게 넘보지 못한 검은 기사를 손에 넣었단 생각이 정복감을 충족시켰고 그의 폭력성을 무마시켰다.

무력한 강자를 보는 기분이란……!

코르크가 끈끈한 눈길로 버트의 몸을 훑었다. 그러다 눈썹을 치켜세우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의 손이 버트의 보들보들한 허벅지를 매만졌다.

기가 막힌 감촉.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의 손에 묻어난 반투명한 액체였다.

“허어.”

코르크의 감탄에 버트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눈앞에서 액체를 손가락으로 비비다 쭉 늘려보였다.

땀치곤 점성이 있고…… 비렸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나온 만큼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버트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말도 안 돼.’

느끼고…… 있었다고? 순간 알 수 없는 상실감이 찾아왔다. 이미 치녀나 다름없는 버트가 그 모습조차 자신임을 인정했다. 그래서 그간 쾌락에 미칠 수가 있었는데 '싫은 상황'에서 흥분했단 사실은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난 정말로……’

어디까지 변태가 될까. 이런 때에도 느껴대는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추락한 감정은 코르크에게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즐거워질 수 있단 생각에 히죽대며 버트를 내리깔았다.

“추잡한 암퇘지. 참으로 잘 길이 들었군.”

욕 먹었다. 이미 마음이 헤질 대로 헤진 버트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차라리 자신이 망가지는 건 상관없었다. 그냥 다른 이의 목숨을 담보로 느끼고 싶지 않았다.

‘리버.’

이미 여러 번 유희를 거친 버트의 몸은 남자를 갈구하며 호르몬을 흘려댔다.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언제든 남자를…… 아니, 여자든 남자든 가리지 않고 원했다.

코르크는 그 육체적 유혹을 거부하지 않고 손을 썼다.

얇은 옷으론 감싸지도 못하는 젖가슴. 그 은은하게 비춰지는 속살은 코르크의 입맛을 돌게 했다. 찢겨진 치마 사이로 풍성한 허벅다리와 살이 꽉 찬 음부가 손을 근질거리게 했다.

어떻게 맛볼까. 그 탐욕으로 들어찬 눈빛은 버트를 불쾌하게 만들었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쾌락에 지고 더 큰 쾌락을 기대해서?

아니다. 이건 무력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단 생각이 만든 육체적 절망! 바람 빠진 풍선마냥 늘어진 그 모습에 어느 정도 즐기던 코르크가 질린 표정이 되었다.

"기회를 줄까?"

그 말에 버트의 눈에 초점이 돌았다. 그렇게 속고도 또 기대하다니. 코르크는 속으로 비웃으며 버트를 지나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긴 뿔 같은 게 달려있는 금속판이었다. 그게 무엇인가 했더니, 코르크가 그걸 버트의 아랫도리에 끼워주었다.

금속 팬티? 뒤에 달리 뿔 같은 건 엉덩이 골로 파고들어 끼워졌다. 전면부는 아랫배의 절반과 음부 전체를 덮었다. 착용되고 나서야 그건 C팬티의 모양새가 됐다.

‘미끌거려…….’

차가운 느낌이 들 것이란 생각과는 달리 팬티는 따뜻하고 촉촉했다. 데운 로션이라도 발라둔 걸까. 굉장히 이상한 촉감이었다.

그녀는 알까. 몇 방울만 발라도 쉴 새 없이 아랫도리를 물바다로 만드는 미약이 듬뿍 발려져있단 걸! 지금 따스한 느낌도 극렬하게 흥분하면서 일어난 열기였다.

“음란한 네년이 1시간 동안 버티면 몰래 풀어주마. 그 강아지도 같이 놓아주지. 하지만 그러지 못 한다면…….”

언제 준비한 것일까. 그의 까딱거리는 손짓에 영상 하나가 띄워졌다.

작은 우리에 갇혀 기운 없이 처져있는 리버가 보였다. 버트는 서서히 타오르는 약효와 당황스러운 장면에 한 발을 내딛으며 리버를 부르짖었다.

너무 오래 붙어도 안 좋지만 그녀와 접촉한 이상 오래 떨어져도 좋지 않았다. 저렇게 기운이 없는 건 마기를 공급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리버! 리버에게 데려다주세요……! 저랑 오래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다구요……!”

정신을 놓은 듯한 그녀의 애원에도 코르크는 꿈쩍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압적으로 버트를 찍어 눌렀다.

“그럼 버텨봐라. 만일 그 전에 가버리면 저건 평생 볼 수도 없을 거다.”

“리버……! 으? 흐…… 흐악……?!”

즈우우웅­

갑자기 금속 팬티가 진동했다. 이 진동은 외음부의 살을 타고 음핵은 물론 체내의 모든 걸 때렸다. 그리곤 음부에 닿아있는 부분이 불룩해지나 싶더니 질 안으로 파고드는 게 아닌가.

“히아악­!”

약 때문에 건드리기만 해도 짜릿해지는 몸이 성감대를 건드렸다. 시작부터 버트는 죽을 듯한 소릴 냈다. 숨까지 참아가며 버티는 그녀를 보며 코르크는 흐뭇하게 웃었다.

입술을 씹어대며 눈동자를 아무데나 굴리고, 머릴 이리저리 꺾으며 몸을 베베 꼬는 모습은 교태로웠다.

코르크는 이미 충만하게 부푼 음경을 애써 진정시켰다. 아직 아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그저 다가가 속삭였다.

“힘드나? 그럼 시원하게 싸질러버려. 길거리 개들처럼 질질 흘려대라고.”

이미 발르틴에서 각종 음담패설을 섭렵했다. 하지만 그건 하나같이 버트를 위해 뱉은 성적 흥분의 도구일 뿐이었다.

코르크처럼 작정하고 모욕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물며 맨 정신이어도 견디기 힘든 말을 정신이 무너져갈 때 들으니 더 충격적이었다.

개처럼……? 물론 가버리는 건 쉽다. 당장에라도 힘을 준 걸 풀어버리면 되니까. 그러면 리버는? 이대로 시름시름 죽어가게 두란 말인가?

그 순간 코르크가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가져다대더니 쭉 빨아대며 가슴을 주물렀다.

“흐아앙­!!”

안 그래도 다리가 저릴 정도로 쾌락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걸 참느라 죽을 맛인데 그가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아니 기름을 부어넣고 있었다.

서툰 애무지만 지금의 버트에겐 정말 효과적이었다. 코르크는 버트의 피부를 맛보다 표정 관리도 안 되는 버트의 상태를 눈치 채고 미끼를 던졌다.

“견뎌내는 모습이 가상하군. 조금만 더 힘을 내. 10분 남았어. 딱 그만큼만 참으면 되니 힘내라고.”

그 말을 하며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 모래시계를 탁 얹어놓았다. 저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건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이 생각은 온데 간 데 없었다. 사실 포기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얼마 안 남았단 말이 들으니 희망이 샘솟았다.

‘할 수 있어!’

물론 쉽게 이겨낼 만한 건 아니었다. 쾌락을 참는 고통은 굉장했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단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호흡이 꼬이고 몸이 덜덜 떨렸다. 몸이 뜨겁다 못해 갈가리 찢기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코르크의 말이 그녀의 의지를 불태웠다. 머릿속엔 10분이라는 생각이 박혔다. 눈은 모래시계를 계속 힐긋 거렸다.

“끄윽…… 끅…… 흐으윽……!”

일말의 희망.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음부를 쑤셔대며 진동을 주는 기구와 코르크의 손길을 어떻게든 참아내면 됐다.

하지만 그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이 기구는 조금 더 세밀하게 움직였고, 덕분에 버트는 몇 번의 고비를 겪었다.

“얼마 안 남았군.”

그 말을 하며 다가선 코르크가 원피스를 위로 들추더니 적나라하게 드러난 버트의 가슴을 매만졌다. 버트가 놀라 입을 벌렸다가 살짝 새어나온 신음과 함께 온몸을 떨었다.

코르크가 집요하게 가슴을, 그것도 유두를 집중적으로 건드리니 한계점에 이른 버트가 고개를 뒤로 꺾었다.

‘아, 아흐으! 가슴…… 가슴이……!’

그때 눈에 보인 건 정말 한 줌도 남아있지 않은 모래시계. 얼마 안 남았단 생각에 버트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뻣뻣하게 굳었다. 소리는 나오지도 않고, 눈을 까뒤집으며 오르가즘을 막았다.

“흑! 흐윽!”

코르크가 유두를 비틀어 당겨도, 기구가 음핵을 눌러대도 겨우겨우 넘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리고 마침내 더 떨어질 모래가 없는 모래시계를 보았다.

“끝났­”

그 순간 버트가 혀를 빼물며…… 가버렸다.

“그으…… 으그극……”

코르크는 손뼉을 쳤다. 버트는 끝까지 버텨낸 것에 만족하며 이제 끝이라 여겼다.

“잘 버텨냈군. 15분은 버텼어.”

“하아…… 하아……?”

“1시간을 버티라고 했을 텐데?”

순간 버트가 벙찐 모습이 되었다. 기구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여대는 것도 잊고, 코르크의 말을 곱씹었다.

“넌 딱 15분을 버텼어.”

“거, 거짓말…….”

“그래, 거짓말이지. 10분 남았단 말.”

버트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코르크를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자신은…… 1시간도 안 된 시간을 버텼다고 생각하며 기뻐했던 건가?

한순간에 바보가 되어버린 버트가 억울함에 표정을 구겼다. 코르크는 그 얼굴을 보며 손뼉을 치며 좋아라 하더니 손가락을 탁 튕겼다.

“네년의 입에서 범행 자백이 나올 때까지 그 놈이 놀아줄 거다. 그 똥개를 만나게 해주는 건…… 고려해보지. 어차피 내가 준 기회도 못 잡은 주제에 더 큰 걸 바라진 말라고.”

그 말을 들으며 버트는 차오르는 흥분에 몸을 떨었다. 이미 극에 달했던 몸이니 쉽게 오르가즘에 도달하려는 순간…… 기구가 멈췄다.

“아?”

우연인가? 애달은 버트가 하반신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지만 되려 더 감질날 뿐이었다. 서서히, 버트의 몸이 식어갈 때 쯤에 다시 기구가 움직였다.

‘뭐야…… 대체……?’

이걸 3번 반복하니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자의로 견뎌냈던 것과는 달리 이건 정말 고문이라는 게 와닿을 정도로 괴로웠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인내의 고통을 강제적으로 당하니 정신이 산산히 바스라지고 있었다.

“안 돼 멈추지마 제발……! 멈추면 안 돼! 아으……! 싫어…… 제발!! 흐윽……!”

울었다.

그녀는 살면서 가장 서럽게 울며 하지도 않은 범행을 자백했다. 그리고 간신히 오르가즘에 도달 했다. 지칠 대로 지친 그녀의 귀로 경고가 들려왔다.

“다시 말하지만 달아날 생각도, 정신을 계속 끊을 생각도 하지마라. 그러는 순간…… 넌 모든 걸 잃는다.”

버트가 지하로 다시 끌려간 지 약 1시간 48분 째의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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